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Puna caparaṃ, lohicca, idhekacco satthā yassatt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vāssa sāmaññattho anuppatto hoti. So taṃ sāmaññatthaṃ anupāpuṇitvā sāvakānaṃ dhammaṃ deseti – ‘‘idaṃ vo hitāya idaṃ vo sukhāyā’’ti. Tassa sāvakā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vokkamma ca satthusāsanā vattanti. So evamassa codetabbo – ‘‘āyasmā kho yassatt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so te sāmaññattho anuppatto. Taṃ tvaṃ sāmaññatthaṃ anupāpuṇitvā sāvakānaṃ dhammaṃ desesi – ‘idaṃ vo hitāya idaṃ vo sukhāyā’ti. Tassa te sāvakā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vokkamma ca satthusāsanā vattanti. Seyyathāpi nāma purāṇaṃ bandhanaṃ chinditvā aññaṃ navaṃ bandhanaṃ kareyya, evaṃ sampadamidaṃ pāpakaṃ lobhadhammaṃ vadāmi, kiñhi paro parassa karissatī’’ti. Ayaṃ kho, lohicca, tatiyo satthā, yo loke codanāraho; yo ca panevarūpaṃ satthāraṃ codeti, sā codanā bhūtā tacchā dhammikā anavajjā. Ime kho, lohicca, tayo satthāro, ye loke codanārahā, yo ca panevarūpe satthāro codeti, sā codanā bhūtā tacchā dhammikā anavajjāti.
515. ‘‘Puna caparaṃ, lohicca, idhekacco satthā yassatt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svāssa sāmaññattho anuppatto hoti.
3)로힛짜여, 세상에 어떤 스승들은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18.“다시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한다.
So taṃ sāmaññatthaṃ anupāpuṇitvā sāvakānaṃ dhammaṃ deseti –
그는 수행자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풉니다. –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
‘‘idaṃ vo hitāya idaṃ vo sukhāyā’’ti.
‘이것은 그대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Tassa sāvakā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vokkamma ca satthusāsanā vattanti.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잘 알기 위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빗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So evamassa codetabbo –
그는 이와 같이 질책받아야 합니다. –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받아 마땅하다. –
‘‘āyasmā kho yassatthāy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so te sāmaññattho anuppatto.
존자는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였다.
Taṃ tvaṃ sāmaññatthaṃ anupāpuṇitvā sāvakānaṃ dhammaṃ desesi –
그대는 수행자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풉니다. –
이런 그대가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
‘idaṃ vo hitāya idaṃ vo sukhāyā’ti.
‘이것은 그대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Tassa te sāvakā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vokkamma ca satthusāsanā vattanti.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은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잘 알기 위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빗나가 버립니다.’라고.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Seyyathāpi nāma purāṇaṃ bandhanaṃ chinditvā aññaṃ navaṃ bandhanaṃ kareyya,
예를 들어 이전의 속박을 버리고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evaṃ sampadamidaṃ pāpakaṃ lobhadhammaṃ vadāmi, kiñhi paro parassa karissatī’’ti.
이와 같은 것은 악한 탐욕의 원리라고 나는 말합니다. 참으로 타자가 타자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Ayaṃ kho, lohicca, tatiyo satthā, yo loke codanāraho;
로힛짜여, 세상에서 질책을 받아야 할, 세 번째 스승은 이와 같습니다.
로힛짜여, 이것이 세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 받아 마땅하며,
yo ca panevarūpaṃ satthāraṃ codeti, sā codanā bhūtā tacchā dhammikā anavajjā.
그런데 그러한 스승은 질책을 받아도 그 질책은 진실한 것이고 사실인 것이고 법다운 것이고 허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Ime kho, lohicca, tayo satthāro, ye loke codanārahā,
로힛짜여, 세상에는 이와 같은 질책받을 만한 세 종류의 스승이 있습니다.
로힛짜여, 이처럼 세상에는 질책 받을 만한 세 종류의 스승이 있다.
yo ca panevarūpe satthāro codeti, sā codanā bhūtā tacchā dhammikā anavajjāti.
그러한 스승들은 질책을 받아도 그 질책은 진실한 것이고 사실인 것이고 법다운 것이고 허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승들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