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유난히도 찬바람이 여윈 어깨를 움추리게 하던 날,
그녀와 난 몽빠르나스 근처 도로 공원 안에 선
크리스마스 천막시장을 구경 갔다.
크리스마스 무렵 파리 곳곳에 노상 천막시장이 선다,
"Marché de Noël(막쉐 드 노엘)"이라고 한다.
예술품과 골동품을 파는 큰 시장은 파리 동쪽,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적 사건이 일어났었고,
한국인으로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가 지휘했던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전용 극장인 바스티유 앞
"생 막땅 운하" 옆에 섰고,
크리스마스 카드 등 추리 장식용품과
각종 크리스마스 선물을 파는 시장은
샹젤리제 거리 프랑스 대통령궁이 가까운 곳에 섰으며,
몽빠르나스 노천 천막시장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진열해서 파는 장이 섰다.
그녀와 난 몽빠르나스 노상 천막 시장을
하나 하나 돌며 특이한 개성을 보이는 조각, 그림,
도자기, 혹은 사진에 빠져 추위를 잊어버렸다.
몽빠르나스 근처에 이런 가난한 작가들의
크리스마스 시장이 서게 된 연유는,
이곳이 바로 1920년대 다다이즘의 전성기에
세계의 화상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로
그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50여 곳이 넘는 천막을 둘러보다가
서로를 잃어버렸다. 언제쯤 헤어졌는지도 모른채
나는 사진작품에 자연스럽게 이끌렸고,
그녀는 그림에 이끌려 가버렸다.
한참 동안 천막 밖에서 천만 안에 진열된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어디예요?"
"응? 나 사진 전시하는 천막 앞에 있어?"
그녀가 옆구리에 20호쯤 되어보이는 그림 한점을
누런 봉투에 담아서 끼고 생글거리며 나타났다.
표정을 보니 횡재를 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고른 그림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저기 카페에 가서 몸 좀 녹이자"
자신이 발견한 그림을 자랑스럽게 들고 앞서는
그녀를 따라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안쪽 구석에
자리가 있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 그녀는
카페올레를 주문하자마자 그림을 꺼냈다.
나는 그녀의 취향을 잘 안다.
그녀는 빈센트 봔 고흐처럼 황금색을 좋아한다.
고흐의 해바라기 원작을 보려고 암스텔담 고흐
미술관을 시간만 나면 나를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온통 노랑색 천지인 지베르니 모네의 집 주방과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오른편에 있는
평화다방(Café de la Paix - 카페 들 라 팩스)의
노랑 천정과 벽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나를 데리고 가곤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산 그림은 해바라기 그림이다.
고흐의 그림 속에는 막 꽃을 피운 어린 해바라기와
꽃잎을 다 떨구고 씨알이 충분히 영근 갈색 해바라기가
한 화병에 꼿혀있지만,
그녀가 산 그림 속 해바라기는 아직 꽃잎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꼬불거리는 노랑 꽃잎이 춤을 추듯
투명한 녹색 꽃받침 위에서 하늘거리는 그림이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노랑색 벽을 배경으로 그려졌지만
그녀의 해바라기는 황금빛 황혼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었다.
******
그녀와 헤어진 지가 어느새 7년이나 지났다.
일년에 한번 짧은 근황을 메일로 보내온다.
작년 가을 무렵엔 그녀가 구입했던 그 그림과
유사한 해바라기를 그린 그림을 폰으로 촬영해서
보냈다. 그림 아래 싸인을 보니
"2011,8. Troyes"로 적혀있었다.
아! 거기!
Troyes는 파리 남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가량
떨어져있는 농촌 구릉지역인데,
이곳에 7월 경에 가면 3가지 색만 볼 수 있다.
누렇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밀과
막 피기 시작한 해바라기의 노랑색과 초록잎,
그리고 파란 하늘과 무채색 흰구름.
바쁜 생활 중에 7월부터 10월 사이 이곳에
한달에 두세번씩 갔었다. 어떤 날에는 읍내에
방을 잡아놓고 며칠씩 머물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느라 한 곳에 이젤을 펼쳤고
나는 구릉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다.
홀로 그곳을 찾아 가서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다.
그리고 싸인을 해서 사진을 내게 보내어
내 심장을 날카롭게 베내었다.
올 가을, 또 다시 내 심장을 도려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나는 가을이 두렵다.
-사진으로 만든 그녀의 이미지-
첫댓글 가을이란 단어가 예전에는 슬프고 외롭고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었는데요 이제는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이는것 같습니다.
저물어 가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님에 글은 어느 영화의 한장면 같기도 하구요.
소설속 주인공 같기도 합니다.
가을을 사랑하게 되었군요.
삶의 마지막 여정을
즐기실 일만 남았습니다.
맘껏 사랑하세요.^^
가을이 두려운 이유는 그녀의 소식에 다시 파리로 가고싶은
욕망이생길까봐 두려워 하는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ㅎ
앗! 정답입니다.ㅋ
어긋난 인연은
이미 흘러간 물이라 했지요
추억속에서 아름답고
그리운 사랑이기를요~
네. 명심할게요.
