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서산까지의 거리는 고속버스로 불과 1시간 30분의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오랜 기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서산이 무척 멀게 느껴졌습니다. 서산이라는 지명도 낯설었고 그저 여행지의 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었지요. 더욱이 절이라는 곳은 생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게 어설픈 객아닌 객으로 49일 동안 서광사(당시 조그만 암자에 불과했음)에 머물며 전 사범님의 제사를 모셨습니다.
도신스님께서는 하루 세 번, 사범님의 영전에서 금강경과 광명진언을 외우셨지요. 저는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긴 휴식시간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스님께서 바둑을 두자는 말씀도 없어서 굳이 먼저 바둑을 두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49제의 마지막 날(천도재), 서울에서 김인 사범님과 전 사범님의 가족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수 일 후, 저는 상경을 했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컴퓨터 수리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빚을 제가 갚아나갔습니다. 겨우 3년 근무한 회사의 퇴직금과 우리 사주로 받은 주식을 판 돈으로는 원금은커녕 이자만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바둑을 두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버는 족족 이자로 인출되었습니다. 점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벽 모서리만 보면 이마를 들이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려움에 대해 주변에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바둑TV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던 김옥곤 PD의 연락이었습니다. 김옥곤 PD와는 제가 엠게임에 재직한 동안 각별하게 지내어 퇴사 후에도 가끔 연락은 하고 지냈습니다. 바둑TV에서 스트리밍 서버(인터넷 실시간 방송을 위한 장비)를 설치하려는데 해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장비를 사서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구동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죽죽 내리는 데 스트리밍 서버를 싣고 용산에서 분당의 바둑TV까지 가서 설치했습니다. 저는 고마웠습니다. 김옥곤 PD는 다른 곳에 의뢰를 해도 되었는데 굳이 제게 설치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교훈담이 있습니다. 돈으로 친구를 사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시험해보고자 했답니다. 아버지는 죽은 돼지의 시체를 자루에 넣어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사람을 죽였는데 시체를 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자루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을 찾아갔지요. 그러나 아무도 돕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생각지 않았던 친구가 그를 도와 자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고 함께 고민했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자루를 열어 돼지임을 보여준 후 진정한 친구와 밤새 술잔을 나눴다는 교훈담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드러나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김옥곤PD는 제 절박한 사정을 몰랐었지만 제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한게임에 저를 소개해 제1회 한게임 온라인 바둑대회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엠게임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한게임은 네이버와의 통합을 통해 규모와 성장면에서 엠게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기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초창기부터 온라인 바둑대회를 혼자 기획하고 치러본 경험이 많았던지라 수월하게 바둑대회를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NHN에 입사지원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계속)
첫댓글 오~
우와~~~
K대 전액장학생이던 울 큰넘이 고배를 마신 N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