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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월31일(금)은 내가 요양보호사로 강 어르신을 마지막으로 섬긴 날입니다. 8월 한달에 21일째 찾아뵌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21개월을 찾아뵈었던 것처럼, 강 어르신께 마음이 슬프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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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6일(월) 센터에 8월까지만 근무할 수 밖에 없음을 알리었고, 센터에서는 9월부터 나를 대신하여 근무하실 분을 강 어르신께 소개시켜 드리기 위해, 29일(목)에 방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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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어르신과 할머님께서는, 내가 급히 그만 두게 되는 일로 인해, 얼굴이 급히 어두워지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죄송했고, 두 분께 무슨 말씀을 어찌 드려야 할지 ...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내가 <두 분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오해하실까... 염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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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의 강 어르신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나는 <글>로 묻거나 답변을 하고, 어르신은 글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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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서 다녀간 후,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나는 어르신께 "청소하고 올께요"라고 글로 말씀드린 후, 방밖으로 나갔습니다. 잠깐 잠깐씩 어르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잠시 후 다시보니, 무슨 글을 적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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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에 많은 도움과 사랑을 많이 받아서, 섭섭합니다.
언제 다시 만날 때까지, 많은 수고에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무식한 나이 많은 ○○이가 선생님에게 신체 건강을 빕니다.
중국, 북한, 한국을 다니면서, 선생같은 분은 세상에 처음입니다.
부디, 안녕"
이 작별인사의 글을 읽으니,
저절로 강 어르신을 안아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어제는 강 어르신 댁을 찾아뵙기 전부터 마음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강 어르신께서 떡복이를 좋아하시기에, 먹을 것을 조금 사갔지만, 강 어르신도, 할머님도 그리 잘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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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너무나 감사했다"라는 말씀...
"내가 88년 살면서, 윤 선생님은 내가 만난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부담스러운 말씀만 반복하시고...
.마지막 날인 오늘은, 어제처럼 어색하지 않으려고, 마음 준비부터 단단히 했지만, 별 좋은 방안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 어르신이 스스로 못하실 일들을 더 많이 해 둘까?
- 아니면, 어르신과 더 많이 이야기 해드릴까?
- 며칠 동안 발 때문에 산책을 못하셨는데, 산책을 다시 나갈까?
지하철로 가는 동안, 이리저리 생각했지만, 잘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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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 어르신은 지난 주에 발/엄지 발가락을 다치셔서, 많이 부은 상태입니다. 며칠은 한의원을 다녔고, 그후로 내가 매일 얼음 찜질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모아둔 소주병 14개와, 캔 한 봉지가 마당에 있었습니다. 어르신께 얼음 찜질을 마친 후에, 빈병과 캔을 팔러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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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고물상 가서 <캔>을 팔고
- 우리 마트에 가서 <빈병>을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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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르신께서 발이 아프니, 내가 가서 팔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트는 돈으로 주지 않고, 물건으로 주니, 그 돈으로 맥주 한 캔을 사달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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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강 어르신께서 모아둔 빈병과 캔 한 봉지를 들고, <고물상>과 <우리 마트>를 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어르신을 훨체어로 모시고 함께 갔지만, 오늘은 나 혼자 갔습니다.
(2) 강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힘들고 거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차상위층>으로, 수급자로, 국가의 도움으로 살아가십니다. 3/4 지하의 작은 집에서 살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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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켜 본 강 어르신은 상당히 총명하시고, 다양한 손재주와 기술을 갖고 계시고, 한자 글씨체도 참 멋지십니다. 다섯 딸과 아들 하나를 길러내시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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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강 어르신을 통해,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3) 고물상에 가니, <소주병> 빈병은 하나에 80원, 그리고 <캔>은 1kg에 1000원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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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병 빈병 하나에 80원!
* 캔 1kg에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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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 어르신이 아니면, 이 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단지 가난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캔을 모아서, 푼돈을 겨우 얻는 것으로 밖에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4) 소주병과 캔을 다 팔고 나니, 2100원이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강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를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5) 나는 강 어르신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지금 내가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분들에게, 곧 내 삶에 매우 가까이에 있음을 뒤늦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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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병 빈명 하나가 80원인 세계
* 캔 1kg에 1000원인 세계
- 그렇게 소주병과 캔을 사는 <고물상>과 <마트>가
- 내가 사는 동네에 있고,
- 그렇게 경제적 수입을 얻는 이웃이
- 내게 가까이에 있는데
.... 나는 그러한 세계를 미처 알지 못했었습니다.
(6) 이제는 길을 가다가, <소주병> 빈병을 보면, 80원이 떠오를 것 같고, <캔>을 보면, 1kg에 1000원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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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소주병과 캔을 주워가시는 어르신을 보면, 그 어르신들이 나의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강 어르신을 통해, 이제 나도 새로운 세계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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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트>에 가서, 강 어르신을 위해 맥주 한 캔과 안주(오징어)를 샀습니다. 할머니를 위해서는 음료수와 과자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커피 한 캔을 샀습니다.
(1) 함께 먹었습니다.
강 어르신 & 할머님과 함께....
이 시간이 좋았고, 아까웠고, ... , 또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2) 함께 먹은 후에, 함께 민화투를 쳤습니다.
나는 민화투조차 하지 못하기에 민화투를 좋아하시는 할머님께 배우면서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점수계산을 너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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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근무시간이 끝나는 12시가 다가오자,
- 민화투도 끝나고,
- 강 어르신 댁을 섬기는 일도 끝나고
- 나의 요양보호사도 마치게 되었습니다.
(4) 할머님께서 떠나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 꼭 다시 오세요. 놀러 오세요.
- 빈손으로 오세요.
* 지하계단을 올라가, 떠나는데,
- 할머님께서 맨발로 나오셔서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5) 강 어르신의 마지막 말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윤 선생님! 잊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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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어르신 & 할머님!! 저도 당신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당신들을 통해서, 내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너무나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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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디에 우선적 관심을 두고 계시며, 누구에게 우선적 마음을 쏟으시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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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복음은 교리적이거나 관념적이어서는 안되며, 기독교 복음의 참 가치는 올바른 삶 속에 담겨질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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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 죄송하고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 더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 더 곁에 있어 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셔서
- 오히려 더욱 미안합니다.
첫댓글 꼭 놀러 오세요~~
이 한마디가 참으로 슬프게 들리네요ㅜ
올바른 삶....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요...눈물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