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필요한 외출만 하고 며칠째 집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그저 더듬이로 먹이를 감지하는 곤충처럼 온도로만 가을을 감지하다 가을 바다를 만나고 싶어 길을 나섰다. 어쩔까. 계양 IC 사거리이다. 처음 출발할 때 마음은 인천공항로. 멀거니 신호등을 기다리다 김포/강화 방향의 신호등이 먼저 바뀐다. ‘그래, 이 방법도 괜찮을거야. 어딘들 어떠랴.’ 차를 강화로 돌렸다.
자주 갔던 길, 변함없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괜스레 반갑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듯 가슴 설레는 일일까.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자동차 카셑트의 볼륨을 높였다. 늘 틀어 놓고 다니는 테잎. 주로 올드 팝과 영화 음악, 명곡인데 마침 ‘아들리느를 위한 발라드’가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마치 나를 위한 발라드인 것처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나의 마음도 상쾌해졌다. 자동차 속도에 밀리는 가로수 이파리 하나하나에 잊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이 촘촘히 눈길을 주며 달렸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과 들, 바다가 있어, 맘만 먹으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정오의 길은 한가롭다. 햇살은 따갑다 못해 뜨겁다.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를 않는다. 소나기 피하듯 모두들 더위를 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통진」 방향으로 달렸다. 행락객들을 상대로 특산물을 파는 길거리 상점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 양쪽엔 알곡 익어가는 소리 튼실하게 들리는 들녘이 보인다. 개발이다 태풍이다 한시도 맘 놓을 수 없는 때 아직도 안녕한 것에 고마운 생각이 든다. 초지대교가 보인다. 초지대교 아래 바다는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닷물을 내 보낸 초지대교는 왠지 허전해 보였다. 나도 갑자기 맥이 풀린다. 풍만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바다는 기다림에 목마른 것인가. 기다림은 즐거움보다 애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기까지 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초지대교를 건넜다. 길은 삼거리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렸다. 의과대학 방향의 길은 한가롭기도 하려니와 달리는 한편으로 바다를 볼 수 있고 정겨운 가을 들판도 만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2. 열음
정오의 가을 햇살이 그 경계를 넘어 이울어 가면 갈수록 심술 사납게 더욱 세차게 내리꽂고 있어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싫어 차창을 내리고 달린다. 따가운 기운이 그대로 내 얼굴로 운전하는 손 위로 가감없이 쏟아져 들어와 내 얼굴도 손등도 팔도 모두 보기 좋게 익히고 있다. 사람살이도 너 나할 것 없이 한 해 한 해, 그렇게 한 번씩 무르익어 가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마음익기 하기보다는 설익은 심보만 가득히 부풀리는 것 같다.
길은 구불구불 돌아 터덜터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그 율동미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누구라도 나와 함께 간 사람이 있었더라면 우스갯말깨나 했을 것 같다. 비포장도로라고는 하나 새롭게 도로를 내기 위해 다듬어 놓은 길로 천혜의 자연도로는 아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신주단지 모시듯 굴리는데 나는 도무지 그런 게 없다. 이런 비포장도로 일수록 더 재미있고, 더 정겹고, 더 달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달리는 중간중간 갯벌이 보인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행여 갯내를 맡으려나 하는데 바다는 냉정하다. 더위에 바람이 제 몸을 사리는지 바다가 숨쉬기를 멈춘 것인지 무정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기별이 없다. 어쩌랴. 기다리게 한 것은 나인데... 달리 달래줄 방법도 없고 바닷물,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내 오늘 늦도록 여기 있다가 너를 만나고 갈 수밖에.
바다를 향해 찡긋 눈인사를 하고 두 세 구비를 돌았나. 꽤 넓은 들녘을 끼고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산세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들어앉아 있는 집들은 비교적 깨끗한 양옥들이었다. 사진으로 본 지중해의 어느 마을을 연상하기도 해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시야에 들어 온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 조그만 평상은 더없이 정겨워 보였다.
어쩜! 나는 차를 세우고 나무 곁으로 가까이 가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한 뼘의 차이도 없이 붙어 있었다. 아담한 이 나무가 다소 이국적인 풍경인 이 동네에 오갈 데 없는 우리네 농촌마을의 한 점을 찍는 듯 했다. 그리고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두 채의 파란 대문집. 두 집 사이 조그만 텃밭엔 없는 것이 없이 심어 있었다.
