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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능적으로 감사합니다. 뭐 이렇게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좀 더 잘 쓰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쨌든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단어를 더 잘 쓰는 것 같아요. 어떤 성도님이 남편이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 마음이 불편했대요. 그래서 남편한테 여보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고 고맙다고 좀 말해 주세요. 되게 용기가 있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했대요. 그랬더니 남편이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제 본인에게 인사를 해줬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너무 기뻤고 행복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행복하다잖아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한 번 더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35장은 성막 건축과 관련된 본문이에요.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성전 건축이죠. 어떤 교회든 가장 예민한 단어가 성전 건축이라는 단어예요. 그래서 요즘은 교회에서 목회자든 누구든 쉽게 이 성전 건축이라는 단어를 못 꺼낸대요. 왜냐하면 성도들이 너무너무 냉랭해진다는 거예요.
어쨌든 오늘 본문은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성전 건축 본문에 따르면 성막 건축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를 통해서 지을 성막의 상세한 설계도를 다 알려주셨어요. 여러분 모세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의 아이디어를 이 성막 건축하는 일에 하나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셨어요. 그리고는 모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설계대로만 짓도록 하나님의 설계만 충실하게 모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막은 성막을 지을 때 모세의 생각을 넣지 말라는 거죠. 그러니까 성막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아이디어로 짓고 사람의 아이디어를 성막을 짓는 일에 넣지 말라는 명령을 이렇게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는 절대로 내 생각이 들어가면 안 되는 영역이 있어요. 생각대로 하면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역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계획을 묻고 세미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 영역이 성막이었어요. 그러니까 다른 영역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허용하셨는데 성막 건축 이후에는 이제 성전 건축이 되죠. 솔로몬을 통해 짓게 될 이 성막과 성전 건축에는 인간의 아이디어를 하나님이 조금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성막은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뜻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주 세밀하게 성막을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이나 내 뜻을 하나님의 일에 포함시키려고 해요. 왜 그러냐 하면 그래야 잘될 것 같거든요. 근데 하나님은 반대로 철저하게 성막을 짓는 일에 인간의 아이디어를 배제하셨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생각을 허락하지 않으신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 거죠. 그러니까 인간의 생각이 인간의 아이디어가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짓고 모세의 아이디어나 누구의 아이디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가진 아이디어가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의 아이디어는 하나님의 걸작품을 망칠 뿐이에요.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멋진 걸작품으로 태어났어요. 따지고 보면 그 글 작품을 망친 사람은 1차적으로 부모인 거죠. 하나님이 지구를 얼마나 다 멋지게 지어놓으셨어요. 근데 이 지구를 망친 건 인간의 아이디어예요. 인간이 생각이 많아지고 아이디어가 많아지면서 지구는 지금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직관 기능이 아주 발달한 사람이에요. 이걸 좀 우리가 알아듣게 말하면 아이디어가 되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나 사회 생활에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정말 정말 제가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제 인생을 망친 시점 망쳤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떻게 인생의 큰 곤란에 빠졌던 그 시점, 그리고 목회가 큰 위기에 빠졌을 그 시점에 보면 제 생각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관 기능이 뛰어나서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지만 제 무크나 인생의 위기는 그 아이디어가 가져왔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신뢰해요. 그래서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하나님보다 내 생각을 앞세워요.
여러분 저의 생각이 제 목회에 개입이 되면서부터 어려움이 시작됐고 또 한편으로는 성도들의 아이디어가 제 목회에 개입이 되면서 어려움이 시작됐어요. 그러니까 목회의 어려움은 실제로 실제로 내 아이디어나 사람의 아이디어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들이 제 목회에 개입이 되자 어려움이 시작이 됐어요.
여러분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화가 망칠 수도 있어요. 우리가 목회든 뭐 이제 부부 관계든 대화가 필요하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생각하면 그 대화가 부부 관계를 망칠 수도 있고 목회를 망칠 수도 있어요. 내 생각이나 내 생각이 내 삶과 가정의 중심이 되면 그것을 그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필요해요. 때로는 도움도 돼요. 그러나 절대로 중심의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중심이 되지 못하면 화를 내고 불편해하고 그 공동체를 힘들어해요.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의 위험성을 아셨어요. 그래서 창세기 6장 5절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에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러니까 사람이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생각이 가미되는 곳에 악이 자란 거죠.
