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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만천백리 길 트래킹
아침 길을 나서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끝내 예산휴게소까지 따라와 내린다. 중부지방은 엊그제 27년 만에 가장 늦게 시작되었다는 장마가 며칠 잠잠하더니 다시 북상을 한다는 예보를 믿고 고집을 피우려나 보다. 하지만 너무 눈총 받았던지 서산을 지나고 태안에 드니 비를 염려할 필요 없도록 날씨가 변하였다. 오히려 직사광선을 피하고 다소 선선해진 날씨로 트레킹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로 바뀌었다. 비 걱정을 덜어냈다. 태안의 소원면 의항해변이다. 여름날 바다를 만나는 것은 신바람난다. 더위에 시달리면서 까칠해진 마음을 푸른 바다가 단숨에 씻어주지 싶다. 오늘은 태안해상국립공원과 함께 한다. 의항항은 다소 협소한 느낌이다.
다시 개발된 태안 해변길이다. 처음에는 바다를 멀리하며 비록 140여 미터에 지나지 않게 낮지만 수망산으로 올라간다. 우리 조선소나무의 붉은 빛깔 적송과는 달리 몸통이 거무스름한 해송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적송이든 해송이든 솔잎이 시푸르게 일어서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지막한 산자락이라 그런지 산딸기가 발갛게 익고 청미래덩굴의 열매도 알알이 여물어가고 있다. 한여름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 싶었다. 좋은 전망대가 되는 망상고개다. 바다가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신두리 해변과 신두리 사구다. 모래가 밀려오고 날아와 쌓이면서 모래언덕을 만들어내는 특이한 지형이다. 눈앞이지 싶은데 자그마치 17킬로미터의 거리다.
혓바닥처럼 길쭉이 내민 지형의 바닷가를 굽이굽이 따라 나서다 보면 마음보다 꽤나 멀어질 것이다. 오늘의 트레킹은 그 반대쪽인 만리포방향이다. 어쨌거나 한눈에 바라본 바다와 경계를 긋는 해안의 곡선은 아름답다. 하산하며 도로로 내려서 따라간다. 오른쪽에 백리포해수욕장이다. 모래밭은 협소한데 손길이 가지 않아 다소 지저분하다. 일부는 한참 개발이란 명목으로 아늑한 해안을 들쑤셔놓아 어수선하다. 그러나 바다는 관심 없다. 파도는 힘차게 몰려왔다가는 한순간에 맥없이 주저앉으며 특유의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 그 소리를 타고 바다냄새가 짭짜름하면서 비릿하게 번져나가고 시원함을 풀어놓는다. 갈매기 몇 마리가 날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날물에 다소 물이 빠지고 해안이 들어났다가 다시 들물로 물이 들어오나 보다. 씩씩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안을 걷는다. 온통 돌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수없이 달려들어 깎고 문질러서 돌은 송곳이 되고 칼날이 되었다. 바닥에 군더더기 없는 뼈다귀만 남아 방파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바다는 잠시도 쉼 없이 파도를 타고 물길이 뭍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분을 못 이긴 듯 허무하게 거품을 물고는 자지러지면 또 다시 몰려들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바다는 자신을 채근하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썩지 않아 푸름을 유지할 수 있나 보다. 물이 빠진 갯바위에도 작은 생명들이 남아 귀를 열어놓고 물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시간을 위해서 기다림을 안다.
쌓고 얹어 놓은 듯싶은 바위들을 징검징검 밟고 건넌다. 바닥에 박혀 닳고 닳거나 깎이고 깎여 좀은 미끄럽고 날카로운 바위를 질겅질겅 타고 넘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위험스러운 곳도 도사리고 있어 늘 경계하여야 한다. 가파른 기슭에 시퍼렇게 풀이 돋았다. 그 속에 샛노란 원추리 꽃이 벌써 말쑥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너는 누구를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거냐. 고운 꽃다발까지 만들어서 갖고 온 것이냐. 바람이 슬쩍 매만져 본다. 끝내 물이 차고 길이 끊겼다. 절벽 산자락을 타고 탈출하듯 올라야 한다. 잠시 바다에서 멋진 등산을 하는 순간이기에 짜릿함이 묻어난다. 좀처럼 보기 힘든 특유의 초목과도 조우한다. 아슬아슬한 쾌감과 함께 헐떡인다.