쪽파는 가늘게 새 움이 올라오고, 호박넝쿨엔 호박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고, 동부콩은 꼬투리를 열심히 여물어 가고 있다가 낯선 방문객에게 들킨 것이 수줍은 듯 껌벅껌벅 거린다. 들깻잎 몇 이파리 왱왱 날아드는 벌한테 때늦었다고 눈 흘기고, 아직 덜 여문 수수 한 그루 그 꼴을 보고 헤죽헤죽 웃어넘기는데 내 눈에 확 뜨인 나무가 있었다.
처음엔 그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잘한 열매가 다닥다닥 촘촘하게 나 있어 꼭 아기 홍역하고 있는 얼굴 같았다. 남오미자 나무였다. 아! 실물을 이렇게 보다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도대체 주인이 뉘시기에 이렇게 알뜰살뜰 갖가지 나무를 심어 가을걷이를 풍성하게 하는 걸까. 괜스레 주인이 고마웠다.
오른쪽 파란대문 집은 대문이 닫혀 있었다. 담장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주 정갈하게 마당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깔끔한 주인의 성품을 닮아 한 뼘 텃밭에도 갖가지 열음들이 그다지 정겨운 것일까. 왼쪽 파란대문 집은 열려 있는데 대문 밖에서부터 안마당까지 수수가 가득 널려 있었다. 가득히 널려있는 수수 알곡만큼 빈 수숫대가 정갈하게 다듬어져 하얀색 담 아래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수숫대 잔물기 거두어지면 아마도 이 댁 농부님의 손을 거쳐 고운 수수 빗자루로 김포장날, 강화장날 기다리겠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큰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데 우리는 청소기로 화학재료 개량빗자루로 서걱서걱 자연을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가는 나의 공간을 생각하고 수숫대에 준 눈길이 얼른 거둬지지가 않았다.
이런 내게 대문 밖 국화꽃이 수북이 자라 멍울 부푼채 내 시선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그래 너도 곧 피겠구나. 꽃집에는 사람들이 욕심껏 키운 국화들이 많이 나와 있던데...너가 피기 전에 다시 한 번 오도록 할게. 나는 국화꽃에게 가만히 속삭이고 눈길을 거두려니 박태기나무가 샐쭉 토라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그래 너도 이른 봄에 수고했어. 꽃샘바람 속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진분홍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화사하게 봄을 알려주더니 꼬투리도 주렁주렁 보기 좋구나. 겨울 잘 보내고 내년 봄에 보자꾸나. 박태기나무 웃는 얼굴로 나뭇잎 한 장 가만히 떨어뜨려 준다.
아!ㅡ 이 조그만 텃밭에 가을이 이토록 가득하다니. 뜻 모를 감사가 마음 가득 넘쳐 마을 앞 넓은 벌판에 대고 “애들아, 모두모두 고맙다. 모두모두 수고했어!” 목청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계속)
3. 사기리 탱자나무
텃밭과 단풍나무가 인상적인 동네를 뒤로하고, 바람 한 점 없는 한 낮의 길을 계속 달렸다. 길은 울퉁불퉁거리다, 덜커덩거리다, 다시 잠잠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퀴아래서 주는 다이너믹하고 리드미컬한 이러한 변화는 혼자 달리는 나를 잠시라도 무료하게 하지 않아 좋았다. 마치 심심치 않은 길동무처럼 느껴져 짜증보다는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공사구간을 알고 있기에 여유로웠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내 앞에 가고 있는 쏘나타가 절절 매고 가는 꼴이 은근슬쩍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심사를 눈치라도 챘나? 앞 서 가던 쏘나타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뒤따라가는 나에게 앞서가라고 속력을 낮추고 오른쪽 깜박등을 켜 양보를 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가야할 곳이 정해지지 않은, 자동차 구르는 대로 가는 사람. 시간의 구애도 없고, 천천히 가는 것에 불편함도 없어 앞지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산하던 길에 차들이 한 대 두 대 모여 꼬리가 꽤 길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포크레인 뒤를 따라간다는 심정으로 따라갔다. 급한 사람은 반대편 차선에 오는 차가 없으니 요령껏 앞지르기해서 가면 그만이다.
