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연재 소설입니다 1주일에 1번씬 연재 할께여 재밌게 봐주시고 많은 비평과 감상 부탁합니다.
Night Mare : 마계도시(魔界都市)
Epilogue
인류의 불안과는 달리 2000년은 새로운 희망으로 인류에게 다가
왔다.
하지만 화려한 새천년의 출발 분위기와는 달리 한국 속사정은
그리 밝지 만은 않았다.
제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는 달리 점점더 심해져
가는 과소비와 해외여행, 이상기후 현상, 그리고 나날이 늘어가는
엽기적인 살인사건들...
정부는 이러한 사태들에 대해 공식적인 위기감을 발표하고 이러
한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해 2001년을 대국민 새천년 위기극복의 해
로 선포하고 위기대책 구제반을 국회산하에 설치해 한국이 처한 위
기에 적극적인 대처 자세를 취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이듬해 2002년 월드컵도 일본과 함
께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성공리에 끝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엽기
적인 사건들은 해가 갈수록 발생률이 증가해 2004년에 와서는 거의
절정에 달했다. 2004년 3월 13일 국회의원 김돈만씨가 자택에서 온
몸이 전기톱으로 난도질 당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4개월
이 지나도 사건의 실마리조차 밝혀내지 못해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리고 8월 9일 지난번 사건과 똑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
건의 희생자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굴지의 건설회사
사장이였다. 그리고 다시 1개월 뒤 대구광역시 시장 문희열시장이
이제까지와 같이 살해 된 채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사태가 이쯤 되
자 여론도 이번 사건에 관심을 보이 시작했고, 단서 하나 잡지 못한
경찰은 무능하단 비판 속에 하루하루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
속에서 근무를 해야됐다. 다시 1개월 뒤 똑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1화
"제길, 도대체 어떤 미친새끼야!"
대구지방경찰서 강력2과 한승우형사는 열이 오를 대로 올라있었
다. 이번이 3번째 살인사건 이였다. 그것도 알아주는 재계인사만을
상대로 일어난 살인사건 이였기에 그렇지 않아도 상부의 압력이 심
한데 단서하나 못 찾고 있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벌써 수십번을 보았지만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어
떤 도구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온몸을 형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
로 난도질해놔서 좀 전 까지만 해도 인간이였단 사실이 도저히 믿
기지 않을 정도였다. 얼굴은 살점히 다 떨어져나가서 허연 뼈가
다 들여다보였고 사지는 원래의 자리가 아닌 방구석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거기다 사방이 시뻘건 피가 튀어서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
놓은 듯했다.
"어이 김형사. 그쪽은 어때 먼가 단서 될만한 것 좀 나왔어?"
옆에서는 동료 김형사가 방안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김형
사는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170정도의 키에 단단하게 균형잡힌 몸
매와 짧게 쳐올린 스포츠머리가 인상적인 형사로 한승우형사와는
벌써 3년째 콤비를 이루어 오고 있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라도
귀신 같이 단서를 찾아내기로 유명한 김형사도 이번 사건에서만은
몇 달이 지나도록 단서하나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야... 단서가 될만한 건 티끌하나도 없어. 보
통 이렇게 피바다가 되도록 출혈이 있었으면 핏물 위로 발자국 하
나정도는 있어야 되는데 날아서 살인을 했는지 그런게 전혀 없어
거기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찾아볼 수도 없고 아마 현장에 증거
물을 남겨둘 만큼 범인이 어리숙하진 않았겠지만. 뭐 재수 없는 시
장이 죽은거야 개인적으론 환영이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자
내나 나나 모가지 간수하기 힘들겠어."
평소에 별로 말이 없는 김형사가 말이 많은 것을 보니 답답하긴
마찬가지 인 듯했다. 할말을 다했는지 계속해서 시체를 살펴보던
김형사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신기한게 있단 말이야... 이 정도가 될 때까
지 당했다면 분명 격렬한 반항이 있었을 테고 주위에 헝클어진 상
태로 보아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이 분명한데 누구하나 살해당할 동
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가족들 증언을 들어봐도 비명소리
같은 것은 들은 적이 없다는 군 평소와 같이 아니 평소보다 더 조
용했다는 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않아?"
그때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은 끈을 넘어 왠 사내 한명과
무명 한복을 입은 꼬마아이가 둘에게 다가왔다. 사내는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키에 뒤로 검정색 양복을 입고 여자처럼 갸름하고 섬
세한 얼굴에 머리를 올백해 넘긴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같이 들어온 꼬마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청학동에서라도 왔는지
시대에 맞지 않는 무명 한복을 입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지 두 눈
이 꼭 감겨 있었다.
"이봐, 당신들 뭐야! 여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란 걸 몰
라! 도대체 어떤 새끼야 함부로 들여보낸 인간이!"
한승우는 그렇지 않아도 사건이 풀리지 않아 열 받아 있는데 허
락도 없이 웬 정체불명의 인간이 나타나자 뚜껑이 열려 버렸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이건 제 명함입니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한승우가 열을 내자 자신의 소개가 늦었다는
걸 알고 명함을 건네주었고 못마땅한 눈빛으로 건네 받은 명함을
쳐다보았다.
"위기대책 구재반 특수과 이세열..."
2001년 창설된 국회소속 특수과 위기대책 구재반.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이기관은 각계 최고의 인재들로만 모
아서 보통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처리하는 것으로 알
려져 있었다. 이 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특권과 권한을 지니고서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이세열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네 준 사내가 자기 소개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한승우
는 왜 이런 곳에 위기대책 구재반에서 나타났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악수를 했다. 혹시나 아직까지 단서하나 못 찾아내 문책하러 오지
않았나 눈치를 살폈지만 그런거 같진 않았다. 동료인 김형사도 어
떻게 된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으니 마음놓으십시오. 잠시 이곳 좀 살펴보
겠습니다."
이세열이란 사내는 이곳에 온 이율 간단히 설명하고 같이 온 꼬
마와 같이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승우는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눈
치였고 김형사는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바라면 보았다.
"이봐, 아직 중학생도 안된 듯한 꼬맹이한테 이런 꼴을 보여주면
어쩌겠다는 거야! 당신 정신이 있는 인간이야?"
