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주인인 김주덕 씨는 한라산 중턱에서 감귤을 비롯해 이것저것 농사를 지으면서 ‘청재설헌’이라는
B&B(Bed&Breakfast)를 운영하는 ‘제주사람’이다.
제주에 정착한지 20여 년, 선대부터 대대로 제주에 살아왔고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그는 제주에 더 많은 사랑을
지니고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집은 그런 김주덕 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몇해 전 세상을 뜬 남편의 노력과 자신의 정성,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려 했던 꿈이 그대로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산 좋아하는 농사꾼’이었던 남편은 생전에 나이 들면 한라산 중턱에 작고 아담한 B&B를 짓고 자연은 물론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좋은 친구가 되어서 살자고 아내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난 후 다른 생각 모두 접고 이 집을 완성했지요.
남편과의 인연을 간직하고 싶어서 그이가 생전에 만들어 놓은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 나머지 객실들을 지었답니다.
집은 물론 정원과 뜰, 계단에 이르기까지 제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어요.”
말 그대로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시도 허투르게 보내지 않는 주인의 손이 닿는 곳은 집과 마당, 비닐하우스와 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에 이르기까지 끝간 데가 없는 듯 보였다.
안채는 김주덕 씨와 딸 빈이가 기거하는 공간인데 너른 거실 겸 마루에서는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한다. 계단을 오르면
남북으로 길게 한 채, 동서로 길게 한 채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남북으로 길게 난 건물은 객실인데 침대를 놓아둔 양실 세 곳과 7평형 한실이다. 동서로 뻗은 건물에는 10평짜리 한실
객실과 작고 아담한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김주덕 씨는 새벽 5시면 일어나 투숙객들과 함께 먹을 아침상을
마련한다. 직접 기르는 산나물, 약초와 지난해 잘 갈무리해둔 각종 밑반찬을 위주로 담박한 식사를 준비한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과 정갈한 반찬을 도자기 그릇에 담아 차려 내는 아침상을 보면 도시에 살며 아침 거르기를 일상화해온
사람이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자를 잡아당겨 식탁 앞에 앉게 된다.
“저는 한 지붕 한솥밥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누구랑 친해지려면 우선 함께 밥을 먹어요. 한 끼라도 같이 먹으면 가족이
될 수 있죠.”
주방은 그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장소이다. 조용하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척척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사람도 섣불리 돕는다고 마을 꺼낼 수 없을 정도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조금만 늦어도 방을
못 구하는 것은 주인의 깔끔하고 푸근한 인정과 솜씨 때문이다.
침구는 늘 보송보송하게 정리되어 있고, 손수 만든 퀼트 작품으로 객실을 꾸몄으며, 차 한잔을 마셔도 운치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어디 하나 손 안간 곳이 없다. 방마다 딸려 있는 작은 테라스는 따스한 봄 햇살을 쬐기에 적당하다.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불편한 신발을 벗고 다니라는 뜻에서 방마다 고무신을 비치해두었는데, 5일장에서 사오는 이 고무신이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팔면 안 되겠냐’고 조르는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것으로 평생 먹고사는데, 20년간 살림하면서 배우고 익힌 것으로 무엇인들 못하겠어요?
음식하기, 바느질, 퀼트, 원예, 애완동물 돌보기... 살림을 하다 보면 열두 가지 재주가 필요하고, 그 열두 가지
재주를 익히게 되죠. 그런 것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는 재미에 몸 힘든 것도 모를 때가 많아요.”
청재설헌을 찾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대신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훨씬 좋아한다. 주변 분위기가
그런 편안한 휴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1.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루어진 넓은
뒷마당에는 각종 허브를 심어두어서 투숙객들이 좋아하는 허브를 따다가 직접 차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2. 역시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놓은 기둥과 벽면이 안채와 별채, 미술관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3.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청정한 채소와 각종 산나물을 직접 재배해 손님들을 위한 아침상을
마련하는 김주덕 씨. 음식솜씨가 워낙 빼어나 요리 비결을 묻는 사람들이 꽤 많다.
