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0일 (목)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말씀 묵상 (2코린 9,6ㄴ-10) (이근상 신부)
형제 여러분,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2고린 9,6-10)
고린토 후서는 바오로 서간의 백미랄 정도로 사도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문서다. 그 중에 9장은 특별히 문학적으로도 수사학적으로도 멋진 글이다.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돕자는 내용이다. 특별히 예루살렘 모교회를 돕는 모금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돈을 모아 보내자는 내용이니 뭔가 좀 세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나는 바로 이 대목이 오늘 우리 교회의 이슈인 시노달리타스의 가장 본질적인 주석이라고 믿는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서 온 교회가 다시금 돌아보는 주제다. 처음에는 공동합의성이란 알듯 모를듯한 말로 번역하여쓰다가 주교회의는 번역어 없이 그냥 시노달리타스로 쓰자고 정했다. 공동합의성이라고 하니 마치 주교나 교황 혼자 결정하던 것을 여럿이 뜻을 모아 결정하자는 식, 이를테면 다수결 민주주의로 오해하기 쉬워서 그런 모양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 투표방식과 무관하다. 시노달리타스는 결정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하느님의 뜻을 서로 안에서 묻고 듣고 나누고 여정을 뜻한다. 최종 결정방식은 사실 몹시 부차적인 결과이며, 여정의 잠정적인 징검다리인데, 막상 우리들에겐 '그래서 결정은 어떻게 하는 건데'가 늘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슈이다보니... 듣기만 해서 뭘 어쩔건데라는 푸념에 '듣기와 나누기'는 늘 양념의 역할에 머물고야 만다. 여하튼 바로 이 듣기와 나누기의 핵심은 '말'이나 의견이 아니라 삶. 그것도 그냥 추상적인 삶이 아니라 '밥'의 나눔이 진짜 내용이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시노달리타스라는 여정은 밥을 나누는 여정이라는 것. 의견과 말에 앞서서 내 가진 밥을 나누는 것. 내 가진 물건을, 내 가진 소중한 것을 내 놓는 것. 바로 이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서 한 입장으로 나아가는 것. 어떤 말과 의견과 이념이 '밥'보다 더 구체적이며 더 진실할 것이냐. 밥을 아낌없이 나누는 곳에서 시노달리타스가 일어난다는 것. 시노달리타스를 가로막는 바람은 망각이다. 자기 손에 쥔 것을 망각하는 손쉬운 분노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서 전해야 할 우리의 소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가 가야할 바는 교황에게 알려야 하는게 아니라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야 한다. 그에게 필요한 밥과 그에게 필요한 정의와 그에게 필요한 따뜻한 마음으로. 그곳이 가난하여 도움이 필요한 우리의 모교회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33GFUB6UkUAqJTjse1D8Eo35buRNMPbnWLW68f12NDMtahqaeRtVoWmKyRSpeD9mxl
첫댓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자는 취지이다. . . .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