곧 정신을 차린 한승우는 이런 곳에 어린아이를 대려온 이세열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버럭 성을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
지도 않은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세열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서서 담배만 피웠고 꼬마는 마치 앞이 보이기라도 하는지
방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세열형, 제 짐작이 맡았어요."
한참을 둘러보던 꼬마는 무언가를 확신했는지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세열은 꼬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한승우에게 다가갔다.
"다른 말은 전부 생략하고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한승우형사, 지
금 부로 이사건에서 손을 때고 다른 업무에 복귀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우리 특
수과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승우는 어이가 없는지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개월이나 자신이 전담해오던 사건을 이제와 듣도 보
도 못한 인간이 나타나 수사에서 손을 때라고 하니 속에서 욕지거
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인
내심을 내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려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사건에서 손을 때라니 갑자기
나타나 뜬금 없이 무슨 말 하는거요?"
김형사도 납득할 수 없는지 구석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
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손 때십시오. 할 말은
그것뿐입니다. 인수인계는 내일 서로 가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서도 없이 계속해서 사건에서 손때라는 말만 하자 한승우는 진
짜 머리끝까지 열이올라 이세열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당신이 위기대책반 소속이면 소속이지 뜬금 없이 수사에서 손떼
라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보통사람 같으면 덩치가 좋은 한승우에게 멱살을 잡히면 주눅들
기 마련인데 이세영이란 사람은 주눅들기는커녕 빙긋 웃어 보이더
니 그대로 한승우의 팔을 비틀어 버렸다. 한승우는 갑작스런 반격에
끽소리 못하고 팔이 꺽인체 이세열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
다.
"진정하시고 들으십시오. 이 사건은 당신들 힘으로는 절대 이 사
건을 해결 할 수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저희에게 맡기
고 다른 업무에 사건을 맡으시란 겁니다."
한승우는 정말 화나는걸 벗어나 이젠 미칠 것만 같았다. 힘이라면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인간에게
팔을 꺽인 것도 모잘라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때 나몰라라 주위만 살펴보던 꼬마가 다가와 세열의
옷을 끌어 당겼다.
"형, 벌써 시작한 것 같은데요..."
세열은 여전히 한승우의 팔을 꺽은채 고개를 돌려 꼬마가 가린
킨 곳을 쳐다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등장부터 지금까지 포커페이
스를 유지하던 세열도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한승우의 꺽은 팔을 풀
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이봐, 당신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여기서 도망치는 것이 좋을
거야..."
한승우는 뜬금 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 세열이 보고있는 곳을 쳐
다보았지만 그곳에는 자신의 파트너 김형사가 무슨 이유인지 쓰러
져 있을 뿐 별다를 것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죽는다니! 지금 장난치는 거야?!"
'쾅'
한승우가 소리치기가 무섭게 방문이 세차게 닫혔고 방안에는 이
유 모를 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제길 시작됐군..."
한승우는 갑작스런 사태에 어리둥절해 하고있었고 쓰러져있던 김
형사가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과 같은 사건현장을 살피던
매서운 눈이 아니라 초점 없이 맹하니 풀려버린 죽은사람과 같은
눈으로 변해있었다. 한승우와 이세열등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김형사는 돌연 온몸에서 살을 애는 듯한 냉기를 내뿜으며 일행을
덮쳤다.
김형사의 갑작스런 태도에 어리둥절해 하던 한승우는 김형사가
내두른 팔에 맞아 나가떨어지며 운이 없게도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고, 이세열과 꼬마 이런 사태가 올
것이라 미리 알고있었는지 날렵하게 김형사가 내두르는 팔을 피했
다.
이세열의 손에는 조금 전에 품속에서 꺼냈는지 약 50cm 됨직한
칼 비슷한 것이 들여있었다. 그 칼은 양끝이 4각뿔과 같이 다듬어져
있었고 중간의 손잡이 부분에는 금강역사의 얼굴이 세밀하게 세겨
져 있는 금강저²와 같은 모양이었으나 금강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고 자비로운 기운이 아니라 어둡고 음울한 기운이였다.
무섭게 변한 얼굴로 금강저를 들고 김형사에게 달려들려던 세열
을 꼬마가 옷자락을 잡으며 말리는 바람에 빈틈을 보인 세열은 김
형사가 휘두른 팔에 맞아 한승우와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다른 점
이라고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왜 말리는 거야! 진아, 이대로 있단 우리 모두 놈에게 당하게 된
다."
"형, 저분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예요. 그 명왕저로 저 아저씨를
친다면 영 뿐만이 아니라 저 아저씨까지 무사하지 못한다구요!"
김형사는 여전히 매섭게 팔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세열은 김형
사의 안위 때문에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해야 되
었다.
"진아,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냐? 이대로 가다간 우리모두 죽은목
숨이야!"
"조금만 더 참으세요 세열형."
꼬마는 김형사의 팔을 피하며 자신의 검지를 물어뜯어 김형사 주
위에 흩뿌렸다.
"생명이 없는 부정한 존재의 모든 행동을 금한다! 속박술(束縛
術)!!!"
꼬마가 외치자 김형사 주위에 뿌려졌던 피가 이상한 문자모양을
이루기 시작하다 이윽고 김형사의 몸을 감쌌다.
전신이 피로 그려진 문자로 감긴 김형사는 맹렬한 움직임이 순식
간에 멈춰버렸다.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김형사는 온몸을 부
들두를 떨기 시작하더니 세열과 꼬마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괴롭다...괴로워... 난...억울하다... 너희는 어째서 나의...복수를 막는
거냐...괴롭다 괴로워..."
괴롭단 말을 되풀이하던 김형사는 차츰 떨림이 줄더니 이윽고 정
지해 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쓰러져 버렸다.
피가 흐르는 검지를 꼭 쥐고 있던 꼬마는 김형사를 걱정스런 눈
으로 쳐다보았다.
"세열형, 이번 사건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아요..."
한승우는 복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몇 달이나 자신과 김형
사가 담담했던 사건인데 상부에선 말 한마디 없이 손을 때라고만
지시해왔고 파트너인 김형사는 전의 그 기괴한 사건이후에 의식불
명이 되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있었다. 더구나 이세열과 꼬마에
대해 아무리 수소문해 보아도 어떤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다.
"제길,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질 않는 거
야! 경찰데이타에도 나오지 않다니 내가 귀신이라도 본 것도 아니
고."