해안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흙길이다. 우거진 숲길을 간다. 군사통제구역으로 초소가 보인다. 그래 굽이굽이 저 해안선을 누가 지키랴. 그래도 밤이면 믿음직한 군인들이 사주경계 하는 것이다. 몇몇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천리포항이다. 방파제에 상가며 사람들도 오가며 그래도 활기가 있어 보인다. 보다 넓은 모래밭 천리포해수욕장이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말하듯 너무 한가하다. 그러나 바다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들락거린다. 백사장을 빠져나가고 차도를 따라간다. 천리포수목원이 나타난다. 힐끔힐끔 울타리를 안고 가며 들여다본다. 꽃을 보기에는 좀 애매하지 싶다. 전에 거닐며 보았던 나무들이며 연못도 보인다. 백련과 홍련이 활짝 피었다.
미국인이면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 된 민병갈 선생의 숨결이다. 다시 태어나면 한 마리 개구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동물 중에 하필 개구리일까. 살아가며 아옹다옹하지 않고 순수자연에 귀의하고 싶었던 게다. 다시 언덕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1킬로미터쯤 국사봉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바다가 펼쳐졌다. 해안을 타고 저쪽 끝 등대에 이르기까지 황금빛 거대한 모래밭이 드러난다. 한국이 자랑하는 만리포 해수욕장이다. 아직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만큼 빠진 물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결과 함께 즐기고 있다. 물결이 덤벼들면 한 발을 물러서고 물결이 물러서면 한 발 다가가기도 하면서 시시덕거린다.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파도소리를 듣고 있는가. 듣고 있어도 난해한 소리다. 그래도 좋기만 하다. 그리움 찾아 모래바닥을 파기도 하고 미처 못 다한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모래 속에다 묻어놓으면 파도가 몽땅 휩쓸고 간다. 모래바닥은 넓어지고 갈매기는 아예 뒷전에 모여앉아 사람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저 만큼 만리포노래비가 세워졌다. 흘러간 노래 앞에 만남의 약속장소가 되기도 한다. 저만큼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하나가 되었다. 오늘의 트레킹은 요즘 날씨답지 않게 그래도 선선하였다. 백리포에서 천리포를 지나고 만리포까지 왔으니 바다와 함께 때로는 산과 함께 무려 만천백리를 넘게 넘나들은 셈이다. 태안해상국립공원 소원2길을 걷고 걸었다.
특히나 이곳은 지난 2007년도 말인가, 원유유출사고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곳이다. 130만이란 놀라운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어서 한겨울 기름띠를 닦아내며 하루 빨리 원상회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던 곳이다. 이제 그런 아픔은 말끔히 씻어가고 있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포구에서 거듭나며 소박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바다가 있기에 푸른 물결이 용솟음치듯 마냥 자랑스럽고 살아갈 힘이 불쑥불쑥 돋아나는 사람들이다. 행정구역상으로 태안군 소원면이지만 뜻하지 않은 재난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온 국민이 소원한 것을 보면 소원이 많이 맺힌 곳이지 싶다.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좋은 꿈을 꾸면서 소원을 이루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었다. - 2014. 07. 06. 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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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뵈서 반가웠음다..건강 하세요^^
오랫만에 만나뵈서 반가웠답니다.
그분들에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함을 전함니다.
항상 건강조심하시고 담에뵈요...
여러사람이 한뜻을 갖고 이루어낸 소원길~
그분들이 있었기에 저희가 아름다운 길을 걷고 즐길수 있다는거에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구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