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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모음 제10부
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송산(松山) 3수(三首)
소나무 삼나무 바람 옷에 가득 불어올 제 / 松杉影裡滿衣風
어둑한 푸른 산속을 한가히 배회하노니 / 徙倚溟濛積翠中
굽이굽이 도는 계곡은 달빛을 부수며 흐르고 / 百轉回溪流碎月
천 층 겹겹 산봉우리는 하늘에 치솟았네 / 千層疊嶂聳排空
자란 생황 소리는 아득히 아직 남아 있고요 / 紫鸞笙遠聲猶在
황학루는 높아서 그윽한 뜻도 무궁하여라 / 黃鶴樓高意莫窮
다만 한스러운 건 다생 속엔 신선이 없어 / 只恨多生無道骨
흰 구름 깊은 곳에 절집을 짓는 거로세 / 白雲深處築琳宮
밭엔 가화가 나오고 바다엔 파도 안 일어 / 壠出嘉禾海不風
태평 천자가 정히 산에 올라 공을 고하네 / 太平天子政升中
한 마음은 깨끗하여 남은 것이 없거니와 / 一心皎皎無餘物
만고는 아득하여 바로 텅 빈 하늘뿐이로다 / 萬古冥冥是大空
미악을 바르게 썼는데 신명께 무엇을 빌랴 / 美惡直書何所禱
재상은 역산가도 끝내 다 궁구 못한다네 / 災祥巧歷竟難窮
가만히 앉았어도 태평 정치 절로 이르니 / 垂衣自致時雍治
오악은 분명히 대궐을 옹위하고 있다오 / 五岳分明拱法宮
진주 비취로 꾸민 견여 먼지도 안 날리는데 / 珠翠肩輿不動塵
인도하는 두 미인은 몸도 사뭇 가냘퍼라 / 雙娥引道最輕身
뒤에 오는 안마들은 매우 서로 머뭇거리고 / 後來鞍馬逡巡甚
중도에 차린 배반은 어지러이 진열되었네 / 半路杯盤錯落陳
천지는 말끔하여 막 태양을 보게 되었는데 / 淨洗乾坤初見日
태평의 노래와 음악은 봄을 둥둥 띄우누나 / 太平歌吹欲浮春
나라를 부지함은 본디 천지신명의 힘이라 / 扶持自是神明力
장상들이 어울려 성왕 탄신을 서로 즐기네 / 將相交歡樂聖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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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그네
중원에선 한식에 동풍이 좋이 불 때면 / 中原寒食好東風
사람과 그네가 반공중을 오르내리는데 / 人與鞦韆在半空
모름지기 기억할 건 삼한의 단오절에 / 須記三韓端午日
말 소리 속에 모시 적삼 가벼이 날림일세 / 紵衫輕擧語聲中
채색 실 나부끼며 스스로 바람 일으킬 땐 / 綵絲飛颺自生風
붉은 치마가 하늘로 들어갈까 두려웠는데 / 直恐紅裙入碧空
사람 파한 석양엔 적막하기만 하여라 / 人散晚來殊寂寞
석양 아래 그넷줄만 희미하게 걸려 있네 / 依依掛在夕陽中
당당한 가래나무는 멀리 바람을 임했는데 / 堂堂楸樹迥臨風
붉은 실 그넷줄은 공중을 차고 오르네 / 紅線鞦韆欲蹴空
소년들이 서로서로 끌어가고 밀어올 제 / 挽去推來少年在
여인들 시선 속에 장부의 심장 흔들려라 / 鐵腸搖蕩眼波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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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금강산(金剛山)
종산의 땅은 삼분의 이를 진압하였고 / 鍾山地控三分二
풍악은 일만 이천 봉우리가 모였는데 / 楓嶽峯攢萬又千
줄을 이어 향 내린 건 지난날의 일이요 / 絡繹降香前日事
지금은 적막하게 구름 연기만 잠기었구나 / 如今寂寞鎖雲烟
군수는 위엄을 부려 역졸들을 불러대고 / 郡守施威呼五百
산승은 땀흘리며 삼천 인이나 분주하네 / 山僧流汗走三千
은혜 갚고 고통 없앰은 그들의 일이라 / 報恩濟苦渠家事
자귀 끝에 바람 일어 푸른 연기 흩어지네 / 斤斧生風散碧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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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청태가(靑苔歌)
이끼여 이끼여 어이 그리도 푸르른고 / 苔兮苔兮何靑靑
예전엔 뜰에만 올랐다더니 이젠 대청까지 왔네 / 昔聞上堦今半廳
깊은 가을 궂은비에 갠 날이 적으니 / 秋深苦雨少晴日
어찌 거마가 빈 뜰에 올 리가 있으리요 / 豈有車馬來空庭
아침마다 하인이 더러운 것만 쓸어버릴 뿐 / 朝朝倦僕掃穢耳
밟고 다닐 사람 없어 내 마음 편키만 해라 / 無從踏破吾心寧
은자나 부귀한 집에 꽃다운 풀이 있어도 / 閑門要路有芳草
고인의 노랫소리를 누가 능히 들었으랴 / 古人歌詠誰能聽
유독 성질이 유별난 이끼를 사랑하노니 / 獨愛靑苔性寡合
궁벽한 곳에 나서 성긴 난간과 연접하여 / 生在僻處連疎櫺
비단을 씻는 듯 실마다 가랑비 떨어지고 / 濯錦絲絲落微雨
별을 띤 듯 반짝반짝 반딧불이 날기도 하네 / 帶星耿耿飛流螢
회상하건대 버선 신고 산사에 노닐 적엔 / 回首布襪山寺遊
노승이 지팡이 짚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 老僧倚杖高伶俜
내 다리 밑에 붉은 먼지 묻은 걸 알고는 / 知予脚底有紅塵
때로 눈썹 찡그리고 얼굴도 붉히었다네 / 時皺長眉顔亦頳
어찌 알았으랴 마침 내게 의발을 전하려고 / 豈料傳衣適在我
날로 송아지 달리듯 하는 첨정을 성낸 것을 / 日日犢走嗔添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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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산고가(山高歌)
높은 산을 꼭대기까지 걸어 오르니 / 山高步至頂
곤륜산도 찾아갈 수 있기에 / 崑崙猶可尋
푸른 돌 긴 사다리 타고 도리천을 오르니 / 靑石長梯上忉利
침침한 하늘에 뭇 신선들이 날아다니네 / 縹渺飛步天沈沈
동해에 돌아오니 여기엔 지리산이 있어 / 歸來東海有智異
상봉은 여름에도 춥고 골짝 물은 얼었는데 / 峯頭夏冷氷垂陰
내려다보니 큰 파도는 산 아래 둘러 있고 / 下視鯨波遶山下
북쪽을 보니 만 리 멀리 구름 봉우리 희미하네 / 北顧萬里迷雲岑
산중은 구불구불 수백 리나 되는데 / 山中委曲數百里
큰 고을들이 산기슭 깊은 숲에 감춰져 있고 / 大郡據麓藏深林
전설에 의하면 진나라 난리 피해 온 마을 있어 / 相傳避秦有孤村
복사꽃 흐르는 물에 산새가 지저귄다 하데 / 桃花流水啼幽禽
내가 산고가를 노래한 게 무슨 마음이던고 / 我歌山高何心哉
다만 시위소찬으로 늘그막이 된 때문일세 / 只爲素飧衰老侵
그 당시 상산사호의 자지곡은 / 當時四皓紫芝曲
천재에 훈풍의 거문고와 짝할 만했는데 / 千載足配熏風琴
끝없는 우주에 고금을 통틀어라 / 宇宙悠悠自今古
산고가를 마치노니 이 소리를 누가 알런고 / 山高歌闋誰知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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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보국가(保國歌)
하늘 즐김은 예로부터 천하를 보전했거니와 / 樂天自昔保天下
나라 보전엔 지금 응당 하늘을 두려워해야지 / 保國如今應畏天
저 크신 상제가 아래를 밝게 살피시니 / 皇矣上帝監在茲
한 점 영명한 마음을 의당 보전해야 하리라 / 一點靈明當保全
크게는 우주를 손아귀에 넣기도 하려니와 / 大之宇宙入掌握
작게는 한 나라의 산천을 나누기도 하나니 / 小之茅土分山川
자손이 서로 이어 만만세를 전하노라면 / 子孫相傳萬萬世
상하의 기가 서로 합해 억만년을 내려가리 / 上下氣合彌億年
황조의 훈계는 명백하기 획일과 같으니 / 祖訓明明若畫一
민풍이 침착해져서 변천이 없게 되었네 / 土風皥皥無變遷
단연코 하늘처럼 쉬지 않고 운행해야 하리 / 端如圓象運不息
해와 달의 황도에 별자리가 나열한 가운데 / 日月黃道羅星躔
천둥 벼락 비이슬엔 만물이 절로 나려니와 / 雷霆雨露物自生
얼음 서리 눈의 시긴들 어긋난 적이 있던가 / 氷霜雪霰時何愆
지금 한 번 변하면 옛을 멀리 초월하리니 / 如今一變迥超古
즐거울사 나를 안 이는 오직 푸른 하늘일세 / 樂哉知我唯靑天
땅을 파되 한 자를 파고 또 한 자를 파라 / 掘土一尺又一尺
더구나 힘써 샘물이 나도록 깊이 팜에랴 / 何況用功深及泉
거칠고 지리멸렬함은 예부터 경계한 바이니 / 鹵莽滅裂古所戒
나라 보전의 근본은 현인을 희망함에 있다오 / 保國根本由希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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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추우탄(秋雨歎)
팔월이라 십사일 비가 뜰에 가득 내릴 제 / 八月十四雨滿庭
이끼 낀 길은 미끄럽고 사립은 닫혔는데 / 靑苔路滑柴扉扃
송광사의 시자는 큰 키에 수척한 몸으로 / 松廣侍者瘦軀長
와서 답서 구하는 태도 어이 그리 정중한고 / 來取答書何丁寧
흐린 눈 억지로 비비고 몽당붓 집어 들고서 / 强揩病目拈禿筆
큰 소리로 단운시 읊으매 바람은 썰렁해라 / 高吟短韻風冷冷
처마 사이 떨어진 빗방울은 사랑스러우나 / 簷間點滴儘可愛
교외의 벼이삭이 마침 반쯤이나 익었는데 / 郊外黃雲時半靑
개구리는 응당 오랜 비를 두려워하려니와 / 政當吠蛤畏恒雨
오랜 가뭄 또한 절로 상도엔 어긋나리라 / 恒陽亦自違天經
허나 온몸에 흙 묻히고 얼굴에 땀흘리면서 / 霑身塗足汗被面
해마다 모진 고생에 몸은 쇠약하기만 한데 / 年年作苦身丁零
벼논 바람 솔솔 불어와 콧구멍을 스치면 / 田頭風來觸鼻觀
향기로운 햅쌀밥 냄새가 방불한 이때에 / 髣髴飯餌吹淸馨
어찌하여 위에선 내리고 아래는 침수되어 / 奈何上霑下又浸
농부들로 하여금 하늘을 외치게 하는고 / 直使野老呼蒼冥
옥황의 향안 앞엔 누가 붓대 잡고 모시는고 / 玉皇案前誰侍筆
청컨대 농가류의 일정을 기록해 올리게나 / 請記農家流日程
게으른 자는 굶어 죽어야 마땅하겠지만 / 惰者甘心向溝壑
다른 이의 간절한 말은 신명이 들을지어다 / 他人苦語神其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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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 이색(李穡)
추우탄편(秋雨歎篇)을 짓고 나니
하늘이 말끔하게 개어서 정신이 매우 상쾌하므로, 또 추양가(秋陽歌)를 짓다.
옛날에 가을볕의 쬠을 결백하다 일컬었으니 / 秋陽古稱曝皓皓
천지가 결백해지면 정신도 소생된다오 / 天地潔白精神蘇
여름 사이엔 흐린 기운이 일월을 가리고 / 夏間陰翳蔽日月
구름 안개 잔뜩 끼어 봉래산이 묻히는지라 / 雲蒸霧滃沈蓬壺
옥당이며 금전에도 습기를 피치 못하고 / 玉堂金殿不避濕
가난한 오막살이는 진흙탕과 서로 연했네 / 甕牖圭竇連泥塗
맘 우울하고 몸 나른하며 기운은 실낱 같아 / 思沈體倦氣如綫
오동에 가을바람 불기만 손꼽아 기다릴 제 / 屈指秋風吹碧梧
사랑스러운 가을바람이 분 지 수일도 안 되어 / 蕭蕭可人未數日
비 맡은 신의 여력은 따라서 주춤해졌으나 / 雨師餘力仍躊躇
청황색 벼이삭 들에 가득코 바람 이슬 많아서 / 靑黃滿野足風露
정히 매몰될까 두려워 걱정을 더했는데 / 政恐埋沒增憂虞
하늘 끝 땅 끝이 갑자기 빛을 드러내더니 / 乾端坤倪忽呈露
상쾌도 해라 천지 사방이 탁 트이네그려 / 快哉爽塏開通衢
해마다 농가에서는 큰 풍년을 만나서 / 年年農家得大熟
배불리 먹어 다시 처자 걱정 않거니와 / 鼓腹不復愁妻孥
한산의 늙고 병든 나 또한 얼마나 다행한고 / 韓山老病亦何幸
글 지어 쌀 얻어서 조석을 이으니 말일세 / 作書乞米供朝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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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 이색(李穡)
소년락(少年樂) 2편(二篇)
소년 시절의 행락을 / 少年樂
병중에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구나 / 病中思之心作惡
마을에서 밤낮없이 즐겁게 노닐 적에 / 嬉游閭巷罔晝夜
나이 많은 선비들이 총각을 끼어 주었네 / 褒博之間容總角
멀리 긴 그림자 따라 달밤에 돌아가서는 / 遙隨長影踏月歸
일곱 자 몸으로 토란을 훔쳐 짊어지고서 / 竊負蹲鴟身七尺
늦은 밤에 서로 이끌고 그 집을 찾아 들어가 / 夜闌相携扣其戶
다시 술 밥 청하여 아침저녁을 대접받는데 / 更請治具供朝夕
때마침 남녀 노복이 갑자기 와서 아뢰길 / 長鬚赤脚忽來報
어젯밤 전원에 미친 도적이 쳐들어와서 / 昨夜園中有狂賊
토란을 긴 줄기 둥근 잎까지 다 말아갔으니 / 卷去長莖帶圓葉
이는 호강자제나 유협객 소행이 아니라며 / 不是膏粱與游俠
한낮까지 온갖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었지 / 極口醜詆及日中
소년은 못 들은 척하며 얼굴이 발개진 채로 / 少年佯聾面發赤
진한 술 사양하지 않고 연거푸 마셔대니 / 亟飮醇醪不肯辭
이윽고 붉은빛이 안색을 어지럽게 하였네 / 紅暈俄而亂顔色
돌아와서는 이가 시리도록 스스로 웃었으니 / 歸來自笑齒却冷
슬프다 이런 행락 두 번 다시 얻기 어려우리 / 悲哉此樂難再得
소년 시절의 행락을 / 少年樂
이제는 늙어버려서 탄식만 할 뿐이로다 / 老矣已矣徒歔欷
비 걷힌 산 빛은 물방울이 듣는 듯 젖었고 / 雨收山光濕如滴
풀 마른 평야에는 맑은 서리가 날리었네 / 草枯平野淸霜飛
시냇물은 티 하나 없이 밤낮으로 흐르건만 / 溪水無塵流日夜
아득한 동해 바다를 어느 때나 돌아갈꼬 / 渺渺東海何時歸
석양의 가을 경치가 천지에 가득하여 / 晚來秋色滿天地
시골집과 낚시터를 말끔히 씻어줄 제 / 淨洗田廬幷釣磯
깊은 밤에 비틀거리며 물을 따라 내려가면 / 夜深蹣跚逐水下
내황과 사자가 지금 한창 살찔 때로세 / 內黃賜紫今正肥
동자 관자가 서로 이끌고 문을 나가면 / 童冠提携出門去
머리털 듬성한 노복은 술병을 허리에 차고 / 僕夫佩壺頭髮稀
옷 걷고 물에 들어가 쉴 새 없이 달리다가 / 褰衣水中走不止
때로는 큰 고기 잡으며 천기를 잊기도 했네 / 有時得雋忘天機
바람 높아라 뼈에 닿는 가을이 비로소 기쁘고 / 風高始喜淸透骨
밤이 깊으니 한기가 몸에 범함을 또 깨닫겠네 / 夜深又覺寒侵肌
병중에 생각하니 공연히 마음만 괴로운데 / 病中思之空苦心
유독 가을달만이 이끼 낀 사립을 비추누나 / 獨有秋月臨苔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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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 이색(李穡)
연아(演雅) 3수(三首)
당년엔 송아지처럼 천 번이나 달렸었는데 / 當年黃犢走千回
백발의 오늘엔 등에 검버섯까지 피었구려 / 鶴髮如今背又鮐
말은 물결 소리 보내어 낮잠을 깨우고 / 馬送浪聲喧午枕
뱀은 활 그림자를 따라 술잔에 떨어졌네 / 蛇從弓影落深杯
그루터기서 토끼 기다림은 옛말을 들었거니와 / 守株待兔聞前語
나무에 올라 물고기 구함은 뒤탈은 없다더구려 / 緣木求魚絶後災
내 일찍이 조관의 반열 속에 끼었었는데 / 鵷鷺行中曾簉跡
이젠 사슴을 벗 삼아 산으로 들어가고 싶네 / 欲尋麋鹿入崔嵬
곤과 붕새의 변화함은 어찌 그리 신묘하며 / 鯤鵬變化何其妙
벌 개미의 군신은 누가 작다고 말할쏜가 / 蜂蟻君臣誰曰小
큰 집의 봄바람 속엔 제비가 서로 경하하고 / 大廈春風燕相賀
쇠잔한 생명은 가을밤에 벌레 스스로 슬퍼하네 / 殘生秋夜蟲自弔
황조가 언덕에 그침을 소리 높여 읊조리고 / 高吟黃鳥止丘隅
관저의 요조숙녀 구함을 멀리 사모하노라 / 遠慕關雎求窈窕
일곱 대의 고관은 마음만 괴롭힐 뿐이니 / 七葉蟬貂空苦心
쓰지 말라는 숨은 용을 나는 장차 본받으리 / 龍蟠勿用吾將傚
거북과 함께 장륙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 與龜藏六要安心
종이에다 새로 척확음을 지어 쓰노라니 / 繭紙新題尺蠖吟
천 리를 가는 준마는 길이 하 멀기만 하고 / 騏驥千里道途闊
한 가지에 둥지 튼 뱁새는 천지가 하 깊어라 / 鷦鷯一枝天地深
맑고 찬 가을 하늘엔 매가 꿩을 덮치려 하고 / 霜淸雲斷鶻將擊
달 밝은 텅 빈 산에선 원숭이 홀로 울부짖네 / 月明山空猿自吟
일찍이 궁전 섬돌에 푸른 향 연기 피어오를 제 / 獸爐烟碧螭堦上
조관 반열에 끼어 옥음 듣던 일 기억나누나 / 曾記鳧趨聽玉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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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 이색(李穡)
연아(演雅)
당나귀 등에서 시 읊으며 곡봉을 바라보니 / 驢背吟詩望鵠峯
나는 원숭이 쫓아 높은 소나무를 오르고파라 / 欲追飛猱入雲松
변방의 가을 기러기 소리 갑자기 들리더니 / 忽聞胡塞霜前鴈
절집의 달밤 귀뚜라미가 다시 생각나누나 / 更想祇園月下蛩
지저귀는 참새야 어찌 홍곡의 뜻을 알랴만 / 雀噪豈容知鵠志
코끼리 가는 곳에 여우 자취 찾기도 어렵네 / 象行難更覓狐蹤
부모님의 교훈 못 받은 지가 이미 오래라 / 鯉庭久已忘書禮
또 앙려를 향하여 종소리를 들을 뿐이네 / 且向鴦廬聽鼓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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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 이색(李穡)
기러기 소리를 듣다.