한참동안을 경찰데이타망에서 전에 그 두 사람에 대해 찾아보던
한승우는 아무리 찾아봐도 작은 정보조차 나오질 않자 열이 오를데
로 올라 있었다.
자포자기하고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고있을 때였다. 경찰서 문을
열고 낮익은 두사람이 들어왔다. 올백머리에 선그라스, 그리고 회백
색의 개량한복을 입은 이세열과 꼬마였다.
"너...너희들...!"
자기가 그토록 찾던 그 두사람이 뜻밖에도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전과 똑같은 뻔뻔한 모습으로. 얼빠진 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자 꼬마가 능청스럽게 싱글벙글 웃으며 다
가와 친한 척 인사를 건내었다.
"안녕하세요, 한승우아저씨!"
얼떨결에 한승우는 꼬마의 인사를 받았고 세열은 뒷문에 기대어
서류같은 것을 살펴보았다.
"한승우, 나이 29세 대구경찰학교 2001년 수석졸업... 경찰이 된
후로 표창장 5번 수상 다혈질에 정의감이 투철... 1남 2녀중 막내...
아버지가 대구지방경찰청장...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로 미래를 보장
받고 있었으나 왠일인지 1년전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스스로 가장
골때리는 강력2과로 지원... 대충 이정도면 다 조사한건가?"
이세열이 살펴보던 건 한승우의 신상명세서였다. 전에 있었던 일
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또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신
상명세서를 떠들어대자 뚜껑이 열려버린 한승우가 저번과 같이 세
열의 멱살을 잡았다.
"이봐! 네놈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남의 뒷조
사를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
한승우는 금방이라도 한 대 날려버릴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세열
은 상관없다는 듯이 예의 표정하나 변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얘
기만 계속이어 갔다.
"화내는 건 이해하겠지만, 지금 당신이 내 멱살을 잡고 있는 건
엄연한 하극상이라는 것을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최대한 협조를 해야 당신 파트너의 의식도 그만큼 빨리 돌아온다는
것도 말입니다."
"!!! 뭐..뭐야! 그렇다면 김형사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네놈들
과 상관 있단 말이야?"
"아, 뭐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저희 쪽이 정신이 돌아오게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김형사얘기가 나오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멱살을 풀고 책상으로
가 앉은 다음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래, 내게 무슨 볼일이 생겨서 찾아 온 거지? 설마 내 얼굴 보
려고 그 귀한 발걸음 하신 건 아닐 테고?"
"이제야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세열은 한승우가 끝까지 자리를 권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자기가
직접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고 한승우는 그저 담배만 피워대었다.
"한승우형사, 영혼에 대해 믿습니까? 아니 귀신의 존재를 믿습니
까?"
한승우는 세열의 물음에 어의가 없었다.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밥맛없는 얼굴에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천하에 제일 잘난 맛에 사
는 듯한 인간의 입에서 나온 제대로 된 대화의 첫마디가 우습지도
않게 귀신이라니 어의가 없어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봐, 당신 제정신이야? 뜬금 없이 귀신이라니? 구제대책반이란
곳이 귀신이라도 잡는 곳인가 보지?"
"맞았습니다! 알고있었군요. 그럼 대화하기가 더 쉬워 질 것 같군
요."
"역시 그렇... 뭐.. 뭐라구?"
"아... 알고계셨던게 아니군요... 그럼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
겠습니다."
세열은 창가에서 바깥구경에 여념이 없는 꼬마에게 나가있으라고
한 다음 한승우에게 위기대책 구제반의 업무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승우형사는 대구가 사방이 산으로 막힌 분지라는 것은 알고있
겠지요?"
"이봐! 내가 바본 줄 알아? 당신 말대로 난 경찰대학 수석이였다
구 그정도도 모를 것 같아!"
"알고 계셨군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왠지 한승우는 머리가 아파 왔다.
"대구는 분지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열기는 안으로 모이
고 밖으로는 분출되지 않아 타도시 보다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춥습니다. 그리고 영기(靈氣)도 그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들어오고
밖으로는 유출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기의 경우는 대구를 둘러
싸고 있는 여러 명산에 위치한 사찰과 불상, 탑들이 안으로 모인 영
기를 불러모아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동안
영기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백년을
유지해오던 영기의 균형도 침체한 대구경제를 다시 살릴 거라 믿었
던 월드컵으로 인해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뭐 꼭 월드컵하나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때문에 큰 구명이 생긴 건 사실이니
까요."
황당한 말들을 쉬지 않고 떠든 세열은 숨도 차지 않는지 여전히
감정 없는 표정으로 한승우를 쳐다보기만 할 뿐 이였고, 한승우는
과연 이 말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담배만 연신 피
워대었다.
"월드컵경기장을 만들기 위한 공사로 인해 주위의 여러 산의 산
맥이 끊기거나 사라져 버리고, 그 주의에 다시 신개발 붐이 일어 많
은 산들이 깍여 나갔습니다. 이때부터 대구의 영기의 균형이 급격히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더니 최근에 공식적인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대구의 대표적인 사찰의 불상인 갓바위와 약사대불이 의문의 단체
에 의해 파괴되면서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갓바위와 약사대불이 파괴되었다고? 그렇다면 어째서 언론매체
에서 떠들지도 않고 무엇보다 우리 경찰이 모른다니 그게 말이나
되?"
"얼마전 팔공산등 유명한 불상들이 있는 산들이 모두 폐쇄되었다
는 소식을 못들으셨나 보군요. 공식적으로는 오염된 자연환경 복구
를 위해서라고 발표되었지만..."
한승우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분명 얼마전 뉴스에서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쓰레기투기와 한경훼손으로 인해 일부의 이름있는 산들을
폐쇄한다는 뉴스보도가 있었지만 그 배경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순식간에 자신이 믿고있던 모든 관념이 날아가는
순간 이였다.
"훗, 정말 꿈같은 이야기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 그 말
을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얘기야?"
"불상이 파괴되었단 이야기는 직접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고, 귀
신에 관한 거라면 벌써 그 증거를 보셨을 텐데요?"
"증거라니?"
"얼마 전 김돈만의원 집에서의 일 잊으셨습니까? 그 때문에 당신
동료인 김형사도 의식불명의 상태인 걸로 아는데?"
확실히 김의원집에서의 의문의 일을 당한 이후 자신의 파트너인
김형사는 의식불명이 되었고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원인조차 못 찾
고 있었다. 세열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 나가있던 꼬마가 들어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고 있었고 세열은 꼬마를 보자
손짓으로 곁으로 오라는 신호를 했다.