어떻게 보면 목회는 내 아이디어가 자리 잡는 순간 죄도 같이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악이 같이 싹 틀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5절에서 8절 좀 길지만 이것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고,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굴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목회든 인생이든 내 생각이 꺾어지는 시점이 필요하더라고요. 교회가 바뀌려면 내 삶이 바뀌려면 내 생각이 꺾어지는 시점이 필요해요.
이런 거죠. 하나 내 생각이 얼마나 무능하고 내 생각이 얼마나 내 가정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는 것을 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시점이 필요한 거예요. 그 시점이 가정이 회복되는 시점이고 교회가 회복되는 시점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하나님의 계획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이 꺾였나요?
제가 보기에는 저로부터 시작해서 생각이 꺾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교회는 생각이 충돌하는 곳이에요. 그 생각이 안 꺾이면 생각이 충돌하는 거죠. 가정도 생각이 꺾이지 않으면 생각이 충돌해요. 세상도 생각이 꺾이지 않으면 생각이 충돌해요. 충돌하지 않고 평안하려면 생각이 꺾어지는 시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을 모세에게 제안하셨어요. 그리고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심지어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라고 명령하셨어요.
모세의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계획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계획을 여러분과 저에게는 엄청 불편한 계획인 거잖아요. 이 계획에 대해서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거죠. 교회의 비전에 내 생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교회의 비전은 그냥 담임 목회자의 비전인 거예요. 나의 비전은 되지 않아요.
근데 우리가 우리 생각을 다 모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 안에서 300개 400개의 생각이 있을 텐데 이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다 모을까요?
못 모아요. 가정에 있는 두세 가지 생각도 못 모으고 부부 사이에 있는 한두 가지 생각도 못 모으는데 어떻게 3~400개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다 모을 수 있을까요?
근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명이 아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신의 것이 들어가야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자녀들에게도 주입하려고 내 생각대로 사는 자녀가 좋은 자녀이고 내 생각에 순종하는 자녀가 좋은 자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생각을 자녀에게 주입하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교회에도 주입하고 직장에서도 계속 주입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런데 내 생각이 하나님이 생각 되려면 너무 멀었어요. 여러분 정말 제가 가진 아이디어가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되는 시간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연단도 필요하고요. 깨어지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무너지는 시간도 필요해요. 그리고 난 이후에 정말 그 생각만 남아 있을 때 그게 이제 하나님이 되는 생각이 되는 시점이 있더라고요.
근데 그 시점 가지 못하면 대부분은 자기 생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어딘가에 주입하려고 하고 주입되지 않으면 내 일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내 말대로 안 하면 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요 당연히 생각이 달라야죠. 생각이 같은 건 더 이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우리는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원수처럼 여기고 교회 안에서 내 생각이 주입되지 않으면 내 일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어떻든 내 아이디어를 교회나 사역에 계속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성막을 지을 때 모세의 아이디어를 철저하게 대지했어요. 그냥 모세는 받아서 기록할 뿐인 거야. 하나님의 계획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의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성막에 대해서 심지어 하나님이 기쁜 마음으로 지으라는 거예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으라는 거예요.
요즘 우리들에게 해당될까요? 내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 하나님 일에 내가 자원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을까요?
근데 그러라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만약 지금이라면 정말 기분 나쁜 일이고 이런 공동체는 지탄의 대상이 될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목회자가 성도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성도들의 아이디어를 목회에 잘 반영해서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도 엄청난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야 돼요. 그 과정을 통해서 또 많은 연단을 겪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되는 긴 시간이 없다면 없다면 대부분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아이디어는 교회나 내 삶을 해방하는 것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 이 백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 답답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거예요. 하나의 생각도 넣지 말고 기쁨으로 하라는 거예요.
