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병이 없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모른다.
살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병으로 때때로 삶이 편치못하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은 죽지 못해 살며 슬퍼하고, 죽지도 못할 병에 걸린 사람은 친구처럼 더불어 살아야하니 딱하디 딱하다.
눈가가 씰룩이고 책을 볼라치면 눈이 가라 않는다.
늘 불편하니 잠 잘 때도 입을 앙 다물다보니 인상이 바뀌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뺨이 물결처럼 출렁대고 입술에는 작은 벌레가 기어가듯한다.
얼굴이 몸에 매달려있어도 아무 일이 없어서 무심하고 살 수 있지 허구한 날 알아 달라 얼굴 근육이 움직이니 때로는 이런 삶을 언제까지 살아야하나. 죽어서 생체가 동작 그만을 하여야 경련도 동작그만이라니.
누구나 피곤하고 신경 쓰면 눈가가 가볍게 떨린다.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멀쩡해지는 것이 생체의 변화이다. 안면 경련이 병이 된 것은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혈관의 탄력을 굳게 만든 탓이다, 풀지 못하고 쌓아둔 성격 탓이다. 산재보험을 청구한 들 이미 떠난 직장에서 들어 줄일 없고, 마치 낡은 자동차 손보듯 폐차를 시킬 수는 없기에 달래면서 살 수 밖에.
한의사는 가끔 침을 놓으면서도 자신없다하여 손들어 버리고, 어떤 종합 병원은 목줄기에다 주사약을 쏟아 부어 한두 시간 꼼짝 못하게 하여 놀래서 다시는 안 간다. 수술을 권하는 인터넷 정보도 보았지만은 뇌수술이라 겁이 난다. 뇌속의 혈관이 팽창하여 얼굴 신경을 압박하여 오는 전기적 장애이니 핏줄과 신경사이에 접촉금지 물질을 놓으면 좋아 진다하나 그것도 100%는 아니라니 수술도 못할 일이다. 나이가 중년을 넘어서면 수술보다도 주사치료쪽에 마음이 쏠린다.
한 대학 병원에서 보톡스 주사를 맞기 시작한지 3년 째 되간다.
처음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았다.
맞고 나서 1주일이 지나면 경련 증세가 상당히 줄어든다. 살맛이 날 정도로 내 몸통에 얼굴이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어딘지 좌우가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보톡스 주사를 맞은 부분은 40대이나 주사를 맞지 않은 부분은 제 나이니 절반의 진실, 절반의 거짓인 셈이다.
얼핏 지하철에서 잠이라도 들게 되면 보톡스를 맞은 눈은 떠지고 다른 쪽은 감기니 남들이 보면 섬뜻할 노릇이다.
의사에게 다른 쪽들 놓아달라고 하니 이 주사는 치료목적이니 미용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정하다시피 하여 주사를 성한 쪽 눈가에 두세 바늘 찔러 넣었다.
보톡스는 보험도 안 되는 처방이라서 주사액이 내 몸에 들어가는 만큼 나는 돈은 낸다.
한 번 주사에 30여만 원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두 달에 한 번씩, 그러다가 좀 참을 만하면 세 달에 한 번, 이번에는 일곱 달 만에 주사를 맞았다.
워낙은 여섯 달 만에 맞게 되었으나 병원의 전문의가 미국에 가는 바람에 한 달 늦게 맞게 되었다.
한 달이란 시간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물 흐르듯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안면이 실룩거리면서 보내는 시간은 쉽게 보내기에는 힘든 시간이다.
그래도 다행으로 경련은 계속 오지 않고 이따금 방아깨비가 잔잔한 호수 에 물장구치듯 왔다.
병원에서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일곱 달 만에 왔으니 증세가 조금씩 완화될 수도 있는 것인가요?”
“ 그러기 바라는 거지요.”
그 말뜻은 이 병은 결코 나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이러기에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 고한다.
얼마나 쉬우면서 지키기 어려운 말인가.
신경외과 병동의 안면 경련 치료 시간에는 중년들이 늘 가득이다.
삶이 힘들어도 웃으며 풀고 살 것을…….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이 병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생각하니 나는 웃어야 할 일에 과연 얼마나 웃었는지 셀 수 있을 지경이다.
괴로워도 웃고 살며 안면근육을 풀어놓아야 안면경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해준 사람이 없다.
이제라도 웃으며 살 일이다.
지구가 도는 일에도 웃고, 국회의원들이 잡혀가도 웃고, 세상이 힘들어도 웃을 일이다.
안면에 마사지를 하는 일이니 때로는 보톡스 주사보다 나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