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6장 20 - 35절
20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마라.
21 그것을 네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고 네 목에 영원히 매달아라.
22 네가 걸을 때, 그것이 너를 인도하겠고, 네가 잘 때, 그것이 너를 지켜 주며 네가 깰 때, 그것이 네게 말할 것이다.
23 이 명령은 등불이요. 이 가르침은 빛이요. 이 교훈은 생명의 길이다.
24 이것들이 너를 부도덕한 여인에게서, 바람난 여인의 매끄러운 혀에서 지켜 줄 것이다.
25 너는 그런 여자의 아름다움을 탐내지 말고, 그 눈길에 매혹당하지 마라.
26 왜냐하면 너는 창녀 때문에 빵 한 조각을 구걸하게 되고, 너의 목숨까지 위협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7 사람이 불을 가슴에 품고, 자기 옷을 태우지 않을 수 있겠느냐?
28 사람이 데지 않고 타는 숯불 위를 걸을 수 있겠느냐?
29 남의 아내와 함께 잠자는 사람도 이와 같으니, 남의 여자를 건드리는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다.
30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하면 용서를 받을 수는 있으나,
31 훔치다 잡히면 일곱 배를 갚아야 하고, 돈이 없으면 자기 집의 좋은 것들을 모두 주어야 할 것이다.
32 그러나 간음하는 자는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자기 영혼을 망치는 사람이다.
33 그런 일을 하다가 잡히는 사람은 매를 맞고 수치를 당하여, 그 부끄러움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34 그 남편이 질투심에 불타 보복할 때, 눈에 무엇이 보이겠는가?
35 아무리 많은 보상이나 온갖 선물을 준다 해도 그 분노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묵 상>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면, 삶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어렵습니다. 잠언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잠언 전체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의 삶에는 두 개의 길이 대립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의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어리석음의 길입니다.
4. 말씀을 등불로 여기라(20-23)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마라. 그것을 네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고 네 목에 영원히 매달아라."(20-21절) 잠언 기자는 자녀에 대한 조언을 계속하는데, 일상에서 주님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는 적극적인 방법의 일환으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목에 걸고 다닐 것을 명령합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씀 자체를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기 위해 외면과 내면의 준비를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걸을 때, 그것이 너를 인도하겠고, 네가 잘 때, 그것이 너를 지켜 주며 네가 깰 때, 그것이 네게 말할 것이다."(22절)
말씀의 인도를 받기 위해 외면과 내면의 준비를 다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을 인도하며,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깨어 어디로 가든지 그 길을 인도할 것이며, 잘 때에도 보호하신다고 말합니다. 십니다. 다시 말해서 부지중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켜 줍니다. 깰 때에도 더불어 말벗이 되어주십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표현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길을 비춰줄 등불과 빛, 생명의 길입니다. "이 명령은 등불이요. 이 가르침은 빛이요. 이 교훈은 생명의 길이다."(23절) 등불과 빛, 생명의 길로 형상화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나를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5. 간음하지 말라(24-35)
잠언 5장에 이어 다시 한번 음행을 멀리하라고 경고합니다. 창녀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불과 숯불에 비유합니다. "사람이 불을 가슴에 품고, 자기 옷을 태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데지 않고 타는 숯불 위를 걸을 수 있겠느냐?"(27-28절) 창녀와 함께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더 큰 문제는 신전에 들어가 이방신을 섬기는 차원의 행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신앙마저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잠언은 결혼이라는 영역의 한계 안에서, 육체적 만족감을 얻으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결혼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라고 요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윤리의 근간은 자기부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덕을 세우기 위해 하지 않고, 참는 것, 자기의 욕망을 부인하는 것이 기독교윤리의 가장 밑바탕입니다. 간음은 이런 점에서 기독교윤리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하나님께서 짝 지워주신 배우자와 타인을 향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다면 이 사회는 비극 중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본문은 창녀와 간음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음하는 자는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자기 영혼을 망치는 사람이다."(32절)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여기서 '정신 나가다'는 '무지하다'는 뜻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자기 영혼이 망하는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자기 영혼을 망칠 뿐만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내몹니다. "그런 일을 하다가 잡히는 사람은 매를 맞고 수치를 당하여, 그 부끄러움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33절)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의 관계와 삶의 터전이 깨어졌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무엇으로 그 배신감과 모멸감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순간의 유혹과 호기심이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인생의 주인이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리의 삶을 규모 있게 가꾸어 가십시다. 성은 지극히 육체적인 듯하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일구어 가려는 열심과 말씀을 살아내려는 열망을 지니고 살아가십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아름답게 일구어 가십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따르게 하옵소서. 음행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등불로 삼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많은 기회와 자유를 허락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옵소서. 나의 영혼을 망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권위로 나의 권리를 억압하는 데 쓰지 않으시고, 그 권위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나의 권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자유, 하나님의 권위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신 자유, 이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헌신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와 나의 가정이 주님 앞에서 크게 만족하는 감사가 결실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