"한승우형사 당신이 저희 쪽 부탁을 들어준다면 김형사의 의식이
돌아오도록 도와 드릴수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분명히 병원측에서도 김형사의 병명에 대해 원인조차 못 찾고 있
는 지금 세열의 말을 믿을 수밖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좋다! 그 전에 병원에서도 손도 못쓰는 김형사의 상태를 너희들
은 어떻게 치료한다는 것이지? 굿판이라도 벌릴 건가?"
"아, 그점에 대해서는 저와 같이 온 이꼬마가 설명해 줄 겁니다.
진아 설명해 드려라."
세열의 옆에 앉아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만 있던 꼬마가 순식간에
웃음을 그치고 세열과 같은 표정하나 없는 차갑고 진지만 모습으로
변했고 한승우는 그런 꼬마에게서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한승우아저씨는 빙의(憑依)에 대해서 알고계세요?"
"빙의? 그게 뭐지?"
"음, 무(巫)에 대해 전혀 상식이 없는 것 같으니까 알기 쉽게 설
명해 드릴께요. 빙의란 흔히 영이 인간에게 씌우는, 한마디로 인간
의 몸 속에 들어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등의 현상을 말해요. 주
로 서양의 짚시들이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일이나 우리나라의 무
당들이 점을 치거나 굿을 벌일 때 쓰는 술법이지요. 그런데 그 술법
이 영능력이 있는 사람의 제어에 의해 이루어지면 별문제가 없지만
영능력이 발달되지 않는 일반인에게 강력하고 사악한 기운을 가진
영이 억지로 침범하게 될 경우는 그렇게 되지 않아요. 사람의 몸속
에 들어가기 위해 영은 살아있는 자의 영혼을 공격하게 되고 영능
력이 없는 사람은 점점 그 영에 의해 침식되어 결국은 영혼이 일종
의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요. 그래서 김형사란 아저씨도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거구요. 이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몸을 뺏었던 영혼을
성불시키거나 소멸시켜서 가사상태에 빠진 영혼을 속박하고 있는
힘을 무효화시킬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제 좀 이해하시겠어요?"
"......대...대충은."
"뭐, 저도 아차피 전부 이해하리라고는 생각 안했으니까요. 세열
형 나 설명 다했으니 이제 나가봐도 되지요?"
설명을 다 끝낸 꼬마는 금새 싱글벙글거리는 표정으로 변해 밖으
로 뛰쳐나갔다.
"그래, 그럼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 거지"
한승우가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세열은 가지고 온 가방에
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그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시지지역의 2
년전 지도와 현재의 지도였다.
"이봐 이런걸 내게 보여줘서 어쩌겠다는 거야?"
세열은 지도의 붉은 줄 쳐진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부탁할 것은 이 붉은 표시 된 곳의 토지이전과 주민이동건
에 대해서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에 월드컵 기념공원의 설립
을 위해 어떤 불법적인 토지 뒷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요."
"그 정도라면 그쪽에서도 충분히 조사할 수 있을 텐데 어쪠서 나
한테 부탁하는 거지?"
분명 그 정도 일이라면 자신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구제대책반의
힘이라면 자신이 하는 것 보다 훨씬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을 터였
는데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이 왠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것까지 한승우씨게 말해 드릴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쳇, 어쩔 수 없군 일단 너희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 좋아 너
희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럼 조사를 끝낸 후 어디로 연락하면
되지?"
김형사를 위해선 이들 밖에 믿을 곳이 없다고 생각한 한승우는
어쩔 수 없이 세열이 제안을 받아 드렸다.
"1주일 뒤에 제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세열은 거래가 성립되자 1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꼬마와 함께 경찰서 밖으로 사라졌다. 한승우는 이번일이 원가 석연
치 않은 것을 느끼면서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다.
"세열형, 정말 저 아저씨를 끌어드릴 건가요? 제가 보기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꼬마는 어디서 났는지 큼지막한 막대사탕을 꺼내 빨면서 세열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세열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걸
음을 옮기기만 하다 자신만 들릴 정도의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 거
렸다.
"모든건 그분이 정하신 데로..."
세열이 다녀간 뒤로 벌써 3일이 지났다. 그가 부탁한데로 토지이
전과 명의이전, 토지소유에 대해 조사해봤지만 특별한 점은 찾지 못
했다. 월드컵 기념공원 설립을 위한 토지 확보를 위한 주민들 보상
은 똑바로 이루어 졌고, 동의서도 모두 갖춰져 있었다. 다만 딱 1집
만 소유주가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서류가 빠져있었지만 주민들
의 말을 들어보면 행방불명된 사람은 원래부터 워낙 괴팍하기로 소
문이 나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번번했고 항상 18살된 딸
애 한명이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고 했다.
토지이전을 위해 기관사람들이 몇 번이나 집을 방문했지만 집주
인을 만나지 못하자 시장이 직접 명령을 해 나중에 집주인이 나타
나면 보상을 해주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집의 소유주에 대해서 조사해 보니 소유주 김상인씨는 제
법 유명한 무속인으로 일년의 대부분을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신내림을 위해 명상을 한다고 했는데 2년전 명상을 위해 나간 이후
로 전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김상인씨의 딸도 그의 부친이 집을 나간
후 얼마 되지 않아 행방불명되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집을 나가버린
거라면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무리 조사해도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한 한승우는 잡다한 서류뭉
치를 책상 위에 내평겨쳐 버리고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제기랄, 난 할만큼 조사했으니 그 밥맛없는 자식도 할말없겠지.
그나저나 시장이나 김의원등도 안됐군 월드컵 기념공원 조성 성공
으로 자신들의 위치도 이제 국회에서도 무시 못할 위치가 됐을 텐
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다니...잠깐 그러고 보니..."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던져버린 서류뭉치를 황급히 뒤졌다. 주위
에서 한승우를 지켜보던 동료형사들은 그가 왜 저러는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그래, 이거야!"
한승우가 생각했던 데로 이번에 의문사를 당한 사람들 모두가 월
드컵 기념공원에 관련된 고위인사들 이였다. 먼가 단서를 잡은 그는
서류뭉치를 챙겨서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자신의 차에 올라탄 그는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
해 대구지방 건설부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얼마 안되는 친구중
에 한명인 도성호에게 향했다.
