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감옥에서 22년을 복역한 무기수였다.>
1985년 5월, 미국 L.A 코리아타운 나는 아내와 그 남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정도 취기가 오른 나는 옆구리의 권총을 확인 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Extra탄창에 일곱발의 총알을 더 채워넣었다. Extra 탄창 까지 합치면 모두 14발- 이만하면 그런대로 든든하였다.
나는 주차장으로 나가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털어 내기라도 하듯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불법체류자였던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나와 결혼으로 인하여 영주권을 취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 2개월 후 드디어 이민국으로 부터 아내의 영주권이 나왔다.
그러나 아내는 바로 다음 날 내가 직장에 간 사이에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가출해 버렸다.
그녀는 나를 이용하여 영주권을 얻기 위하여 사기결혼을 했던 것이다. 나는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나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다니..
나는변호사를 찾아가 결혼 무효소송을 제기 하였다.
이혼보다 결혼무효소송을 할 경우 아내의 영주권은 자동취소 되어 그녀는 추방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취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나를 용서 하지 않았다.
코리아타운에서 암약 하는 갱스터를 고용하여 나를 위협 했다. 결혼 무효소송을 취소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해결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기결혼에 협박까지?- 도저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다.
나도 권총을 구입했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것이 당시 내 심정 이었다.
그러나 나는 갱스터들과 맞설 만큼 조직이나 힘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나는 1년6개월간을 그들의 협박과 공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피해 다니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한국으로까지 피신 하지않으면 안 될 정도 가 되어 있었다. 아내가 3명의 갱들을 이끌고 나의 부모님의 아파트로 찾아왔다. 그녀는 옛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안녕하셨어요? 걔 어딨어요? 뭐요?! 한국 갔다고요?꼭 전하세요, 결혼무효소송 취소 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 생긴다고요, 아셨지요 !" 나는 한국에서 돌아와서 그 말을 듣고 내가 피 한다고 해서 해결 될일 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나는 찾아 가기로 했다,그러나 두려웠다, 술을 마셨다. 그리고 권총과 총탄을 확인했다. 식당에 있다고 했던가?
아내는 어느사내와 식사중이었다 사내가 앞을 막았다.
"당신, 누구야?"
"나 ? 저여자의 남편인데 당신은 누구야?
그러자 사내의손이 그의 허리춤으로 들어 가는것과 동시에 아내가 벌떡 일어나는것,
그리고 내가 권총을 뺴드는 시간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야 ! 웃기지마 어따대고 수작부려.!"
아내의 그 말은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유명한 유언이 되기도 하였다. 탕! 탕! 탕! 하고 세발의 총성이 울렸기 때문이다.
쓰러진 그녀의 머리에 두발의 총격을 더 했다.10초 전까지 나에게 웃기지 말라던 아내의 머리는 확인 사격으로 인하여 xx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의 정부의 머리가 xx 되는걸 보고 그대로 도주 해 버렸다.
나는 살인죄로 체포 되었다 검사와 변호사의 법정공방이 2년4개월간 계속된 끝에 결국 무기형으로 떨어졌다.
무기형이 선고되는 순간 나는 내 인생은 끝났다고 판단 하였다.
내가 사기결혼 당하고, 위협 받은것 다 감안 한다 해도 확인사격은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감기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감기약 <타이네놀>백개를 모았다.
그걸 다 털어 놓았지만 일주일만에 병원에서 퇴원하는걸로 자살은 실패했었다.
두번째 자살하기 위하여 목을 맬려는 순간 예수님을 봤다.
왜 나를믿지 못하고 나를 핍박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것이다.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면서 내삶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무기수들만 가는 4급감옥으로 배치되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무기수들만 들어가는 감옥에서 삶을 포기한 무기수들의 생지옥의 삶을 목격했다
죄수들간의 빈번한 살인,마약,성폭행 인종차별,그리고 사방이 꽉 막힌 장벽, 그런곳에서 내가 살아 남을수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온걸까?
내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을 가진순간 막혔던 하늘이 열려 있음을 봤기 때문이다.
위에 계신 그 분을 구주로 받아 들이는 순간 하늘이 열리며 소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살아났으며 나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떤 시련속에서도 나의 고백은 이어졌다.
할렐루야 ~!
1991년 미주 중앙일보에 나의감옥수기가 6개월간 연재되어 교포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확실한 연대는 기억이 안나지만 새 천년을 눈 앞에 둔 해였을 것이다. 우연히 안일권목사님의 신앙 수기를 읽었다.
안목사님의 신앙수기를 읽은후 나는 미국 감옥에서 한인 재소자들에게 복음사역을 하시는 C.O.R.Mission 의 큰사랑선교회를 운영하시는 김운년 목사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2007년 2월 석방 되기 불과 수 시간 전에 석방소식을 듣고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게된다.