만 리라 북방 사막의 한 깃털 미물이 / 萬里胡沙一羽微
금년에 또 남쪽으로 날아오는 걸 보겠네 / 今年又見向南飛
누가 알랴 병든 나그네는 애만 끊어질 뿐 / 誰知病客心空折
수염이 다 세도록 아직껏 못 돌아가는 걸 / 白盡髭鬚尙未歸
북쪽 변방 하늘 높고 더운 기운 물러가매 / 北塞天高暑氣微
기러기가 이때 흰 구름 따라 날아오누나 / 鴈飛時逐白雲飛
모르겠도다 어느 곳에서 깃들어 있다가 / 不知何處堪棲托
해마다 남으로 왔다 또 북으로 가는건지 / 歲歲南歸又北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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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 이색(李穡)
원중잡영(園中雜詠)
송(松)
솔의 마음은 우뚝이 곧은 지조를 품어서 / 松心落落抱幽貞
솜이 끊기고 쇠가 흘러도 한가지로 푸르니 / 綿折金流一樣靑
응당 괴이타 하리 주인은 조금 괜찮은데도 / 應怪主人差可者
두 귀밑이 이미 성성해짐을 막지 못한 걸 / 不禁雙鬢已星星
율(栗)
밤은 초구에 있어 일찍이 시로 노래했기에 / 栗在楚丘曾詠詩
제수와 손 접대로 쓰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 用充賓祭世皆知
유독 가련타 목은은 가난하여 먹을 게 없어 / 獨憐老牧貧無物
여물기도 전에 벌써 아이들을 먹이네그려 / 未得肥時已啖兒
이(梨)
이원에서 취하여 꽃 감상하며 읊조렸어라 / 梨園醉裏賞花吟
제공들의 정시음 시풍을 내 들어봤는데 / 見說諸公正始音
늙은 목은은 한가로이 열매만 먹으면서 / 老牧閑居惟食實
시고 단 맛 섞인 가운데 세월을 보내노라 / 酸甘相雜度光陰
행(杏)
살구꽃 마을에 오던 비가 막 개고 나니 / 杏花村裏雨新晴
향기론 바람이 농부에게 불어온 걸 보겠네 / 曾見香風洒耦耕
늙어 가매 뿌연 먼지 회상하기도 괴로워라 / 老向紅塵苦回首
몇 번이나 담장 머리 두어 가지 꽃을 봤던고 / 幾看墻角數枝明
도(桃)
한번 도원에서 진나라 난리 피함으로부터 / 一自桃源得避秦
지금까지 그 누가 그 사람을 안 부러워하랴 / 至今誰不羨其人
꽃 따고 열매 먹는 건 참으로 잗단 일이요 / 採花食實眞細事
산천이 난세와 격해 있음을 기뻐할 뿐이네 / 只喜山川隔戰塵
추(楸)
가래나무는 높고 높아 반공중에 치솟아서 / 楸樹高高倚半空
봄엔 잎 피고 겨울엔 우뚝해 앞산을 굽어보네 / 春敷冬竦壓前峯
뿌리는 땅 밑의 샘 근원에 깊이 서려 있는데 / 根蟠地下泉源在
그늘은 용 비늘 얻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누나 / 蔭得龍鱗入海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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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0권 / 시(詩) / 이색(李穡)
새벽에 읊다. 3수(三首)
음양관들은 자리에 가득 앉고 / 陰陽官滿座
도화원은 새로운 터를 잡으니 / 圖畫院開基
땅은 비서성을 눌러 있고 / 地壓蓬萊境
하늘은 추밀원에 나직하구나 / 天低喉舌司
뜰가엔 차가운 비가 지나가고 / 半庭寒雨過
서산엔 저녁볕이 더디기만 하네 / 西嶺夕陽遲
돌아와 누워서 몸과 세상 잊어라 / 歸臥忘身世
닭 우는 소리에 꿈을 깨는 때로세 / 鷄聲夢破時
강토는 일찍이 이 나라를 열었고 / 蘿圖曾闢國
예언은 국운을 연장할 수 있어라 / 天錄可延基
주소도 오히려 점을 좇았거니와 / 周召猶從卜
중려는 각각 맡은 바가 있었네 / 重黎有所司
삼소는 있는 곳이 헷갈리어 / 三蘇迷所在
백세에 끝내 알기가 어려우니 / 百世竟難知
애석하기도 해라 선왕의 뜻이 / 可惜先朝意
바로 적막강산 낙엽 지는 때로세 / 江山木落時
송악산은 천고의 길한 땅이요 / 松山千古地
돌 계단은 태평의 터전이로다 / 石砌太平基
궁전 모퉁이엔 일천 산이 둘러 있고 / 殿角回千嶂
담장가엔 온갖 관사가 벌여 있으며 / 墻邊列百司
집안에는 신민들이 옹위해 있고 / 宅中臣庶拱
후손에겐 조종이 복을 내리도다 / 裕後祖宗知
전배 중엔 그 누가 명세자였던고 / 前輩誰名世
지금 사람도 스스로 때에 응한다네 / 今人自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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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0권 / 시(詩) / 이색(李穡)
일찍 일어나서 읊다. 3수(三首)
한밤중에 창이 밝아 꿈을 문득 깨어 보니 / 午夜窓明夢忽回
달빛은 대낮 같고 월궁전은 썰렁도 해라 / 月華如晝冷瑤臺
옷자락 거머쥐고 뜨락에 산보를 하려노니 / 攬衣欲向庭中步
학을 타고 일찍이 해상으로부터 왔었다네 / 駕鶴曾從海上來
다시 잠의 마귀와 서로 짝하여 앉았으니 / 更被眼魔相伴坐
시사를 엮고자 하나 누구를 시켜 재단할꼬 / 欲編詩史遣誰裁
일찍 일어나 붓을 잡고도 기록하기 어려워라 / 早興呼筆還難記
맑은 경치는 아득하나 재주 없음이 부끄럽네 / 淸景茫然愧不才
삼소와 사실의 형세가 면면이 이어져서 / 三蘇四室勢連綿
이리저리 집터 보아 일변에 이르렀네 / 陟巘胥原到日邊
지리산 천왕이 처음 술수를 가르쳐주어 / 智異山王初授術
고려의 국조가 크게 천명을 받았도다 / 高麗國祖誕膺天
바다에 흘러든 물은 용이 응당 뱉어낸 게고 / 水流入海龍應吐
하늘 높이 솟은 산엔 봉이 날아오르려 하리 / 嶺峻盤空鳳欲騫
길상을 낳아서 종묘사직을 길이 붙드니 / 産得吉祥扶社稷
이 강토가 억천만년 영원히 무궁하리라 / 蘿圖億載又千年
병든 몸 흐린 눈으로 서책을 관람하고 / 扶病觀書兩眼花
돌아오다가 시중 댁을 올라가 배알할 제 / 歸來上謁侍中家
곡령의 푸른 솔은 봄날을 길이 어둡게 하고 / 靑松鵠嶺春長暗
오공산 붉은 숲엔 석양이 비끼려 하누나 / 紅樹蜈山日欲斜
동국의 영재들은 우뚝 선 난봉과 같은데 / 東國英材峙鸞鳳
중원의 피바다는 용과 뱀이 싸운 듯하네 / 中原血海鬪龍蛇
깊은 밤에 홀로 앉았으니 생각이 끝없어라 / 夜深獨坐思無盡
살림살이 영위할 길이 절로 멀기만 하구려 / 問舍求田路自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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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0권 / 시(詩) / 이색(李穡)
느낌이 있어
큰 은혜로 휴가 내려 신하들을 헤아리고 / 休沐寬恩體衆臣
문무의 늦추고 죔으로 천 년을 보전하도다 / 弛張文武保千春
밝은 창 밑 깨끗한 책상 앞 시 읊는 곳은 / 明窓淨几沈吟處
먼지 한 점 앉은 데 없이 말끔하기만 하네 / 洒落難容一點塵
전조의 신하로 초췌해진 이 늙은 문신이여 / 前朝憔悴老詞臣
병든 고목 앞에 일만 나무들은 봄이로세 / 病樹前頭萬木春
모르겠다 이것이 꿈인가 정녕 꿈은 아닌데 / 未識夢耶非是夢
의관 정제하고 때로 도성 거리를 밟는구려 / 整冠時踏軟紅塵
좌구명이 참으로 소신임을 못 믿겠어라 / 未信丘明是素臣
모름지기 왕 자 위에 다시 춘 자를 썼어야지 / 須參王上更書春
기린 얻고 공자의 눈물 한번 흘린 후로는 / 獲麟一反宣尼袂
산더미 같은 사책에 먼지만 가득 쌓였네 / 方冊山堆網素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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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어
하늘과 땅이 인물을 생산하지만 / 乾坤産人物
안목 갖춘 이는 예부터 드물었으니 / 具眼古來稀
주나라 말기에 이미 나무를 베었고 / 周季已伐樹
한나라 초기까지 지초를 먹었었네 / 漢初猶茹芝
한 몸뚱이는 매인 말과 같은지라 / 一身同馬繫
두 눈으로 나는 기럭 바라볼 뿐이네 / 雙目送鴻飛
어느 날에나 산중으로 들어가서 / 何日山中去
솔바람이 귀밑털을 불게 할거나 / 松風吹鬢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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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0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풍(古風) 1수(一首)
포희씨는 지리를 관찰했었고 / 庖犧察地理
공자는 주역 계사를 지었는데 / 宣聖繫易辭
간산이 곤지에 가득 차서 / 艮山滿坤地
동으로 달려 고려를 이루었네 / 東走成高麗
기세가 왕성한 이천 리 땅은 / 磅礴二千里
종묘사직의 무궁한 터전이라 / 宗社無窮基
하늘이 우리 태조를 내시매 / 上天生太祖
밀봉서가 때를 맞춰 나왔도다 / 密封書出時
만대토록 반드시 끊어지지 않을 / 萬代必不絶
밝은 증거가 바로 이에 있는지라 / 明徵乃在玆
사천대(司天臺)의 여러 군자들이 / 司天衆君子
널리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데 / 博考仍覃思
정미함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덴 / 精微可到底
다행히 예선사가 있네그려 / 幸有猊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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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古風)
십오세에 태학에 들어가서 / 十五入大學
명덕 밝히고 우리 백성 새롭게 하고 / 明德新吾民
사물 궁구하여 체용에 통달해서 / 格物達體用
천지의 도가 한 몸에 충만해지면 / 天地充一身
이것을 가지고 천자를 보좌하여 / 所以佐天子
조화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네 / 造化同彌綸
공자가 그리도 급급히 여긴 것을 / 孔氏所汲汲
그 누가 다시 큰 띠에 쓸런고 / 誰復書諸紳
중고에는 과목의 자료를 만들어 / 中爲科目資
당장 요로의 지름길에 올라서 / 立登要路津
긴 등경은 화려한 집을 비추고 / 長檠照華屋
아첨엔 먼지만 가득 쌓이누나 / 牙籤棲素塵
아 우리 여러 자손들은 / 咨我諸子孫
도리의 봄을 다투지 말지어다 / 勿競桃李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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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내가 28세 때 내서 사인(內書舍人)에 제배(除拜)되었고, 30세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배되었으며, 44세 때는 정당 사인(政堂舍人)에 제배되었으나,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되어 천조(天朝)의 한림원(翰林院)으로 갔었고, 정당(政堂)에 공직(供職)할 때는 취임한 지 3개월이 채 못 되어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였으니, 반년(半年)의 오랜 기간을 공직한 것은 바로 간의대부로 있던 때였다. 그러나 그때는 언사(言事)로써 집정 대신(執政大臣)과 시비(是非)를 쟁론하다 보니, 조용히 시가(詩歌)를 읊조리어 전배(前輩)들의 풍류(風流)의 자취를 직접 실천해 보지 못했다. 대체로 시가란 정사(政事)의 아름다움을 형용하여 인심(人心)을 바르게 하고 세도(世道)를 붙들어 세우는 것이니, 우리가 의당 힘써 해야 할 바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와 같이 불행하였으므로, 애오라지 단편(短篇)을 지어서 후일의 군자(君子)에게 고하는 바이다.
낭사는 청환과 요직을 겸했기에 / 郞舍淸要幷
사림의 우러러봄이 중하거니와 / 士林瞻望重
봉박으로 출척 정사를 보좌하고 / 封駁補黜陟
좋은 계책으로 임금 협찬하나니 / 謨猷贊垂拱
의관이 뭇 관원들과 서로 다르고 / 冠巾異衆流
임금의 은총도 남달리 받는다네 / 雨露承殊寵
허나 수레 막고 시비 겨룬 격이니 / 拒轍爭是非
버마재비가 어떻게 용맹을 쓰리오 / 螗螂豈爲勇
술에 빠져 혼미해지길 도모할 제 / 湎酒圖昏迷
풍파가 갑자기 솟구쳐 일어나서 / 風波忽焉涌
하늘 가운데 환히 밝았던 태양이 / 中天日正明
어느 날 갑자기 구름에 휩싸였네 / 一旦雲爲擁
노신은 겸손하여 평진을 본받아서 / 老巽效平津
수레가 엎어질 듯 경계를 다하고 / 如馬駕而覂
제공은 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 諸公皆左秩
지방관으로 분주히 말을 달렸네 / 剖符走方駷
묘당엔 공도가 행해지고 있으나 / 廟堂公道行
조관 반열엔 물의가 흉흉했는데 / 班行物議洶
나 홀로 후설의 직임에 참예하니 / 獨參喉舌司
몹시 황송하여 땀을 뻘뻘 흘렸지 / 汗流極惶竦
회상컨대 사인으로 있던 기간은 / 回思拜舍人
발 한 번 돌려 서듯 잠깐이었고 / 頃刻若旋踵
천조의 한림학사가 되어 가서는 / 往作鑾坡游
누린내 나는 고기와 양유를 먹었네 / 飱羶幷飮湩
정당은 또 대단히 바쁜 곳인데 / 政堂又悤遽
갑자기 모친상 당해 벽용하다가 / 丁憂俄擗踊
기복되어서는 읊조림을 폐했고 / 起復廢吟哦
선영에는 가을 풀만 가득하였네 / 秋草滿丘壠
조심하는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 操心尙耿耿
벼슬 안 함은 남의 말 때문이 아닐세 / 輟行非詾詾
병석에 누운 지 지금 팔 년째인데 / 臥病今八年
시절은 다스운 봄날 이월이로다 / 時惟平斗桶
새소리는 한창 화기가 넘치고 / 鳥聲方和悅
봄기운은 광대하게 펼쳐지는데 / 春氣政鴻溶
옛 놀이가 새 시구에 들어오니 / 舊游入新吟
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기쁘구나 / 如喜足音跫
자세히 분석해 후현에게 고하며 / 縷析告後賢
머리 숙여 스스로 두려워하노니 / 低頭頗自恐
괴나무 그늘 응당 뜰에 가득하리 / 槐陰應滿庭
내 머리털이 이미 쇠했으니 말일세 / 予髮已種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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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방회가(放懷歌)
생각을 놓아서 스스로 괴로워 말지어다 / 放懷放懷勿自苦
스스로 괴로워하면 본디 장부를 상한다네 / 自苦從來損腸腑
궁한 시름에 글 저술하면 끝내 어디에 쓸꼬 / 窮愁著書終安用
각심하고 도를 꾀해도 때 만나기 어려워라 / 刻志謀道還難遇
또 보건대 공자도 도를 행하려 급급했지만 / 且看孔聖亦遑遑
비록 안영이 있었으나 또한 친하질 못했네 / 縱有晏嬰亦參商
이런 때문에 옛사람들은 / 所以古之人
생각을 놓아서 이 몸을 마쳤으니 / 放懷終此身
산은 오를 수 있고 물은 임할 수 있거늘 / 有山可登水可臨
어이해 길이 읊조려 정신을 풀지 않으랴 / 胡不長嘯舒精神
팔방 끝까지 신유해도 의뢰할 데 없으니 / 神游八極亦無賴
마음을 단속하면 봄이 장구히 생겨나서 / 約束方寸長生春
생기 넘치는 초목이 그 가운데서 나오고 / 欣欣草木自中出
화창한 봄바람이 가이없이 불어오리라 / 駘蕩光風無畔津
솔개 날고 고기 뛰는 게 하나의 호연지기라 / 鳶飛魚躍一浩氣
늙은이 편케 젊은이 품어주면 천하가 인에 돌아오나니 / 老安少懷天下歸于仁
방회가 한 곡조는 바로 요순 시대 노래로세 / 放懷一曲唐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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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가랑눈이 내리다.
일기는 춘분 이후로 일전했는데 / 氣轉春分後
구름이 한낮을 지나 일어나더니 / 雲興日午餘
나부끼는 눈꽃이 빙빙 돌아 내려라 / 飛花自回薄
가벼운 태도는 짐짓 느릿느릿하네 / 輕態故虛徐
차 솥엔 겨우 물을 더할 만한데 / 茶鼎才添水
산 마을엔 화전이 다 묻혀가누나 / 山村欲沒畬
조그만 시편에 재료가 넉넉하니 / 小詩材料足
그윽한 집에 맑은 흥취 가득하네 / 淸興滿幽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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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바람은 살랑살랑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 輕風細細不驚塵
부슬부슬 가랑비는 두건을 적시려 하는데 / 小雨霏霏欲濕巾
남은 꿈속에 우는 새 두어 소리만 들릴 뿐 / 啼鳥數聲殘夢裏
뜰 가득 꽃 떨어지고 인기척은 적적하구나 / 滿庭花落寂無人
학 타고 신선 놀이에 상전벽해가 몇 번인고 / 鶴背仙游隔幾塵
푸른 새가 다시 수건 물어가는 게 예쁘구나 / 可憐靑鳥更銜巾
향 사르고 고요히 앉아 무극을 연구하노니 / 焚香靜坐參無極
안락와 안에 스스로 거처하는 사람이 있네 / 安樂窩中自有人
먼지 없는 방 안엔 거문고와 서책뿐이요 / 素琴黃卷室無塵
머리 위엔 도연명의 술 거르던 두건을 썼네 / 頭上淵明漉酒巾
늙어 가매 담박한 생활이 되레 맛이 있거니 / 淡泊老來還有味
희황 이상 시대 사람이 바로 그 누구던고 / 羲皇上世是何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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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제비
제비가 예전처럼 우리 집에 돌아와서는 / 燕子歸來似舊時
처마에서 말을 하나 누가 알아들을꼬 / 簷間致語有誰知
지난해에 내 새끼 잘 데리고 떠났으니 / 前年引得吾雛去
주인의 끝없는 깊은 은혜에 사례한다네 / 爲謝主恩深莫涯
주인의 투병 생활이 그 당시와 똑같다면 / 主人臥病似當時
창 아래서 끙끙 앓던 걸 내가 잘 아는데 / 窓下呻吟我悉知
오늘 돌아와 보니 능히 말을 탄다 하여 / 今日歸來能上馬
끝없이 기쁜 뜻을 지지배배 말하려 하네 / 喃喃欲說喜無涯
하찮은 저 날짐승도 천시에 순응하여 / 微微羽族順天時
만리 길 돌아올 제 길을 스스로 알았네 / 萬里歸來路自知
다만 한스러운 건 주인이 워낙 바보라 / 只恨主人癡是白
남은 힘이 없어 생계 마련도 못함일세 / 不將餘力辦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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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옛 놀이를 기록하다.
