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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문제와 한 • 일관계
조하만(자유기고가)
재미동포사회에 부는 바람
지난 9월 28일 뉴욕에 있는 16개 한인 단체들은 '미동부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를 결성했다.
10월 5일에는 뉴저지에 있는 한인 단체들도 여기에 들어가 지금 이 대책협의회는 모두 21개 단체가 모인 커다란 조직이 되었다. 이 협의회에는 뉴욕한인회, 뉴저지 한인 총연합회를 비롯한 한인사회를 대표한다고 하는 단체들, 기독교계 사회단체들, 일반 사회단체들이 모여들었다. 이 협의회는 '정신대 문제에 관한 신고 및 문의센터'를 뉴욕과 뉴저지 한인 기독교청년회(YMCA)에 두고 앞으로 유엔, 일본정부, 미국정부에 보낼 탄원서명운동과 국내에 있는 정신대 피해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을 펴고, 정신대문제 궐기대회도 열기로 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8월 9일에는 '코리안 아메리칸 정신대 보상위원회'가 연 궐기대회가 뉴저지에서 열렸고 일본자동차 안사기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나라 안팎에서 크게 떠오른 종군위안부 문제가 이제 여기 재미동포사회에서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동포사회에서 한 특정한 문제를 두고 이처럼 각계각층이 협의회를 만들어 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과 평양에서 아시아로, 그리고 유엔으로
한편 국내에서 결성된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는 지난 2월 유엔의 비정부 자문기구(NGO)인 여성인신매매를 반대하는 국제연맹'과 '국제차 별폐지협의회'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알렸고, 지난8월 10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소위원회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들고나가 유엔 안에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고, 이 회의에 나온 북한대표도 일본정부가 인권을 짓밟은 과 거를 청산하려는 정치적, 도덕적 의지가 없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유엔 인권위원회 소위원회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로 결정하고 내년 여름에 열릴 연례회의에 특별보고서를 내놓기로 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서울에서는 한국, 대만, 필리핀, 홍콩, 태국, 일본의 여성단체 대표가 모여 '강제종군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위원회'를 만들었고, 일본 오사카에서는 한국, 미국, 독일 등 다섯 나라 사회운동단체 대표들, 관련학자들, 재일동포, 일본시민들이 참석한 '종군위안부 문제 국제토론회'가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전쟁희생자를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모임'이 주최하여 열렸으며, 평양에서도 일본의 '종군위안부 진상조사위원회'와 북한 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한 자리에 모여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보상에 대한 조. 일 공동토론회'를 열었다.
한편 때를 맞춰 일본의 '전후 보상문제조사단' 은 서울에 가서 종군위안부 문제와 태평양전쟁 피해사실에 관한 조사와 증거수집활동을 벌였다. 이 보다 먼저 6월 1일에는 옛 종군위안부를 포함한 '한국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원고단 41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전후배상청구소송 제1차 구두 변론이 도쿄지법에서 열렸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무엇보다도 우리 관심을 끄는 것은 남과 북, 일본의 여성단체 대표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일이다. 지난 9 월 1일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제3차 평양토론회 '에서 일제 식민지 보상문제와 종군위안부 보상문제를 토론한 여성대표들이 앞으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풀어가기로 한 것은 가장 커다란 성과로 보아야 한다.
왜 이 문제를 꺼내야 하는가
"'정신대'라는 말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종군위안부'라고 해야 한다. 일제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마당에 끌고간 우리 여성들 가운데 는 노예처럼 일을 시킨 여성들도 있고, 일본군대를 위한 이른바 '위안부'로 희생당한 여성들도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전쟁에서 지면서 종군위안부들 목숨마저 앗아갔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서 숨죽이고 살다가 한맺힌 삶을 마쳤으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희생자들은 이미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되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나서 벌써 반세기나 흐른 오늘 우리는 왜 이 문제를 꺼내야 하는가? 일제가 지난 날 우리나라 여성을 종군위안부로 끌고간 일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였는가를 세상에 밝혀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까닭은 일제에게 짓밟혔던 식민지 상처,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아물지 않아 아직 도 피가 흐르고 있는 그 깊은 상처를 딛고 우리 모두 오늘 한 • 일 관계의 실상을 똑바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까닭은 식민지 역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인 종군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오늘 한 • 일관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종군위안부 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우리는 희생당한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적십자사의 인도주의 관점 밖에 내세울 것이 없게 된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과연 인도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까? 아니다. 이 문제는 일제 침략전쟁 불길 속에 징용, 징병, 학병으로 끌려가 당한 희생과 일제가 우리 땅에서 마흔 해 동안 저질렀던 온갖 약탈, 학살, 착취, 압박 따위 만행을 포함한 식민지 피압박 민족문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종군위안부 문 제의 본질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민중 사이에 서 생긴 모순, 바로 거기서 밝혀내야 한다.
