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런 기사를 읽습니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082213&code=61121311&sid1=soc
기사 요지는
아들이 70대인 아버지와 말다툼하던 중
아버지가 전날 어머니를 때렸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에 격분해 둔기로 아버지를 마구 때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이네요.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피해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구요.
생각을 해봅니다.
아버지라는 남자가 가정폭력을 오랫동안 행사해왔다하니
아내에게만 그랬을까요?
분명히 자식에게도 그랬을 겁니다.
아들은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언어폭력, 신체폭력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가 모욕을 당하고 맞는 것을 보며 자랐으리라.
상상이 안됩니다...
그런데 이제 70대 노인이 된 아버지가
아직도 어머니를 때려?
그가 가졌을 분노...이해가 되구요.
그렇다고 아들이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왜 그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일찍 벗어나지 않았을까?
폭력의 싹이 보였을 때
그 싹이 자랐을 때
그 남편을,
그 결혼을
떠났어야지.
어쩌자고 70대까지 맞으며 함께 했을꼬?
그 남편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된 이유가 왜 없을까요?
좋게 대해주는 때도 있을 것이구요.
좋은 점도 있었겠고.
하지만 말로든, 신체적으로든
맞으면 산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견딘 세월
이제 벌어진 상황.
남편은 아들에게 맞아서 죽고
아들은 그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고 전과자가 되었네요.
결국 그 여인은 남편도, 아들도 잃었습니다.
일찌감치 그 여인이 남편을 떠나 다른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 때라고 행복하기만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요.
또 다른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심하면 아내를 놓지 않으려는 남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구요.
참...
쉽지 않은 삶...
최근에 미국 드라마 '오자크'를 보기 시작했었습니다.
참 잘 만든 드라마임이 분명해보였네요.
하지만 한 에피소드 보고는 멈췄습니다.
보는 데 스트레스가 많아서 말이지요.
보기에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
그 드라마에서 남편은 죽기 살기로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였고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네요.
그 장면이 녹화된 것을 거듭거듭 남편은 보고 있습니다.
그 숨겨졌던 불륜을 남편이 알게된 것을 발견한 아내,
그녀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너도 책임이 있다.
나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네요.
참...ㅎㅎ
왜 이 장면을 쓰고 있는고?
모든 것은 일찌감치부터 싹이 있었다는 겁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불륜.
이것은 결과이지요.
그렇게 되기까지
싹이
버얼써
있었다는 것.
그 싹이 보였을 때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그 상황을 다뤘어야 했습니다.
뭔가를 바꿔야했고
뭔가를 시도해야 했고
뭔가를 정리해야 했었다.
그런데
안했던 거지요.
그냥 내버려두다.
하던대로 계속하다.
싹은 자꾸 크지요.
이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가
살인일 수 있고
불륜일 수 있는 것.
그것만이 아니지요.
파산일 수 있고
질병, 사망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확연하게 보는 것은
모두
열매입니다.
내버려 두었던 싹이
자라 맺힌
열매.
미리 손을 봐야 했던 것을
외면한 댓가.
정말 외면했는가?
몰라서 그랬지 않았을까?
못봐서?
모르고
못 보게 만들었던 것이 있지요.
가진 환상
욕망
집착
이기심...
눈을 가립니다.
그래서
못보게 되고
모르게 되고
무시하게 되다.
그래서 싹이 다 커서
열매가 맺혀
앞에 놓입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도록.
왜 이리 되었는가?
왜 이리되는가?
역시
공부지요.
열매의 맛을 보면서
이제 눈이 떠지거든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눈이 떠지다.
이전보다
더 보게 되다.
싹을 보는 사람이 되다.
싹을 대면하는 사람
싹을 다루는 사람이 되다.
싹을 고르고
싹을 돌볼 수도 있는 사람.
열매를 고를 수 있는 사람.
깨인 사람
눈 밝은 사람.
결국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삶을 경험한다...
한 번만 살아보는 것이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가요!
죽을 여러번 쒀볼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여러번 망해볼 수 있다.
그래도 다시 기회가 있다.
더 현명해질 기회
더 밝아질 기회
더 아름다워질 기회
더 행복해질 기회...
그렇다고
이 삶에서는 틀렸어...이렇게 말해서는 안되지요?
이제라도
할 수 있는 무엇은
해봐야합니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하니
지금 내가 바꾸고 시도하는 무엇은
모든 삶을 변화시키니 말입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하자.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
사실 그런 마음으로 사네요.
쒀온 죽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뭔가 잘해보자.
누군들
쒀온 죽이 없을까요?
제대로 못한 것
잘못한 것
덜한 것
수많은 죽을 쒀가며 사는 삶
모든이의 삶들이
그렇지요.
아직 덜 커서 말입니다.
그래서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구요.
크기 위해.
그러니 널려있는 죽 속에서도
주저 앉을 일은 아닙니다.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나야지요.
다시 걸어야 할 일.
달릴 수 있으면
달리고.
언젠가는
싹부터 보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싹을
잘 고를 수 있는 사람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그래서
쓴 맛 아닌
단 맛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
그런 희망을 갖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