수많은 산속에서 객사를 찾으니 / 亂山尋客舍
작은 집이 마치 서재 같았는데 / 小館似書齋
반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 盤饌酸寒雜
대련 시구는 교졸이 섞이었네 / 詩聯巧拙偕
덧없는 인생은 전어처럼 날뛰고 / 浮生鱣潑潑
군자는 봉황처럼 화평하였어라 / 大雅鳳喈喈
그 옛날 노닐던 곳을 회상하니 / 回首舊游處
자세한 담론이 서로 어울렸었네 / 極談還似諧
바깥문을 누가 일찍이 닫았으랴 / 外戶誰曾閉
나그네가 아무데나 먹고 자고 하여 / 行譙寄食眠
곧장 구로의 언덕으로 좇아서 / 直從鷗鷺岸
멀리 견양의 지경도 향했었네 / 遠向犬羊天
한번 누운 뒤로 이젠 병이 많으니 / 一臥今多病
소리 높이 읊은 시는 또 몇 연이던고 / 高吟又幾聯
지금은 강남의 좋은 풍경이 / 江南好風景
반드시 왕년 같지는 않으리라 / 未必似年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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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담장 위의 풀[墻上草]을 읊다. 3수(三首)
담장 위는 편평한 땅이 아니로되 / 牆上非平地
네 생명도 다른 식물과 똑같이 / 渠生與物同
한 하늘 비이슬을 골고루 입고 / 一天均雨露
이삭 드리워 추풍에 애교 부리네 / 垂穎媚秋風
미물도 스스로 성취할 줄 알지만 / 物微還自遂
척박한 땅에선 전혀 다른 법인데 / 地瘠絶無同
하늘 가득 눈보라만 두려워할 뿐 / 祗怕漫天雪
악목의 거센 바람을 어찌 알리오 / 那知惡木風
누가 옛날에 못 고기를 아끼었던가 / 池魚誰昔愛
담장의 풀도 완연히 그와 같구나 / 牆草宛相同
태극은 원래 밖이 없는 것이라서 / 大極元無外
풀끝에서도 비바람이 일어난다네 / 毫端有雨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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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말이 없다.
연래에 내 마구간은 잡초에 묻혀 버렸는데 / 弊廐年來沒碧蕪
아직도 문밖에 꼴 가져오는 게 놀라워라 / 尙驚門外致生芻
비록 내가 준마를 능히 얻는다 할지라도 / 縱然騕褭吾能得
왕량은 세상에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인 걸 / 久矣王良世已無
북극은 하늘이 높아 해와 달이 걸려 있고 / 北極天高懸日月
남방은 바람이 급해 강호를 움직이는데 / 南邦風急動江湖
병들어 불편한 이 몸은 앉았는 데 능하여 / 病餘躄甚工深坐
홀로 책상 기대어 때로 소리 높여 읊노라 / 時復高吟獨倚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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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 이색(李穡)
큰 소리로 노래하다.
소리 높은 노래는 귀신이 위에 있는 듯한데 / 高歌鬼神森在上
구름 나는 하늘엔 가을 기운 상쾌도 해라 / 雲飛碧天秋氣爽
소리가 슬픈 건 내 몸을 슬퍼한 게 아니라네 / 聲悲不是悲我身
내 몸이야 늙었는데 어찌 건장할 수 있으랴 / 我身老矣何由壯
다만 보건대 예로부터 물은 동으로 흐르고 / 但看古來水東去
백이 숙제와 도척도 모두 황천객이 되었네 / 夷齊盜跖俱黃壤
양원의 꾀꼬리는 봄바람에 울어대고 / 黃鸝梁苑啼春風
밝은 달빛은 술잔 속에 환히 비치었는데 / 明月影入金尊中
지금은 적막해라 누구에게 물어를 볼꼬 / 如今索莫向誰問
목동의 피리 내 낀 풀만 서로 아득하구려 / 牧笛煙草相溟濛
늙은이 가슴속은 예전부터 뜻이 컸지만 / 老夫胸中久磊落
이젠 쓸쓸한 백발에 두 뺨만 붉을 뿐이네 / 白髮蕭蕭雙頰紅
영웅은 이미 떠나서 묵은 자취일 뿐이요 / 英雄已矣但陳跡
하늘 가득 가을빛은 공연히 적적키만 한데 / 秋色滿空空寂寂
구름 밖에 나는 변새 기러기의 한 소리에 / 一聲塞雁雲外飛
머리 돌리니 먼 하늘만 정히 짙푸르구나 / 回首遼天正凝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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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즉사(卽事)
빗방울은 드문드문 옷을 적시려 하는데 / 雨點疏疏欲濕衣
구름 새로 해 비치고 묵은 구름 돌아가네 / 日光穿漏宿雲歸
산꼭대기에 재배한 건 다른 소망이 아니라 / 山頭再拜無他望
반열 속에 온건하여 시비를 단절하잔 걸세 / 穩涉班行絶是非
과장에서 머리 끄덕인 주의에게 사례하고 / 點頭場屋謝朱衣
어사가 되어선 물망이 한 몸에 돌아왔으니 / 袍笏班心物望歸
시서를 가지고 천하게 사용하지 말아야지 / 莫把詩書作芻狗
분명히 귀신과 사람이 다 같이 책망하리라 / 明明鬼責與人非
황향의 베개 부채질과 노래자의 채색옷이여 / 黃香扇枕老萊衣
이 사람이 없으면 누구와 함께한단 말인가 / 不有此人誰與歸
충효는 집안에서 반드시 노력해야 하나니 / 忠孝家中須努力
일호라도 미진하면 일이 모두 글러지리라 / 一毫未盡事皆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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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卽事)
쟁반 가득 고운 모래 깔아서 지면 만들고 / 細沙滿槃鋪紙面
한 자 길이의 보릿짚을 붓 삼아 써내려라 / 麥秸盈尺鳴筆鋒
아침마다 어린애가 여기에 글자 익히고 / 朝來小兒習作字
후일엔 명광궁에서 책문에 답안을 쓰리 / 他日對策明光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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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금강산가(金剛山歌)
금강산엔 일찍이 느릅나무가 자랐는데 / 金剛山中楡樹長
서해에서 종이 떠올 땐 하늘이 아득했었고 / 鍾浮西海天茫茫
서역의 황금 부처 오십하고도 또 세 구가 / 金人五十又三軀
바로 이 나무 아래에 천당을 열었다 하나 / 直指樹下開天堂
때와 역사 상고할 제 참으로 믿기 어려워라 / 考時按籍信難信
일이 진정 해괴하고도 황당하기만 하네 / 事出詭怪仍荒唐
천축의 신통한 술법은 세상에 뛰어났으니 / 竺乾神變自絶世
더구나 바닷길에 배를 통하는 정도임에랴 / 海路況可通舟航
동방 사람은 젖먹이도 범패를 다 외거니 / 東人口乳已梵唄
늙은이야 그 누가 불법을 찾지 않을쏜가 / 白頭誰不求西方
이 산을 세 번 오르면 삼도를 면한다는 / 三登此山免三塗
이 말을 모두 금강처럼 확고하게 믿지만 / 此語堅確齊金剛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는 건 곧 내 본성이니 / 金剛不壞有我性
세계가 멸하여도 금강산은 공중에 감춰 있으리 / 世界毁滅山向空中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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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천둥 치며 비가 오다.
강산은 절로 뛰어난 경계인데 / 江山自絶境
뇌우는 깊어 가는 가을에 몰아치네 / 雷雨欲窮秋
늙은 날엔 반겨주는 이가 적고 / 老日少靑眼
동년 중엔 머리 센 이가 많은데 / 同年多白頭
내 회포만 공연히 걱정스러울 뿐 / 寸懷徒耿耿
하늘의 도는 아득하기만 하구나 / 天道儘悠悠
내 일찍이 서운관에 있었거니 / 曾忝書雲觀
조정의 근심거리를 잘 알고말고 / 深知廊廟憂
검은 구름이 푸른 하늘에 걷히고 / 黑雲收碧落
밝은 태양이 맑은 가을을 비추니 / 白日照淸秋
작은 시내 밑바닥에 모래는 맑고 / 沙淨小溪足
높은 나무 끝에 잎은 선명하구나 / 葉明高樹頭
흐르는 세월은 한가함 속에 급하고 / 流年閑裏急
지난 일은 꿈속에 한가롭기만 하네 / 往事夢中悠
하늘의 뜻은 정히 어디에 있는지 / 天意定安在
온갖 근심에 한 치 마음만 타누나 / 寸心煎百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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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식죽음(食粥吟)
안공이 죽 먹었는데 감히 밥 짓는 걸 말하며 / 顔公食粥敢言炊
목은은 양식이 떨어졌는데 감히 죽을 말하랴 / 牧老絶糧敢言粥
밝은 창 아래서 송궁문을 짓고자 하여 / 明窓擬作送窮文
붓 놓고 길이 읊으며 괜히 천장만 쳐다보네 / 閣筆長吟空仰屋
소년 시절 산사에서 글을 읽을 적에는 / 少年讀書山寺中
승려들과 분명히 얼굴을 서로 마주했는데 / 鉢民分明對眉目
나물 뿌리도 맛이 있어 입에 향기 느끼면서 / 菜根有味齒頰香
스스로 천종록을 당장 이룰 수 있다 했더니 / 自謂立致千鍾粟
누가 알았으랴 작위가 이미 봉군이 된 터에 / 誰知爵位已封君
죽에 비친 백발을 때로 다시 보게 될 줄을 / 白髮粥中時更覿
늙은 아내는 내 병약한 몸을 불쌍히 여겨 / 老妻悶我病軀瘦
옥같이 하얀 고미를 특별히 얻어왔기에 / 特丐錭胡白如玉
기름이 어린 듯 번드르한 죽을 들이마시고 / 凝脂流滑入喉去
처마 밑에서 볕 쬐며 내 배를 두드리노라 / 曝背茅簷叩吾腹
그러나 하인들은 못 먹어 낯빛이 초췌하니 / 蒼頭赤脚色憔悴
내 생활력 없어 잘 기르지 못한 게 부끄럽네 / 愧我生疏不能育
일생 동안 글을 읽었지만 사리를 알지 못해 / 讀書一生不識事
가정 건사도 어두운데 더구나 나랏일이랴 / 尙昧持家況當國
처자 이끌고 산중으로 가는 게 합당할 텐데 / 政合提携山中歸
산중에는 기화요초가 지금 정히 푸르리라 / 山中瑤草今正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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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회포를 서술하다.
나라 동쪽의 산수는 조선에서 으뜸이라 / 國東山水冠朝鮮
찾아 유람할 뜻 가진 지 이미 수년이러니 / 有意高尋已數年
승려에게 물어서 현화사엘 들르고 싶고 / 欲問瑜伽向玄化
수묵 산수화 구하러 황해도에도 들어가리 / 因求水墨入黃延
의상대 꼭대기에선 길이 휘파람을 불고요 / 義相絶頂長舒嘯
영은사 깊은 절벽에선 잠시 좌선을 하고 / 靈隱深崖蹔坐禪
곧장 박연의 천 척 높은 폭포를 빌어서 / 直借朴淵千尺瀑
무량 세월 생사 인연을 깨끗이 씻어보리 / 滌淸塵劫死生緣
병든 뒤론 욕정 잊고 치발조차 쇠잔한데 / 病後忘情齒髮凋
온 집안이 녹 먹으니 청조에 감사하노라 / 渾家食祿謝淸朝
때로는 먼지 자욱해 쑥대 문을 꼭 닫는데 / 有時塵暗閉蓬戶
어느 곳에서 달 밝은 밤에 퉁소를 부는고 / 何處月明吹洞簫
깊은 못 늙은 용을 어찌 낚을 수 있으랴 / 潭底老龍寧可釣
산꼭대기 봉황은 본디 불러도 안 온다네 / 岡頭瑞鳳本非招
다만 지금 우뚝한 도를 누구에게 물을꼬 / 只今卓爾從誰問
본래에 시골서 한 표주박 물을 마시었네 / 陋巷由來飮一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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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두문불출하다.
조용히 배회하며 세상일 관여 않고 / 偃蹇非關世
오래도록 들어앉아 끙끙 읊노라니 / 呻吟久杜門
죽정에선 바둑 두는 소리 울려오고 / 竹亭棊送響
이끼 낀 길엔 나막신 자국 보이네 / 苔逕屐留痕
강산엔 세월이 저물어가는데 / 歲月江山暮
천지간엔 풍진이 어둡기만 하구나 / 風塵天地昏
적막해진 천재 아래에 / 寂寥千載下
악명 남긴 걸 어찌 논할 것 있으랴 / 遺臭更何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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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만세(晚歲)
만년에 숨어 살면서 태평을 누리다 보니 / 晚歲幽居享太平
다시 경영해야 할 남은 일이 전혀 없네 / 更無餘事可經營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바로 소리와 빛이요 / 淸風明月是聲色
흐르는 물 뜬구름은 내 성정으로 삼았네 / 流水浮雲爲性情
주공 공자의 문장은 늘 꿈속에 상상커니와 / 周孔文章頻夢想
요순의 덕업은 혹 이뤄볼까도 생각하노라 / 唐虞德業或思成
남창 아래 이불 쓰고 분향하고 앉았노라니 / 南窓蒙被焚香坐
끝없는 천지간에 회고의 정이 생기누나 / 天地悠悠古意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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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세화(歲畫) 십장생(十長生)을 읊다.
십장생은 곧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 지초[芝], 거북, 학(鶴), 사슴이다.
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지금이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
푸르고 푸른 하늘은 밤낮으로 회전하고 / 圓象蒼蒼晝夜旋
산하 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와 같은데 / 山河大地海中船
해 바퀴는 만고에 멈추는 곳이 없건만 / 日輪萬古無停處
달이 혹 앞서고 뒤서는 게 가소롭구나 / 可笑姮娥或後先
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형세 월등히 달라져 / 觸石漫空勢迥殊
신기루와 하늘의 형체를 몽땅 감춰 버리네 / 藏形海市與天衢
말고 펴고 하여 사람 눈을 미혹하겐 하지만 / 雖然舒卷迷人眼
주룩주룩 비 내리어 만물을 소생시킨다오 / 興雨祈祈萬物蘇
기수에 목욕한 당일 번잡한 가슴 씻었으니 / 浴沂當日洒煩襟
문득 긴 흐름이 고금에 뻗치었음을 알겠네 / 便識長流亘古今
한번 중니의 냇가의 탄식을 받음으로부터 / 一領仲尼川上嘆
바다를 봐야 깊은 줄 안다는 말 인정 않노라 / 不容觀海始知深
오악이 죽 연이어서 뭇 산을 압도하건만 / 五嶽聯綿壓衆山
오직 모래와 흙으로만 둥글게 뭉쳐졌는데 / 只將沙土肉成團
누가 알리요 돌이 한가운데 골격이 되어 / 誰知有石中爲骨
물이 할퀴고 천둥이 쳐도 끄떡하지 않는 걸 / 水囓雷搖兀自安
북쪽 낭떠러지에 한 그루 소나무가 있어 / 北崖有箇一株松
늙은 내가 이거하여 두 겨울을 났는데 / 老我移居再見冬
더구나 이 용만이 곡령을 조회하는 곳엔 / 況是龍巒朝鵠嶺
하늘 찌르는 소나무들이 절로 겹겹임에랴 / 拂雲蒼翠自重重
일찍이 기억컨대 집에 대 심고 완상할 제 / 曾記幽居種竹看
담장 달빛 섬돌 바람이 찬 기운 보내왔네 / 月牆風砌送微寒
나이 구십 되거든 기수가의 대를 바라보며 / 行年九十瞻淇奧
앉아서 무성함 읊고 다시 관을 정제하리 / 坐詠猗猗更整冠
예천과 주초는 바로 아름다운 상서인데 / 醴泉朱草是嘉祥
사책에 연서하여 나란히 광채를 내누나 / 史冊聯書對有光
어찌하면 노인들처럼 깊은 산에 은거하여 / 何似老人曾鵠去
이걸로 요기하고 한실을 붙들 수 있을꼬 / 療飢扶得漢明堂
멀리 생각건대 용도는 하수에서 뛰어나왔고 / 緬想龍圖躍在河
낙귀는 하늘이 내려 왕가의 상서 되었는데 / 洛龜天錫瑞王家
신선 거북으로 표출된 이후부터는 / 自從表出神仙後
문득 산중에 들어가 해의 정기만 삼키누나 / 却入山中嚥日華
삼신산은 아득해라 그곳이 어드메이뇨 / 三山渺渺是何方
태선을 타고 옥당엘 들어가고 싶어라 / 欲駕胎仙叩玉堂
한스러운 건 평생에 도골이 못 된 내가 / 却恨平生無道骨
부질없이 세인들의 사모함을 받음일세 / 謾敎塵世慕昻藏
진궁에서 말 대신한 일은 이미 그릇되었고 / 代馬秦宮事已非
오대 아래 놀던 곳엔 또 석양이 비끼었네 / 吳臺游處又斜暉
담장 넘어 짐짓 산중의 절로 들어가서는 / 踰牆故入山中寺
천하가 분분하여 재앙 기틀이 그지없었네 / 天下紛紛足禍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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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일을 기록하다.
하늘에 연한 군함들은 새매처럼 비양하고 / 連空畫鷁似鷹揚
깃발들은 햇빛 가려 바다 기운도 서늘하네 / 蔽日旌旗海氣涼
이미 바람 서리로 숙살의 가을을 당했는데 / 已遣風霜當肅殺
다시 파도를 일으켜 군함 뱃길을 돕누나 / 更敎波浪助騰驤
오경이라 은하의 빛은 스스로 옮겨 가고 / 五更自動星河影
만리 멀리 일월의 빛은 똑같이 비추이네 / 萬里同浮日月光
푸릇푸릇한 여러 섬에 연기 안개 걷히자 / 島嶼抽靑煙霧卷
고래 벤 소리가 동녘 바다를 진동하누나 / 斬鯨餘響振扶桑
군령 엄격한 군사들은 사기가 양양하여 / 令嚴軍士氣揚揚
일제히 도성문 출발할 제 아침 해가 서늘하네 / 齊發都門曉日涼
나라 세운 몇 년 동안은 범처럼 뛰기만 하고 / 闢國幾年思虎躍
하늘에 솟은 만곡선은 용이 날듯 달리어라 / 凌空萬斛駕龍驤
깃발은 높이 흔들려 하늘빛이 희미하고 / 旌旗高拂迷天色
창칼은 서로 부딪쳐 번갯불이 번쩍이네 / 劍戟相磨閃電光
앞으로는 천리만리 기나긴 바닷가에 / 從此海濱千萬里
봄바람 간 곳마다 모두 농상을 일삼으리 / 春風處處盡農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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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향 산천을 생각하다.