4. 청재설헌에서 특히 인기가 좋은 한실. 유리창으로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밖으로 작은 연못이
보이는데다가 방에는 단정한 다구가 갖추어져 있다.
5. 실용적이고 깔끔한 양실, 벽에 걸어놓은 퀼트 역시 주인이 직접 만든 '작품'이다.
6. 밖이 시원하게 비쳐 보인다는 특징에, 남편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인 다비치 리. 이 작은
미술관은 주인은 물론 이 일대 사람들이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
이곳의 작은 갤러리 ‘다비치 리’에서는 일년에 네 번 정기 전시회가 열리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도 늘 그림이 걸려 있다.
문화 공간이 부족한 서귀포인지라 좋은 모임이나 작은 행사가 있으면 이곳을 선뜻 내어주기도 한다. 다도 강좌나 시인,
소설가, 도예가들을 초빙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감상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다른 한편에는 이 집의 먹거리 대부분을 공급해주는 온실이 있다. 동백, 철쭉, 산국, 쑥부쟁이 등 온갖 꽃이 사철
번갈아가며 피고 지는 통에 지루할 틈도 없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을 구경하고 작은 갤러리에서 그림을 둘러보았으면 좁은 자갈길을 따라 걸어가 다실에 들러볼 일이다.
직접 차를 달여 마시고 먹은 만큼 돈을 내고 가면 된다.
그 동안 김주덕 씨가 모아온 각종 아기자기한 소장품과 도자기가 놓여 있어서 차 한잔 마시며 천천히 구경하는 재미로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서울에 있는 김주덕 씨의 아들은 가끔 제주도 집에 내려올 때마다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과이렇게 상관없는 곳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고 농담처럼 말한다고 한다.
1.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와 산나물로
차리는 청재설헌의 식사. 도시에서는 아침을 거르던 사람도 맑은 공기와 깨끗한 주변 환경에 이끌려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곤 한다.
2. 다실은 인근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벽면에 선반을 달아 평소 좋아하는 각종
차와 다구를 보기 좋게 전시해두었다. 원하는 만큼 차를 마시고 적절한 값을 작은 바구니에 알아서 넣고 가면
된다.
3. 다실에 전시해둔 옛날 참빗과 소품은 김주덕씨의 수집품이다. |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 번잡한 일상생활과는 이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재설헌을 더욱 반기는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습관처럼 집어들던 텔레비전 리모컨을 내려놓은 채 옆방에 묵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여름이면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2박3일, 3박4일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청재설헌의 홈페이지를 통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물론 여기에는 주인의 세심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방이 없으면 다른 B&B를 알려주는 것은
기본이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이곳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정보를 전해주는 것은 물론 메일을 통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친분을 이어간다.
사람들은 제주를 생각할 때 맑고 깨끗하고 푸른 바다를 떠올린다.
여행을 가서도, 별장을 지으려 할 때에도 입버릇처럼 ‘바다가 보이는 곳’을 주문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어디든지 20여 분만 달려가면 바로 바다라고, 그러니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 짐을 풀고 쉬다가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된다고 김주덕 씨는 귀띔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청재설헌에 잠시 머물면서 조금씩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인적 드문 산 속에서 제주의 꽃과 새와 더불어 마음 편히 쉬다가, 잠시 달려나가 바닷바람을 쐬고 들어와 옆방에 머무는
사람들과 나누는 가벼운 눈인사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문의 064-732-2020, www.bnbhouse.com
글 김은령 기자 ┃사진 양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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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두 가봤는데^^ 오래전에 가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거리는데요..음.밥이 맛있었구요..시설도 좋았구.그런데 시내랑 조금 먼곳에 있었던거 같아요.제 생각에는 조용하게 보내실분이나..은밀한 밀월을 약속하신 분들이 방문하시면 좋으실듯해요^^ 가족들도 오붓하게 가시면 좋으실꺼 같고..부모님들도 뫼시고 가시면 좋으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