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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하루비
 
 
 
카페 게시글
프리라이트 스크랩 아내의 외출
창강 추천 0 조회 56 05.11.08 09:59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 단풍구경 한번 가자.”

“나는 못가, 갈려면 혼자 가”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졸라대는 아내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듣고

혼자 가라며 맘에도 없는 말을 했다.

언제나 내가 동행을 해야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여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휴가를 내서 길을 떠난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휴가철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휴가를 낸다는 것도 멋쩍고 아무래도

오너의 눈치를 봐야하기에 혼자가라며 염장을 지른 것이다.

사실 여름휴가를 아껴 두었지만 직장생활 3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한번도

휴가다운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속말로 아끼면 똥 된다는데 아끼다가 결국은 반납하고 만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목요일 아침 출근을 돕던 아내가 주섬주섬 여행가방을

챙기더니 출발시간 늦는다며 나보다 앞서 나간다.

그동안 삼남매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정말로 여행을 떠난다니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정말 갈려고? 누구랑 가는데?”

제수와 단 둘이 하룻밤만 자고 온다며 들떠있는 아내를 보니 차츰 남편의 자리를

잃어가는 것만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자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뜨뜻미지근하게 확답을 하지 안했더니 결국 일을 벌인 것이다.

무거운 짐 벗어놓듯 홀가분하게 떠나는 아내는 얼마나 자유인이 되고 싶었을까?


“여관에서 잘 때 문 꼭 잠그고 자, 알았지?”

심드렁하게 승낙을 하였지만 도처에 늑대 같은 남자들이 버티고 있어

걱정이 되어 당부 말을 잊지 않았다.

어차피 떠나는 여행을 가벼운 기분으로 보내고자 승낙은 하였지만 아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가 없는 집은 왠지 휑하고 마치 정지된 공간처럼 삭막하기 그지없다.

아내가 없이 하루 정도는 버틸 수는 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밥통에 가득 밥을 해 놓아도 반찬 끄집어내기가 귀찮아 대부분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다.


“단풍이 너무 좋아.”

점심나절이 되자 오색에 도착했다며 달뜬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으니 긴장을 풀고 가을 냄새 가득 묻혀 오게, 해방이

되고도 싶었겠지.... ’

아내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낼 비 안 오면 설악산 갔다 1박 더하고 올께.”

교통비가 얼만데 기왕 나왔으니 설악 단풍까지 보고 오겠다며 한 술 더 뜬다.

일기예보가 내일은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했으니 어차피 낼이면 돌아올 수밖에

없을 터이니 선심 쓰는 김에 또 한번 승낙하고 말았다.


이튿날 가을비치고는 꽤 많은 비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오전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찬바람과 함께 추위를 몰고 온다.

아내에게는 안됐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틀림없이 귀가를 서둘러 지금쯤은 영동고속도로 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점심때가 되자 날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짓말처럼 개고 말았다.

퇴근시간이 다되어 걸려온 전화는 집이 아닌 설악산 흔들바위란다.

‘이 여자들이 겁도 없이....’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난 얼마나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했던가?

나는 나 홀로 산행을 즐기며 산을 쏘다니거나 당구를 즐겼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대부분 내 위주로 살아온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영화관에만 가면 졸기 일쑤니 코드가 안 맞고

여행을 해도 당일치기를 좋아하니 그 또한 코드가 맞지 않는다.

이제 더 늙기 전에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이 필요한 듯도 싶다.


0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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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1.08 10:53

    첫댓글 창강 선생님 같이 다녀오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저도 큰 맘먹고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다녀왔는데 좋더군요. 물론 창강 선생님이야 등산을 하시니 단풍구경 지겹도록 하시겠지만 부부가 같이 보는 단풍은 더 붉어 보이지 않았을까요

  • 05.11.08 13:37

    제말이...그말입니다. 담부턴 꼭 함께 다시시길 제 명령입니다. ㅎㅎㅎ

  • 05.11.11 14:11

    아이고 어짜노? 창강선생님 클 났읍니다. 한번 나가기가 무서워 같이 가자 졸랐지 이제 여행맛을 봤으니 혼자 다니는것도 어렵지 않으실텐데 그일이 큰일 아닙니까? 사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아내들도 남편하고 가는것 보다 친구하고 가는것이 훨씬 재밋거든요. 문밖을 나가는데 수속이 복잡하니 포기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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