등잔 앞에서 자주 길 떠난 꿈을 깨어라 / 夢斷燈前數去程
천리 밖 내 고향은 바닷가의 성이로세 / 故鄕千里海邊城
숭정사에 모인 솔은 구름 속의 그림자요 / 松團崇井雲中影
장암진 부딪치는 조수는 달빛 아래 소리로다 / 潮打長巖月下聲
삼소의 풍류는 이미 묵은 자취이거니와 / 三笑風流已陳跡
사명은 적막해라 미치광이 이름뿐이네 / 四明寂寞但狂名
녹문산 무덤 오를 날이 그 어느 날일꼬 / 鹿門上冢知何日
조용히 앉으니 끝없는 감개가 생기누나 / 靜坐悠悠感慨生
해 비낀 창 그림자는 또 동으로 옮기는데 / 日斜窓影又移東
높은 집 적막함 속에 가만히 앉았노라니 / 兀坐高齋寂寞中
남쪽 마을엔 옷 다듬이질 소리가 급하고 / 南里搗衣砧杵急
서쪽 이웃은 주연 열어 술맛이 진하겠네 / 西隣展席酒杯濃
귀밑가의 세월은 하늘이 늙을 지경이요 / 鬢邊歲月天將老
마음속의 강산은 길이 막히려고 하누나 / 心上江山路欲窮
후일에 유고를 누가 다시 찾아줄런고 / 遺藁後來誰復索
글 지어 써놓은 이는 모두가 영웅이로세 / 操觚染翰盡英雄
총각 시절 집 나와서 지금 백발이 되도록 / 束髮出游今白頭
대중 속에 섞여 서로 따르는 것만 알았네 / 只知唯唯雜悠悠
읊조림 가운데는 길고 짧은 시구가 있고 / 吟中短句仍長句
꿈속에는 새 시름 묵은 시름이 갈마들 제 / 夢裏新愁替舊愁
두어 가닥 백발은 밝은 거울에 드러나고 / 數莖白髮生明鏡
만겹의 청산은 작은 누각에 들어오누나 / 萬疊靑山入小樓
후일의 나쁜 평판은 모두 관섭지 않노라 / 他日譏評都不管
다시는 춘추를 이을 큰 솜씨가 없을 테니 / 更無大筆繼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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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이달 보름에 월식(月蝕)이 있을 예정이므로,
11일에 구정(毬庭)에서 습례(習禮)를 하고 이 시를 짓다.
팔관회의 예 거행이 동짓달로 정해졌는데 / 八關行禮立子月
선왕 승하 일주년이라 음악 교열 정지하니 / 先王周年停閱樂
성원이며 대합이며 고원의 관원들이 / 省院臺閤誥苑官
잠시 분주함 접고 두 다리 펴고 누워서 / 暫輟鳧趨臥伸脚
진한 술과 고기에 취포하여 즐겁게 놀건만 / 醉醲飽鮮競繁華
나는 외로이 읊조려라 되레 적막키만 하네 / 孤吟冷嘯還寂寞
해마다 온갖 관사가 어찌 이것을 알았으랴 / 年年百司豈知此
다만 격구장에서 습례가 비롯되었던 걸 / 但自毬庭習禮始
사천감은 아뢰기를 장차 월식이 있을 텐데 / 司天奏言月有蝕
진행할 뿐 후퇴 없음을 역사에 상고했다네 / 進而無退稽諸史
송악산은 개벽 이래로 우뚝하기만 하고 / 松山峩峩開闢來
강토는 천만년을 끝없이 이어질 터이니 / 蘿圖綿綿千萬祀
팔관회의 대례도 함께 끝없이 거행하여 / 八關大禮與無窮
우리 동방 보전해서 천자를 섬겨야 하리 / 保有東方事天子
성명한 천자가 방금 인을 고루 베푸시네 / 天子聖明方一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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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봉요가(逢堯歌)
선왕이 높은 담장에 오른 송골매를 잡으니 / 先王射隼登高墉
송악산에 푸른 솔이 우뚝함을 재차 보겠네 / 再見鵠嶺浮靑松
병든 신하 가엾게 여기고 가득참 경계하여 / 憐臣抱病戒盈滿
대광을 특별히 내리고 한산에 봉작하시니 / 大匡特賜韓山封
안심하고 조석으로 탕약을 마시고 있지만 / 安心朝夕仰湯藥
거울 속엔 이따금 쇠한 얼굴이 비참도 한데 / 鏡裏往往悲衰容
상의 은총은 거듭 이르러 몸을 흠뻑 적셔라 / 上恩洊至浹肌骨
국사 담당관의 승진에 삼중까지 더해졌네 / 進領史事加三重
아무리 생각해도 보답할 계책 전혀 없으니 / 沈思報答百無計
청컨대 화축 본받기를 가슴속에 새기리다 / 請效華祝銘心胸
밝디밝은 해와 달은 높은 하늘 멀리 있고 / 明明日月九霄迥
봉래산의 구름 기운은 나는 용을 따르누나 / 蓬萊雲氣隨飛龍
용사들은 열 지어 멀끔한 창날을 휘두르고 / 爪牙布列麾白矛
문물 제도를 개혁할 땐 황종을 울리도다 / 文章損益鳴黃鐘
오동엔 장차 덕을 살피는 봉이 깃들 게고 / 梧桐將棲覽德鳳
서릿바람은 매섭게 쏘는 벌을 곧 쓸어버리리 / 霜風直掃辛螫蜂
늙은 신하는 문을 닫고 공덕을 찬송하노니 / 老臣閉戶誦功德
내가 친히 요순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한가 / 何幸堯舜躬親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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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느낌이 있어 읊다.
근고하던 당년에 오랫동안 문에 기댔어라 / 勤苦當年久倚閭
상제를 마치려고 묘 곁에 여막을 지었는데 / 欲終憂制墓傍廬
성상의 조칙에도 판결을 바꾸기가 어려워 / 綸言天陛難移判
조정에 공연히 충심의 글만 올렸을 뿐이네 / 血懇都堂謾上書
가을달 봄바람 속에 안색은 초췌해지고 / 秋月春風顔色悴
조석 반찬 부추 소금에 치아는 듬성도 해라 / 暮鹽朝薤齒牙疏
다만 적선한 나머지의 복을 받은 때문에 / 只緣積善流餘慶
올해 둘째 아들에게 좋은 벼슬 제수되었네 / 仲子今年有美除
끝없는 동해가 한없이 미려로 빠져 나가듯 / 東海無涯洩尾閭
앓고 나선 욕심도 많아 궁려에서 탄식하네 / 病餘多欲嘆窮廬
회포는 잔뜩 커서 자주 술을 불러 마시고 / 情懷磊落頻呼酒
시력은 흐릿하여 글 읽기를 게을리하네 / 目視昏花懶讀書
누각 밑 흰 구름 속엔 산이 희미하게 비치고 / 樓下白雲山隱映
뜰 안의 푸른 이끼 속엔 나무가 무성하구나 / 庭中蒼蘚樹扶疎
남쪽으론 가는 곳마다 몸을 의탁할 만한데 / 南游到處堪棲托
올해도 못 돌아가고 한 해가 또 저물어가네 / 未賦歸歟歲又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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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옛 놀이를 추억하다.
서로 마주해 말을 잊고 석양에 이르러라 / 相對忘言到落暉
매양 아이가 사립에서 기다린 게 가련했네 / 每憐稚子候柴扉
산중에 길은 어둡고 이슬조차 많은 때에 / 山中路暗仍多露
고상한 사람의 짚신을 빌려서 돌아왔었지 / 借得高人不借歸
아침 햇살 등지고 띠 처마 밑에 홀로 앉으니 / 茅簷獨坐負朝暉
강촌 물이 사립 중동에 찬 게 문득 생각나네 / 忽憶江村水半扉
큰 고기 잡은 어부는 자주 크게 외치면서 / 得雋漁師頻大叫
석양에 푸른 삿갓 벗어젖히고 돌아왔었지 / 夕陽披却綠簑歸
아득한 이 강산에 또 저녁 해는 비꼈어라 / 江山渺渺又斜暉
백발의 이 몸은 연래에 홀로 사립 닫았는데 / 白髮年來獨掩扉
어찌 뜻했으랴 뿌연 먼지가 얼굴 때릴 제 / 豈意軟紅塵撲面
문득 파리한 말 타고 조정에 갔다 올 줄을 / 却騎瘦馬赴朝歸
[주-D001] 말을 잊고 :
대화를 하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깊은 우의(友誼)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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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어제저녁에 마을의 불량배가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를 활로 쏘았으므로, 그 화살을 뽑아 버렸으나, 밤중에 죽고 말았다. 개의 죽음을 슬피 여겨 이렇게 기록하는 바이다.
누런 개가 연래에 사립문을 지키면서 / 黃狗年來守蓽門
적막한 대낮부터 황혼까지 계속했는데 / 寥寥白晝到黃昏
꼬리 흔들며 손 따라간 적은 행여 없었고 / 不曾搖尾隨賓客
편지 전하여 형제간에 알리려고만 했었네 / 祗欲傳書報弟昆
갑자기 당한 앙화는 제가 지은 게 아니거니 / 一旦禍機非自蹈
다생의 묵은 빚을 누구와 함께 논할거나 / 多生宿債與誰論
온 집안이 어진 마음으로 탄식을 하는지라 / 闔家嘆惜仁心在
붓 잡고 끝없이 위하여 원통함 씻어 주노라 / 把筆無端爲洗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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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 이색(李穡)
느낌이 있어 읊다.
인생 백 년이 허둥지둥 마치 꿈속만 같아 / 百年鼎鼎夢魂間
술을 만나면 우선 스스로 위로할 뿐이네 / 樽酒相逢且自寬
후미진 곳에 병조차 깊어 내왕하는 이는 적고 / 地僻病深來往少
가난한 집에 벼슬은 높아 가고 멎기도 어렵네 / 家貧官大去留難
산중의 스님과 대화하는 건 그대로이거니와 / 山中僧話依然在
강가에 은거할 꿈은 저버린 지 하 오래로세 / 江上鷗盟久矣寒
토전을 하사받아 돌아가기도 정말 좋거니 / 賴賜土田歸正好
벽라의 밝은 달은 흰 구름 끝에 비추리라 / 薜蘿明月白雲端
두어 칸 초가집에 세 길은 황량한데 / 三逕荒涼屋數間
병든 몸에 허리띠는 날로 헐렁해지네 / 病軀帶眼日來寬
반평생 동안 평상의 빚은 면치 못하나 / 半生不免尋常債
무리 떠나니 크고 작은 어려움은 없구려 / 獨立曾無大小難
어찌 문장이야 옥같이 깨끗하리오마는 / 豈有文章如玉潔
다만 관패가 금한을 꺼리는 건 아노라 / 祗知冠佩忌金寒
중화의 기는 넘쳐서 원래 흠결이 없나니 / 中和洋溢元無欠
다만 명성 갖고 양단을 증험할 뿐이네 / 只把明誠驗兩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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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산거(山居)에 대하여 그리움이 있어 읊다. 3수(三首)
깊은 산속에 있는 별장을 / 別墅山深處
밝은 달밤에 찾아갔다가 / 相尋踏月明
취해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 醉眠天已白
닭고기 기장밥에 옹두가 맑구나 / 鷄黍瓮頭淸
산굽이엔 나무 숲이 무성하고 / 山曲樹林暗
들 다리 밑엔 시냇물이 맑아라 / 野橋溪水明
옷이 다 젖는 것도 안 꺼리노니 / 不嫌衣盡濕
이슬이 십분 맑기 때문이라네 / 露氣十分淸
봄 적삼으로 푸른 산을 오르고 / 輕衫凌積翠
짧은 노로 달빛 물결을 치노니 / 短棹擊空明
인경을 스스로 분간키 어려워라 / 人境自難辨
방촌의 마음이 절로 맑아지누나 / 靈臺方寸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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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군자의 지킴[君子守]
군자는 지킴이 가장 큰 것이라 / 君子守爲大
지킴이 아니면 몸을 보전 못하고 / 身非守不全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 一毫或未盡
아득한 저 하늘에 거슬리나니 / 邈然違彼天
순순히 법도를 제대로 실천하여 / 循循蹈規矩
빙연에 임하듯 두려워해야 하리 / 戰戰如氷淵
당조에 재상 권력을 쥐었다가도 / 當朝秉鈞衡
한번 기울면 재앙이 미치나니 / 一傾災禍延
슬기로운 이는 유종의 미 거두어 / 智者善其後
국운이 끝내 어긋나지 않는다네 / 國步終不愆
군자가 조금만 스스로 더럽히면 / 君子少自汚
사관의 붓이 그대로 기록하리니 / 史筆仍牽聯
가장 큰 지킴을 힘써 행하여 / 勉哉守爲大
즐거움 속에 천수를 마쳐야 하리 / 樂以終天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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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일을 기록하다.
최옹은 늙을수록 건강하여 / 崔翁老彌健
튼튼한 치아를 스스로 자랑하되 / 自誇牙齒牢
단단한 물건도 대번 씹어 깨뜨려서 / 一嚼破梗物
마치 봄 얼음을 녹이듯 하고요 / 有如春氷消
해마다 아들을 낳았는데 / 年年懸桑弧
큰 아이는 매우 예쁘게도 운다네 / 大兒啼甚嬌
빠른 걸음은 나는 새와 같아서 / 飛步疾如鳥
몸을 떨쳐 높은 다리를 달렸고 / 挺身走危橋
평생에 약을 먹지는 않았어도 / 平生不服藥
신선과 기가 서로 교합하였네 / 氣與神仙交
회산은 당대의 걸출한 문호로서 / 檜山當時傑
문하에 수많은 호걸이 따랐었네 / 門下趨群豪
최옹은 한 번 무릎을 꿇고 앉으면 / 崔翁一屈膝
닭이 울 때까지 밤새도록 앉았다가 / 夜坐鷄膠膠
잠에서 깨지 못한 내가 미우면 / 嗔我睡未醒
때로 범패 소리를 크게 외쳐 대고 / 梵唄時大號
벌떡 일어나 문을 나가곤 하건만 / 徑起出門去
온 나라에서 누가 그를 불러 주랴 / 擧國誰見招
돌아오면은 배부르게 밥을 먹고 / 歸來飽喫飯
나와 함께 이리저리 배회한다네 / 與我同逍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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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눈
한 등잔 앞에 오경의 쇠잔한 꿈을 꾸면서 / 五更殘夢一燈前
하늘 가득 눈 내리는 소리를 누워 듣노니 / 臥聽蕭蕭雪滿天
도를 희망하나 아직도 귀착지는 희미하고 / 望道尙迷歸宿地
전원이 있어 한갓 귀거래사나 읊을 뿐이네 / 有田空詠去來篇
솔 위의 외로운 학은 응당 말이 없거니와 / 松棲獨鶴應無語
바위굴 속의 스님은 홀로 좌선을 하누나 / 巖竇孤僧自坐禪
오직 미인이 낮은 소리로 노래하는 곳에선 / 唯有紅綃低唱處
산꼭대기 접어든 오솔길은 알지 못하리 / 不知樵逕入危巓
봄바람이 눈을 불어 사립문을 두드리매 / 春風吹雪打柴扉
홀로 앉아 큰소리로 식미를 읊조리노니 / 獨坐高聲詠式微
격조 낮아 좋은 시구 없음은 자신하지만 / 自信格卑無好句
길 미끄러워 위기가 많음을 누가 알리오 / 誰知路滑足危機
처마 사이엔 매화가 조각조각 떨어지는 듯 / 簷間片片梅花落
문밖엔 아스라이 버들개지가 나는 듯하네 / 門外茫茫柳絮飛
이는 다 진부한 말이니 힘써 버려야 하나 / 摠是陳言宜務去
다른 말도 매양 서로 어긋난 게 혐의롭구려 / 却嫌他語每相違
눈 속에 두어 집이 강마을 임해 있는데 / 雪裏數家臨水村
밥 짓는 연기 아득해라 또 황혼이로세 / 炊煙漠漠又黃昏
돌아가 쉬어서 고인의 자취 잇고 싶은데 / 歸休欲繼古人跡
칙명을 내려라 다시 성상의 은혜 입었네 / 敕賜更蒙明主恩
주렴을 교묘히 뚫고 들어옴은 간첩 같고요 / 巧入簾櫳如細作
천지를 널리 싸안음은 강제로 삼킨 듯하구나 / 闊包天地似強呑
봄바람에 응당 여강 물이 벌창해지거든 / 春風應漲驪江水
일엽편주에 편히 앉아 곧장 문에 닿으리 / 穩坐扁舟直到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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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3수(三首)
근년엔 겨울이 오히려 다숩고 / 近歲冬猶暖
새봄에는 눈이 또 내리누나 / 新春雪又來
옥루는 자리를 따라 우뚝하고 / 玉樓從座聳
흰 띠는 수레를 좇아 돌아오네 / 縞帶逐車回
고각은 멀리 바라보기 어려우나 / 高閣難遙望
빈 처마는 홀로 짝하기 좋구려 / 虛簷好獨陪
나귀 등의 흥취는 가련도 해라 / 可憐驢背興
편히 앉아서 깊은 술잔 기울이네 / 穩坐倒深杯
은자가 문 닫고 들어앉았는데 / 幽人閉戶坐
함박눈이 하늘 가득 내리누나 / 密雪滿空來
다숩던 겨울을 깨끗이 쓸어가고 / 淨掃冬溫去
응당 따뜻한 봄을 재촉하겠지 / 應催春暖回
매화 떨어 진 건 세속이 좋아하지만 / 落梅知俗好
부러지는 대는 누가 받쳐줄쏜가 / 折竹有誰陪
공연히 날리는 버들개지에 비겼더니 / 謾擬因風絮
되레 바다에 나간 편주와 같구려 / 還如就海杯
누추한 시골에 봄이 오려 하는데 / 陋巷春將至
새해에는 손이 일찍 찾아왔네 / 新年客早來
흰옷 입은 선녀는 한만하게 노닐고 / 素娥游汗漫
흰 학은 빙빙 돌아 나는구나 / 白鶴弄低回
밤이 되면 홀로 듣기에 알맞으나 / 入夜偏宜聽
갠 날의 감상은 누구와 짝할꼬 / 賞晴誰與陪
평생을 두고 고심하여 읊는 곳에 / 平生苦吟處
어찌 다시 은잔을 셀 것 있으랴 / 肯復數銀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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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大雪).