"왠 일이냐? 네 녀석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다하고."
한승우가 시간을 제대로 맞춰 연락을 했는지 친구 도성호는 점심
식사시간이여서 시간에 여유가 있었는지 한승우와 연락한곳에 곧바
로 나왔다.
알맞은 길이로 잘라 중간가름마를 타 자연스럽게 빗어 넘긴 도성
호는 편한 이웃같은 인상을 품기는게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었다. 그는 동창들 중에도 결혼을 일찍한 편이라 3살짜리
딸과 이제 10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어, 오랜만이다. 여기 앉아라."
한승우는 친구가 앉기도 전에 탁자 위에 서류뭉치를 꺼내 놓고
급하게 질문을 해댔다.
"야, 니가 월드컵 기념공원 담당 했었다는게 사실이냐?"
"자식, 그래 내가 담당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냐?"
멋젃은 듯이 머릴 긁적이다 하던 질문을 계속했다.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봐주라. 월드컵 기념공원 설립당시 토지
이전에 한가구가 동의를 안 했던데 어떻게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
냐? 원래대로라면 한 가구라도 동의를 하지 않는 경우 재산권침해
로 공사를 할 수 없거나 토지이전이 되지 않은 곳을 빼놓고 공사를
해야 되는 걸로 알고있는데."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냐? 뭐 분명히 네 녀석이 맡은 사건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맨입으로 안되겠고, 나중에 한잔 사
라."
"알았으니까, 어서 얘기해봐."
"분명 그렇긴 그렇지. 그런데 그 때는 좀 강압적인 방법으로 진행
하긴 했지."
강압적인 방법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 졌다. 잘만하면 자신이 원하
는 정보도 나올 것 같았다.
"그 강압적인 방법이 뭐지? 불법적인 일도 있었나?"
"뭐 불법적인 일이라기 보다는 월드컵 기념공원 설립 기념행사는
다가오는데 설립부지는 확보도 안됐지 며칠만 있으면 기념행사 참
관을 위해 위에서 높은분들이 내려오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기념행
사는 무산될 것은 물론이고 공원설립계획 자체가 날아갈게 불보듯
뻔했지. 그렇게 되면 분명히 다음 공천에서 불리해질거라 생각한 시
장과 그 측근들이 어떻게든 공사일까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직까
지 계약을 하지 못한 집에 대한 모든 책임들은 자신이 질테니 공사
일까지 어떻게든 공사를 착수해 별일 없도록 하라고 그러더군. 높은
사람들이 책임진다니 우린 그 말만 듣고 공사에 들어갔고. 뭐 잘못
된 거 있냐?"
"그런건 아니고. 그럼 그 측근이란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거 있
냐?"
"시장의 측근이 누군지 다 아는 얘긴데 넌 모르고 있었냐? 국회
의원 김돈만씨랑 상원건설 대표이사 박재길, 그리고 누구더라 맞다!
수성경찰서장 신필인씨였을걸."
먼가 한승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고 얘기를 듣다 말고 서류
뭉치를 급히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 나중에 내가 정말 거하게 한번 쏘마!"
이 한마디만 남기고 한승우는 쏜살 같이 사라졌고 도성호는 피식
웃으며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친구의 모습에서 옛 학창시절을 떠올
려 보았다.
"신필인서장님좀 부탁합니다. 한승우라고 말씀드리면 아실 겁니
다."
한승우은 친구 성호를 만난 뒤 급히 수성경찰서로 차를 몰고 있
었다. 그 밥맛없는 이세열의 부탁 때문만이 아니라 월드컵 기념공원
설립에서 먼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 이였다.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을 때 신필인서장과 연결이 되었다.
신필인서장은 아버지와 오랜 지인사이로 자신도 집안끼리 알고있
는 사이라 제법 안면이 있었기에 손쉽게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래 한군이 내게 왠 일로 연락을 다했지?"
전화기 넘어로 들리는 신필인서장의 목소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인정넘치고 호탕한 목소리였다. 항상 보수적이고 근엄했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분 이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신필인서장을 유난
히 따르기도 했었다.
"아저씨, 다름아니라 월드컵 기념공원에 관련된 것 좀 물어보려
합니다만. 시간 내주실수 있겠습니까?"
평소의 신필인서장이였다면 호탕하게 승낙했을 텐데 기념공원 얘
기 떄문인지 다소 망설이는 것 같다가 이윽고 승낙했다.
"알았네, 오늘 8시에 우리 집에서 보세. 아마 우리 유나도 자네를
보고 싶어하니까 우리 집이 좋을 것 같네만."
".....예. 알겠습니다. 그럼 8시에 뵙겠습니다."
신필인서장의 입에서 유나란 이름이 나오자 가슴한구석이 아파왔
다.
유나, 항상 자신을 보며 웃어주던 여자, 하얀색을 유난히도 좋아
하던 여자. 자신의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그녀였기에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집안에서도 둘이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약혼
식도 했고 얼마 후엔 결혼식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잠시동안 옛 생각에 빠져있던 한승우는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
꼈다. 생각해보니 요 몇칠동안 제대로 수면을 취해 본적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8시까진 아직 여유가 있구나. 오랜만에 집에가서 눈 좀 붙혀야겠
다.'
경찰서로 향하던 차를 돌려 지산동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집을 나온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왠만한 것은 거의 다 적응이
되는데 집에 들어설 때 마다 자신을 반기는 적막감과 고독감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30분 정도만에 도착했
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쓰러지듯 차에서 나와 자신의 오
피스텔로 향했다. 그 힘들다는 특전사에서 죽을만큼 심한 훈련을 받
았을 때도 지금처럼 심한 피로는 느낀적이 없었다.
비록 요 몇일간 김형사 일에다 사건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고
무리를 하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피로는 이해가 같지 않았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을 겨우겨우 뜬 체로 자신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누군가 흐느끼고 있었다.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기도 싫고 흐느
끼는 사람이 누군인지 알기도 싫었지만 그 흐느끼는 소리가 너무나
서글퍼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겨우 떠진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니 시간이 제법 지났는지 어두워
져있었다. 흐느끼는 소리는 자신의 방안 구석에서 들려왔는데 그 곳
은 원래부터 암흑의 공간이였는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오한이 몸전체를 덮을 때 분명 아무도 없던 구석에서 달빛보
다 차가운 푸른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뭐...뭐지?'