이렇듯 여유에 여유를 주던 길지 않은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드디어 갈림길이다. 왼편은 <정수사>, 오른편은 초지대교. 뒤따라오는 차들 대부분이 초지대교 방향으로 갔다. 물론, 쩔쩔매며 앞 서 가던 쏘나타도 일찌감치 초지대교 쪽으로 정신없이 내 빼버리고, <정수사> 방향으로는 나 혼자 덜렁 가고 있었다. 바로 이 맛이야! 호호. 뭔가 훌훌 털어버린 느긋하고도 호젓한 쾌감이랄까! 나는 자동차 속력을 20, 30으로 낮추고 한적하다 못해 적요하기까지 한 가을 들길을 맘껏 가슴에 안고 달팽이가 되어 버렸다. 얼마를 그렇게 갔을까. 이윽고 툭, 하면 자주 가던 <정수사>가 보였다. 고향집처럼 몹시 반가웠다. 하지만 바닷물이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기도 하고 지금 들르고 싶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산사에 가고 싶었다. 정수사를 지나쳐「사기리」에 도착했다. 두어 달 안 본 새 푸르렀던 사기리 탱자나무는 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탱자나무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영재 이건창 선생 생가 입구 공터에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향나무 아래 평상에 나이 드신 내외분이 마르치스종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맞은 편 포장마차 간이 상점엔 밤과 보리쌀, 양파, 강화 특산물인 순무김치를 파는 아주머니가 나와 있었다. 나는 공터에 자동차를 세워 두고, 곧장 탱자나무로 갔다. 400살이나 먹은 탱자나무를 요모조모 살펴보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탱자를 보며 잠시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우리 집 울타리 한쪽은 긴 탱자나무 울타리였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 한 가운데에 우리 막내고모와 똑같은 나이의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고모님의 오동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가 맞붙은 곳에 우리 식구들, 아니 우리 형제들과 사촌들만 아는 비밀의 문이 있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그 문을 한 번씩 드나들라치면 온 형제들의 빈축을 사고 드나들었다. 사실 따가운 탱자나무 가시도 문제였지만, 탱자나무에 사는 진초록에 노란 눈을 하고 뿔을 곧추 세운 통통한 애벌레가 언제 툭 나타날지 몰라 매번 벌벌 떨며 징징거렸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공포의 비밀의 문을 나서면 시원한 폭포가 쏟아지고 단풍나무, 떡갈나무, 팽나무들이 적당하게 가지를 벌려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었고, 혹시라도 있을 뭇시선을 덮어주는 천혜의 가족탕이 은밀하게 있었다. 그곳은 여름철이면 우리 형제들의 물 놀이터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도시에 나가 공부하던 언니, 오빠들이 내려와 그곳에서 놀았다. 나는 그 때가 그 얼마나 좋았던지. 물놀이를 마치고 바로 옆 산으로 올라가 모두들 나란히 누워 노래도 부르고 시도 짓고, 시낭송도 하고.
그 중에 언니, 오빠에게 듣는 영화이야기는 항상 기대에 찼다. 특히 큰언니와 작은오빠는 정말 실감나게 이야기를 잘 해 주어 나는 듣다가 울기도 여러 번 했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비명도 지르고 엉엉 울기도 하고 그만하라고 애원도 했었다. 큰언니와 작은오빠는 그런 나를 놀려 주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자주 해 주었다. 그러잖아도 겁이 많은 나는 밤이 되면 낮에 들려 준 언니, 오빠의 무서운 이야기가 생각나 화장실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야기 들으며 먹은 수박 때문에 소변은 왜 그리 자주 마려웠던지. 아무튼 다리를 꼬며 절절매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쨌건 납량특집이 따로 없었던 잊지 못 할 어린시절 여름밤이었다.