목옹은 사는 것이 쓸쓸한지라 / 牧翁居索寞
원상이 자주로 예를 베푸네 / 圓相禮頻煩
왕자의 우레는 좌중을 놀래키는데 / 王子雷驚座
원생은 눈 속에 문을 꼭 닫았네 / 袁生雪擁門
강산엔 나는 새도 끊어졌는데 / 江山鳥飛絶
여항엔 말 울음소리 들레누나 / 閭巷馬來喧
백화가 만발하길 손꼽아 기다려서 / 屈指花如海
화려한 집에 또 주연을 베푸세나 / 華堂更置尊
설창이 뼈에 사무치게 청결하여 / 雪窓淸到骨
마음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었네 / 心地滌餘煩
더구나 공이 술을 가져왔거니 / 況有公携酒
어찌 내 문을 그대로 닫아둘쏜가 / 寧容我閉門
번화함은 똥을 쓸듯이 제거하고 / 繁華從糞掃
적막 속에 시끄러운 속진 피했으니 / 寂寞避塵喧
다시 기약하세나 밝은 달 맞아서 / 更約邀明月
술잔에 든 그림자 함께 보기로 / 相看影入尊
정초가 되면 방문이 분분하거늘 / 歲日紛投刺
남은 생에 감히 번거로움 꺼리랴 / 餘生敢憚煩
동년은 오래전에 벼슬을 버리고 / 同年久還笏
눈 속에 특별히 나를 찾아왔구려 / 踏雪特敲門
공은 깊이 숨은 용사와 같은데 / 公似龍蛇蟄
나는 떠들어 대는 참새와 같아라 / 吾如鳥雀喧
아득히 죽음으로 향하는 마당에 / 渺然乘化處
서로 마주해 술잔이나 기울이잔다 / 相對倒芳尊
담소하면서 어찌 썰렁함을 꺼리랴 / 笑語寧嫌冷
흉금은 이미 번거로움 떨쳐버렸네 / 襟懷已去煩
쇠잔한 나이에 자주 집을 옮기어 / 殘年頻徙室
밤이면 홀로 문을 닫지도 않건만 / 獨夜不關門
등불에 부딪치는 나방만 보일 뿐 / 但見燈蛾撲
말 들레는 소리는 듣기 어려운데 / 難聞櫪馬喧
원재가 나의 늙음을 애석히 여겨 / 圓齋惜吾老
눈 속에 또 술을 가지고 왔네그려 / 冒雪更携尊
시를 읊으면 기가 단촉함을 알겠고 / 吟詩知氣短
일을 만나면 문득 마음이 번거롭네 / 遇事便心煩
난세라 자주 거울만 들여다보고 / 亂世頻看鏡
남은 생은 홀로 문을 굳게 닫았네 / 殘生獨掩門
버들가지는 응당 싹이 트려 하고 / 柳絲應欲動
계곡물은 점차 소리를 들레리라 / 澗水漸成喧
정조에 조하하던 날을 회상하노니 / 回首朝正日
백수준에 향기가 어리었었지 / 香凝白獸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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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수록가(受祿歌)
기강은 나라의 혈맥이요 / 紀綱國血脈
봉록은 백성의 기름인데 / 俸祿民膏脂
동방엔 법을 세워 내려받은 바가 있기에 / 東方立法有所受
정월 칠일 칠월 칠일에 은총을 내리도다 / 正七七七頒恩私
태산은 흔들어도 판어는 바꾸지 못하듯 / 泰山可搖判不移
뭇 신하의 봉록은 기약 어긴 적 없어라 / 群臣仰給無愆期
창관이 문서 살피어 차례를 고찰하고 / 倉官按籍考次第
대궐뜰 아래 곡식을 산처럼 쌓아놓으니 / 八列庭下堆如坻
대갓집 건장한 노복은 서로 팔뚝을 뽐내고 / 大家豪奴競攘臂
곡식 지고 창고문 나와 성화같이 달리네 / 負出倉門星火馳
튼튼한 수레 힘센 소가 함께 떠들어 대고 / 車攻牛健共叫噪
게다가 징과 북소리까지 서로 어울리어라 / 助以鉦鼓聲相隨
집집마다 주식 장만해 또 서로 위로하여 / 家家酒食又相勞
한때의 기상은 참으로 태평키만 했으니 / 一時氣象眞恬煕
반열 한중간 오품으로 대제를 겸대했던 / 班心五品帶待制
해로는 을미년 바로 그 시절이었네 / 歲在乙未維其時
이젠 봉군이 된 데다 또 병들어 누웠으니 / 迄今封君又臥病
나라에 추호의 보답도 못함을 잘 알거니와 / 報國自知無寸絲
만일 그 쌀알을 낱낱이 다 세려고 든다면 / 若敎粒粒可枚數
뛰어난 수학가도 끝까지 추심하길 꺼리리 / 巧曆亦憚窮尋推
다만 붉은 피와 같은 충심 하나가 있어 / 只有一心赤如血
일언 일동으로 임금의 위태로움 붙드노니 / 吐辭擧足扶君危
임금의 위태롬은 부당한 상벌에 달렸는데 / 君危何在在賞罰
권력 한 번 잃으면 끝내 적이 되고 만다오 / 大柄一失終倒持
신하의 몸 살지운 건 임금의 봉록인데 / 臣身肥腯是君祿
차마 편히 먹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나 / 可忍退食徒委蛇
한 톨의 쌀이 한 가지 일만큼 중하거니 / 一粒重似一事重
감히 청컨대 배불리 먹고 깊이 생각하세나 / 敢請鼓腹時沈思
깊이 생각하면 절로 등에 땀이 흐르건만 / 沈思自有汗洽背
처자들은 잘 먹고 입어 한창 유희하누나 / 妻子飽煖方游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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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찰밥
끈끈한 찹쌀밥을 둥글게 뚤뚤 뭉쳐라 / 粘米如膠結作團
생꿀로 버무리면 빛깔이 알록달록하고 / 調來崖蜜色爛斑
여기에 다시 대추 밤 잣을 곁들이면은 / 更敎棗栗幷松子
입에 달고 맛있음을 더욱 느끼게 하네 / 助發甛甘齒舌間
삼한 땅엔 오늘 밤에 달이 한창 둥근데 / 三韓今夜月團團
구름이 달빛 얼룩지울까 가장 걱정일세 / 最怕微雲作錦斑
이는 농가에서 풍년을 점치는 것일 뿐 / 只爲農家占歲稔
미인 비추는 은촛불이야 어찌 없을쏜가 / 豈無銀燭照雲鬟
이상 두 수의 시는 모두 우리 동방(東方)의 풍속을 읊은 것이어서 중국 사람은 알 수가 없으니, 후일에 중원(中原)의 친구가 내 시를 읽어보면 의당 일소(一笑)에 부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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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잡영(雜詠)
남들은 용봉 고기에 정신없이 취하는데 / 烹龍炰鳳醉昏昏
나 홀로 샘물 길어다 채원에 물을 주네 / 獨挹寒泉灌菜園
필경은 양을 잃었으니 냉소할 만하여라 / 畢竟亡羊堪冷笑
오늘은 명나라가 원나라를 대신했구려 / 帝明今日代皇元
이상은 스스로 상심한 말이다.
남은 생은 읊조림으로 조석을 보내노니 / 餘生吟嘯送朝昏
높은 재주로 토원 향하길 어찌 생각하랴 / 肯慕高才向兔園
다만 이 선왕의 은혜가 뼈에 사무치기에 / 只是先王恩刻骨
쓸데없는 생각이 때로 백성에 미친다네 / 有時閑念到黎元
이상은 본국(本國)을 두고 한 말이다.
사립문 반쯤 닫힌 황혼 녘 달빛 아래 / 半扃柴戶月黃昏
팽택 영은 돌아와 날로 정원을 거닐면서 / 彭澤歸來日涉園
여산을 슬피 바라보며 눈물만 뿌리노니 / 悵望驪山空洒淚
하늘 높이 솟았어라 조원각이 우뚝하네 / 倚天高閤聳朝元
이상은 연도(燕都)를 두고 한 말이다.
기에는 청명하고 혼탁함이 있거니와 / 氣有淸明與濁昏
하늘은 만물을 포함한 하나의 명원일세 / 天包萬物一名園
봄가을이 왕래하면서 영췌를 다투나니 / 春來秋去爭榮悴
정영은 본원으로 돌아감을 믿어야 하리 / 須信精英返本元
이상은 기화(氣化)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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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옛일을 감상하다.
냇물은 동해를 향하여 흐르는데 / 川流向東海
검은 구름은 중천을 가리누나 / 雲密蔽中霄
일찍이 가랑비 뿌린단 말 들었고 / 毛雨曾聞洒
이미 봉성 사라짐을 기뻐하노라 / 蓬星已喜消
제공들은 바야흐로 현달하는데 / 諸公方袞袞
화주는 참으로 요원하기만 하네 / 華冑信遙遙
낙직이며 중화의 송을 / 樂職中和頌
누가 능히 성조에 바칠런고 / 誰能獻盛朝
전막은 푸른 바다에 임하였고 / 氈幕臨蒼海
종산은 높은 하늘에 닿았으니 / 鍾山接絳霄
점차 화기가 서로 합하게 하면 / 漸敎和氣合
응당 화의 조짐이 사라지리라 / 應使禍胎消
초한의 분쟁은 괴롭기만 하였고 / 楚漢紛爭苦
요순의 예의는 요원하기만 해라 / 唐虞揖讓遙
어느 때나 천하가 통일이 되어 / 何時天下一
월상씨의 내조를 또 보게 될꼬 / 踵跡越裳朝
영지는 누런 땅에서 나오고 / 靈芝出黃壤
감로는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라 / 甘露墜玄霄
북극은 얼음이 풀리기 어렵고 / 北極氷難釋
남쪽은 눈이 이내 녹아버리네 / 南天雪旋消
감통하는 기틀은 절로 은밀하지만 / 感通機自密
다스리는 형세는 왜 그리 요원한고 / 疆理勢何遙
하늘 뜻은 인력으로 될 바 아니니 / 天意非人力
주거가 정히 조정으로 모여들리라 / 舟車政會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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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잡영(雜詠)
남들은 용봉 고기에 정신없이 취하는데 / 烹龍炰鳳醉昏昏
나 홀로 샘물 길어다 채원에 물을 주네 / 獨挹寒泉灌菜園
필경은 양을 잃었으니 냉소할 만하여라 / 畢竟亡羊堪冷笑
오늘은 명나라가 원나라를 대신했구려 / 帝明今日代皇元
이상은 스스로 상심한 말이다.
남은 생은 읊조림으로 조석을 보내노니 / 餘生吟嘯送朝昏
높은 재주로 토원 향하길 어찌 생각하랴 / 肯慕高才向兔園
다만 이 선왕의 은혜가 뼈에 사무치기에 / 只是先王恩刻骨
쓸데없는 생각이 때로 백성에 미친다네 / 有時閑念到黎元
이상은 본국(本國)을 두고 한 말이다.
사립문 반쯤 닫힌 황혼 녘 달빛 아래 / 半扃柴戶月黃昏
팽택 영은 돌아와 날로 정원을 거닐면서 / 彭澤歸來日涉園
여산을 슬피 바라보며 눈물만 뿌리노니 / 悵望驪山空洒淚
하늘 높이 솟았어라 조원각이 우뚝하네 / 倚天高閤聳朝元
이상은 연도(燕都)를 두고 한 말이다.
기에는 청명하고 혼탁함이 있거니와 / 氣有淸明與濁昏
하늘은 만물을 포함한 하나의 명원일세 / 天包萬物一名園
봄가을이 왕래하면서 영췌를 다투나니 / 春來秋去爭榮悴
정영은 본원으로 돌아감을 믿어야 하리 / 須信精英返本元
이상은 기화(氣化)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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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연산가(燕山歌)
서쪽에서 산이 와서 화개를 의지하여 / 山從西來倚華蓋
화이를 진압해서 한 도회를 이루었네 / 勢壓華夷一都會
진인이 사막 안에서 우뚝하게 일어날 제 / 眞人崛起沙漠中
북풍은 남녘 정벌의 깃발을 불어 대는데 / 北風吹動征南旆
천산의 날린 눈이 장기 바다로 떨어지니 / 天山飛雪落瘴海
더위먹은 병이 소생되어 해롭지도 않아라 / 暍死少蘇無有害
이 산은 우뚝하게 한 가운데 자리하여 / 是山巍巍居其中
구름 위에 빼어나서 크기가 밖이 없는데 / 秀出雲霄大無外
무성한 오동이 산 남쪽에 가득 자라니 / 梧桐萋萋滿朝陽
봉황이 날아와서 날개를 치며 우는구나 / 鳳鳥飛來鳴翽翽
털옷은 점점 드물어지고 비단을 중시하며 / 衣毛漸稀重蜀織
우유를 숭상하나 생선회도 겸하여 먹네 / 飮湩雖尙兼吳膾
추운 겨울에 때로는 비와 천둥을 겸하여 / 冬寒時有雨兼雷
용문산 남쪽에 급한 여울을 만들어 내니 / 龍門以南激湍瀨
누가 알았으랴 하늘 뜻이 남방을 돌보아 / 誰知天意眷南方
종산 꼭대기에 자연의 바람을 불어 대서 / 鍾山山上呼天籟
연산 기슭의 먼지를 몽땅 쓸어 제거하여 / 掃去燕山山下塵
중원을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맑힌 줄을 / 中原一淸無纖壒
푸른 연꽃 봉우린 여전히 씻은 듯 깨끗하니 / 依然翠濕濯芙蓉
산 아래 행인들은 공연히 한 번 개탄하지만 / 山下行人徒一慨
곧바로 동해에서 연산을 바라보노라면 / 直從東海望燕山
나는 슬프지 않고 황하도 띠처럼 작아뵈네 / 我鼻不酸河似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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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 이색(李穡)
최인호(崔仁浩)가 회산(檜山)에서 소요를 당하고 와서 급함을 알리므로, 우연히 절구(絶句) 4수를 쓰다.
대대로 전해 온 아상은 후문을 압도커니와 / 傳家亞相壓侯門
큰 키에 예모가 온화하다 모두들 말하는데 / 摠說長身禮貌溫
취성의 일발 위기에 간담이 서늘한 이때는 / 膽落鷲城如一髮
다만 온종일 정신없이 취함이 마땅하리라 / 只宜終日醉昏昏
아픈 나머지 지팡이 짚고 특별히 찾아와서 / 病餘扶杖特敲門
주육을 대접할 제 낯빛도 매우 온화하여라 / 酒肉相邀色甚溫
귀밑을 돌며 앵앵거리는 모기만이 있을 뿐 / 獨有飛蚊鳴遶鬢
적적한 산정에 날은 또 황혼이 되어가누나 / 山亭寂寂欲黃昏
묘당의 높은 곳에서 훌륭한 모습 접했거니와 / 廟堂高處接芳塵
동갑에 친한 친구가 또 그 몇이나 되던고 / 同甲同盟更幾人
그러나 병중에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 不向病中曾一顧
회산은 참으로 인간의 도리가 없다 하겠네 / 檜山眞箇蔑彝倫
회산은 사리에 밝아 스스로 티가 없거늘 / 檜山氷鑑自無塵
어찌 재물 때문에 남에게 굽히려 하리오 / 肯爲圖財枉了人
다만 이는 하인이 한을 깊이 품은 소치거니 / 祗是蒼頭深挾恨
누가 다시 평번하여 모륜을 풀어 줄런고 / 平反誰復釋毛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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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조미행(糶米行)
거년 겨울엔 쌀 비는 편지를 자주 썼는데 / 去冬乞米頻作書
금년 봄엔 환자곡도 도리어 여유가 있구려 / 今春糶米還有餘
늙은 내가 구 년 동안 우환 속에 있다 보니 / 老翁九年憂患中
재상이 내 곤궁함 슬피 여겨 구제해 주누나 / 宰相卹乏哀窮廬
나 같은 병든 말도 임금님 수레 따를 적엔 / 病馬曾從象輅後
등 위의 비단천이 황금 수레에 빛났었고 / 錦幪照耀黃金輿
공덕을 칭도하여 상으로 속미를 내렸으니 / 論功稱德賜粟米
한 번에 한 섬 먹는다는 게 허언이 아니었네 / 一食一石眞非虛
지금은 기가 쇠하고 수척한 뼈만 앙상하여 / 如今氣衰瘦骨聳
뭇 준마들과 멍에를 나란히 할 수 없는데 / 無由竝駕群騊駼
그럼에도 천구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입어 / 尙蒙異恩在天廏
바람 앞에 한 번 울면 그림보다 나으리니 / 臨風一嘶畫不如
장차 갈기를 떨쳐 남은 분노를 쾌설할 적엔 / 會須振鬣快餘憤
봄바람에 향기로운 풀이 교외에 가득하리 / 春風芳草滿郊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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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서대행(犀帶行) 오서홍정대(烏犀紅鞓帶) 두 벌은 익재(益齋)와 송정(松亭)이 전해 온 것이다.
무소의 뿔은 능히 하늘에 통하거니와 / 犀牛有角能通天
불을 붙이면 깊은 못 속을 환히 밝히고 / 火燃下燭窮深淵
고기 새겨 물에 넣으면 삼 척을 열어 주며 / 刻魚入水劈三尺
돌로 만든 무소는 진의 강물을 진압했네 / 磨石作象橫秦川
큰 띠 드리우면 금은어의 갈기 움직이어 / 垂紳金銀魚鬣動
화려한 두 줄로 조정 의식 빛나기도 해라 / 朝儀煥赫分華聯
중조에선 백옥대를 으뜸으로 쳤는데 / 中朝白玉最第一
동국의 반열엔 이보다 앞설 것이 없으니 / 東國班列無居先
이제 알건대 무소의 뿔은 특이한 물건으로 / 是知犀也是異物
검은 바탕 누런 문채에 가볍고도 견고하네 / 質黑文黃輕且堅
불가에선 도를 전수함에 의발이 있었으나 / 僧家授受有衣鉢
유림의 성대한 일은 처음 누가 전했던고 / 儒林盛事初誰傳
문풍의 소중함은 과거를 주관함에 달렸고 / 文風所重在主擧
좌주와 문생 사이에 은의가 온전하나니 / 座主門生恩義全
이 때문에 다행히 좌주가 무양한 시절에 / 所以座主幸無恙
문생이 과시를 주관함은 우연이 아니라네 / 門生掌試非偶然
하늘이 주지 않으면 감히 훔쳐 취하랴만 / 天而不與敢竊取
나 같은 자야 어찌 삼 년 연속을 바랐으랴 / 如我豈望連三年
익재는 눈으로 보며 두 줄기 눈물을 떨구었고 / 益齋眼見落雙淚
송정은 오래전에 이미 신선이 되어 갔네 / 松亭久已登神仙
익재는 글을 지어 이르기를 이 물건은 / 益齋作書曰此物
열헌이 충렬왕의 경연 앞에서 얻은 것이라 했는데 / 悅軒得之忠烈經筵前
왕이 이르길 너는 우리 문단의 으뜸이기에 / 曰汝是我文場元
내 지금 네게 주노니 네가 어진 때문이다 했다네 / 我今賜汝惟汝賢
송정의 자손이 친히 이것을 안고 왔으니 / 松亭子孫親抱送
이 띠가 나온 곳은 예천부원군 권공이로세 / 帶之所出權醴泉
두 가문의 훌륭한 자손은 동국에 빛나서 / 兩家玉笋照東國
문장과 정사로써 어깨를 서로 비비는데 / 文章政事相磨肩
내가 이 영광 입은 건 내가 능해서가 아니라 / 獨荷榮華非我能
가정이 남긴 경복이 한창 이어진 때문일세 / 稼亭流慶方綿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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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향을 생각하다.