목이 막혔는지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가 안고 안에서만 맴돌기만
했다. 그 빛은 점점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다 이윽고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언 듯 보기에 대략 17-18세 정도 되어 보이는
단정한 용모의 여인처럼 보였다.
그 여인의 몸에선 푸른색 빛이 쉴새 없이 뿜어져 나왔는데 차갑
지만 먼가 슬픔이 느껴졌다. 이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보통이라면
겁이 나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감정보다는 정신이 점점 맑고
또렸해졌다.
'도와주세요...두와주세요...'
목소리가 아닌 머릿속으로 전해져 왔는데 계속해서 도와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전신에서 시퍼런 빛을 내뿜으며 도저히 살
아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여인이였지만 두려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분을..아버지를......아버지는......분노에......더 많은 죄를 짓기전
에....'
'아버지라니! 당신 아버지가 누구인데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여인은 그 한마디만 하고서 감쪽같
이 사라져버렸다. 여인이 사라지고 나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돼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예...한승우입니다."
"한형사, 김반장이다. 또 사건이 터졌어! 이번엔 상원건설 대표이
사 박재길씨가 별장에서 발견되었으니까 한시바삐 그쪽으로 가봐!"
"하지만 그 사건에선 손을 때라고..."
"상부에서 다시 자네에게 사건을 맏기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분명 그 밥맛없는 인간이 손을 쓴게 분명했지만 사건의 윤곽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이렇다 변명할 이유가 없어 곧바로 현장으로 향
했다.
"신필인서장님좀 부탁합니다."
"스...승우씨?
사건 때문에 신필인서장과의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린 신필인서장이 아닌 잘 알고 있던
목소리였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약혼자 유나였다.
"그래..잘 지냈니...?
"응...승우씨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먼저 말 꺼낸 것은 한승우였다.
"아버님한테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약속 못 지킬 것 같다고 말
씀드려 주겠니?"
"알았어...그리고...승아 일은 너무 신경쓰지마...그건 승우씨 아버지
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이미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유나는 전화가 끊긴 이후에도 한참
을 전화를 들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했었던 한승우의 옛 모습을 생
각하면서...
어느새 비가 질척질척 내리고 있었다. 목적지인 박재길씨의 별장
은 단양에 위치했기에 도착하려면 꽤 시간이 걸렸다.
사건의 진상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자신의 머리 속에 대충 윤곽이
잡혀가고 있어서 다음 번 희생자가 누가 될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더 확실한 심증을 얻어보려 친분이 있는 신필인서장과 약
속을 했는데 다음 희생자가 생겼고 예상처럼 그 희생자는 남아있는
두명 중 한명 이였다.
마지막희생자가 될 사람은 신필인서장이 확실했기에 마음이 조마
조마해졌다. 하지만 범인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만약 영(靈)
적인 존재라면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었다.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 밥맛없는 인간의 도움을 받는 것 이였지만 그와 만나기로 한날
은 아직 몇일 남았기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손도 써보
지 못할게 뻔했다.
"젠장, 큰일이군...정말 이대로 가다간 신필인서장님 마저 위험해
질텐데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단양에 도착해 약 30분정도 외곽지역으로 더 들어가자 박재길씨
의 별장이 있는 산에 도착했다. 이미 현지 경찰서에서나와 출입통제
를 시키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자들도 벌떼 같이 모여들어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쳐놓은 출입통제선을 지나 현장
에 도착해보니 비릿한 피내음이 맨 먼저 한승우를 환영했고 같은
경찰서의 김재원형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마중 나왔다.
"이제 도착하나 보군 한형사."
언제나 그랬듯 현장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이 난도질당해
형체도 몰라보게 변한데다가 사지는 물론 머리부분까지 원래의 자
리가 아닌 먼 구석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먼가 알아낸거라도 있어?"
"전과 같아. 지문은 물론 머리카락 한올도 나오지 않았어. 잘 듣
지 않는 칼로 수십 번을 내리친 것 같이 잘려진 부위는 너덜너덜
해져있는 것으로 보아 한번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고통을
주면서 죽이려 했던 것이 분명해. 처음에는 다리를 그 다음엔 손을
피해자는 끔직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혼신을 다
해 도망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피해자를 서서히 따라다니며 일
부러 날이 들지 않은 칼 비슷한 걸로 내려친 거지. 내 소견으론 범
인은 피해자에게 지독한 원한이 있거나 미친놈일게 분명해."
보통사람이라면 이장면을 보면 기절을 해버리거나 구역질을 할법
한 현장을 두 사람은 별다른 감정 없이 둘러보았다. 이제껏 보아왔
던 현장과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사건 때마다 느끼지만 사방에 튀어있는 시뻘건 피와 살점, 어디에
도 찾을 수 없는 범인의 흔적 이정도로 피범벅이 되었으면 날아다
니지 않는 이상 발자국을 남겨야만 했는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
는 점이 사건을 더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했다.
"그건 그렇고 김형사 상태는 어때? 아직도 그대로라며?"
"...... 혼자 고생했을 텐데 어디가서 요기라도 하고 오는 것이 어
때"
김재원형사는 마침 시장했던지 한승우에게 맞기고 때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갔다.
혼자 현장에 남은 한승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사건마다 그랬듯 현장어디에서도 침입흔적이나 증거물은 찾
아볼 수가 없었다.
2층으로까지 둘러보고 다시 박재길씨가 살해된 방으로 돌아왔다.
현장을 조사하던 사람들과 기자들은 언제 돌아갔는지 이미 사람들
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훗,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분위기 군..."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 할 때 방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
기 시작했다. 사방에 튀어있던 시뻘건 피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
데며 움직이며 한승우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모양은 꼭 뱀이 먹
이를 덮치기 위해 스물스물 기어오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에 왠만한
일에는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는 그도 소름이 돋았다.
하나둘씩 모여든 핏덩이들은 서서히 어떤 형상을 이루었다.
'나의 복수를 방해하지 마라.'
핏덩이가 모여서 이룬 형상은 글자로 변했다 다시 변화를 시작했
다. 이상한 건 정신은 분명 또렷했는데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가 없
었다. 멍하니 선체로 핏덩이가 변해가는 모습만 바라보기만 해야하
니 속이 타들어갔다.