김운년목사님은 나에게 세계 십자가선교회 안일권 목사님 을 소개 할 때 나는 전율을 느낀다.
약 십여년 전 그분의 신앙수기를 읽지 않았던가- 우연히 읽었다고 생각하던 안일권목사님의 신앙수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 였던 것이다.
2007년 2월 13일 인천공항에 도착 했을 때 어둔 잿빛의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22년만의 귀국이였지만 감회 라던가 하는 감정 따위는 없었다. 나를 마중 나왔던 Philip과 유**씨는 강원도로 간다고 하였다.
[강원도 산골까지...?]
Mini Van 은 나의 의구심과는 달리 빠르게 달렸다.
이 땅에서의 삶은 짧고 순간적인 것을 나는 지금 까지 어디를 목표로 달려 왔던가?
나는 의자에 깊숙히 몸을 담고 스스로에게 수 많은 질문을 던졌다. 다윗은 시편39편을 통해 주여- 내가 이 땅에서 보낼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게 하소서- 나는 잠시동안 이 곳에 있는것임을 알게 해 주소서 하며 통절한 기도를 하였다.
나는 차창에 눈을 거두고 버스 앞의자에 손을 모아 이 세상의 삶을 제대로 볼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하였다.
세계 십자가 선교회 성전에 들어가는 순간 가난하고 병들고 죄진자들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 계셨던 것이다.
내가 세계십자가선교회에 남아 [신앙훈련]을 받기로 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부터 신앙훈련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성경을 열심히 읽고,기도 만 해왔지 Q.T 가 뭔지도 몰랐었다.
나는 Q.T를 통해 성경을 내 중심대로 해석 하고 있었음을 깨 달을 수 있었으며 그 잘못된 성경지식,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아 나갔다.
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 안에 있는 죄 때문 이라는 걸 알았다.
또한 믿는자의 삶이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기 위한것 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교정 하므로 인해서 나의정체성과 가치관을 새롭게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의 모든 옛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고 내가 새로 태여 난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나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분의 본성이시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이라고 하셨다. 3박4일간의 [영성교육]때 였다. 참회의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다.
많은 갈등과 묵상을 하면서 결국 죽은 아내 에게 참회의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나는 감옥생활 22년동안 단 한번도 그 사람을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날 기미가 엿보이면 형이상학적 이상한 기도로 비켜 가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마음 한 구석에 꼭꼭 숨기고 하나님께 회개 할 일이 생기면 회개 하기 좋은것들만 골라서
[맞춤형회개]를 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성경을 내 중심대로 잘못 해석 했기 때문이다.
나는 참회의편지에서 그런것 까지 모두 고백하였다.
죄책감까지 묻어 버려야 햇던 회개 하지 않은 죄의 장애물, 나는 참회의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용서 해 주십시요, 하고 되 뇌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면...
그 다음날,저녁 안목사님의 안수기도와 통성기도 시간에 참회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어디서 그런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었을까?
성인 된 이 후 그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은 없었다.
아침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하나님께서 새 날을 주신것이다.
그리고, 4월6일 이 날을 내가 어찌 잊을까?
십여년전 안일권목사님의 신앙수기를 읽었는데 바로 그목사님으로 부터 [세례]를 받게 될 줄이야...
하나님의 그 멋진 계획에 놀라울 뿐이다. 전율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봄이 되었다 만물을 창조 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봄비를 주시고 계신다
여기저기 들녘에 봄나물 등 새 순이 돋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삶도 돋아 오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도 들려온다.
그 후 나는 서울로 와서 노숙자쉼터에서 숙식을 해결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번 무기수는 영원한 무기수인 내가 오늘의 모습으로 축복받고 하나님으로 부터
쓰임 받게 된것을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감사드린다.
이상은 저의 간증 입니다.
저는 노숙자 쉼터에서 신학 3학년에 편입하기 위하여 노력은 하고 있지만
27년만에 귀국하여 모든것에 생소하고 재정적으로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교도소에 있는 한인재소자들, 특히 한인무기수들에게 문서사역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각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에게 문서사역을 하고 있고,
매주목요일 마다 시립동부병원과 성북경찰서,
그리고 화요일은 종암경찰서와 강북경찰서 유치장을 방문하여 선교활동을 합니다.
여러분이 도와 주시는 후원금은 영혼을 잃은 그 분들에게 복음전파를 위해
쓰이고 저의 신학공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저에게 연락 주실분은 010-2932-2504
혹은 저의 감옥신앙수기 블러그 http://blog.daum.net/leeborn777
첫댓글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