내가 「사기리」 탱자나무를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그곳에 서면 이렇듯 아름다웠던 어린시절이 무지개처럼 번져 말할 수 없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왜 진즉 이 나무를 만나지 못했을까.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도 아랑곳 않고 망연히 서서 어린시절의 탱자나무를 회상하다 , 탁구공만한 노란 탱자를 보기 좋게 팔마다 방울방울 매달고 있는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4. 「사기리」 평상과 재 넘어 묵밥 집
나는 상큼하고도 달짝지근한 향기를 품은 그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고 건너와 영재 이건창 선생 생가에 들렀다. 언제 보아도 청렴결백한 선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울긋불긋 물들어가며 가을 햇볕을 즐기는데 선비의 초가는 회색의 가을이다. 나는 초가에 배어있는 그윽한 가을빛을 찍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상점 주인한테 밤과 보리쌀을 샀다. 그런데 아까 평상에 있던 노부부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강화에 나오며 서울 목동에 산다고 했다. 그 분들은 내가 「사기리」 탱자나무를 찍은 것을 유심히 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이렇다 하게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웃고 말았다. 老신사분은 언론계에 있다 은퇴하고 지금은 기자들의 글쓰기 지도와 우리말 바르게 쓰기에 힘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지성인들의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여 내게 설명을 해 주고,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한 우리말을 잘 살려 쓰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유네스코 본부 앞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또한 말은 있고 글자가 없는 나라에 우리말과 글을 심어주고 있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보도를 통해 들었노라 했다. 이외에도 그 분과 나는 우리말과 글에 관해 거의 1시간 이상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누군가 그랬던가 문학은 길에서 핀다고. 저자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길에서 듣는 이야기.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희노애락 애오욕이 있고, 나의 정체성도 그런 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연이라 할지라도 영재 이건창 선생 생가 앞에서 들은 오늘 이야기는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분과 헤어져 고개 넘어 묵밥 집에 들렀다. 이곳은 아동작가 김미혜씨가 나에게 권하던 먹거리 집이었다. 사실 김미혜씨와 동행하고 싶었으나 혼자이고 싶어 나섰던 길이었다. 하지만 묵밥 집을 보자 그녀도 떠오르고 시장끼도 돌아 들어갔다. 묵밥 집은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났음인지 그 넓은 식당 안에 예닐곱 정도의 손님뿐이었다. 모두 남자 분들이었다. 내가 들어서니 한산한 탓에 일제히 쳐다보았다. 나는 신발 끈을 풀며 그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 조금은 민망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썩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그들과 떨어져 있는 구석진 테이블을 차지하고 가장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묵국수를 시켰다. 기다리노라니 김미혜씨가 더욱 생각이 났다. 그녀와 동행했더라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동그란 눈에 서글서글하고도 해맑은 웃음으로 한참 무어라 이야기 했을 것 같았다. 다음엔 꼭 그녀와 동행해 이 자리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조금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찬 음식이 싫었지만 천천히 먹었다. 그녀의 이야기대로 짜지도 않고 고소한 게 맛있었다. 언젠가 춘천 묵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아무튼 김작가를 생각하며 춘천을 떠올리며 시장끼 어린 뱃속을 채우고 입가심으로 커피를 마셨다. 한데 차라는 것이 묘한 여유를 주는지 조금 전까지 어두웠던 나의 눈에 대형유리창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 식당 뒤 곁에 쭉쭉 뻗은 나무가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한껏 여유로워졌다. 나가다 돌아가 보리라.
묵밥 집 현관을 나와 나무들 곁을 가려다 무심결에 올려다 본 광경에 그만 깜짝 놀랐다. 전봇대 지주 철선을 타고 올라간 칡넝쿨의 기세가 이만저만 당당한 것이 아닌가. 이파리며 꽃이 얼마나 크던지. 덕분에 보라색도 선명한, 제법 큰 봉숭아꽃 크기의 칡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보아온 칡꽃 중에 가장 큰 꽃을 본 것 같았다. 꽃이 저 정도면... 뿌리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갑자기 내 몸이 옭죄여 오는 느낌에 으스스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멈추고 발자국을 떼어 소나무가 죽죽 뻗어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숲에서 흘러나오는 기막힌 초록 바람을 만났다. 마치 얼음 동굴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시원함이 배어있는 초록의 기운은 예기치 않은 여행길의 특별한 선물인 것 같았다. 그 신선한 기운은 깊은 산 속 옹달샘과 같이 맑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고도 촉촉하게 적셔주어 새로운 기운을 얻게 하는 것 같았다. 따가운 햇볕만 쫓아다니다 이런 행운도 있구나 싶어 쪼그려 앉아 초록의 샘에 빠져 있고 싶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며 서 있는 서너 명의 남정네들의 기세에 질려 더 있질 못하고 그만 나오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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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석모도 선착장
묵밥 집을 나서며 나는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데 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1'분오리돈대'를 지나칠 때 잠시 들러 욕쟁이 할머니도 만나보고 돈대에 올라 탁 트인 갯벌도 한 번 내려다볼까 하는 유혹 아닌 유혹이 찰라처럼 스쳤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고 동막해수욕장을 지났다. 주말이고 햇볕이 좋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길거리 주차장엔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동막해수욕장 갯벌엔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울려 뻘밭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잡는지 허리를 숙이고 있다. 나도 내려 뻘밭을 헤집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왜일까. 갯내? 아니다. 서해안의 뻘밭은 낭만적인 뻘밭이 아니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사는 사람들. 시커멓고 끈끈한 갯벌에 서서 그들의 애환을 듣고 싶었고, 뻘 속 깊이 숨겨져 있는 생명의 소리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의도와는 달리 자동차 바퀴는 계속 굴러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동막해수욕장을 벗어난 길은 가끔씩 마주치는 자동차 외엔 너무나 한적했다. 경계란 이런 것인가. 이 쪽과 저 쪽. 피안의 강을 건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진한 외로움이 스친다. 나는 그 기분을 떨쳐 버리려 길 양 쪽의 들판에 눈을 주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 포기. 새 생명의 보람을 안고 안녕하다 눈짓을 하고, 그 들판 너머 가끔씩 보이는 바다, 아니 갯벌은 나의 기분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몇 구비를 돌아도 팬션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울긋불긋한 그들의 모양새와는 달리 매우 적요함을 느낀다. 한여름, 얼마의 사람들이 오고 갔을까. 바다를 볼 수 있는 좋은 지형엔 예외없이 팬션들이 모두 올라 가 있어 낮은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더 이상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팬션 촌을 지나쳐 갔다.
