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때 대표팀 사령탑으로 한국 축구의
4강행을 이끈 박종환(82) 여주세종FC(K3리그) 총감독이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 대표팀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준우승 선전에 대해 감격해 했다.
정정용(50)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16일 오전(이하 한국 시각) 폴란드 우치의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대회 결승전에서 1-3으로 졌지만,
한국 남자축구 FIFA 주관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하는 역사를 쓰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강인(18ㆍ발렌시아)은 대회 7경기에서 2골 4도움으로 활약하면서
골든볼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 남자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을 받은 것은
이강인이 처음이다.
박 감독은 본지와 통화에서 36년 만에 위대한 신화를 일궈낸 대표팀에 찬사를 보내며
한국 축구의 꾸준한 발전을 기원했다. 박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대표팀에 보내는
축하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자랑스러운 U-20 태극전사들에게.
박종환 감독입니다. 선수단에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합니다.
결승 무대를 밟은 것 자체 만으로 우승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대회 기간 갖고 있는 실력을
한껏 발휘하면서 잘 싸워준 것 같아 고맙습니다.
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겨봤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한마디로 ‘겁 없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두루 잘했습니다.
공을 가진 선수가 지체하지 않고 잘 내줬습니다. 공을 잘 다루기도 했고
적절한 때 패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인 운영과 조직력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명이 움직이면 전체 대형이 파도가 일듯 움직이더군요.
그 만큼 조직력이 좋았습니다.
‘막내’ 이강인 선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이가 어리지만,
겁 없는 플레이를 해 인상 깊게 봤습니다. 이강인 같은 선수가 2~3명만 더 있으면
한국 축구는 더 큰 일을 낼 것 같더군요. 많이 뛰는 데다, 축구 지능이
특히 좋아 보였습니다. 공을 갖고 기술을 펼쳐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알고 있더라고요. 공을 건네줄 땐 확실히 내주고 2 대 1 플레이를 할 땐
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손흥민(27ㆍ토트넘 홋스퍼) 선수처럼 대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59)도 키가 167cm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됐지요.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173cm이지만 이강인 선수가
마라도나 같은 선수가 되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에콰도르와 4강전(1-0 승)에서 최준(20ㆍ연세대)에게 찔러주는 패스는 특히 놀라웠어요.
공간패스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보통 그 상황에선 공을 띄워주는데
이강인 선수는 킥하는 척 하다가 공을 낮게 깔아서 건넸어요.
굉장히 지능적인 플레이라고밖에 생각을 할 수 없네요.
물론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도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정 감독은 묵묵히 자기 생각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선수들이 불편해할 만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입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선수들도 대회 기간 동요 없이 묵묵히 따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정 감독의 지도 방식이 대표팀의 선전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저도 감독 생활을 50여 년 하고 있지만, 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사실 축구 여건도 제가 청소년 축구 대표팀 감독을 지낼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좋아졌습니다. 1983년 대회는 고산지대인 멕시코에서 열렸어요.
멕시코시티에서도 해발 3000m는 더 높은 고산지대에서 예선전이 열린다는 말을
당시 대회 20일 정도 전에 들었습니다. ‘어지간한 훈련 수준으론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수들이 고산지대에서 잘 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강도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오전 훈련 때 마스크를 챙겨오라고 했어요.
외부에선 감독이 선수들을 죽인다며 비판이 일었지만, 대회 장소가 고산지대인 만큼
이런 훈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시도를 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선수들은 숨이 가빠 2~3분도 뛰기 어려워했어요.
일주일간 적응을 하니 5분 정도를 뛸 수 있게 됐고 멕시코로 떠날 땐 30분 정도를
뛸 수 있게 됐어요.
이후 마스크를 벗게 했지요. 그러니깐 선수들이 펄펄 날더라고요.
그때 만해도 선수들은 개인 기술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로지 전술과 적응 훈련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렸습니다.
선수들이 받아 들이기 힘들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했습니다.
덕분에 4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외부에선 출전을 포기하자는
말도 오갔습니다. 하지만 ‘배울 기회가 왔는데 그런 곳에라도 가서 꼭 배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대회에 나섰습니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지요.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연령별 대표팀을 막론하고 정정용호가 보여준
헌신의 자세를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A대표팀 선수들도 다들 능력 있는 선수들입니다.
해외파 선수들도 많고요. 그러나 개인 기술 보단 팀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는
생각이 우선 돼야 합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서로 돕는다는 자세를
갖고 있을 때 한국 축구는 이번처럼 세계를 내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박종환 감독이었는데 이후 성인 축구에선 아쉬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축구에 관심이 많아 군복무중에도 포대대항 게임하면 선수로 뛰었지만 실력이 없어 풀백만 본 기억이 납니다.
전역후 직장생활중에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서울시청 게임이 있으면 서울운동장과 효창운동장에 가서 축구경기를 관전한 생각도 납니다. 특히 1983년 청소년세계축구대회에서 4강에 오르기까지 중요게임때면 회사에서 업무중지하고
게임중계를 보던일이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