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7월 28일)
<히브리서 4장>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16)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2)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3장에서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왔으나 불신앙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기시킨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시대에도 복음을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견지하지 못함으로 궁극적인 구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구원을 ‘안식’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얻게 되는 안식의 예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고 애굽에서 나오고서도 광야에서 방랑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이 없었는데,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가나안 땅은 안식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음으로써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믿음이 없어서 안식, 즉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합니다(고전10:1-6 참고).
그런 가운데 다윗이 기록한 시편 95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을 얻었지만 그 안식이 영원한 안식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이미 안식을 얻었지만 아직 최종적인 안식이 남아있음을 설명하면서 ‘저 안식(that rest)’, 즉 ‘하나님의 안식(rest of God)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런 최종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쉬심과 같이 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 즉 쉰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가운데 누리는 완전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뜻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했는데(창2:2), 그것은 모든 피조물들과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그런 안식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원래 창조의 목적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그 안식에서 쫓겨났고 그 후로 인간들은 안식이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어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얻는 구원의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 안식인 것입니다(마11:28).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안식을 얻지만, 그 안식은 아직 완전한 안식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인 ‘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힘써야 한다는 것은 어떤 율법적 행위나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여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잡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최종적 안식에 들어가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즉 살았고 역동하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함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받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되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됩시다.』
● 오늘의 기도 ● “예수님 안에서 이미 안식을 주셨음을 감사하오며 믿음을 끝까지 지킴으로써 ‘저 안식’에 들어가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oRi/61
첫댓글 아멘
이미 그러나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