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멸공(滅共)'이냐, '공멸(共滅)'이냐
1. 참을 수 없는 윤서결의 가벼움
신세계 정용진이 느닷없이 인스타그램에 구호처럼 '멸공(滅共)'을 올려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자 윤서결, 나경원이 곧바로 슈퍼에 가서 멸치, 콩을 사 들고 인증 릴레이에 동참했다. 찬반 논란이 이어졌고 주가 하락이니 불매 운동이니 하며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윤서결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 질서를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나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는 것",
“제가 멸치 육수를 많이 내서 먹기 때문에 멸치를 자주 사는 편이다. 아침에 콩국 같은 것을 해놨다가 많이 먹기 때문에 산 것”이라고 같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봐도 그는 정용진 주장에 동조하기 위해 가지도 않던 슈퍼를 갔고, 하필 멸치, 콩 순서로 인증샷을 올려놓고서도 사내답지 못하게 구차하고 옹색한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다. 이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니, 참 유치하고 천박하다. 그의 지적 수준은 거의 3류 바보 수준 아닌가?
물론, 멸공이라는 표현을 할 자유는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여부가 아니다.
국민들은 누구나 허용된 장소에서 담배 피울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담배가 몸에 좋으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번 멸공 사태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에 좋으냐, 국민에게 유익하냐 하는 실리성과 당위성의 문제이며,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자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위험한 발언을 해도 되는가 하는 책임성의 문제다.
윤석열에게 묻는다.
멸공이 지금 이 시대에 유익한가?
멸공을 지금 주장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가?
유익하지도 않고 당위성도 없다면 야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자가 왜 일개 기업 총수를 따라했는가?
대통령 후보라는 자가 표현의 자유를 들어 아무말이나 내뱉어서 나라를 무책임하게 혼란에 빠뜨려도 되는 것인가?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자의 퇴행적 언행이 한없이 경박하다. 후보로서도 큰 결격 사유지만, 만에 하나 대통령이 저런 언행을 보인다면 국내외적으로 거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시정잡배 수준의 경박자가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이 이 나라 국격마저 떨어뜨리는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다.
그러고서도 그는 다음날 북한 선제 타격을 이야기했다. 거의 절망 수준의 아무말 대잔치다.
옛사람들은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윤석열은 사내 자식도 아니다.
2. 그는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여당에서는 '멸공(滅共)' 내세우다가 '공멸(共滅)'할 수도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적어도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라면, 멸공 표현의 자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공멸에 대한 책임도 가져야 할 것임을 적절히 지적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일개 재벌회장의 눈치를 보며 부화뇌동(附和雷同)했다가 문제가 커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윤서결의 완패로 생각된다.
이번 사태에서 '멸공(滅共)'의 글자를 앞뒤로 뒤집으니, '공멸(共滅)'이 된다는 표현이 참 기발하고 재미있었다.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정곡을 찌른 지적이라 생각된다. 표현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내용도 적절했거니와, 그 표현에서도 정문일침(頂門一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묘와 격조가 있다.
우리말에는 앞뒤를 뒤집으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말들이 있다. 시집 가거나 스님이 되는 '출가(出家)'를 뒤집으면 불량 청소년의 '가출(家出)'이 된다든지, '인정(人情)', '정인(情人)', 그리고 한자는 좀 다르지만 '당황(唐慌)' '황당(荒唐)', 등.
이와 같은 단어를 이용해 송욱 시인은 그의 시 '하여지향'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를 '치정(癡情) 같은 정치(政治)', '회사(會社) 같은 사회(社會)' 라고 기발하게 풍자하기도 했다. 정말 요즘 정치를 보면 치정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뒤를 바꾸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단어쌍으로 '경지(境地)' 와 '지경(地境)'도 있다. 소년공 검정고시 출신의 이재명은 제법 정치와 행정의 달인의 경지(境地)에 이르렀는데, 서울법대를 나오고 검찰총장까지 한 윤서결은 어쩌다 저 지경(地境)에 이르렀을까? 참 못난 반면교사(反面敎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