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사는 이지영 강사가 2등급 블랭크를 언급할 정도로 쉬웠다고 하며, 생윤 역시 평이했다. 그런데 모든 학원 예측에서 윤사 블랭크가 안 보이므로 2등급 블랭크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생윤은 1등급 예측이 대체로 50점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48점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평이했을까?
첫째, 대통령 발언('교과 외 출제 금지) 때문이다. 그런데 생윤만 놓고 보았을 때 교과 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확실하게 정오답을 판별할 수 있는 선지를 던져주고 이것을 소거하면 정답을 쉽게 고를 수 있게 한 것인데, 평가원이 그동안 잘 써먹던 수법이기도 하다. 예컨대, 9번 같은 경우다. ㄷ(부정의한 법의 변혁은 시민 불복종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은 간단하게 제거된다(선지 표현 자체는 매우 아마추어틱하다. 아마추어틱하다는 것은 학문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느닷없이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가 뭔가? 선지에서 '~가 아니라'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아마추어틱한 것이고,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역시 아마추어틱하다. 롤스는 공리주의자가 아니니까 이 선지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평가원이 출제한 것이다). ㄷ이 제거되면 이제 ㄱ, ㄴ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ㄱ(시민 불복종은 다수자의 정의감을 나타내는 양심적인 행위이다)은 다들 쉽게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교과 외가 조금씩 섞여 있는데, 단지 이 교과 외 선지 가지고 정오답을 고르게 하는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출제위원 '5배수 추천' 때문이다. 이번에 평가원에서는 등록되어 있는 인력풀에서 5배수 명단을 제시하고 그중에서 출제위원을 추첨으로 선정했다는데, 평가원 인력풀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른바 '허수들'이다. 그나마 잘낸다고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문제를 못 만들어서 허덕이고 있는데, 허수들까지 포함해서 추첨하면 출제위원 퀄리티는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이 모여서 뭘 어떻게 내겠는가? 이번에 '기출 선지들 재탕'이 심했던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거의 모든 선지가 여러분 눈에 익숙했을 것이다. 고난도의 문항을 교육과정 안에서 품위 있게 구성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셋째, '평가원의 전과들' 때문이다. 필자가 평가원 오류 수없이 지적해 온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것이다. 평가원이 공식적으로 오류를 인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필자도 어쩔 수 없이 이 오류 선지들을 '암기'하라고 요구하지만, 이제는 오류임을 인지한 평가원이 오류인 줄 알면서 또 낼 수는 없다. 관련 내용을 내는 것조차 두려울 것이다. 이런 오류 선지들을 다 피해서 내야 하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작년 필자는 평가원에 경고하기 위해 당시 수능 생윤에 출제된 롤스의 '천부적 재능에 대한 소유권한' 선지(10번 문항)와 레건의 '쾌고감수능력은 도덕적 지위 인정을 위해 고려할 조건' 선지(14번)를 가지고 소송을 제기했다. 필자는 응시자가 아니기 때문에(설령 응시했더라도 해당 문항을 틀려야만 당사자 적격이 생긴다. 맞았으면 소송 이익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법원에서 당사자 적격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경고하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당사자 적격을 인정받지 못해 각하판결(소송이 성립하지 않음을 선고하는 것)을 받았고 따라서 본안 판단(실제 오류인지 여부에 대한 판결)을 받지 못했지만, 평가원 윤리 관리자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년간 평가원은 '레건 선지'를 출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수능에도 레건은 등장하지 않았다. 롤스는 출제하고 있지만 그가 '천부적 재능에 대한 소유권한을 인정한다'는 식의 선지는 당연히 출제하지 못하고 있다(참고로, 이 선지가 오류라는 점에 대해서는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자 롤스 "정의론" 번역자이신 황경식 교수님께서 확인해주고 계시며, 관련 글은 수능 직전에 필자가 올렸다).
https://cafe.naver.com/suhui/27729082
아무튼 과거 오류 선지들 자체는 물론이고 엇비슷한 내용도 출제하면 안 된다는 구속을 받는 상태에서 출제해야 하니 출제위원들로서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이번 수능 윤리가 너무 평이해서 불만이 많고 평가원도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책을 세울 것이다. 더욱이 오르비를 보니 내년에 자연계 학생들의 '사탐런'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던데,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평가원으로서는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보통 문제가 너무 평이해서 불만이 제기되면 그다음 해에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평가원 관리자가 1년을 준비하고 고민한다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올해 국수영이 다 어려웠던 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게 영향 없습니다. 국영수가 어려우니까 사탐을 쉽게 낸다, 이런 게 없어요. 서로 알지도 못하고, 그걸 조정할 수 있는 기관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평가원은 최대한 변별력을 갖추려고 하고, 47점이 1등급 나오는 걸 목표로 합니다. 그걸 목표로 하지만 고난도 문항 제작이 안 되면 올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고, 때로는 45점이 1등급 나오기도 하는 거죠.
47점 1등급을 목표로 문항 제작을 하지만 그걸 정확하게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다만 제가 들어갔을 때는 거의 항상 1등급 46점-7점이긴 했습니다(윤사). 모평 때는 45점이 1등급이었던 때도 있었던 같기는 한데, 그때 제가 고난도 전담이다시피 했는데, 고난도 문항을 3개 정도 준비했으면 그걸 다 출제하고 싶었던 거죠. 고난도인 데다 선지 퀄리티가 괜찮으면 다른 사람들도 결국 동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1등급 44점인가 45점인가 했던 때가 한번 있었죠(모평).
수능 때는 그런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정말 조심하기 때문에 고난도 문항을 제가 3개 준비하고 들어갔다고 해도 1개 정도는 난도를 크게 낮춰서 내곤 했고, 그래서 1등급이 대체로 46-7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관리자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첫째, 오류 없어야 한다, 둘째, 난이도가 적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도 문항 제작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이 고난도 문항이 확보되면 관리자가 매우 흡족해하고 맨날 웃음만 나옵니다. 고난도 문항이 2개 정도 필요한데 3개 이상 가지고 들어왔다면 이때부터 관리자는 매우 여유로워지죠. '조정'이 가능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당시에 관리자와의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