두 나라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
사십년이 넘도록 파묻혀 있던 이 뼈아픈 역사가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져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일본을 답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뒤 부터다. 그러다가 올해 1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 일정상회담 앞 뒤로 이 문제는 국민여론 속에 다시 크게 떠올랐다. 그때 국내언론들은 일제침략자들이 식민지 시 대에 조선인 종군위안부들에 대해서 얼마나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는가를 여러 증거자료를 들이대며 들 추어냈고, 그것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여론이 들끓었다.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일본총리 미야자와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에 관한 물음이 나오자 진상을 밝혀보겠다는 빈말만 늘어놓으며 슬쩍 발뺌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생활원조기금'을 일본적십자사 안에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에 감추어진 속셈은 무엇인가?그것은 저들이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억압에서 생겨난 이 문제 의 본질을 단지 적십자사의 인도주의로 덮어버리려는 참으로 너절한 술책이다. '한국정신대 대책협의회'가 이 제안을 일제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덮어씌우고 돈 몇푼으로 서둘러 해결하려는 얄팍한 술수 라고 비난하고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위로금 따위는 받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것은 옳은 일이다. 이 단체는 덧붙여 한국정부도 진상을 밝히는 일에 나설 것과 일본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 보이라고 요구했다.
한국정부가 만들어 놓은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은 지난 6월말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를 내놓았고, 얼마전에는 일본정부에게 관련된 증거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여기서 한국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식민지 피해 보상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정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또는 할 수 있는가를 곰곰히 따져물어야 한다. 한국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들고 나온 까닭은 한 일정상회담에서 두 나라 사이의 경제문제를 자기 쪽에 이롭게 풀기 위해서 일본 정부에 대해 잠시동안 써먹을 '외교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 일수교협상과 종군위안부 문제
지난 2월 1일 북경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열린 제6차 조· 일 수교회담 사흘째 회의에서 두 나라 대표들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보상문제를 협의 했다. 이 수교회담이 열린 뒤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교전당사국 사이의 전쟁배상, 일본이 빼앗아간 재산에 대한 청구권. 전후 45년 동안 생긴 손실에 따 른 전후보상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서 일본은 전쟁배상이나 전후보상은 인정할 수 없고 청구권만 인정하겠다고 맞서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18 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5차 회담에서 북한은 전쟁배상이나 전후보상문제는 더이상 꺼내지 않고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끼친 인적 물적 피해, 불행, 고통에 대해 가해자로서 먼저 사과하고 물질적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더우기 제6차 회담에서 북한은 보상문제의 촛점을 종군위안부 문제에 맞추며 일본을 몰아세웠다. 그리고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제7차 회담에서는 종군위안부 피해보상문제를 더욱 거세게 들고나오면서, 회담이 끝난 이틀 뒤 북의 이삼로 수석대표가 남쪽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남북이 함께 대처하자고 제안 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총리 미야자와가 서울에 갔을 때 한 사죄와 반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치고, 보상은 검토하여 청구권과 함께 한데 묶어 처리하겠다고 맞섰고, 남한정부는 북이 제안한 종군위안부 문제 공동대처 방안을 거부했다.
잘못은 한• 일수교협정에서 비롯되었다
나라 안팎에서 이 문제 때문에 여론이 들끓어오른 요즈음, 가해자이며 범죄자인 일본정부가 내보이는 기본태도는 과연 어떠한가? 저들은 "65년에 한. 일수교협정으로 모든 보상이 끝났다. 정신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강제연행은 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생긴 일이니 너무 따지고들지 말자."는 식으로 줄곧 발뺌을 하면서 마지못해서 말로만 사과를 하는 척하면서 슬쩍 넘겨 버리려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정부가 식민지 피해보상문제에 대해 이 처럼 성의없는 태도를 내보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남한정부가 1965년 온 겨레가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맺은 한.일수교협정에서 이미 식민지 피해보상 문제는 완전히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3일자 동아일보는 한.일수교협정의 뼈대가 된, 62년에 작성된 ‘김종필- 오히라 비망록’ 내용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리면서 한국 정부가 이 식민지 피해보상 문제를 깡그리 망쳐놓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 정부 앞에서 얼마나 굴욕스럽게 무릅을 끓었던가를 들추어냈다. 일본말과 영국말로 쓴 이 비망록에 김종필(그 무렵 중앙정보부장)은 원래 남한정부가 청구권 명목으로 일본 정부에 달라고 했던 7억 달라에서 크게 뒤로 물러서서 청구권이 아니라 ‘독립을 축하하는 경제원조’라는 말도 안되는 굴욕스러운 명목으로, 그것도 수교없는 나라와 차관거래를 하지 못하게 한 국내법을 제멋대로 어기면서 금액도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민간상업차관 1억달러로 줄이고 말았으며, “양국정부는 이상의 조치로 양국간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하는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이에 앞서 5.16 쿠데타로 정권을 쥔 박정희(그 무렵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는 61년 11월 12일 동경에서 일본수상 이케다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한국정부는 법적 근거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만 달라고 한다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 그나마 청구권도 법적 근거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만 달라고 한다니 이건 또 무슨말인가! 일제침략자들이 언제 ‘법적근거’를 두고 우리 강토를 짓밟고, 우리겨레를 자기들 침략전쟁에 대포밥으로, 노예로, 위안부로 끌고갔단 말인가 !