이윽고 핏덩이는 완전한 형상을 갗추었다. 퀭하니 뚫린 두 눈, 피
로 이루어져 있기에 쉴새 없이 피가 뚝뚝 떨어졌다가 다시 몸으로
흡수되는데다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는 핏덩이는 약
170정도의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40대 중반의 남자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복수를 방해하려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머릿속으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원망과 분노 고통 같은 온갖 잡
념이 뒤섞여 있었는데 핏덩이의 인간이 뿜어내는 기운이 왠지 낯설
지가 않았다.
'그래! 그 시장집에서 변한 김형사가 내뿜던 기운과 똑같아!'
핏덩이 인간이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닿은 부분이 심한 악취를
내며 부식되었다. 한승우의 코앞까지 다다른 핏덩이 인간은 마치 웃
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죽어라!'
핏덩이 인간의 손에는 어느샌가 낫이 들려있었다. 한치의 망설임
도 없이 한승우의 목을 향해 낫이 날아들었고 이젠 꼼작없이 죽었
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작은 파공음(波空音)을 내며 2개의 수리검
이 날아와 낫을 든손에 박혔다. 그러자 한승우의 몸이 자유롭게 되
어 곧바로 입구로 몸을 날렸다. 핏덩이 인간이 손에 박힌 수리검을
뽑아 내동댕이치고 다시 한승우를 향하는 순간 창문을 깨며 2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창문을 깨며 들어온 2명을 확인하는 순간 한승우는 다시 한번 놀
랐다. 그 사람들이 다름아닌 그 밥맛없는 이세열과 더벅머리 꼬마였
기 때문이였다. 이세열의 손엔 명왕저가 들려있었고 여전히 밥맛없
는 무표정이었다. 그와 반해 꼬마는 전과 같은 회색빛 무명한복을
입고 한승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헤헷, 승우형! 또 만났네요. 혈면귀(血面鬼)라 제법 재밌겠네요."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마는 손까지 흔들어 보이며 빙긋
웃어 보였는데 그 모습이 워낙 능청스러워 한승우도 무심결에 손
흔들며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이 혈면귀를 더욱 화나게 했는지
이번엔 괴성까지 지르며 세열과 꼬마를 향해 낫을 휘둘러대며 달려
들었다.
"진아 잡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봐 당신은 걸리적거리지 말
고 어디구석에 찌그러져있어!"
세열은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로 휘둘러 대는 낫을 여유있게 피
하며 말을했다. 그 말에 한승우는 또다시 밥맛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무언가 한마디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분명 이 인간도 아닌
존재에게 자신이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얌전히 지켜보
는 수밖에 없었다.
"옴 바사라단도 훔! 뜻이 있는 자에게 금강역사의 힘을!"
진이 진언을 외우며 수인을 맺자 눈에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일 만
큼 세열의 동작이 빨라졌다.
동작이 빨라진 세열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낫을 피하며 혈면귀의
몸을 금강저로 찔러대었지만 피로 이루어진 몸은 순식간에 원상태
로 돌아갔다. 세열이 혈면귀를 상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진
이는 세열이 혈면귀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수인
을 맺으며 진언을 외웠다.
"니우마크 사만다 보다난 인드라야 소와카! 제선천이시여 부정한
존재에게 심판의 번개를!"
진언이 완성되자 진의 손에는 노란 번개가 바지직거리며 맺히기
시작했고 혈면귀는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진이를 향해 돌아서더니
귀청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늦었어 내가 더 빠르다구! 세열형 승우형 엎드려요! 받아라 뇌전
(雷電)!"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은 혈면귀를 향해 손을 뻗었고 손에서
방사된 번개가 바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혈면귀에게 날아갔다. 혈
면귀에게 뇌전이 명중되자 엄청난 빛이 방출되면서 폭음이 울려퍼
졌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장면을 보고있던 한승우는
폭발에 휩쓸려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얼마나 강하게 벽에 부딪
혔는지 온몸이 쑤시고 정신이 혼미한데다 강렬한 빛을 정면으로 본
탓인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의 폭발의 영향 때
문 이였는지 출입문은 완전히 걸래짝이 되어있었고 창문은 모든 유
리가 산산히 깨져있었다. 잠시 주위 상황에 놀라 멍하니 있던 한승
우는 그 괴물과 밥맛없는 인간이 생각났는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괴물은 폭발로 인해 사라졌는지 사라져있었고 세열과 진
은 나란히 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직 시력이 똑바로 돌아오
지 않아 침침해 보였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로 보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승우씨 거기 가만히 계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그 괴물이 아직 살아있기라도 하다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아도 괴물은 산산조각이 났는지 보이지 않고 반쯤
굳은 핏덩이만 널려있을 뿐 이였다.
"아직까지 주위를 감싸고 있는 이 살기를 못 느끼겠습니까? 진아
준비하고 있어라."
확실히 방안에는 알 수 없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형, 혈면귀의 힘이 만만치 않은데요...좀더 준비를 해왔더라면 좋
았을 텐데..."
항상 싱글벙글이던 진의 표정까지 굳어져 있는 걸로 봐선 거짓말
은 아닌 듯 했다. 제법 시력이 돌아오자 이번엔 구경만 할 수 없다
고 생각한 한승우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스르륵, 스르륵'
흩어져 있던 핏덩이가 스멀스멀 움직이며 한곳으로 뭉치기 시작
했다. 분명 이대로 두면 다시 그 끔직한 괴물로 변할 것이 분명했기
에 변하기 전에 끝장을 내보겠다고 생각한 한승우는 혈면귀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하지만 총알은 혈면귀를 관통해 바닥에 박힐 뿐 조
그만 타격도 주지 못하고 서서히 혈면귀는 인간의 현상을 갖춰갔다.
"바보 같은 짓 마십시오! 그런 것으로 타격을 줄 것 같습니까?"
한승우의 무모한 행동을 말리려는 순간 혈면귀는 인간의 모습으
로 변했다.
인간의 모습을 갖춘 혈면귀는 한승우에게 소리치는 세열에게서
빈틈을 발견하고는 왼손을 가슴을 향해 뻗었다. 혈면귀의 손은 날카
로운 송곳모양으로 변해 정확히 세열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고 미
처 대비를 못한 세열은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다. 옆에 있던 진이가
혈면귀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혈면귀에게서 떨어져 나온 듯한
핏덩이가 입을 막고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꼼짝할 수가 없다.