그 말이 되냐고요 요즘 같으면 누가 이것을 받아들여요?
근데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에게 명령하셨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고민해 볼 수 있겠죠.
어떡하면 내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일에 내가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죠. 하나님이 우리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일에 기쁨을 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시잖아요.
근데 이유가 없이 방법이 없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당연히 아닌 거죠. 그럼 내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 내 아이디어가 들어가지 않는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 이 자료를 대하면서 마음이 좀 불편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인 거잖아요. 내가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근데 이 말씀은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설계대로 살라는 거예요. 하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설계도가 가장 완벽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그 방법 가까이 가는 게 하나님을 섬기는 거예요. 하나님이 설계한 방식에 가까이 가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이 더 나아지려면 하나님의 생각 더 가까이 가야 돼요. 그래서 말씀 묵상이 필요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일들이 필요해요.
하나님을 하나님을 섬기려면 하나님 때문에 은혜를 경험하려면 말씀이신 하나님 가까이 더 나가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어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또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이 제시하는 조건은 생각보다 우리가 수용하기 어렵고 까다로워요.
하나님의 방식으로 섬기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겨라.
요즘 여러분과 저의 영적인 상태라면 이게 수용이 될까요?
지금 여러분과 저의 영적인 상태라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라 이렇게 말할 때 과연 우리가 기쁘고 즐거움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걸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명령하신 거죠.
여러분 한 집단의 하나님의 명령의 수준은 그 집단의 믿음과 연계돼 있어요. 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의 수준은 그 가정의 믿음과 직결되어 있어요. 그 가정의 믿음이 온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길 만큼 수준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가정을 향해서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아요. 그래서 교회든 개인이든 사명이 있는 건 엄청 행복한 일이에요. 왜 하나님이 나를 그 정도로 보셨다는 거거든요. 그만한 공동체로 보셨다는 거예요. 그만한 사람으로 보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명령을 하시고 개혁을 밝히시고 뜻을 보이시는 거죠.
우리는 자기가 없어지는 것을 불안해 합니다. 내 생각이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하고 불편한 거예요. 자기 생각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는 것은 내 입맛대로 내 생각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이 일을 하고 하나님을 조각하고 있다면 이거는 정말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아이디어로만 짓기를 바르셨어요. 짓기는 사람이 짓는데 설계도는 하나님의 것인 거죠.
우리가 건축에는 여러 파트가 있어요. 설계가 있고 시공 이렇게 이렇게 나눌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시공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려면 그러니까 설계대로 해야 되는 거죠.이 설계가 잘 나와야 설계가 완벽한 건물로 나와야 실제도 완벽한 건물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시고 하나님의 설계도를 이스라엘에게 주신 거죠.
너희들이 이 설계대로 나를 섬겨라.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설계도가 얼마나 엉망인 것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 설교대가 얼마나 형편없는 것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내 설계도가 엉망인 걸 알고 내 설계도를 버려야만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교회나 내 삶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거예요. 멋진 하나님의 설계도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 인생이 세워지지 않는 것은 내 설계도를 내가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한 거죠.
사람들은 정말 쓸모없는 설계도들을 자기에게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요. 평생 후회하는 거예요.
내가 이때 왜 이걸 못했을까 내가 왜 이때 저걸 안 했을까?
저때는 내가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평생 이러고 살아요. 그건 하나님의 설계가 아니라 자기의 설계인 거죠. 자기 설계대로 인생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괴로운 거죠.
여러분 이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생의 모습일까요?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마귀가 벌써 시원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다른 계획을 넣는 존재인 거죠. 그러니까 마귀는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넣으려는 자예요. 특별히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 같은 이상한 생각과 나쁜 생각을 넣는 존재가 마귀인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 여러분과 저의 섬김 안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것들이 가득 들어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섬김이 성숙하려면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아닌 것들을 우리가 제거해서 넣어야 되죠.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의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셨습니까?