한스럽다 당년엔 벼슬길을 일찍 나왔는데 / 苦恨當年早起家
늙어 가매 쇠병으로 반듯이 걷지도 못하네 / 老來衰病步欹斜
강물은 도도히 흘러 하늘가에 이어지고 / 江流溶溶連天際
논밭은 어디에나 물가를 연접해 있거니 / 田野每每幷水涯
어찌 개미와 함께 큰 나무를 흔들려 하랴 / 肯與蚍蜉搖大樹
기꺼이 갈매기 따라 모래톱이나 차지하리 / 喜從鷗鷺占平沙
지금은 문득 꿈속의 일이 의아하여라 / 如今却訝夢中事
눈 다 녹고 들매화가 두루 피었데그려 / 雪盡野梅開遍花
한산(韓山)의 문장으론 유독 우리 집안뿐이라 / 馬邑文章獨我家
이름 적힌 비석 위에 나무 그늘 비껴 있네 / 題名碑上樹陰斜
경인년에는 난천 가의 분학에 나가 있었고 / 庚寅分學灤川上
병술년에는 창해 가에서 장가를 들었었네 / 丙戌頒春滄海涯
침향정에선 악부를 첨가하지 못하거니와 / 不向沈香添樂府
어찌 선실에선 장사 태부를 불러줄쏜가 / 何曾宣室召長沙
예로부터 초목은 생기 있게 잘 자라지만 / 由來草木欣欣耳
다만 동풍을 받아야만 꽃을 조각해 낸다오 / 只被東風剪作花
문장의 법도를 아는 명가가 그 몇이던고 / 文章軌範幾名家
책상 닦고 분향하고 붓에 먹 찍어 쓰노니 / 淨几焚香點筆斜
빛나는 신명은 마치 위에 있는 듯하건만 / 赫赫神明如在上
아득한 물욕은 스스로 끝도 가도 없구나 / 茫茫物欲自無涯
노을 속 목동의 피리 소린 봄 들을 가로지르고 / 淡煙牧笛橫春野
석양의 낚싯대는 저녁 모래톱을 내려가네 / 落日漁竿下晚沙
이것이 바로 남은 생에 돌아갈 곳이거니 / 此是殘生歸宿處
굳이 정원에 다시 꽃 심을 것 없고말고 / 不須庭院更栽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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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연주가(連州歌)
공경(公卿)들의 별서(別墅)가 있는 곳이므로, 이를 노래한 것이다.
연주라 연산이 편평한 들을 끼고 있어 / 連州連山擁平野
논밭 많아 예로부터 곡식 많다 일러왔네 / 田多自古稱多稼
봄이면 보리 싹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 春風綠浪漲瀰漫
가을엔 벼 이삭의 누런 구름 무더기라네 / 秋日黃雲屯罷亞
뽕나무 숲은 아득하여 여름 바람 시원하고 / 桑陰漠漠夏風涼
누에 채반은 층층으로 집안에 가득하여라 / 蠶箔層層滿堂舍
부부가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꾸려 가는데 / 夫勤婦苦營生理
베짱이는 또 베를 짜라고 달밤에 울어대네 / 促織又吟明月夜
작은 애는 소 끌고서 우리 밖으로 나오고 / 小兒牽牛將出欄
큰 아이는 말 먹일 제 고삐를 놓아두누나 / 大兒牧馬能縱靶
마을 안 노인들이 번갈아 서로 초청하니 / 里中父老迭相邀
취하고 배부르길 어찌 다시 사양할쏜가 / 醉飽何曾更辭謝
풍속이 아직도 순박함을 절로 알겠으니 / 自知風俗尙純庬
격식을 잘 갖추지 못한 것은 한하지 않노라 / 不恨容儀無醞藉
복사꽃 떠서 흐르는 물이 어드메 있다던가 / 桃花流水安在哉
이 마을은 옛 주진촌과 다를 것이 없구려 / 直與朱陳相上下
백발의 목은도 기어이 한번 가 노닐어서 / 白頭牧隱思一游
격양가 부르며 태평의 풍화를 찬미하련다 / 擊壤謳歌美風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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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면마행(眠魔行)
깊은 밤에 기침이 발작하여 그치지 않아 / 咳嗽夜深發不止
누웠다 일어났다 또 비기기도 하지만 / 臥而復起起又倚
심장이 뒤집히고 가래가 위로 치오르니 / 肝腎翻動痰上逆
폐장이 침공을 받아 가슴이 꽉 막히어라 / 肺受橫侵胸膈否
막혔다 통했다 하는 것이 기의 형세라서 / 有否有通氣之勢
밤 내 막혔다 통했다 내 몸 지치게 하누나 / 終夜相激疲吾體
그러나 한가운데 한 치의 밝은 마음속은 / 中間靈臺方寸赤
신명이 혁혁하여 이게 바로 천자이기에 / 神明赫赫是天子
평상시의 거동은 당연히 조용하거니와 / 平時擧動儘從容
또한 제어를 받는 것도 잠시일 뿐이라네 / 亦復受制聊爾耳
잠의 마귀는 일찍이 내 원수가 되었으니 / 眠魔與我爲敵讎
나의 뱃속에 문자가 많이 못 들게 하고 / 使我腹中少文字
이를 쪼개 가서 내 노염 마구 부리게 하여 / 磔而去之肆我怒
일찍이 마귀를 천리 밖에 내치려 했는데 / 嘗欲放流去千里
오늘 밤엔 마귀의 공이 갑자기 생각나서 / 今夜忽念眠魔功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 뜻을 위로해 주니 / 招之使來慰其志
피부가 윤택해지고 정신 또한 장쾌하여라 / 肌膚豐潤精神壯
이게 다 출중한 그대의 공이로다 / 盡是公功功出類
가사 내가 소년 시절에 오늘 밤 같았다면 / 使我少年似今夜
몸을 못 가눈 터에 무얼 의지하려 했으랴 / 身不自持欲何恃
내 지금 다시 잠의 마귀의 공에 감사하노니 / 我今更謝眠魔功
천하에 네 아니면 인간 기강이 끊어지리라 / 天下非渠絶人紀
동짓날에 관문 닫고 밤 되면 편히 쉬어라 / 至日閉關晦宴息
주역에 내린 훈계가 깊은 뜻이 있네그려 / 大易垂訓深有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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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풍(古風)
뜬구름 일어 하늘에 가득하니 / 浮雲動滿盈
태양은 가렸다 또 나오곤 하는데 / 寒日翳復吐
문항이 적막하여 들레지 않으니 / 門巷寂無喧
은거한 이는 절로 깊이 막히누나 / 幽人自深阻
도를 사모해도 혹 지취가 부정하면 / 慕道或趨岐
그 누군들 썩은 선비가 아니될쏜가 / 爲儒孰非腐
하늘땅은 나날이 적막해지고 / 乾坤日寂寥
기영은 연기 속에 묻혀 버렸네 / 箕潁埋煙雨
노쇠함은 자위라도 할 수 있는데 / 老衰尙自寬
깊은 근심이 심장을 꺾는구나 / 沈憂摧肺腑
도연명은 천재에 한 사람이라 / 淵明千載人
도리 달관에 진정 짝이 없으련만 / 達道諒無匹
어찌하여 스스로 생각을 괴롭혀 / 奈何苦心思
추졸한 말들을 붓끝에 부쳤던고 / 醜拙寄於筆
그런 때문에 두릉옹이 / 所以杜陵翁
한 마디 말로 감히 힐난했었네 / 一語敢相詰
시인이 초췌함을 한탄하는 건 / 詩人恨枯槁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일률이건만 / 今古用一律
백낙천만은 진정을 토로했으니 / 樂天是眞情
내 무릎을 당연히 꿇어야겠네 / 我膝當爲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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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미쳐서 읊다.[狂吟]
군산을 깎아 내면 상수가 편편해질 거고 / 剗却君山湘水平
계수나무를 잘라내면 달이 또한 밝으리 / 斫却桂枝月更明
방옹의 이 말은 참으로 매우 호방하니 / 放翁此語儘豪放
다만 천재에 광의 명칭 전할 게 염려로세 / 只恐千載傳狂名
광자의 진취 재능을 성인이 허여했으니 / 狂者進取聖所許
비파 놓고 대답한 게 바로 그 진정이어라 / 鏗爾舍瑟其眞情
늦은 봄에 바람 쐬고 읊으며 돌아온다니 / 風雩詠歸維暮春
그 기상은 절로 요순 시대 사람이로다 / 氣象自是唐虞人
세 사람은 구구하게 예악만을 지켰으니 / 三子區區守禮樂
아침 버섯과 영춘나무와의 차이와 같네 / 有如朝菌與靈椿
시골구석 단표의 생활 속에 봄풀이 나서 / 簞瓢陋巷春草生
제때의 비 한 번 맞아 생기가 발랄해지고 / 時雨一來隨發榮
말해 주면 나태 않고 물러가면 사생활 살펴라 / 語之不惰退省私
공자는 하늘 중심을 운행하는 일월 같구려 / 夫子日月天中行
수많은 제자 가운데 칠십인이 가장 속히 배웠는데 / 七十速肖侁侁中
노둔한 이가 종을 전했다고 그 누가 말했나 / 誰謂魯者傳其宗
반드시 광견인저란 말을 조용히 음미해보면 / 沈吟必也狂者乎
부자의 뜻은 참으로 하늘과 똑같고말고 / 夫子之志與天同
아홉 길 산도 한 삼태기 흙으로 시작하나니 / 爲山九仞一簣始
군자의 공부는 뜻을 세우는 게 우선이로세 / 君子功夫先立志
아 뜻을 세워서 스스로 포기를 말아야지 / 嗚呼立志無自小
요순이나 범인이나 조금도 서로 다를 게 없다오 / 堯舜塗人無少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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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소심행(小心行)
문왕의 공손하고 삼감을 시로 노래했으니 / 文王翼翼歌于詩
공경하여 그치어라 아 계속해서 광명했네 / 敬止敬止於緝煕
요 임금 공경 순 임금 공손이 바로 근본이라 / 高欽舜恭是根柢
두 노인이 돌아온 것이 오직 그 시기였네 / 二老歸矣惟其時
유리의 충성심은 해와 달을 꿰뚫었기에 / 羑里忠心貫日月
성명한 천왕께서 끝내 의심을 하지 않았고 / 天王聖明終不疑
삼분의 이를 차지코도 신하의 절의 지키어 / 三分有二守臣節
가슴속의 충심은 견고하기 무쇠 같았네 / 方寸赤肉堅如鐵
상제가 널 살피거니 감히 행여 변심할쏜가 / 上帝臨汝敢或貳
어찌 거센 바람에 산이 찢길 걸 두려워하랴 / 疾風豈怕高岡裂
평생에 그 몇 번이나 맹진을 건넜던고 / 平生幾度渡孟津
천자 높이는 조회 의식 잠시도 멎지 않았네 / 敬上聘儀無暫輟
밝은 창 조용한 책상에 먼지 하나 없을 제 / 明窓靜几無塵埃
홀로 청묘를 노래하고 영대에 화답하노니 / 獨歌淸廟賡靈臺
푸른 하늘 밝은 태양은 천만고를 통틀어서 / 靑天白日亘萬古
털끝만 한 가리움도 좇아올 데가 없고말고 / 一毫纖翳無從來
창려의 금조는 참으로 이을 수가 없어라 / 昌黎琴操不可繼
동해 가의 태산은 어이 그리도 우뚝한고 / 泰山表海何崔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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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4권 / 시(詩) / 이색(李穡)
청산음(靑山吟)
청산은 기약 있어 길이 문에 당했는지라 / 靑山有約長當戶
앉아서 거용 등지고 여부를 어루만지네 / 坐背居庸撫廬阜
세 가닥이 종횡하여 산세가 불일치하니 / 三條縱橫勢莫一
어느 곳이 참다운 천부인지 알 수 없고 / 未知何處眞天府
동쪽 바다 서쪽 언덕에 자리한 장백산은 / 東溟西岸長白山
마치 태백이 도망갔던 형만과 똑같은데 / 有如泰伯逃荊蠻
오악은 중국에서 가장 높게 내버려 두고 / 從敎五岳尊中州
홀로 요해에 걸터앉아 청구와 연하였네 / 獨跨遼海聯靑丘
삼한에 흩어져선 뛰어난 지세를 차지하여 / 散在三韓占形勝
봉우리마다 신선 누각을 솟구쳐 일으키고 / 峰峰聳起神仙樓
누각 아래 흐르는 물은 동해로 달려가 / 樓下流川走東海
봉래산의 운기는 하늘이 내리덮은 듯하네 / 蓬萊雲氣如天蓋
눈이 있어도 티끌 하나를 볼 수 없거니 / 有眼不見纖塵生
학 타고 돌아간들 또한 무엇이 해로우랴 / 駕鶴歸來亦何害
머리 숙이고 앉아서 청산음을 짓다 보니 / 低頭且作靑山吟
마른 버들에 말 부스럼 비벼댐과 흡사하네 / 恰似枯楊便馬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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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5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풍(古風) 3수(三首)
대아는 어찌 그리도 광활한고 / 大雅何寥闊
왕풍은 정히 산만하기만 하네 / 王風政漫瀾
뜬구름은 변방 구석에서 이는데 / 浮雲興塞隅
옛 달은 그대로 둥글기만 하구나 / 古月仍團團
슬프다 난새 봉새는 높이 날고 / 哀哉鸞鳳翔
가시나무는 잡초와 서로 연했네 / 枳棘連榛菅
주공 공자가 세상에 안 나오니 / 周孔不世出
이단들이 분잡하게 일어나누나 / 雜然多異端
대의는 날로 어두워져만 가는데 / 大義日以晦
하얀 머리털은 의관을 내리덮고 / 霜雪沾衣冠
내 몸은 또 병까지 많은 터라 / 我骨又多病
날이 흐리면 더욱 쑤시고 아프네 / 天陰彌辛酸
날이 흐리면 신기가 푹 갈앉아 / 天陰神氣沈
깊은 못에 잠긴 듯 깜깜해지네 / 悶悶窮淵潛
지극한 도를 바라보기 어려움은 / 至道杳難望
위아래로 고금이 다 그러했거니 / 上下通古今
점잖고 조용함은 군자의 양이요 / 舒遲君子陽
참혹하고 박절함은 소인의 음이라 / 慘迫小人陰
치란의 결과는 근원에 말미암나니 / 治亂出以原
지난 자취를 다 찾을 수 있고말고 / 軌轍皆可尋
간악한 자 죽이려고 내 이를 갈고 / 誅姦切我齒
덕을 숭상할 데 내 마음 기울이네 / 尙德傾我心
행실에서 조짐을 완벽히 살펴야지 / 視履考祥旋
그리 못 하면 말하는 새일 뿐이리 / 否則能言禽
말을 잘함은 몸의 꾸밈일 뿐이니 / 能言文身耳
그것은 겉이라 숭상할 바 아니로세 / 外也非所崇
조용히 한방 안에 앉아 있어도 / 靜默坐一室
마음은 하늘땅과 서로 통하여라 / 心與天地通
옛사람은 목격을 중히 여겼기에 / 古人重目擊
세도가 대동으로 오르게 됐는데 / 世道升大同
지금 사람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 今人口瀾翻
마음속엔 산과 바다가 막히었네 / 山海方寸中
이런 때문에 목은자는 / 是以牧隱子
세상일을 보도 듣도 아니하고 / 收視仍塞聰
흥겨우면 붓으로 뱉아낼 뿐이거니 / 有興吐以筆
감히 궁하여 공교한 시에 비기리오 / 敢擬窮詩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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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5권 / 시(詩) / 이색(李穡)
구룡산가(九龍山歌)
부소산 동쪽으로 산이 끝없이 이어져서 / 扶蘇以東山不盡
봉우리들 하늘에 솟아 석순이 널렸는데 / 衆峰揷天森石笋
불룩 솟은 구룡산이 형세가 절로 높아서 / 九龍穹窿勢自尊
뒷산은 따른 듯하고 앞산은 끄는 듯하네 / 後如從者前如引
성승의 남긴 자취는 아직도 완연한데 / 聖僧遺跡尙宛然
돌이 기울고 위태로워 떨어질 것만 같네 / 石勢傾危將欲隕
사찰과 숲 골짝엔 연기와 놀이 섞이었고 / 招提林壑雜煙霞
병석의 세월은 푸른 버섯이 쌓였도다 / 甁錫歲月堆蒼菌
언제나 긴 휘파람 불며 절정에 올라가서 / 何時長嘯上絶頂
만리의 푸른 하늘에 가을 매를 볼거나 / 萬里靑天見秋隼
호경사에 들러 향 사르고 두 번 절하고 / 焚香再拜虎景祠
시위소찬 이 몸의 불민함을 사죄드리고 / 尸素區區謝不敏
위령께 우러러 비오니 동해를 편케 하소서 / 仰乞威靈靜東海
방금 조정의 군색한 형세를 보지 못하는가 / 不見廟堂方勢窘
연이은 군영의 장수들이 전라도로 향하니 / 連營諸將向全羅
농사짓는 백성들을 누가 불쌍히 여길꼬 / 南畝擧趾誰見愍
농사 한번 실패하면 백성은 먹을 것 잃어 / 農功一虧民失天
죽을 고통 받는 걸 차마 볼 수 있으리오 / 命墜顚崖其可忍
의당 좋은 계책 내서 싸우면 꼭 이기고 / 宜扶籌策戰必勝
다시 거센 바람과 천둥 벼락을 몰아쳐서 / 更發狂風激齊霣
적의 배를 모조리 동쪽으로 쓸어버린다면 / 賊船掃向扶桑去
백성들이 다시는 깊은 시름 하지 않으리 / 蒼生不復愁肝腎
문득 예악으로 나라 다스림을 물었으니 / 便將禮樂問爲邦
비파 놓은 이가 부자의 웃음을 어찌 알랴 / 舍瑟何知夫子哂
[주-D001] 구룡산가(九龍山歌) :
구룡산의 노래로, 구룡산은 개성(開城) 평나산(平那山)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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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 이색(李穡)
치통(齒痛)을 앓다.
잘 익힌 음식으로 쇠한 창자 보충하는데 / 軟炊爛煮補衰腸
그럼에도 치아가 상하는 게 괴이하구나 / 怪底齒牙猶被傷
당시 강한 것 억제함으로 인한 앙화이거니 / 當日抑強餘禍在
조조를 지낭이라 한 것은 거짓말이로세 / 謾言晁錯智爲囊
이와 혀의 중간에서 좋은 맛이 나는 건데 / 齒舌中間至味生
대추를 통째로 삼키니 그 심정 어이할꼬 / 全呑大棗若爲情
뱃속에 가득한 문자를 흠뻑 적셔 주려면 / 撑腸文字從霑濕
고래가 물 마시듯 술을 마심도 무방하리 / 飮酒無妨似吸鯨
단단한 것 씹어 끊기를 남 이기려 했더니 / 挫硬攻堅欲勝人
늙어선 달보드레한 게 절로 군침이 도네 / 老年甘滑自生津
보아오매 문득 산서의 장수와 흡사히도 / 看來却似山西將
백발에 한가로우니 몸에 병만 생기누나 / 白髮閑居病在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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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 이색(李穡)
흥취를 풀다.