굴욕외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무렵 최고권력자였던 이 두 사람은 일본정부 협상대표에게 "한국에서 군정기간 동안 한 • 일 수교교섭을 마무리해야지 민정으로 넘어가면 시끄러워진다"고 하면서 3억달러를 서둘러 챙겼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일본정부로부터 굽신거리면서 뒷돈으로 받은5천만달러는 공화당 창당자금으로 써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저들은 일제 식민지 마흔해 동안 우리 겨레가 겪은 피눈물 나는 역사 위에 청구권이 아니고, 배상은 더욱 아니고 고작 무상원조 3억달러와 뒷돈 5천만달러를 챙기면서 제멋대로 마침표를 찍어버린 것이다. 한. 일수교협정을 반대하는 겨레 양심이 '나라를 또다시 팔아먹은 제2의 을사조약'이니, '매국외교'니 하며 울분을 터뜨렸던 지난날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종군위안부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일본 • 일본사람 • 일본제국주의
지난 1991년 1월 일본총리 미야자와가 서울에 갔을 때 "한 일 두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젊은이를 오가게 하자고 합의했고, 이를 따라 7월 7일부터 한 달동안 한국 교육부와 일본 외무성 밑에 있는 국제협력사업단이 함께 연 1992년도 한국청년단 일본파견사업에는 모두 1백명이나 되는 우리 젊은이들이 나섰다. 특히 나라안 25개 대학에서 한 사람씩 뽑은 대학생 대표단은 사흘밤을 와세다대와 동
경대생 30명과 함께 먹고 자면서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거기에 참가했던 대학생 김 아무개 씨는 귀국해서 한 일간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합숙을 마치고 헤어질 때는 두 나라 여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할 만큼 정이 푹 들었다. 평소 일본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일본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대부분 솔직하고 건전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민간교류를 자주한다면 한. 일 사이에 잠재 돼있는 민족적 감정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학생이 한 말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놀라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이 어디에 그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 대학생에게, 한. 일 사이에 생겨난 모순관계를 오로지 '민족 감정'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 대학생 에게 사흘밤 합숙과 민간교류의 분위기는 너무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른바 한. 일 민간교류가 그 뒷전에 감추고 있는 무서운 정치음모를 파헤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노리는 과녁은 과학적 현실인 식을 값싼 감상주의로 뒤바꿔놓고, 반일역사의식을 죽이면서 좀쓰러운 개인경험만을 살리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대학생의 눈에는 '착하고 솔직하고 건전한 생각을 가진 일본사람들만 비칠 뿐,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 곧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이 과연 우리나라 민중의 목에 어떻게 예속의 사슬을 조이고 있는지는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미야자와는 종군위안부 문제로 들끓어오르는 반일감정을 민간교류라는 정치음모로. 잠재우려 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의식이 있고 현실을 제대로 본다는 사람도 착하고 솔직하고 건전한 생각을 가진 일본사람들과 자꾸 어울려 지내다보면 저도 모르게 일본의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에 대한 경계심까지 몽땅 풀어지고 일본이라는 실체를 '일본사람들'로만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기 쉬울텐데, 하물며 그렇지 못하고 아리송한 반일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이 대학생에 대해서야 더는 말해서 무엇할까. 지난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집어삼키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범죄자, 오늘도 우리나라 민중들에게 예속과 굴종을 강요하는 가해자는 '일본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국가 권력과 독점자본, 곧 일본제국주의라는 역사의식, 현실인식이 사라지고 마는 것은 어쩌면 이 아리송 한 반일감정이 걸어야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지일과 극일의 논리
이 아리송한 반일감정에 대해서 지난 8월 20일자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런 글을 실었다.
"한국의 반일감정은 과거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한. 일 사이의 격차에서 오는 한국인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일본이 과거에 대해 충분히 사죄한다고 해서 한국의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문제는 명분일 뿐이고 실상은 현재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격차가 반일감정의 근 본원인이다."