속도를 올리기 싫어 가끔씩 내 뒤를 따라오는 자동차들을 먼저 보내고 매우 천천히 거북이 걸음으로 달렸다. 나는 한가로운 가을 길을 최대한 내 것으로 삼았다. 어디쯤 왔을까, 달리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갯벌이 아닌 바닷물이 들어 차 있는 바다였다. 바닷물? 나는 뜻밖의 횡재를 만난 듯 주저 없이 자동차를 그곳에 세웠다. 멀리 배가 보였다. 가슴 설레게 했다. 하지만 눈에 익어 보았더니 석모도 선착장이었다. 이럴수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이다. 일순간 멀다면 먼, 그러나 가깝다면 가까운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느 해, 문학 기행이었던가, 가을소풍이었던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다는 석모도의 가을 석양을 보기 위해 문우들과 소풍 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랴. 그날 돌아와 '산사춘'에 빠져 난생 처음 마시지도 못한 술에 취해 비몽사몽 했던 날이었다. 무엇이 그랬던가. ‘기득권’. 그것이었다. 할 말이 목에 차오르게 많았다. 그러나 나는 다 묻어두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것도 있으려니. 아니 달라지지 않은 들 또 어쩌랴. 나를 알아준들 어떻고 알아주지 않은들 어떻겠는가. 그 철옹성 같은 기득권이 누군가의 손에 잘못 쥐어져 순진하고 순박한 몇몇 사람들 가슴에 진한 멍이 잡혀 있는 걸.
사람은 책에서 배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새삼스러워졌다. 책으로부터 제한된 존재의 구실을 배우고 실천 하다가는 자신도 주변도 모두 상처를 받고 마는 것을. 그날 이후 그 후폭풍으로 나는 이루 말 할 수없이 나의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것을 스스로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내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나를 일으켜 준 시간이 있었고, 위로의 시선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어 오늘 이렇게 내가 기운을 얻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 않는가. *2“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불가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가슴에 모두고 나 자신을 위해, 그 시간들을 위해 깊이 합장하는 바이다.
나는 몽실몽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접어 버리고 떠가는 배를 바라보고 섰다. 바다는 그리움을 알기에 뒤척인다고 했던가. 나는 내 가슴에 깊이 묻힌 나의 그리움도 그 뒤척임에 실려 멀리멀리 떠나보내고 싶었다. 나는 바다을 보며 잠시 그리움에 젖다가 기왕 선착장에 왔는데 ‘보문사’를 갈까. 잠시라도 바다와 나를 동일시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올 시간이 마땅치 않은 것 같아 떠가는 배만 안타까이 바라 보다 다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6. 나무소리
지나간 시간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과 바다로 떠나고픈 아쉬움을 가진 채 선착장을 빠져 나왔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까. 나는 선착장에서 떠오른 지나간 시간의 기억과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미련 없이 덜어보고 싶은 심사로 한 번 달려 보자 싶었다. 낯선 길인들 어떠랴. 점점 달리는 차는 더욱 없고 오랜 시간을 혼자 달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다 나타난 갈림길. 그 갈림길에 도시 같았으면 노란선이 죽죽 그어진 안전지대였을텐데 갖가지 백일홍이 가득히 핀 꽤 넓은 꽃밭이 있었다. 백일홍...