나는 본디 등한하여 시속과 동화 못 하는데 / 我本疏慵不入時
더구나 이젠 병까지 들어 어디를 가려 하랴 / 況今衰病欲何之
문 굳게 닫으니 안심하고 앉았기 알맞아라 / 閉門自合安心坐
서로 손 잡고 누구와 땀 흘리며 달릴 건가 / 連袂誰曾汗背馳
신년 하례는 시골 마을도 두루 다니려는데 / 賀歲里閭將欲遍
대궐에 사은할 일을 감히 더디한다 말하랴 / 謝恩閶闔敢云遲
지금은 또 꽃구경하는 흥취가 일어나니 / 如今又起看花興
취하여 남산 시 지은 데에 견주고 싶구나 / 準擬南山醉賦詩
봄바람 이것이 또한 태평의 시절이건만 / 春風又是太平時
문을 나가도 갈 곳 없는 게 가소로워라 / 却笑出門無所之
우리들은 구름같이 모이고 흩고 하는데 / 我輩還如雲聚散
세월은 절로 물 흐르듯 급히도 달리누나 / 年光自趁水奔馳
버들실은 이미 청색으로 다 켜졌을 텐데 / 柳絲已染應繰畢
꽃봉오린 봉해진 채 터지길 더디하려 하네 / 花錦猶封欲拆遲
반쯤 취해 높은 누각에서 조망하는 때에 / 待得半酣高閤望
행락하는 곳을 다시 새로운 시에 부치리 / 更將樂處寓新詩
위편삼절은 다만 때를 알았기 때문인데 / 三絶韋篇只識時
노년에 어찌 편안하게 해주길 안 바랐으랴 / 老年胡不望安之
배부른 매는 자유롭거니 왜 따르려 하랴 / 飽鷹自在寧思附
매인 말은 본래에 달리기만을 생각한다네 / 繫馬由來每念馳
문왕 사모해 목목 노래한 지는 오래이건만 / 久矣思文歌穆穆
노나라 떠날 제 더디함 배우긴 슬프어라 / 哀哉去魯學遲遲
붓도 또한 나의 이런 뜻을 아는 까닭에 / 中書君亦知吾意
손 가는 대로 조용히 시를 써내는구나 / 信手從容寫出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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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 이색(李穡)
산새 우는 소리를 듣다.
봄 산 깊은 곳에 일찍이 놀던 일 기억나네 / 春山深處記曾游
들리는 소리 막지 못해 온종일 걱정했더니 / 觸耳難禁盡日愁
어찌 뜻했으랴 일만 집 밥 짓는 연기 속에 / 豈意萬家煙火裏
두어 소리 지저귐에 유유한 꿈 놀라 깰 줄을 / 數聲驚破夢悠悠
병든 몸 쑤시고 아파 절로 늦게 일어났는데 / 病骨酸辛自懶興
그 누가 시 생각 다시 모여들게 하는고 / 誰敎詩思更相凝
문득 새소리 들으매 되레 느낌이 많으니 / 忽聞啼鳥翻多感
공을 보아 도를 즐기는 중을 배우고 싶네 / 欲學觀空樂道僧
봄이 오매 시구 지어 동유에게 주어라 / 春來有句贈同游
환기며 최귀가 모두 이 시름뿐이었네 / 喚起催歸摠是愁
소리 듣고 맘으로 통해 스스로 즐거우면 / 聲入心通吾自樂
유유자적하는 곳이 바로 유유자적인 것을 / 可悠悠處卽悠悠
밤 늦게 자고 반드시 또 일찍 일어나야지 / 夜寐仍須更夙興
마음속의 도덕을 어느 때나 성취시킬꼬 / 心中道德幾時凝
지저귀는 새 한 소리에도 마음이 동요되니 / 一聲啼鳥心還動
영락없이 지금 세상 땡추중과 흡사하구나 / 宛似如今雀鼠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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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 이색(李穡)
나팔 부는 소리를 듣다.
맑은 새벽 남문에서 나팔 소리 울리어라 / 南門淸曉一聲鑼
울어대는 말에 채찍질 소리 들린 듯하네 / 坐想蕭蕭聞馬檛
적의 포로 바치길 재촉하는 게 아니면 / 不是獸牢催進獻
응당 저 강 위에 풍파가 있는 때문이리 / 定應江上有風波
강 위의 풍파는 어느 날에나 그칠런고 / 江上風波幾日休
경인년 이후로 사람을 시름겹게 하누나 / 庚寅以後使人愁
용양의 만곡선이 진정 무력하기만 해라 / 龍驤萬斛眞無力
하늘 흔드는 파도를 향하기가 두렵구려 / 怕向掀天雪浪頭
흰 파도가 오래도록 하늘 높이 치솟아라 / 雪浪長年欲蹴天
강릉 일도와 해서의 변방이 다 그렇거늘 / 江陵一道海西邊
해독을 입으면서도 끝내 계략이 허술하여 / 雖然被毒終疎闊
시체 그득한 산중에 좌선만 하고 있다니 원 / 露骨山中穩坐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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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고풍(古風)
땔나무를 어떻게 취해야 하나 / 取薪如之何
둥지 있는 가지는 취치 말아야지 / 勿斯有巢枝
봉황새가 혹 멀리 날아가는 것은 / 鳳鳥或遠逝
사람이 인자하지 못한 때문일세 / 只爲人不慈
인한 마음으로 인한 정사를 펴면 / 仁心出仁政
천하가 태평성대를 이루리라 / 天下成雍煕
오동은 산 양지쪽에 자라기에 / 梧桐生朝陽
따사로운 태양이 더디 가나니 / 白日行遲遲
천재 아래서 그 누구와 더불어 / 誰與千載下
다시 권아 시를 지어 노래할꼬 / 更賦卷阿詩
아름다운 옥은 새기지 않아야 하고 / 美玉當不琢
지극히 공경함엔 문식이 없나니 / 至敬當無文
인륜은 스스로 질서가 있거니와 / 彝倫自有序
기강은 명군에게서 말미암는다네 / 綱紀由明君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나니 / 鳶飛與魚躍
사람 성취시킴을 어찌 다시 말하랴 / 作人何更云
미루어 행하여 먼 데까지 미쳐서 / 推行迺及遠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게 했으니 / 庠序討典墳
천추를 마치 하루와 같이 / 千秋如一日
나로 하여금 방훈을 생각케 하네 / 使我思放勳
문식을 많이 함은 본디 싫어하지만 / 彌文固所厭
너무 질박함도 어찌 행할 수 있으랴 / 朴略寧可行
굽은 것 바로잡음도 너무 지나치면 / 矯枉或太過
이것이 곧 권형을 폐하는 행위라네 / 是爲廢權衡
근본을 힘쓰는 건 농사에 있으나 / 務本在農畝
임금 신하가 함께 농사를 짓는다면 / 君臣將幷耕
이 의리는 끝내 옳지 못한 것이라 / 此義竟不可
성현의 가르침이 매우 분명하였네 / 聖賢謨甚明
그러나 터럭은 가죽에 붙으나니 / 雖然毛附皮
삼가서 경중을 나누진 말아야 하리 / 愼勿分重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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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팥죽을 먹다.
더운 구름 찌는 햇볕이 불같이 뜨거워서 / 火雲蒸日熾如焚
줄줄 흐르는 땀방울에 두 눈이 캄캄하니 / 瀋汗交流兩眼昏
곧장 팥죽 가져다 더위 독을 풀어본댔자 / 直把豆湯消暑毒
소나무 아래 물 흐르는 집만은 못하구려 / 不如松下水流門
깊고 조용한 대궐엔 더운 기운 하찮지만 / 禁宇沈沈暑氣微
시립한 신하들은 옷에 땀이 흠뻑 젖는데 / 群臣侍立汗霑衣
푸른 사발 팥죽에다 벌꿀을 타서 마시니 / 豆湯翠鉢調崖蜜
써늘한 기분 살 속에 와닿음을 깨닫겠네 / 便覺氷寒欲透肌
묻노니 승사에는 예전같이 또 있는지 / 借問僧窓似舊無
당시의 팥죽은 보드랍기 양유 같았었네 / 當時豆粥軟如酥
나는 순챗국과 양유를 두루 맛보았지만 / 蓴羹羊酪嘗來遍
흥미는 그대로 산중의 파리한 신선일세 / 興味依然山澤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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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운룡음(雲龍吟)
구름은 검은데 빗줄기는 하얗고 / 雲黑雨脚白
구름이 희면 산 모습은 푸르러라 / 雲白山容靑
구름은 말이 없다고 말들을 하니 / 人言雲無心
검고 흰 것은 누가 시킨 것일까 / 黑白誰所令
신룡은 하늘을 날아 변화를 잘하거니와 / 神龍矯矯善變化
상제가 있는 곳은 어찌 그리도 아득한고 / 上帝之居何渺冥
용인지 구름인지 과연 누가 주장을 하여 / 龍邪雲邪誰主張
음양이 모으고 흩으면서 바람 천둥을 내는고 / 陰陽聚散生風霆
요 임금 십 년 홍수와 탕 임금 칠 년 대한에 / 唐堯十年湯七年
한 번 가물고 홍수진 게 공연한 것 아니라 / 一乾一溢非徒然
성인이 천지의 공을 참예하여 도왔거니 / 聖人參贊天地功
어찌 필부필부의 마음을 애타게 했으랴 / 豈使匹婦心中煎
홍수와 가뭄의 독이 몹시도 치성했기에 / 襄陵爍玉毒甚盛
요와 탕이 만고에 신성으로 일컬어졌으니 / 堯湯萬古稱神聖
천명이요 사람에 관계된 게 아닌 줄 알겠네 / 乃知天數非關人
정사 바로 세워 우리 백성 편케 할 뿐인데 / 只得立政安吾民
우리 백성 편안함은 성정 좇아줌에 있나니 / 吾民之安在循性
구중궁궐에 가만히 앉아 군신을 등용하여 / 垂衣拱手登群臣
백신이 직무 다하게 하면 용이 복종하리라 / 百神受職龍其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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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잡흥(雜興)
해 저물자 별실에 솔가지로 불 지피니 / 日斜別室燎松枝
향기가 바람 따라 온 좌석에 불어오네 / 香氣隨風滿座吹
옛날 산중의 글 읽던 곳과 흡사하여라 / 恰似山中讀書處
이젠 두 귀밑에 백발 드리운 걸 어찌할꼬 / 奈何雙鬢素絲垂
기억하노니 산중에 더위 한창 극심할 때 / 記得山中酷熱時
맑은 샘 흰 바위 가에서 홀로 시 읊었지 / 淸泉白石獨吟詩
찌는 듯한 더위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엔 / 九街塵土蒸如火
천 수레 일만 말이 온종일 달리는구나 / 萬馬千車盡日馳
수레 먼지 뿌리는 땀이 거리에 가득한데 / 車塵汗雨滿通衢
내 홀로 강산모설도를 마주하여 있어라 / 獨對江山暮雪圖
후일에 참으로 이런 생활을 누리더라도 / 異日縱能眞致此
응당 머리 돌려 이 송도를 생각하겠지 / 也應回首憶松都
구구한 열뇌 속엔 죽고 삶이 끝없건만 / 熱惱區區萬死生
흰 구름 나는 곳엔 신선 피리 소리 들리네 / 白雲飛處紫鸞笙
먼지 하 난들 다시 어디로 좇아 나오랴 / 何從更有纖塵在
무위 경지에 초연함이 지극히 맑고말고 / 超出無爲却至淸
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이 가장 즐거웁고 / 陋巷簞瓢樂最深
탕의 정벌 순의 선위는 똑같은 인이라네 / 湯征舜受一仁心
그러나 노자 장자는 천하를 아주 잊어서 / 雖然莊老忘天下
청정으로 백성 편케 함이 고금에 으뜸일세 / 淸淨安民蓋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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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이[蝨]를 읊다.
옷 기운 틈새가 참으로 천지처럼 넓어서 / 衣縫眞如天地寬
평생에 의기양양 배회하기 만족하건만 / 平生得意足盤桓
몸을 편케 할 뿐 숨기는 꾀는 부족하여 / 安身只欠藏身術
섬섬옥수 고운 손을 피하기 어렵네그려 / 玉手纖纖避却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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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蚤]을 읊다.
일찍부터 옷과 이불에 이 생명 붙이어 / 早向衣衾寄此生
팔짝팔짝 뛰어라 한 몸뚱이 가볍건만 / 躍然跳躑一身輕
재빨라서 안 잡힌다고 자랑하지 말라 / 休誇捷疾能逃害
때로는 펄펄 끓는 물소리 요란도 하지 / 湯火時時沸有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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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이색(李穡)
닭[雞]을 읊다.
평생 산속에 있지 않고 인가에 깃들어 / 生不山林在里閭
때를 알고 의리 지키며 세월을 보내어라 / 知時守義送居諸
가장 예쁜 건 비바람 치는 깜깜한 날도 / 最憐風雨天沈黑
일각인들 언제 남고 모자람이 있었던가 / 一刻何曾有欠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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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犬]를 읊다.
건마와 호우는 각각 쓰임이 있었지만 / 馬健牛豪各有施
문 지켜 도둑 막는 덴 개가 제격이고말고 / 守門防盜犬爲宜
편지 전하고 불을 꺼 인의도 알았거니와 / 傳書救火知仁義
해진 덮개의 가르침은 만고에 드리웠네 / 弊蓋遺謨萬古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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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9권 / 시(詩) / 이색(李穡)
추풍가(秋風歌)
가을바람이 나에게 맑은 정신 더해 주고 / 秋風與我添精神
나의 병골에 불어 고통 또한 덜어 주니 / 吹我病骨除酸辛
눈동자가 새매 눈처럼 반짝반짝해져 / 眼睛閃鑠似霜鶻
우주에 회포 부치니 어찌 그리 초연한고 / 寄懷宇宙何超忽
바람은 과연 그 어드메로부터 오는가 / 風之來兮自何許
일천 산 어둑어둑한 해 지는 곳이로세 / 千山蒼然日所沒
아스라한 대지엔 먼지 하나 안 날리고 / 茫茫大地微塵絶
광대한 하늘엔 구름 한 점 끼지 않아서 / 蕩蕩大虛纖靄滅
월굴을 마찰하여 계수 열매 살찌우고 / 應磨月窟桂子成
높은 절벽 부닥쳐 혜초 꽃도 맺게 하네 / 却觸雲崖蕙花結
무성한 초목들은 모두 정영을 거두어서 / 草榮木華斂精英
꽃피고 열매 익어 생성을 마무리하누나 / 秀而就實終生成
성인이 하늘 뜻 이어 예악을 제정하사 / 聖人繼天制禮樂
왕의 부족함 보좌하여 상형을 내리었고 / 化所不逮垂象刑
사흉을 제거하고 삼묘를 감복시켰거니와 / 四兇去兮三苗服
요순의 제위 선양은 어찌 그리 정명했던고 / 堯舜揖讓何精明
가을바람이여 가을바람이여 / 秋風兮秋風
너는 어이해 내 마음을 이리 동요시키는고 / 爾胡爲兮動吾之中
나는 지금 백발로 천명만을 기다리거니 / 我今白髮竢天命
내가 무슨 힘으로 큰 공을 세운단 말인가 / 夫何力兮立脩功
너는 참으로 무심하건만 내겐 유심하기에 / 汝誠無心兮爲有心
두려운 맘으로 붓 잡아 추풍을 노래하노라 / 悚然把筆歌秋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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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0권 / 시(詩) / 이색(李穡)
단가행(短歌行)
삼가 생각건대 선왕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 恭惟先王日之昇
신이 대책 올려 처음으로 이름 날렸고 / 臣用對策初飛騰
그 명년에 경사에서 마침 회시가 있어 / 明年京師適會試
계리와 함께 눈서리 무릅쓰고 갔는데 / 偕計不知霜雪凝
내 이름은 황금방 가운데 나열되었고 / 名從黃金榜中列
내 발은 옥당 한림 자리에 올라갔었네 / 足向白玉堂上登
찬란하기론 온갖 꽃의 골짜기인 듯 / 爛兮萬花谷
깨끗하기론 한 가닥 얼음 같았어라 / 淸兮一段氷
늘어선 수많은 영재들이 다 이러했으니 / 群英森立有如此
나는 요행일 뿐 참으로 능한 게 아니었네 / 我獨徼倖非眞能
창 부수고 땀 흘림은 요행히 면했거니와 / 斲窓流汗雖幸免
농장을 잘못 씀은 항상 가슴에 새겼었지 / 弄璋錯寫常服膺
동해에 돌아와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해 / 歸來東海臥不起
예리한 재능 숨겨 교만 자부 다 잊은 채 / 藏鋒斂鍔忘驕矜
바야흐로 적막함 속에 세월을 보내는데 / 方將寂寞送日月
상께서 불차탁용으로 높은 반열에 올렸네 / 主恩不次班高升
오래되매 자연히 녹록한 존재 되었는데 / 久而自然成碌碌
녹록함이 도리어 무리의 증오를 받았고 / 碌碌還爲吾輩憎
나는 실로 무리를 압도할 마음 없었건만 / 我實無心壓吾輩
무리들이 스스로 가을 파리처럼 움츠렸지 / 吾輩自退如秋蠅
지금은 와병중이요 일어나도 절뚝발이라 / 如今臥病起又躄
다시 학과 함께 대부 수레를 못 타기에 / 不復與鶴軒中乘
명성 겨루는 이 없고 비웃던 이도 그쳐서 / 爭名者絶笑者止
바야흐로 깊고 맑은 고정처럼 담담하구려 / 淡如古井方泓澄
옛 놀이를 회상하며 한번 탄식을 발하니 / 回思舊游發一嘆
붓끝에서 문득 바람 천둥이 이는 듯하네 / 筆下忽爾風雷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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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1권 / 시(詩) / 이색(李穡)
구나행(驅儺行)
구나 의식을 거행한다는 말을 듣고 삼가 써서 사관(史官)에게 올려 보내다.