그 생각이 여러분을 평생 괴롭혔잖아요. 근데도 그 생각을 구애 잡고 살아가요. 여러분이 세우려는 인생의 설계도가 여러분을 평생 괴롭힌 거잖아요. 서울대 못 한 것이 평생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좋은 직장 가지 못한 게 평생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이미 수없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노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여전히 내 계획표를 붙잡고 살아가는 거죠. 하나님의 계획은 애초부터 순종할 생각도 없었어요.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할 때 특별히 여러분의 마음속에 꼬깃꼬깃 넣어놨던 여러분의 인생 설계도를 오늘은 좀 버려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왕이 되실 수 있습니다.
잠언 19장 21절 우리 표준 세 번으로 같이 읽어봅니다. 시작.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성취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뜻뿐이다.
21절의 요지는 사람의 계획이 인생이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의 인생에 달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려면 내 설계도가 폐기 처분돼야 된다는 거죠.
잠언 16장 9절도 같이 봅니다. 시작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니까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계획을 이룰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오늘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꺾어지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꼬깃꼬깃 구겨놨던 인생의 설교도가 폐기되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내 계획이 무시된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어떻게 보면 답답한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자원할 마음으로 하라는 거죠.
모세의 아이디어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 아이디어를 모세에게 제시해 놓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떻게 해요? 기쁨으로 해라. 어쩌면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저에게 그럴지도 몰라요. 내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앉는 하나님의 계획을 딱 내 앞에 놓고 하라는 거예요.
남 목사 이거 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내 계획이 내 생각이 안 들어갔으니까 내 비전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닌 거예요. 근데 그것을 하되 특별히 기쁨을 하라는 거예요. 아니 그 계획을 하는 것도 어려움인데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아까 중간에 잠깐 말씀드렸는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자원할 마음을 가지게 될까 감사하게도 성경은 어떻게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시편 51편 12절이에요. 같이 읽습니다. 시작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여기서 심령은 영이에요. 영 영을 말해요. 그러니까 자원하는 영은 누가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자가 자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멀어져 있으면 절대로 자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어요.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성도가 절대로 자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어떻든 어떻게 보면 이 시대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자원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에 많은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원하는 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만 이 자원하는 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인생의 보류인 최후 보류인 금은 보화를 내놓을 수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은 부하를 성막을 짓는 일에 다 내어놓았어요. 여러분 금은 패물은요. 인생의 최후 보루예요. 정말 정말 돈이 없을 때 파는 게 패물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자기 삶의 최후 보루인 금은 부활을 하나님께 내어놨어요. 여러분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인생의 최후 보루도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이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좌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실이 등장해 실 이 당시의 실은 이 양털로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마라는 풀을 통해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여러분 파키스탄이나 중동 지역에 이렇게 영상을 보면 우리가 아는 마와 좀 다르게 생긴 아마라는 풀이 있어요. 이 풀로 그 당시에 씨를 만들었어요. 근데 광야에는 이 아마를 키울 수 없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 많은 실이 나왔을까요?
자기들 옷과 천막에서 이 실을 다 뺀 거예요.
여러분 자원하는 마음이 이렇게 이렇게 멋진 거예요. 자원하는 마음은 인생의 최후 보루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게 자원하는 마음이고요. 자원하는 마음은 내 옷에 있는 씨를 빼서라도 하나님의 성막을 짓겠다고 하는 행위가 자원하는 마음이에요.
오늘 이 기가 막힌 섬김이 우리 교회도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내 옷에서 막 아마씨를 빼는 여러분 이 멋진 상상을 한번 해보세요.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은 떨어졌어요. 성막을 지을 주로 천으로 지어야 되니까 지을 재료가 없어요. 그래서 백성들이 가만히 봤더니 자기 옷에 자기 옷에 이 아마로 세마포를 만들었거든요. 자기 옷에 실이 많은 거예요. 그 실을 뺀 거예요. 빼서 그 실로 성막을 만들겠다고 한 거죠. 인생의 최후보로 이거 팔아버리면 아무것도 없는데 그 금은보화 패물을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다 들렸어요. 이게 자원하는 마음의 표본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이렇게 교회를 섬기는 마음이 우리 교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이 자원하는 마음이 우리 온 교회를 장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