"위험해!"
혈면귀의 손이 세열의 가슴을 관통하려는 순간 혈면귀에게 마구
쏘아대던 한승우가 총을 내던지고 세열에게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한승우의 건장한 체구가 덮치는 바람에 넘어진 세열은 위기를 모면
할 수 있었지만 그를 대신해 한승우가 왼쪽어깨에 큰 상처를 입었
다.
한승우는 어깨가 관통당한는 큰 상처를 입었으면 서도 잽싸게 몸
을 굴려 혈면귀에게서 벗어났다.
"어이, 밥맛! 너 나에게 빗을 졌으니 나중에 2배로 갑으라구."
혈면귀에게서 제법 떨어지자 한승우는 여유있게 웃어 보이며 말
했지만 혈면귀에게 당한 왼쪽어깨가 온통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
세열은 한승우를 잠시 쳐다보더니 혈면귀의 공격을 피해 진이에
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 한승우는 밥맛없을 뿐만 아니라 재
수까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상처 입은 왼쪽어깨를 살펴보
았다.
혈면귀에게 당한 어깨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른 것처럼 관통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출혈이 심해 장시간 방치
해 두면 과다출혈로 인해 빈혈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 혈면귀의 공
격을 가까스로 피하며 와이셔츠를 찢어 대충 상처를 틀어막아 지혈
을 한 후 다시 권총을 집어들어 혈면귀를 조준했다.
진이도 세열의 도움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어 세열과 함께 뇌전으
로 공격을 했지만 많이 지쳤는지 아까 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듯한 세열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졌고
땀을 비오듯 흘려댔다.
"진아, 뇌전의 주문은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주문을 써라!"
"세열형, 이주위엔 물의기운이 워낙 강한데다가 지금은 비까지 와
서 불의기운이 실린 주문은 쓸 수 없어요 그렇다고 물의기운의 주
문을 쓰면 물의속성인 혈면귀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밖에 되질 않는
다구요!"
승우는 진의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세열의 표정으로 봐
선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세열등은 점점 지쳐
가는 것에 비해 혈면귀는 더욱더 매섭게 공격해대었고 처음에는 상
처하나 입지 않던 것이 여기저기에 상처가 늘어갔다.
승우에게 아무 힘도 없는 것을 눈치챈 혈면귀가 승우에겐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승우가 혈면귀를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에는 손
만 변형시켜 공격하더니 이제는 온몸을 송곳 같이 뾰족하게 변환시
켜 공격해대었다. 그 공격의 파괴력은 예상외로 강력해 부딪히는 곳
마다 부서져 나가거나 깊은 구멍이 생겼다.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 바탁! 생명이 없는 부정한
존재의 모든 행동을 금한다! 속박술!"
지난번 시장집에서와 같은 주문을 써보았지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지 공격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이도 당황했
는지 안색이 확 달라졌다.
"형,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제가 어떻게든 움직임을 막아
볼 테니 승우형이랑 도망쳐요."
"알겠다. 그럼 네가 좀 수고해라. 난 저 인간을 데리고 먼저 빠져
나갈 테니까."
세열은 혈면귀의 공격을 피하며 자신의 왼손 약지를 물어뜯어 피
를 내 명왕저에 묻혔다. 피를 먹은 명왕저는 진홍빛을 내며 진동을
했고 칼날이 점점 길어졌다.
"이봐, 내가 이걸 던지자마자 창문을 통해 도망쳐! 걸래짝이 되기
싫으면."
이윽고 칼날은 1m가까이 길어졌고 사방으로 진홍빛을 뿌려댔다.
"진아, 준비해라. 명부(冥府)를 다스리는 명왕(冥王)이시여 어둠을
꽤 뚫는 힘을 주소서!"
세열의 손을 떠난 명왕저는 진홍빛을 뿜어대며 혈면귀를 향해 날
아갔고 그떄를 맞춰 승우와 세열은 창문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
로 혈면귀의 울부짖는 소리와 진이의 진언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잠
시 후엔 눈이 멀어버릴 듯한 새한얀 빛만이 주위를 감쌌다.
새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어제
비온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하늘은 맑게 개여 있었다.
온몸이 천근만근 마냥 무거워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지만 상황
을 살펴야 했기에 겨우겨우 몸을 추스려 주위를 살폈다.
일어나 주윌 살펴보니 박재길씨의 별장과 좀 떨어진 개울이였다.
자신의 옆에는 밥맛없는 인간 이세열이 누어있었고 진이란 꼬마를
찾기 위해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혈면귀에게
당했던 어깨를 누가 치료해놨는지 천으로 메어져 이었다. 설마해서
세열을 쳐다봤지만 저 인간이 그럴리 만무하다 생각했다.
누가 치료했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생
각해보았다. 혈면귀와 싸우다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느낀 세열은
도망칠 것을 결심했고 그의 말대로 자신도 창문을 통해 도망쳤다.
가까스로 빠져 나오자마자 굉장한 빛과 함께 폭발소리가 들렸고 그
와 동시 정신을 잃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어제의 일을 어떻게든 정리해보려 할 때 멀
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 나타난 사람은 별장
에 홀로 남아 괴물을 상대하던 진이였다. 옷은 완전히 걸레가 되어
진이의 작은 몸에 겨우겨우 걸쳐져 있었고 몸 여기저기엔 크고 작
은 긁힌 상처와 불에 데인 자국이 있었다. 그 중에도 오른쪽 팔을
심하게 다쳤는지 축 늘어져 있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붙잡고 낑낑대
며 걸어왔다.
"헤헤, 둘 다 무사했네요."
진통이 꽤 심한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입만은 여전히 싱글벙글
이였다.
"상처가 심한거 같은데 괜찮니?"
"이정도야...으윽! 아무래도 아프네요."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진이는 억지로 웃어보였고 그런 진이의 모
습이 한승우는 귀엽게 느껴졌다.
"세열형은 완전히 뻗었네요. 형 저 대신 좀 깨워주실래요?"
"......저 인간은 저렇게 내버려두면 안되겠니?"
세열이라면 질색인 승우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고 그 순간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또 그 괴물이 나타난 줄 알고 뒤돌아보니 어느새
세열이 일어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으...역시 난 저 인간이 싫어!"
"저도 당신이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