강화의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도로가에 있는 백일홍 꽃밭을 자주 본다. 내가 목백일홍인 배롱나무를 알기 전에는 이 세상에 슬프디 슬픈 꽃, 백일홍은 그 꽃 하나인줄 알았던 꽃이었다. 어린시절, 갖가지 정원수와 꽃들이 심어진 비교적 넓은 우리집 가을 꽃밭엔 과꽃과 더불어 화단을 가득히 메워 주었던 꽃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어린시절의 또 다른 추억에 백일홍이 반가웠는지 모른다.
백일홍의 반가움은 잠시 접어 두고 내 눈에 잡힌 나무 조각들. 그곳은 비닐하우스 뼈대를 세우고 박을 길렀던지 박 넝쿨이 제법 올라와 박이 듬성듬성 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무 조각들이 양쪽으로 주욱 잘 전시되어 있었다. 누가 길가에 조각품을 전시해 두었을까. 궁금하여 차를 세웠다. 나는 궁금함도 풀 겸 주인의 양해를 얻어 사진도 찍고 감상도 할 생각으로 사무실인 듯 한 곳을 조심조심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고 안은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쩐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특별하게 물어볼만한 인가가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 나는 허락을 포기한 채 조각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다. 등목을 하는 부부, 아이를 업고, 걸리고, 이끌고 있는 어머니 모습,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가난한 어머니. 모두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지나간 옛 모습들이었고, 물지게를 지고 있는 조각상과 깡통을 들고 있는 조각상 등, 간난신고의 모습들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다짐” 이란 출사표와 같은 조각가의 비장한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옮겨 보면 “썩어가는 마음의 상처 위에 결심이란 약을 바르고 노력이란 붕대를 감아 성공이란 흉터를 남기자. 임00” 누군가 이곳에서 자조어린 조각을 하다가 그만 둔 것인가. 아니면 잠시 자리를 비워 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주인의 허락을 받을래야 받을 수도 없었지만, 놓치기가 아까워 나무 조각상들을 눈길 가는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나무소리... 그곳의 이름이다.
나무소리... 나는 가만히 읊어보며 누군가 자신의 혼을 넣고 나무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나무 조각상들 앞에서 에밀레종을 만들던 장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혼신의 힘을 다해 한다고 한다. 과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까. 득음을 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소리꾼이 있고, 득도를 하기 위해 갖은 고행도 마다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나의 일에 얼마만큼 그러한 일념으로 전력투구 했던가. 나는 나무 소리 앞에서 나를 진하게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자화상만 보였다.
나는 몇 점 조각상들을 카메라에 마저 담고 발아래 반짝이는 들풀을 보았다. 들풀이나 혼이나 무엇이 다르랴. 끈질긴 생명력. 그들이 갖는 가장 존귀한 찬사다. 민중이라 대변도 한다. 또한 가장 낮은 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나의 들풀은 무엇인가. 그 무엇도 나는 들풀만도 못하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풀빛이 유난히 돋보인다. 어린 자귀나무 가로수가 오히려 풀이 죽어 있다. 그 단단한 생명력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흔들어 보았다. 그래, 그래 오늘 너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안다. 일어나렴. 일어나렴. 풀들이 풀풀 일어나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풀들과 말을 하다 일어섰다. 이 세상 가장 흔한 것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조금이라도 같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싶었다.
나는 풀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도로를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 백일홍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백일홍을 찍으려 카메라를 갖다 대는 순간, 배터리가 없다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낭패다.
여분의 배터리도 없어 매번 아끼며 셔터를 눌렀는데... 더구나 이 길을 그 오랜 시간 달려도 변변한 가게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지 않았는가.
아니다 어쩌면 홀가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제 가는 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충실하고 더욱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며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해 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그렇게 바꾸니 정말 홀가분하다. 걸 거칠 것 없이 앞으로만 가다 <정수사>로 가자. 그럼 아마도 바닷물이 들어와 바다가 나를 기다려 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동차에 올랐다.(계속)
깃털처럼 가벼워진 기분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손장단 발장단을 해 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구부러진 길로 이어진다. 마치 놀이기구를 탄 느낌이랄까. 뜨거웠던 바깥 공기는 조금은 누그러지고 따가웠던 햇살은 순해졌지만 풀잎에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햇살은 어린아이의 눈빛처럼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길 위에 구르는 것은 오직 나 혼자. 나는 한껏 느슨한 기분으로 달리고 달렸다. 길상교회 앞을 지나쳐 갈 때는 산그늘이 길게 드리워졌을 때였다.