심장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덧 세월은 흘러
인사동의 추억들이
하나둘 잊혀져 가네요
나역시
고호의 해바라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리미님이그리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랑의 아품이 숙성되면 예술로 표현되죠.
그 아품을 견뎌낼 자신이 이젠 없어서.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 이게 뉘십니까? 살아계셨군요.^^
1년만에 닉을 보니 얼마나 좋은지요.
바쁘게 지내셨나 봐요. 이삯줍는 아낙들처럼.ㅎ
@엣지 센강 해변축젠 애들 작난이고요.
백야축제와 새해맞이 올나잍 샹젤리제 거리축제는
참여해서 즐기면 좋은 추억꺼리죠.
특히 여성이라면 샹젤리제 새해맞이 심야축제가...ㅎ
전 마레지구 뒷골목과 생 제르망 데 프레 뒷골목이 그리워요~ㅠ
아래 사진은 마레 보쥬광장.
@골드문트 저는 상제리제거리 초입
루이비똥 삽 만 기억에 남아요 ㅎ
@미유 거긴 샹젤리제 중간, 아니 좀 윗쪽
죠지5세 지하철역 밖이죠.
사진이 거기 건물 외벽 광고.
@엣지 맞아요. 거기 카페 마고가 실존주의 철학자와 소설가들 아지트였죠.
사진 속 카드 고르는 남자 뒷편 카페 플로흐도 그런 곳이고
카페 마고는 카드 고르는 사람 오른편에 있어요.
주일 아침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격조 높은 사랑한편 즐감 했네요 부디 건강 하시기 만을~*^0^*~
감사합니다.
치정 연애사건을 격조높게 봐주셔서.^^
깊게 베인 상처는 아물어도
상흔은 오래 남습니다
부디 아파 하지 마시고
추억은 추억대로 즐기소서!
몇번의 가을이 더 남았을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건강 하시길..
가난한 유학생이던 나는
더 가난한 미술학도의 그림을
35불주고 사서여태 간직하고 있네요
미유님 미소 만큼 밝지요?
@지적성숙 매래 재능 있는 예비 작가를
위해 등록금 도네이션만 했다는 ㅡㅡ;;
뽄지긴거 밖에 남은게 없어요ㅜ
내가 아픈 것보다 아가씨가 걱정되서요...ㅠ
@지적성숙 그림 좋은데요?
녹색 잎과 분홍꽃이 화병으로부터 솟구친 듯 보여요.
화폭을 가득 메우고 만개한 꽃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고 있잖아요.
심장병은 급히 병원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코쟁이 여자 있으면
그냥 맛 있는것 만 찾는데 퍽 예술적입니다.
고맙습니다.
거서리님 부러우신갑다 ㅎ
그니까요 레파토리만 무성하지 히트송이 없자나요오오~~
코쟁이 여자가 아니고, 순수 한국 아가씨입니다.ㅎ
@골드문트 어맛
안느가 프랑스 여인 아녔어요?
@미유 안느는 세례명. 유리안느.
한국 아가씨.
@골드문트 아~~~~`
이젠 아가씨는 지났겠어요
@미유 미혼이니 아가씨. 프랑스식으로 마드모아젤.ㅎ
@미유 할주머니아닐까요?
할매도 아닌것이
아줌마도
아닌것이
@지적성숙 프랑스식으로 마드모아젤이라니까요.
음......지적성숙님보다 5살 어리니...
아직 할주머니는 아니겠죠?ㅎ
7년이라
안식년에는 모든것을
리바이블 하게 하는 희년입니다
이제는 그녀를 가을속에 두고 계시는군요
나르치스는 여전한건가요?
한국의 골드문트는
잊은적 하루도 없다는
어줍잖은 고백이지만
현실이 슬픕니다
저는
만약 제남편이 그런 사랑있다면
원도 한도 없이 살아바라하고
편하게 보내줄수 있습니다
진담이냐고요?
암만요
오늘 따라 내가 생각해도
넘 댓글 잘쓰는거 가타요
가을에 더 성숙해진 님
정말 오늘 댓글은 수작이예요
머잖아 그대한테 상품이 찾아갈꺼예요 마리 앙뜨와네뜨 닮은 브라우스로
품앗시 합니다 기대 하세요
@엣지 옛지님
방가 죽습니다
이제 삶방이 너므너므
흥미진진하고
댓글 위로 가 되는군요
저도
속에 석탄 백탄
다 탄 여인인데
글 쓸려니
모든게 시들 합니다
정말 평소와는 다른 댓글입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평문이고,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주셨고^^
@엣지 나르찌스를 우리나라에서 책을 발간할 때
知로 해석하고, 골드문트를 愛로 해석했는데,
실은 "信仰적 삶과 本能적 삶"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결국은 신에게로 귀의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
두려워 하지 마시고
과감하게 한번 부딪쳐 보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두려워하는 게 아니고요,
한국에 책임져야 할 어머니와 마님이 있어서요.
그리고 그녀는 이젠 나보다 다른 남자에게 의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