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순도호수!
국내에서 숱하게 야영을 했어도 히말라야는 다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와서 보니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스태프들 덕분에 더 수월하고 편했다. 고소적응만 잘하면 그외의 것들은 국내 산행 경험으로도 충분했다.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불안했다. 바갈라 라Bagala La(5,169m)를 넘어야 하는데 눈이라도 내리면 낭패였다. 혹시나 해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챙기고 내복도 꺼내 입었다. 삼덴을 따라 차분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코앞에 고개가 있었다. 하지만 구름에 덮인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다니. 아쉬웠지만 정상에 오래 머물기엔 날씨가 좋지 않았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구름이 걷히자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초원이 드러났다. 야크 카르카Yak Kharka(3,860m)였다. 누군가 일부러 그어 놓은 듯한 줄무늬 바위.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야크들. 신선이 산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드물게 멋진 자리였다.
낯선 곳을 걷다 초르텐(불탑)을 만나면 반가움부터 앞섰다.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링모Lingmo(3,640m)마을의 폭순도호수Phoksundo Lake(3,600m)는 수심 650m로 네팔에서 가장 깊다. 물이 너무 차 물고기가 살지 않는 호수. 한 번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모르고 왔어도 알고 싶어지는 곳. 호수는 놀랍도록 맑았다. 파란색 잉크를 통째로 부어 놓은 듯 짙고 깊었다. 모르긴 몰라도 네팔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 생각했다.
링모마을에서 폭순도호수는 10분 거리였다.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지만, 대개는 호수 옆에서 야영하며 하루 쉬어간다. 우리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텐트를 쳤다. 눈부시도록 쨍한 날이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빨랫감을 들고 호수로 내려갔다. 호수 맞은편에서는 군인들이 단체로 목욕하고 있었다. 나는 호수 가장자리에 발을 담그고 그간 밀린 빨래를 했다. 오랜만에 머리도 감았다.
폭순도호수 오른편에는 타숭초링곰파Thasung Tsholing Gompa(사원)가 있다. 500년 전 사냥꾼들의 무자비한 살생을 막기 위해 승려들이 세운 곰파다. 호수에서 휴식하는 날 가볍게 다녀오기 좋다. 호수 왼편으로는 좁고 아슬아슬한 절벽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 전망대에서 호수의 절반과 마을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진행하면 호수의 나머지 절반과 함께 호수의 끝을 만나게 된다.
호수를 기준으로 아래는 하돌포, 위는 상돌포다. 상돌포는 하돌포와 별도로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비용이 네팔에서 가장 비싸다. 전 일정 야영이 필요한 곳이라 경비 또한 만만치 않다. 5,000m 넘는 고개를 자주 넘는 통에 체력적인 부담도 크다. 반면 하돌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허가 비용에, 비교적 짧은 일정으로도 돌포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폭순도호수에서 하산하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다. 울창한 숲과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이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팔각정에서 장쾌한 폭순도폭포를 감상하고 내려서면 마을이 지척이다.
하산은 이틀이면 되지만, 폭순도호수에 대한 잔상이 오래 남는다. 이쯤 되면 상돌포가 궁금해질 터. 돌포는 그런 곳이다(필자는 폭순도호수를 지나 상돌포-무스탕까지 한 달 가까이 진행했다).
해발 5,169m의 바갈라 라를 넘어 만난 야크 카르카. 신선이 산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드물게 멋진 자리였다.
트레킹 정보
* 하돌포 트레킹 코스 : 두나이(2,140m) ~ 타라코트 ~ 나와르빠니(3,545m) ~ 도타랍(3,910m) ~ 누말라 라(5,309m) ~ 바갈라 라(5,169m) ~ 야크 카르카(3,860m) ~ 폭순도호수(3,600m) ~ 쳅까(2,720m) ~ 주팔(2,475m)
* 돌포의 공식 명칭은 돌파Dolpa지만 현지인들은 돌포라 부른다. 네팔 북서쪽, 다울라기리 뒤편에 있는 지역으로 티베트 불교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 돌포는 비그늘Rain Shadow(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곳) 지역이라 우기에도 트레킹이 가능하다. 적기는 8~9월.
* 하돌포, 상돌포 모두 특별 허가(2인 이상)를 받아야 하고 가이드 동행이 필수다.
* 트레킹은 약 130km에 11~13일이지만 비행기와 차량 이동 시간을 포함해 20일 정도 필요하다.
* 전 일정 야영으로 진행한다.
폭순도호수 옆에서 야영하는 사람들. 돌포 트레킹을 하는 팀은 대개 호수 옆에서 하루 쉬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