이 글을 읽은 국내 일간지 동경특파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월감과 열등감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일본을 보고 있고, 일 본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며 식민지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가 그저 무턱대고 일본사람들을 '쪽발이'라고 부르며 깔보는 아리송한 반일감정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을 싫어하는 혐오감이다)은 우월감과 열등감이 엇갈리는 마음자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도 있다. 이 특파원은 이러한 일본혐오증은 일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이성을 잃 은 감정상태이므로 이제 우리는 정치.경제면에서 앞서가는 일본을 먼저 잘 알아야 하고(지일), 열심히 땀흘리고 온힘을 기울여 일본을 따라잡아야 한다(극일)고 주장했다. 그래야 앞서가는 이웃나라에 대한 무지와 시기와 질투심에서 나오는 아리송한 일본혐오증을 벗어나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결국 어떠한 일본관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모아지고 있다.
일본관을 바로 세워야 할 때
그렇다면 일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일본의 실체는 아시아 나라인 일본이 어떻게 해서 서방 선진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제대국, 기술 대국으로 올라서게 되었으며, 요즈음에는 국제사회 에서 제 경제력에 걸맞는정치력을 다져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드러난다. 미.일 사이에 무역마찰이 생기고, 자위대 병력이 일본기 휘날리며 캄보디아에 들어가고, 일본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일 따위가 모두 여기에 걸려있는 문제다.
지일과 극일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이 문제가 나오면 대뜸 일본에게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고 대꾸할런지 모른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 라니까 우리가 쓸데없는 반일감정에만 사로잡혀 있을 게 아니라 일본을 알고 배워서 이겨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일본사람의 부지런한 생활태도, 일본기업의 독특한 기업경영방식 따위 얘기가 그들의 일본관을 이루고 있는 앙상한 뼈대다.
그러나 이 앙상한 뼈만 남은 일본관은 식민지 역사 한복판에서 울려나오는 종군위안부들의 울부짖음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아시아 나라인 일본이 선진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 저지른 제국주의 침략사를 똑바로 알아야 하며, 지금도 그 침략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일본관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 위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일제침략사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끝무렵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1991년 수출입 평가와 92년 전망'이라는 자료는 우리에게 놀라운 정보를 알려준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는 모두 96억 6천만 달러인데 그 가운데서 일본에게 적자를 본 것이 무려 91%이며, 올해 무역수지 적자는 1백 30억달러나 될 터인데 그 가운데서 대일무역적자는 자그마치 1백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일본에서 사들여온 기계류와 부품 같은 설비투자에 쏟아부은 돈이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을 늘이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중간재. 자본재를 사오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보기를 들면, 만일 국내독점재벌이 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할 때 일제 부품과 소비재 1억6천만달러 어치를 들여와야 하고, 민간소비지출을 10억달러 늘리면 일제상품 3천3백만달러를 수입해야 한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 10억달러를 수출해도 일본에서 1억1천3백만달러를 수입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무역종속 구조에 얽어매인 우리 경제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마루베니, 닛쇼이와이, 이토추 따위 일본독점자본들은 우리나라 무역시장이 활짝 열릴 것을 미리 내다보고 우리나라 43개 큰 기업에 투자하여 적게는 10%, 많게는 60%까지 제 몫을 움켜 쥐고 있다. 금융종속구조다.
이러한 종노릇'은 기술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처음무렵 경제기획원이 내부에서 쓰려고 만든 세계경제여건변화와 무역수지분석'이라는 자료을 보면, 90년 기준으로 공작기계의 대일수입 의존도는 59%, 기어와 베어링은 61%, 기어박스는 76%, 특수산업용기계는 51%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종속은 첨단산업으로 가면 더 심해져서 반도체 장비를 보면 국내생산 비중이 겨우 7%에 이르고 거의 모든 설비들은 일본에서 사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독점자본은 우리나라 경제를 아주 통째로 삼킬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금융 종속, 기술종속, 무역종속으로 겹겹이 둘러쌓인 우리나라 경제는 일본독점자본의 경제침략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지난 날 일제는 대포와 총칼을 들이대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켰지만, 지금은 독점자본을 들이밀면서 경제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오늘 일본의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이 우리 조국 땅을 집어삼키고 있는 제국주의 침략을 우리는 가만히 바라보아야 할까? 부질없는 일본 혐오증에 사로잡혀 침이나 뱉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지일과 극일의 논리를 읊조리며 열등감에 젖은 가슴이나 어루만지고 있을 건가?
종군위안부 문제는 우리 땅에서 다시는 그런 끔 찍한 식민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일깨워주는 뼈저린 교훈이며, 지금 우리나라 경제를 조여오고 있는 일본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의 사슬에 서 벗어나 자주적 민족경제를 이루어내는 길만이 우리 겨레가 살 길이라고 우리를 일깨워주는 작성의 채찍이다. 국내에서, 그리고 여기 재미동포사회 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부는 이 바람은 겨레얼을 깨우치는 바람이 되어야 한다.
199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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