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 성서』가, 그 옆으로는 0.5mm 검정색 볼펜과 수정액, 그리고 스프링 양장본 쓰기성경 노트 한 권이 놓여 있다. 성경 필사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 장비(?)들 외에는 무엇 하나 없이 깨끗하다. 김경애 씨는 늘 이곳에 앉아 성경을 옮겨 쓴다. 그가 성경을 쓰기 전에 하는 일은, 우선 한쪽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성호경을 긋고 가슴에 품은 지향을 생각하며 기도를 바친다. 대학을 가고, 대학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기 위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지내고, 박사과정을 거치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모든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에 김 씨의 기도는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모든 자녀를 다 품어 안는다. 하지만 성경을 필사할 때만큼은 가장 급하다고 생각되는 자녀를 나름 가려서 그에게 필요한 한 가지 지향에 특별히 온마음을쏟는다.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보면 가족들이 제가 지향을 담아 기도했던 그 자리에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분의 놀라운 이끄심과 제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그분의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기도 지향에 대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김경애 씨의 대답이었다. 그는 매일 빠짐없이 평일미사에 참여하고 레지오 활동을 계속해 왔다. 이는 성경 필사보다 더 오래된 그의 일과요, 멈출 수 없는 그의 신앙 활동이다. 그런 틈틈이 그는 기도하듯 성경을 옮겨 쓰는 것이다. 그동안 김 씨는 자녀들 외에도 친정어머니를 위해서 한 번 성경 완필을 했고, 주위의 기도가 필요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을 위 | | 해 복음서 전체를 쓰기도 했으며, 이번 19번째 완필한 성경 쓰기는 50여 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성경을 다 쓰고 나서 그냥 집에 보관해 두었지만 근래에는 지향을 둔 자녀나 다른 가족들에게 완성된 쓰기성경 노트를 직접 선물을 한다. “참 감사한 것은 아무리 오래 성경 필사를 해도 손이나 손목, 팔목이 아프지 않고 시간이 나면 그냥 그 자리에 앉고 싶고 계속 쓰고 싶다는 겁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담아 늘 기도하듯 성경을 필사하는 어머니 김경애 씨의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레 대물림되는 듯하다. 어머니가 했던 그 모습 그대로 이젠 자녀들도 자신들의 자녀를 키우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앞에서 기도하듯 지향을 담아 성경을 옮겨 쓰는 것이다. 김경애 씨가 지난 7월부터 시작한 스무 번째 성경 필사는 예수님을 위해 그 지향을 두기로 했다. 평생 자신과 가족을 옳은 길로 이끌어 주신 분, 그 긴 신앙여정을 알게 모르게 함께 걸으면서 늘 힘이 되어 주셨던 분, 항상 무엇인가를 바라고 구하는 자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걸 내어 주셨던 바로 그 예수님만을 위해, 오로지 그분만을 생각하며 그분의 말씀 한 자 한 자를 적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 쓰다보면 어느덧 그분을 더욱 잘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작은 바람을 담고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