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iction of the Cardinal's musketeers, the great rivals of the King's musketeers_Public Domain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중에 삼총사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우정을 그린 만화로 아이들의 로망이었습니다. 슈퍼맨이 유행할 때는 아이들이 망토를 두르고 다니듯, 삼총사가 유행일 때는 셋만 모이면 나무칼 하나씩 차고 몰려다니곤 했지요.
삼총사 만화에 보면 주인공들이 늘 칼을 차고 다니며 종종 검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삼총사가 칼 잘 쓰는 무사들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삼총사의 총사라는 말은 프랑스 총사대(Mousquetaires) 대원을 의미하는 말이었고, 총사대는 ‘머스켓 총을 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 무사보다 소총수라는 말이 됩니다.
삼총사는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100년 전쟁’ 이후, 프랑스 내 위그노로 불리던 개신교와 구교의 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1337~1453년, 116년간 벌어진 전쟁을 ‘100년 전쟁’이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영국이 우세하다가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가 짜잔 나타나더니 프랑스가 승리하므로 끝나는 전쟁이지요. 잔 다르크는 지방에 살던 평범한 소녀였는데 열여섯 살에 신의 계시를 받고 참전하였지만, 정치적 음모로 마녀사냥당해 1431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100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지만 워낙 긴 전쟁이었기에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 매우 안 좋았던 시기입니다. 왕권은 추락했고, 귀족들의 세력이 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1517년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이듬해 그의 책이 프랑스에 전해져서, 프랑스에서도 개신교인이 생겨났지요. 그러나 프랑스는 전통적인 구교 국가였습니다. 독실한 신자 집단이기보다, 구교가 황실의 시녀 노릇을 했었기 때문에 정치적 이유로 구교를 고수했습니다. 일례로 삼총사에 나오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왕의 신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개신교도들을 화형시키고 그들을 비하하여 ‘위그노’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사람 칼뱅도 스위스로 망명했습니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국경을 접하고 있었고, 칼뱅 역시 자국의 선교를 위해 많은 애를 쓴 사람이라 프랑스에도 칼뱅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이 일로 제네바에 있던 동맹당 당수 ‘브장송 위그’라는 사람의 성을 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교가 아니라 위그라는 사람을 종교라며 ‘위그노’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루터파와 칼뱅파는 단순히 교리 차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루터는 정치적으로 왕권에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칼뱅은 사회개혁을 추구했던 인물이라 당시 권력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바로 이런 칼뱅파들을 위그노라고 부르고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는데, 칼뱅파 위그노들이 맞서 싸우면서 전쟁으로 치달은 사건이 위그노 전쟁입니다.
삼총사는 왕의 근위대였던 총사대의 일원이므로 이들의 임무는 위그노를 척결하는 것입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삼총사와 다르타냥을 이 전쟁에 보냈고, 이들은 훌륭하게 그 임무를 완수하여 위그노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이 일로 다르타냥은 총사대 부대장으로 임명받지요. 만화는 다르타냥이 부대장이 되어 출세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목사가 되겠다던 제가 어릴 적 이 만화에 빠져서 개신교도들을 탄압했던 다르타냥 흉내를 내고 놀았던 셈입니다. 씁쓸해지네요.
만화에서는 리슐리외 추기경이 다소 악당 비스름하게 나오긴 하지만 역사에서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훌륭한 신하였다고 합니다. 귀족들이 위그노들을 제압하고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개종은 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 유럽 본토에서는 마지막 종교전쟁이자 최초의 세계 전쟁인 ‘30년 전쟁’이 반발합니다. 네 차례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첫 두 번은 말 그대로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이고, 나머지 두 전쟁은 앞선 전투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엮인 국가들의 세계 전쟁이 됩니다. 그런데 프랑스가 위그노 전쟁을 치르면서 구교를 강화했던 나라임에도 정치적 득실에 따라 30년 전쟁에서는 신교도들을 지원했습니다. 이 30년 전쟁을 끝냈던 장본인이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이었고, 그 방법도 총사대를 파견함으로 전쟁을 종식했습니다.
총사대가 사용한 머스킷이라는 총은 임진왜란 때도 등장하는 조총으로, 쇠파이프에 화약을 밀어 넣고 쇠붙이 총알을 넣은 다음, 심지에 불붙여서 쏘는 총입니다. 사실 이런 머스킷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는데, 습한 날씨에는 불발되기 일쑤고, 비 오면 화약이 젖어버려서 그냥 애물단지가 되고 말지요. 명중률은 완전 허접 그 자체입니다. 가장 큰 단점으로는 연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총 한번 쏘고, 화약 쟁여 넣고, 심지에 불붙이는 동안 칼 맞거나 활 맞는 형편이었습니다. 사거리 측면에서 보면 활보다 월등히 높지만, 명중률이나 연사에서는 활이 훨씬 좋았습니다.
하지만 리슐리외의 총사대는 위그노 전투를 치르면서 이런 단점을 커버하는 전술을 만들었는데요. 소총수들을 길게 줄 세워 놓고, 1열이 총 쏘고 맨 뒤로 빠지면 2열이 총을 쏘고 다시 뒤로 빠지고 하는 형태로 후진하면서 연사했던 것입니다. 이 당시 전쟁은 기마병이 중요한 전술 부대였는데 이 기마병을 제압한 게 바로 후진하면서 총을 쏴대던 총사대였습니다. 명중률이 떨어지는 단점도 1, 2, 3열이 동시에 총을 쏴서 총알이 그물망처럼 날아가게 하는 탄막군 형성법으로 ‘아무나 맞아 죽어라’ 하는 형태로 대응했습니다.
삼총사 만화에 총보다 칼이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머스킷이 큰 전투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위그노 전쟁으로 총사대가 전술적 업그레이드를 거쳤고, 이것이 30년 전쟁에서 신교도들의 큰 힘이 되는 아이러니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첫댓글 삼총사 만화~다르타냥 본 기억이 나요~
그때는 암것도 모르고 그냥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