나는 지난봄이 생각나 길상교회 앞 농수로를 유심히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길상교회 앞 농수로엔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점점이 앉아 있었다. 저마다 취미가 각양각색이라지만 저수지나 전문 낚시터를 두고 좁다란 농수로에 와서 낚시를 드리운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못 궁금하였다.
지난 이른 봄 이곳을 지나칠 때는 갈수기 탓으로 농수로에 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낚시꾼들은 이 농수로에 낚싯대를 내려놓고 줄줄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자동차는 곳곳에 주차되어 있었고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꽤 웅성거렸었다. 그 때만 해도 주말에 가족과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이런 곳을 찾아왔나 보다 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낚시하기에 괜찮은 곳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는 생각으로 낚시꾼들을 찬찬히 쳐다보며 길상교회 앞을 지나 한참 달리다 보니 <전등사>가 보인다. 전등사는 오늘 꽤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주말이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한적한 산사의 모습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주차장엔 이 해어름에도 주차된 차들이 꽉 차 있다. 하지만 산사를 올라가는 길은 여간 운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날, 나는 강화 지리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다니다 <전등사>란 이정표만 보고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말 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이곳에 와 산사로 가는 어둑씬한 길을 무서움도 버리고 더벅더벅 올라갔다. 올라가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마주내려 오던 사람들이 내 꼴이 이상스러운지 눈길을 주며 내려가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이후 <전등사>는 찾지 않았다. 안온하기를 기대하고 올라갔던 전등사는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그의 역사만 간직할 뿐이었다.
전등사 앞을 지나며 생각에 잠긴 사이 자동차는 몇 구비를 돌아 <정수사>로 올라가고 있다. 자동차 없이 올라가야하는데... 뭐니뭐니해도 산사를 찾아갈 때는 걷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정수사>를 오를 때마다 김선태 시인이 쓴 시가 생각이 난다.
늦가을, 정수사 깊숙이 꼬부라져 들어간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삶이 어떤 형색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고 혼자 중얼거릴 때 저 길목에 늘어선 늙은 바위들은 무어라 말을 건네주지 않습니다. 삶이 무어라고 말하면 이미 삶은 거기 없다는 듯, 풍경 하나를 제대로 만나려면 그 풍경과 몸을 바꾸어야 한다는 듯, 비밀을 먼저 탐하려는 자의 우매를 억만 겹 세월의 무게로 지그시 눌러버렸습니다.
-「정수사 가는 길」부분
시인은 자연과 내가 한 몸이 되어야만 자연의 진정한 의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에는 느림의 미학이 따르게 마련인데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마음이 늘 불편하기만 하다. 경사진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길 양쪽에 나무들은 짙은 그늘로 드리워져 있고 이끼 낀 바위들은 그 그늘 아래 묵묵히 앉아 좌경삼매에 빠진 듯하다.
나는 마니산 등산로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자동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순간, 탁! 부풀어 있던 주머니가 터지듯 한꺼번에 가을 마른 잎 내음이 쏴아- 몰려들었다. 나는 자동차 문을 닫는 것도 잊은 채 있는 힘껏 팔을 뻗어 가슴을 열고 깊이깊이 심호흡을 했다. 아- 초록이 이울여 가는 소리, 낙엽이 건드리는 축축한 흙내음 소리, 쯔쯔쯔삣 쪼쪼롱... 방울꽃 같은 새들 소리.
이 가을. 산과 들, 초록이 숨 쉬는 그 어느 곳에나 가득 차 있는 소리에 틀림없지만 <정수사> 만이 주는 유일무이한 선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신선함이 나의 온 몸을 감쌌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서서 숲과의 푸르른 호흡을 원 없이 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잎사귀 표본을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풀 섶으로 갔다. 짚신나물을 가만히 꺽으려는 순간 전혀 눈에 띄지 않던 나비들이 우르르 날아올라 마치 별무리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날아와 모두 이파리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다시 풀을 잡아 흔들었다. 작은 날개를 흔들며 소리도 없이 우르르 날아올랐다. "오, 하느님!"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도 같이 밤하늘에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같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그 광경을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주차장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비 좇는 여인이 되어 한동안 그 짓을 했다. 나비는 괴로웠을 것이다. "나비야 미안해." 나는 나비 한 마리를 기어코 데리고 오고 말았다. 그곳에서 채집한 풀들이 20여종 이상 된다. 나는 가지고 간 책 속에 채집한 이파리를 잘 펴서 넣었다. 잘 눌러지면 아이들과 잎사귀 표본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잎사귀 공부를 하며 채집을 해 보려고 한다.
