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설을 만났다. 한창 감수성이 민감했던 10대 어느날... 그 소설의 제목이 무었인지, 그리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내 나이 또래 어느 남자의 첫 사랑이야기였던것 같기도 하고, 그 첫 사랑을 떠나 보내는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나를 찾아왔던 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이 내게 다가왔다. 감자, 배따라기, 상록수, 발가락이 닮았다, 소나기, 운수 좋은 날 등 내가 중학시절 읽었던 한국문학전집에 나오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만남이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입이 이 소설에는 있었다. 이 소설은 마치 지금의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듯 했기 때문이다.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집필한 소설가이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는 그가 집필한 원고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 그의 키 높이만큼 쌓인 원고들이 4줄이나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수고하였는지를 알수 있다. 그만큼 그가 쓴 소설의 양은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사람들이 그 만큼 보기에 그가 지속적으로 글을 쓸수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정래가 사랑받을수 있었던 요인은 아마도 시대적 상황을 잘 그려 냈기 때문일것이다. 식민지 치하의 고단하고 어려운 이야기, 분단의 아픔과 갈등, 경제적 성장에서 오는 구조적 깨어짐을 겪었던 세대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조정래의 소설은 우리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내가 10대에 만난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그리고 일기의 형식으로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소설과 같이 일기를 썼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온 이후 보여주기를 위한 일기를 쓰는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 유행이었다. 어느날 나의 일기를 한 친구가 읽었고 재미있다고, 소설같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후 내 일기는 인기를 얻어 당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 선후배들이 그 일기를 돌려가며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그 소설의 후속작이 나왔고 소설의 작가는 TV에 출연하였다. 작가는 20대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그를 보며 나도 소설을 한번 써 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벌써 30년전 이야기이고 '황홀한 글감옥'을 읽으며 30년만에 그 때가 생각이 났다.
소설가로 입문하는 사람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자전적 이야기가 글을 쓰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소재찾기에 소설가에게 얼마나 좋으냐! 그래서 소설가의 안내자들도 자전적 소설을 소설가의 입문코스로 말한다. 하지만 조정래는 소설가들이 1인칭 소설을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1인칭 자전적 소설을 쓴 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40여년을 소설가로 장수 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 말한다. 1인칭 자전적 소설은 소재찾기에 용이하나 다작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소설 2, 3편 연작을 하면 소재가 고갈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일찍 봤더라면..
이 책을 접하며 몇주간 마음이 어려웠다. 최근 습작을 하고 있다. 1인칭 자전적 소설을... <황홀한 글감옥>은 소설가 조정래가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을 통해 소설가의 마음가짐, 준비, 글쓰기 등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글을 통해 마음으로 많이 혼났다. 그래서 요 몇 주간 글이 안 써지나 보다. 하지만 가야할 바를 알았다. 조정래는 분단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지만 '국가보안법'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그리고 소설가들이 분단을 소재로할 때 분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분단극복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리고 소설을 써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