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刑事 ]
이 영화는 로마의 한 형사 반장이 시민들의 삶에 깊이 파고들면서 사건을 풀어가는 작품으로 수사과정에 밝혀지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흥미롭게 그린 작품이다.(사진, 형사 인그라발로와 하녀 아순티나)
<철도원>을 만들었던 피에트로 제르미가 감독하고 형사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50~60년대 섹스 심벌이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下女 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미국에는 MM(마릴린 몬로), 프랑스에는 BB(브리지트 바르도), 이탈리아에는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섹스 심볼로 이름을 날렸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Sinno Me Moro"는 우리말로 "죽도록 사랑해서"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곡이다. 내일을 모르는 절박한 愛情을 안타깝게 노래했다. 작사는 감독인 피에트로 제르미가, 작곡은 영화음악의 대가였던 카를로 루스티켈 리가 맡았다. 노래를 부른 알리다 켈리는 작곡가 루스티켈리의 딸이다.
비 오는 로마의 오후, 오래된 고급 아파트 聖職者의 집에 도둑이 든다.(사진, 살인 용의자 지오메데)
搜査를 맡은 인그라발로(피에트로 제르미 분) 수사반장은 피해자의 이웃집 하녀 아순티나(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분)의 약혼자인 지오메데(니노 카스텔누오보)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알리바이가 성립되어 이들은 풀려나고 사건은 迷宮에 빠진다.
1주일 뒤 바로 强盜 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옆집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주인이 흉기에 찔려 살해되자 인그라발로 반장은 동일범 소행으로 보고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한다. 반장은 살해 피해자의 옆집에서 열쇠 한 개를 발견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正體不明의 사람으로부터 살인자는 피해자의 남편이니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쪽지가 전해진다. 인그라발로 반장은 피해자 남편을 조사한 결과 피해자의 하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사망을 좁혀 가는데...결국 열쇠를 단서로 지오메데를 살인 용의자로 검거한다.
< 섹스 심볼이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
이탈리아 배우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정작 이탈리아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녀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칠리아 출신 부모 아래 태어나 그곳에서 10대까지 자랐다.
당시 튀니지는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카르디날레는 튀니지의 프랑스 학교에 다녔다. 프랑스어로 교육받고, 튀니지 친구들과는 아랍어로 사귀고, 그리고 집에서는 이탈리아어, 정확히 말해 시칠리아 지역어를 썼다. 시칠리아어는 본토 이탈리아어와 상당히 달랐다.
튀니지 카르타고에 있는 師範學校에서 초등교사 자격증까지 딴 카르디날레가 영화계에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서 이탈리아 영화인들이 개최한 ‘튀니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성’이라는 이름의 미인대회에 참가하고서부터였다.
큰 키(170cm)와 약간 검은 피부, ‘바비 인형’ 같은 몸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카르디날레는 1등에 당선됐다. 초등학교 교사를 희망했던 소녀는 갑자기 베네치아로, 로마로 초대되는 행운을 누렸다. 이어서 特惠를 받아 로마국립영화학교의 연기과정에 입학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言語였다.
그녀의 이탈리아어 실력으로는 수업 과정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카르디날레는 문화적으로 볼 때, 당시에는 여전히 프랑스 소녀였다. 카르디날레의 데뷔작도 1958년도의 프랑스 영화인 <고하>였다. 초창기 영화들에서 그녀는 프랑스어로 연기했고, 이탈리아어 더빙이 덧붙여졌다. 이래저래 카르디날레는 이탈리아에서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골치가 아파진 그녀는 영화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튀니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교사생활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때 카르디날레의 장래성을 알아보고, 다시 영화계로 끌어낸 인물이 이탈리아의 유명 제작자이자 나중에 남편이 되는 프랑코 크리스탈디였다. 명감독 비스콘티와 더불어(사진, <부베의 연인>에서 조지 차키리스와)
카르디날레의 영화 經歷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카르디날레는 마리오 모니첼리의 코미디 <마돈나 거리의 한탕>에 나오며 이탈리아 영화의 데뷔에도 성공하고, 곧바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에겐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 영화를 찍을 때 아직 10대였는데,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아기의 부친은 영화계의 프랑스 남자라고만 전해진다. 당시 10대 未婚母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카르디날레의 경력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비밀을 관리하며 카르디날레를 스타로 성장시킨 조력자가 바로 크리스탈디였다.
아들에 대한 비밀은 7년간 유지됐다. 뒷날 그 죄책감의 무게를 고백했던 카르디날레는 특히 <가방을 든 여인>을 찍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방을 든 여인>의 주인공은 실제의 자기처럼 비밀의(사진, <가방을 든 여인>에서)
아들을 둔 채 처녀 행세를 하는 여성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罪意識의 비밀이 배우 카르디날레를 더욱 성장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혼모 스캔들이 알려진 뒤에도 카르디날레의 스타덤은 견고했다. 배우로서의 빼어난 경력이 이미 私的인 스캔들을 넘어갔기 때문일 터다. 카르디날레는 크리스탈디와 정식으로 결혼한 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 출연하며, 다시 세계적인 스타로서의 사랑을 받았다.
카르디날레는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3대 여배우’로 꼽힌다. 일부는 실바노 망가노를 추가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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