잎사귀 채집을 마치고 <정수사>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 불교용품점 판매소 앞에 서서 판매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의 보여야 할 보살님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경내 어디 계시겠지 생각하고 곧장 약수터로 올라갔다. 물 한 모금 달게 마시고 <삼신각> 아래 숲으로 들어가 나뭇잎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잎 그물 사이로 하늘이 회색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는 올려다보기를 그만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 내려오는데 저 아래 요사채에서 보살님이 방실방실 웃으며 처사님 두 분과 올라오고 있었다. 지난 번 다녀 간 뒤, 길지 않은 시간 지나서 만나는 보살님은 그새 몸집이 더 넉넉해지고 웃음도 더 넉넉해진 후덕한 모습으로 두 손을 맞잡고 나를 반겨준다.
보살님과 나는 반갑게 포옹을 하고 판매점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절에 올라간 시간이 거의 6시에 가까워 이내 저녁예불시간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불자들이 일제히 대웅보전에 들어 예불을 할 즈음 우리 둘이는 낙엽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둥근 탁자에 앉아 저 멀리 물이 들어오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로의 지나간 시간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 중에 보살님은 법장 스님의 타계를 말하고 진심어린 눈물을 지으며,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신데 돌아가셨다며 몹시 애석해 했다. 존경하는 교계지도자의 가는 길을 눈물 지어 아쉬워하는 보살님께 나는 뭐라 몇 마디 위로했지만 사람마다 정해져 있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나인들 무슨 수로 가름하여 깊이 말할 수 있겠는가.
보살님은 저녁 예불에 맞춰 찾아오는 불자들의 시중을 들어주러 대웅보전으로 가고 나는 판매점에서 물건을 서너 가지 팔고 있었다. 찾아오는 내방객들에게 커피 시중도 들어주고 <육조단경>을 읽기도 했다. 한참 만에 보살님이 돌아와 나는 <백유경>과 월간지 <불광>을 샀다.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싶은 다포를 뒤적이다가 아주 담백한 그림을 찾는다고 하자 보살님은 서슴없이 한 쪽에 두었던 다포를 내게 선물했다.
민들레 씨가 홀홀히 흩어지는 그림에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네”라는 글귀가 오른쪽 아래 작은 글씨로 나란히 써 있었다. 그리고 글귀에 걸맞는 겨자빛이 도는 연하디 연한 연두색 다포이다. 그림이나 글귀의 배치가 어수선하지 않고 무게감도 없이 매우 간결했다. 색깔도 오래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다포를 가슴에 안고 말없이 보살님을 꼬옥 껴안았다. 보살님은 그렇게 좋으냐며 환하게 웃는다.
보살님과 나는 둥근 벤취에 다시 앉아 물이 들어오는 바다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산사의 밤은 빠르게 깊어가는 것 같았다. 7시쯤 되니 나무그늘이 까맣게 드리워진다. 나는 보살님께 산사에 머물 수 있는 내방객들의 방이 있는가고 물었다. 하지만 작은 절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주지 스님의 불편함과 정진에 누가 될까 싶어 아예 방이 없다고 했다. 나는 가끔은 모든 것 다 잊고 조용한 산사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고 싶은 생각이 늘 간절하였다. 그러나, 여염집 아낙이 그렇게 묵어가기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보살님은 귀띔해 준다.
느티나무 한 잎 한 잎 고요를 물고 떨어지다 내 어깨 위로도 하나 살포시 떨어져 기겁을 하고 놀랐다. 놀라는 나를 보고 보살님은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놀라면서 무슨 수로 산사에서 며칠 묶을 생각을 하느냐고 깔깔거리며 놀린다. 나는 벌레인줄 알았다고 했다. 기가 막힌단다. 산사의 밤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데 어쩌랴. 놀라기도 했지만 몹시 무안했다.
쏴-아 바람이 산사를 훑고 간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낮에는 그토록 뜨거웠던 바람이 제법 차다. 모든 사물들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어둠 속에서 보살님도 나도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갯벌을 타고 구물구물 올라오는 미세한 물소리.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바다가 전해주는 그 미세한 소리들 속에서 무언가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은 점차 나를 아주 평온하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 바다를 보고 싶어 떠난 길에 나는 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새삼 독경처럼 듣고 낙엽의 겸허한 마음으로 가을예불을 마칠수 있었다. (끝)050911김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