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상에 왜 돼지머리가 올라갈까?
재앙을 막고 행운을 달라고 비는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린 배경은 먼저 무속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날 옥황상제 밑에 ‘업’ 장군과 ‘복’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서로 다투자, 옥황상제는 탑 쌓는 시합을 제안해 승자를 가까이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시합에서 업 장군이 잔꾀를 부려 승리를 하자 옥황상제는 복 장군이 계속 당할 것을 우려합니다. 그래서 복 장군을 돼지로 환생하게 해서 사람들이 하늘에 소원을 빌 때 중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돼지머리가 고사에 쓰이게 됐답니다.
우리 민족이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은 매우 오래됐습니다. 고구려 2대 왕인 유리왕 때 삼월삼짇날, 돼지와 사슴을 사냥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역사서<진서(晉書)>에는 “고구려인들은 장사를 지낼 때 나무로 작은 곽을 만들고 돼지를 잡아서 그 위에 쌓아놓는다. 이 돼지를 죽은 사람의 양식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동네를 지켜달라고 비는 동제(洞祭)나 큰굿에는 돼지를 희생 제물로 쓰고 있습니다. 돼지가 지신(地神), 즉 집터와 집안 대지를 지키고 관장하는 신의 상징으로 인색 됐기 때문입니다. 또 돼지의 한자말 ‘돼지 돈(豚)’ 자는 우리말 ‘돈’과 같은 소리를 내고,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습니다. 이런 돼지처럼 다산과 부귀영화를 누리기 바라는 마음으로 돼지머리를 올리고, 코나 주둥이 등에 돈을 꽂는 것입니다.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소를 공물(供物)로 바치려면 소를 통째로 잡아야 하는데,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귀한 소를 잡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소보다 구하기 쉽고 가격도 싼 돼지머리를 올린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공무원연금지 2016년 6월호에서 옮겨온 글
첫댓글 『한 겨레 시향제』
仁堂 李載信
문중 좌상 제주 향 피워
단기 사천 삼백 사십 삼년 시월 상달
민족 한 겨레 선현 파 다 모셔
십 육대 손 오.吾 등은
시향제(時享祭) 봉행 합니다
함께 살던 계부
친모 후살이 간 데 따라가 섬긴 계부
달리 살던 계부
업에 득(得)하시어 온
위(爲) 아버지 세 분 긍긍 모시고
아버지 정실 적모
아버지 후취 계모
어머니 사후 길러 준 자모
아버지 첩 서모
젖 먹여 준 유모
개가한 어머니 가모
아버지에 쫒긴 출모
양가 어머니 양모
연(緣)에 정(定)하시어 온
위(爲) 어머니 여덟 분 삼가 모시어
친 서얼(庶孼)한 겨레 자손 모여
3부 8모상 칠천만 세손
다지는 한 문중 한 민족 얼
기려 잔 올려
시제에 세 번 배복 하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천만 세손들 싸우지나 마소.
3父 8母를 잘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돼지를 제물로 쓴 이유를 이제야 잘 알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글을 올린 나도 잊었는데
새삼 찾아 오셨네요.
저도 새로 배우고 갑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