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각국의 '위드 코로나' 정책에도 불구하고, 스푸트니크V 등 러시아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백신 패스'나 입국시 격리 면제 등 정책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 스푸트니크V가 유럽의약품청(EMA)이나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용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V는 전세계 70여개국에서 개별 사용 승인을 받고 수출되고 있지만, 대부분 남미나 동남아시아, 중동지역 등에서 접종되는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화이자나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기 위해 '백신 관광'에 나서는 이유다.
그나마 새해 들어 스푸트니크V에 대한 대접(?)이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다. 러시아 측은 지난해 연말 WHO 측에 추가 보완 자료들을 제공하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 1분기내 WHO의 사용 승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러시아 공항 모습/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동시에 스푸트니크V를 왕따시킨 일부 국가에서 '방역 패스'를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연합(EU)과 백신 접종 증명서의 상호 인정(방역 패스 혹은 트래벌 버블)을 협의 중이다. 그러나 EU의 요구 조건을 아직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EU 국가중 거의 유일하게 헝가리가 스푸트니크 V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 스푸트니크V를 접종한 러시아인들에게 '백신 접종 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외 국가들은 아니다. 다만, 러시아 여행객들을 유치해야 하는 그리스 등 발칸반도 국가들과 스페인, 키프로스 등은 관광객들에 한해 방역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러시아인 입국 제한조치가 국가별로 어떻게 변했는지 여부를 현지 언론도 추적, 보도할 정도다.
이스라엘,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 사흘 격리 규정도 폐지/얀덱스 캡처
러시아 백신 접종/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관심을 끄는 것은 코로나 백신 접종에서 가장 앞서 간 이스라엘의 외국인 입국 정책이다. 이스라엘 방역당국은 '스푸트니크 라이트'로 재접종을 받은 러시아 백신 증명서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주 이스라엘 러시아 대사관이 지난 14일 확인했다.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접종한 관광객의 경우, 24시간내 결과가 나오는 PCR 검사나 항체 확인 검사에서 문제가 없을 경우,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양국은 아예 48시간 내에 받은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인정하는 협상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9일부터 사흘간의 격리를 전제로 스푸트니크 V 예방 접종자들의 입국을 허용했는데, 이마저도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호주,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 입국 허용/얀덱스 캡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스푸트니크V 백신 패스를 인정하는 국가가 나왔다. 호주다. 호주 보건부 산하 방역당국(TGA)은 스푸트니크V 백신을 두차례 접종한 확인서를 '백신 패스'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17일 발표했다. 당국은 “데이터에 따르면 스푸트니크V 백신의 2회 접종시, 감염 예방 효능이 89%, 입원 또는 사망을 막는 효능이 98~100%로 나타났다”며 "이번 조치가 유학생들을 비롯해 기업가와 근로자, 스포츠 선수들의 호주 입국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3종만 접종에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들은 모두 입국이 허용됐으나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법정 다툼에도 불구하고, 끝내 출전이 무산됐다. 백신 미접종을 이유로 호주 정부가 입국 비자를 취소한 것이다.
우리 외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호주와 '트래블 버블' 협정 체결 직전에 '오미크론 변이'와 확진자 급증 등 방역 상황이 악화하는 바람에 기존의 격리정책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들의 '백신 패스' 추진/얀덱스 캡처
오스트리아에서도 '스푸트니크V' 접종자들을 인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오스트리아 의 신종 코로나 방역센터(GECKO)는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들에 대한 '백신 패스' 제공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볼프강 뮐슈타인 보건부 장관이 16일 발표했다. 뮐슈타인 장관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접종했다"며 "이들에 대한 조치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