천지의 운행 이치는 어찌 그리 아득한고 / 天地之動何冥冥
선과 악이 어울려 만물이 생육 변화하되 / 有善有惡紛流形
혹은 상서가 되고 혹은 재앙이 되어서 / 或爲禎祥或祅孼
서로 뒤섞이니 어찌 인심이 편안하리요 / 雜糅豈得人心寧
그래서 악귀 벽제에 자고로 예가 있어 / 辟除邪惡古有禮
열두 신이 항상 위령을 떨치게 되었네 / 十又二神恒赫靈
국가에서는 방패막이를 크게 설치하여 / 國家大置屛障房
해마다 행사 관장해 내정을 맑게 했으니 / 歲歲掌行淸內庭
황문 아이초라니 소리가 서로 연달아서 / 黃門侲子聲相連
맹렬한 천둥처럼 불상을 쓸어 없앴었네 / 掃去不祥如迅霆
사평부에서는 순경을 두루 비치했으니 / 司平有府備巡警
오정 역사와도 같은 수많은 열사들이 / 烈士成林皆五丁
충의심에 격앙되어 액막이를 대신하여 / 忠義所激代屛障
기괴한 걸 다 베풀고 뭇 광대를 따라서 / 畢陳怪詭趨群伶
오방귀와 백택의 춤을 덩실덩실 추고 / 舞五方鬼踊白澤
불 토해 내기 칼 삼키기의 묘기를 펼치네 / 吐出回祿呑靑萍
서역의 나라 사람 고월의 가면극에는 / 金天之精有古月
혹은 검고 혹은 누렇고 눈은 새파란데 / 或黑或黃目靑熒
그중 늙은이는 굽은 허리에 키가 커서 / 其中老者傴而長
모두가 남극 노인이라고 경탄하거니와 / 衆共驚嗟南極星
강남의 장사꾼은 사투리를 조잘대면서 / 江南賈客語侏離
날리는 반딧불처럼 진퇴를 경쾌히 하지 / 進退輕捷風中螢
신라의 처용은 칠보를 몸에 장식하고 / 新羅處容帶七寶
꽃 가지 머리에 꽂아 향 이슬 떨어질 제 / 花枝壓頭香露零
긴 소매 천천히 돌려 태평무를 추는데 / 低回長袖舞太平
발갛게 취한 뺨은 술이 아직 안 깬 듯하고 / 醉臉爛赤猶未醒
황견은 방아를 찧고 용은 여의주 다퉈라 / 黃犬踏碓龍爭珠
춤추는 온갖 짐승이 요 임금 뜰 같고말고 / 蹌蹌百獸如堯庭
군왕은 팔각전에 장엄하게 임어하시고 / 君王端拱八角殿
신하들이 군왕 병풍 에워 시립한 가운데 / 群臣侍立圍疎屛
시중이 술잔 들어서 만세를 축수하리니 / 侍中稱觴上萬歲
다행하여라 신들이 천재지회 만났음이여 / 幸哉臣等逢千齡
원컨대 해동 천자의 고악부 가운데 / 海東天子古樂府
내 노래 한 장 이어서 역사에 전했으면 / 願繼一章傳汗靑
병든 몸 힘이 없어 조반에도 못 나간 채 / 病餘無力阻趨班
온종일 찢어진 창에 바람만 썰렁하구려 / 破窓盡日風冷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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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2권 / 시(詩) / 이색(李穡)
잡영(雜詠)
남산은 내 창 앞에 당해 있는데 / 南山當我窓
나무들이 그 꼭대기에 자라나서 / 有樹生其顚
아침저녁으로 애교를 부려주고 / 朝昏逞媚嫵
풍일 속에 맑고 고움 간직했기에 / 風日涵淸姸
잎새 사이에 고운 소리를 남기고 / 葉間遺好音
꾀꼬리는 이제 방금 옮겨 가누나 / 黃鳥時方遷
이걸 생각하며 길이 탄식하노니 / 念此坐長嘆
사물 이치는 자연에 말미암거늘 / 物理由自然
어찌하여 출처에 어두울 것 있나 / 奈何昧出處
순리대로 하늘을 섬길 뿐이로다 / 順序當事天
용수산은 우리 이문에 당해 있어 / 龍山當里門
구름이 그 봉우리에서 나오는데 / 有雲出其岫
담담하여 본디 무심한 것이거니 / 澹然本無心
어찌 거취에 헷갈린 적 있으리요 / 何曾迷去就
긴 바람이 어디서 불어만 오면 / 長風何方來
그를 좇아 급히 달리곤 하나니 / 從之乃馳驟
신룡이 천하에 우택을 내릴 적엔 / 神龍澤天下
서로 만남이 우연이 아니고말고 / 所憑非邂逅
음양은 본래 기관을 멎지 않나니 / 陰陽無停機
나는 또 복괘 구괘를 관찰하련다 / 我且觀復姤
동산은 바로 우리 집 뒤에 있어 / 東山在屋上
그 높이가 성문을 압도하는데 / 其高壓城闉
부소산과 천마산은 / 扶蘇與天摩
서로 나란히 어찌 그리 가파른고 / 相次何嶙峋
티 하나 없이 맑고 빼어난 품이 / 淸秀淨無垢
포홀 갖추고 대궐을 향한 듯하네 / 袍笏趨紫宸
그를 마주해 감히 서로 겨룰쏜가 / 對之敢相抗
높은 자리를 배석이나 하였으면 / 庶以陪文茵
정색을 그 누가 감히 더럽히리요 / 正色誰敢褻
엄연히 임금과 신하 사이 같구려 / 儼爾如君臣
가파르고 험준한 삼각산은 / 峨峨三角山
구름 끝에 우뚝 솟아 푸르른데 / 聳翠浮雲端
산골짝을 완연히 서로 마주하니 / 巖壑宛相對
체세가 어찌 그리도 우뚝한고 / 體勢何巑岏
석양이 서쪽 비탈에 쏘아 비치니 / 夕陽射西崖
늘어선 송백은 참으로 가관일세 / 松柏森可觀
그 옛날에 놀던 곳 생각해 보니 / 心懷舊游處
돌 위엔 이끼가 알록달록했었지 / 石上苔花斑
가고파도 끝내 갈 수가 없는지라 / 欲往竟不可
바람 앞에 나의 애만 끊어지누나 / 臨風摧我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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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권 / 시(詩) / 이색(李穡)
스스로 탄식하다. 4수(四首)
스스로 탄식하며 이와 같이 간다던 / 自嘆如斯逝
냇가에서의 말씀이 아련도 하여라 / 依俙川上言
때로는 자주 수레 명하여 나가고 / 有時頻命駕
온종일 문 닫고 홀로 있기도 하네 / 竟日獨關門
바다에 들면 넓어서 끝이 없거니와 / 入海浩無際
산에 있으면 처음 발원지가 되는데 / 在山初發源
꼭 동으로 흐르는 뜻을 누가 알랴 / 誰知必東意
본성이 다행히 끝없이 보존됨일세 / 成性幸存存
비록 거취를 결정함엔 어둡지만 / 雖然迷去就
또한 국가의 안위는 관섭하나니 / 亦復管安危
머리는 내가 지금 가장 희거니와 / 髮白我今最
마음 맑음은 누가 다시 알아줄꼬 / 心淸誰復知
고향 산천은 하늘 아래 아득하고 / 山川天漠漠
문항의 해는 마냥 더디기만 하니 / 門巷日遲遲
붓과는 서로 종유한 지 오래이라 / 毛穎相從久
오직 흥취 푸는 시만 쓸 뿐이네 / 唯題遣興詩
무한 광대한 이 천지 가운데 / 大哉天地中
이 백발 늙은이가 붙여 있어 / 著此白頭翁
소란스러운 공명엔 싫증이 나고 / 擾擾功名倦
한가로운 흥미만 농후해지누나 / 悠悠興味濃
학은 선탑의 달빛 아래 울어대고 / 鶴鳴禪榻月
백로는 낚싯줄 바람 앞에 섰나니 / 鷺立釣絲風
어느 곳인들 은거할 데 없을까만 / 何處不可隱
아직 오도의 궁함만 슬퍼하다니 / 尙悲吾道窮
흰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이 있는지 / 白雲亦何意
가벼이 나는 게 무심한 듯도 하네 / 輕擧似無心
새는 바다 하늘 저 멀리 사라지고 / 鳥沒海天遠
원숭이는 깊은 바위굴에서 우누나 / 猿吟巖洞深
말고 펴는 게 참으로 자유자재라 / 卷舒眞自得
가고 멎는 걸 아득하여 못 찾겠네 / 行止杳難尋
홀로 서서 그윽한 흥취 기탁하여 / 獨立寄幽興
머리 숙여 내 흉금을 피력하노라 / 低頭披我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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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3권 / 시(詩) / 이색(李穡)
앉아서 탄식하다.
참새들은 어찌 그리 짹짹거리며 / 雀噪何査査
닭은 어찌 그리 꾀꾀 울어대는고 / 雞鳴何膠膠
숲 비둘기 또한 급히 울어대는데 / 林鳩啼又急
비바람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고 / 風雨何蕭蕭
숨은 사람은 방금 홀로 앉았자니 / 幽人方獨坐
백발에다 붉은 얼굴도 쇠했는데 / 白髮朱顔凋
보는 사물마다 감회를 일으키어 / 有物感其懷
절로 길고 짧은 노래를 이루누나 / 自成長短謠
자못 부끄러운 것은 덕이 쇠하여 / 所愧德之衰
뫼의 봉황을 불러올 수 없음일세 / 岡鳳難可招
아름답기도 하여라 영천 태수여 / 可憐穎川守
그 높은 풍도를 천재에 흠모하네 / 千載歆高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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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3권 / 시(詩) / 이색(李穡)
허당가(虛堂歌)
내 당은 남산을 정면으로 마주해 / 我堂面南山
텅 비고 밝아 내 얼굴 기쁘게 하네 / 虛明怡我顔
위의 마룻대 아래 서까래가 가지런하고 / 上棟下宇翼如也
앞 처마 뒤 처마를 다 합해 삼 칸이로다 / 前榮後榮凡三間
상여는 그릇 닦아 남의 비웃음 받았지만 / 相如滌器笑於人
벽이나마 섰었으니 참 가난은 아니었네 / 尙有壁立非眞貧
목은 늙은이는 대인부도 안 좋아하는데 / 牧翁不喜大人賦
어찌 봉선문으로 제왕 공덕 과장하리요 / 何曾封禪誇聖神
안회와 원헌은 나의 모범이 되는지라 / 顔回原憲我模範
높은 풍도 이어 펴서 천재에 새로워졌네 / 繼播高風千載新
바람이 불어오면 막힐 것이 없고 / 風來無齟齬
달빛은 들어 담소의 자리 비추네 / 月入涵笑語
사방에서는 주룩주룩 소낙비가 내리고 / 絲絲四方驟雨飛
만리 멀리 아득히는 기러기 날아가는데 / 渺渺萬里冥鴻擧
귀신이나 물여우는 알 수도 없거니와 / 爲鬼爲蜮不可知
어찌하여 산해는 겹겹으로 막히는고 / 奈何山海重相阻
순 임금의 남훈가를 이어 부르고 싶은데 / 欲賡高舜南薰歌
해와 달은 언뜻언뜻 빨리도 지나가누나 / 頭上倏忽雙丸過
성명한 제왕은 시기에 맞춰 나오거니와 / 聖帝明王應時出
마음을 비운 다음에야 치우침이 없으리 / 虛心然後無偏頗
백성이 배를 두드리며 태평을 즐기어라 / 黎民鼓腹樂大平
이게 바로 목은 늙은이의 안락와로세 / 卽是牧翁安樂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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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3권 / 시(詩) / 이색(李穡)
빨래를 하다.[澣濯]
굵고 가는 갈포옷 공정도 세밀한데 / 絺綌功夫細
찌는 더위라서 빨래도 자주 하누나 / 炎蒸澣濯頻
거칠수록 늙은이 몸에는 간편한데 / 愈疏便老骨
해지는 모양은 쇠한 몸과 흡사하네 / 漸弊似衰身
먹물 흔적은 본디 좋게 여기거니와 / 墨點自來好
술방울 얼룩인들 누가 짜증내리요 / 酒痕誰復嗔
겉치레 하는 건 내 일이 아니건만 / 修容非我事
남과 달리 보일까 염려되어서라네 / 只恐異於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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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5권 / 시(詩) / 이색(李穡)
효무(曉霧) 전편(前篇)
새벽에 태양이 땅속으로부터 올라올 제 / 曉來日從地中出
지기가 펴려고 하매 천기가 꺾였는지라 / 地氣欲伸天見屈
그 속에서 안개란 게 무성히 피오르는데 / 鬱然其中名曰霧
긴 바람이 오질 않으니 누가 충돌하리오 / 長風不來誰衝突
도성 거리 지척도 분간할 수가 없거니 / 天街咫尺亦相迷
오만 산이 평지처럼 묻힘은 당연코말고 / 莫怪萬山平地沒
중양의 장인 태양에 음이 침범한 거라 / 日衆陽長陰來干
잠시 뒤엔 물상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네 / 須臾物像皆相觀
가리움은 잠시인데 뭐 탄식할 것 있으랴 / 蔽也暫兮何足嘆
원기가 두루 유행해 천지가 관하는걸 / 元氣周流天地官
여생에 가장 즐거움은 선을 함에 있기에 / 殘生最樂在爲善
신지가 청명해지고 거처도 편키만 한데 / 神志淸明居處寬
바깥 사기가 공격해와서 질병이 발작해 / 外邪攻擊疾病作
머리털은 듬성해지고 치아도 빠졌지만 / 鬢髮漸稀牙齒落
한 덩이의 중화는 조금도 결함이 없기에 / 中和一團正無缺
때때로 방자히 읊고 농지거리도 하노라 / 時時狂吟亦戲謔
질병도 새벽 안개 같음을 바로 알겠으니 / 卽知病也如曉霧
남김없이 걷어 가기를 서서 기다리련다 / 立待卷去無所著
안심하고 천명 기다림을 왜 또 의심하랴 / 安心竢命復奚疑
통색과 고락이 오직 때가 있을 뿐인 것을 / 通塞憂喜惟其時
효무(曉霧) 후편(後篇)
지기를 하늘이 응하지 않으면 무가 되고 / 地氣天不應爲霧
천기를 땅이 응하지 않으면 무가 되지만 / 天氣地不應爲霧
서로 응하면 비를 또 제때에 내려 주나니 / 相應則雨又以時
이것은 홍범의 좋은 징조에 나왔느니라 / 在於洪範其徵休
천지의 건함과 순함으로 만물을 화생하되 / 乾健坤順化萬物
음양이 서로 작용하여 주도면밀하거늘 / 絪縕舒卷密以周
혹 여기를 일으켜 본성을 잃게 됨에는 / 使之或沴失本性
나는 그 누구 때문인지 까닭을 모를레라 / 我不知兮誰之由
나는 그 누구 때문인지 까닭을 모르기에 / 我不知兮誰之由
장구 단구 읊조리다 이제는 백발이로세 / 長吟短吟今白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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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6권 / 시(詩) / 이색(李穡)
산중요(山中謠)
내 일찍 들으니 해적이 출몰하여 / 我聞海有賊
때때로 수촌을 공격한다 하였네 / 時時攻水村
맨 처음엔 밤이면 해안을 올라와 / 其初夜登岸
담장 넘어 서절 구투에 그쳤는데 / 鼠竊踰牆垣
중간엔 교만을 떨며 안 물러가고 / 中焉驕不退
벌건 대낮에 평원을 횡행하다가 / 白晝行平原
점차 우리 관군과 감히 서로 맞대항하여 / 漸與官軍敢相敵
새벽부터 황혼까지 북치며 함성을 질러댔지 / 淸晨鼓譟俄黃昏
나는 그때 다른 세상일을 들은 듯 여기고 / 我時如聞異世事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아손들과 놀았었네 / 寢早起遲弄兒孫
그런데 연래엔 능곡 위치가 문득 바뀌어 / 年來陵谷忽易處
적들이 날뛰어서 장차 우리를 병탄하고자 / 賊勢猖獗將幷呑
맨발로 천 길 낭떠러지를 달려 올라가서 / 赤足走上千仞崖
가시덤불 돌 모서리를 원숭이처럼 나는데 / 藤棘石角飛猴猿
관군이 그들의 배를 불태운 데 격노하여 / 官軍燒船激其怒
열화처럼 독을 부려 옥석 구분하듯 하니 / 肆毒烈火如俱焚
규중의 아녀자와 천한 졸도에 이르기까지 / 閨中女兒與卒徒
모조리 잡혀 죽는데 기타야 무얼 말하랴 / 騈首就戮餘何言
나는 다행히 잡목숲 속에 도망가 숨어서 / 我幸竄伏榛灌中
목숨만 보존했을 뿐 아무것도 없는지라 / 僅保性命無留存
하루하루를 주림과 고통 참고 지내면서 / 忍飢忍苦日復日
바닷가에 원통한 호소 많음을 이제 알았네 / 始知濱海多呼冤
원통함 호소한 지 삼십 년하고도 일 년이라 / 呼冤三十又一年
조정에서 오래도록 백성을 걱정해왔는데 / 廟堂久矣憂黎元
어이해 오늘날 나도 이 일을 만났단 말인가 / 奈何今日亦及我
곧장 대궐에 나가 급함을 호소하곤 싶으나 / 告急直欲排天閽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실로 나의 운명이로다 / 反而思之實我命
편하면 위태해지고 통하면 어려워지는 법 / 久安必危亨必屯
하늘은 사람에게 후박의 차별이 없기에 / 天於人兮無厚薄
지속의 차이는 있을망정 은택은 똑같나니 / 雖有久速均其恩
혹 가까운 시일에 태평을 내렸으면 하여 / 賜之太平或者近
내 지금 머리 조아리며 천지에 호소하노라 / 我今稽顙呼乾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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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6권 / 시(詩) / 이색(李穡)
해동(海東)
바다의 동쪽 옛 기자의 나라에 / 海東箕子國
늙은 목은은 귀밑이 허옇게 세어 / 牧老鬢皤皤
병은 나이와 함께 커져만 가고 / 病與年俱大
시름은 날이 갈수록 많아만 지네 / 愁隨日又多
포용해준 천지엔 사례하거니와 / 包容謝天地
분열된 산하엔 위문을 해야겠네 / 分裂弔山河
조물주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워 / 造物誠難料
유연히 홀로 소리 높여 노래하노라 / 悠然獨浩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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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7권 / 시(詩) / 이색(李穡)
동지(冬至)에 팥죽을 먹다.
동지에는 음이 극도에 이르러서 / 冬至陰乃極
이 때문에 일양이 생기는 것이라 / 故有一陽生
성인이 그것을 대단히 기뻐하여 / 聖人喜之甚
괘상을 살펴 복괘로 이름하였네 / 考卦以復名
이것을 하늘의 봄이라 하나니 / 是曰天之春
만물이 싹트게 되는 바이로다 / 萬物所由萌
사람 마음도 욕심에 가려졌다가 / 人心敝於欲
착한 단서가 수시로 드러나는데 / 善端時露呈
그것을 기름은 군자에 달렸으되 / 養之在君子
다름 아니라 성실함이 우선이니 / 匪他先立誠
예 아닌 것을 부지런히 버려야만 / 勤勤去非禮
비로소 밝은 본성을 보게 되리라 / 始見本然明
팥죽 먹어 오장을 깨끗이 씻으니 / 豆粥澡五內
혈기가 조화 이루어 평온하여라 / 血氣調以平
유익함이 참으로 적지를 않으니 / 爲益信不淺
성인의 마음을 진정 알 만하구려 / 可見聖人情
세도는 점차로 내려가기만 하니 / 世道漸以降
이공이 어느 날에나 이뤄질런고 / 理功何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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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7권 / 시(詩) / 이색(李穡)
인일(人日)
인일이 금년에는 일기가 좋아서 / 人日今年好
춘광이 팔방 끝까지 펼치었는데 / 春光遍八垓
녹패가 조정으로부터 내려와서 / 祿牌天上墜
창고의 자물쇠가 동내서 열리자 / 倉鐍洞中開
맑은 새벽에 수레를 몰고 갔다가 / 淸曉驅車去
땅거미에 쌀을 싣고 돌아오누나 / 黃昏載米來
나라의 은혜는 바다같이 깊건만 / 國恩深似海
문묵의 재주 부족함이 부끄럽네 / 文墨愧非才
날이 새자마자 낯 씻고 머리 빗고 / 天明初盥櫛
백발 나이로 시서만 숭상하노라니 / 白髮尙詩書
성곽엔 봄의 풍광이 어우러지고 / 城郭煙光合
강산엔 햇빛이 화창하기만 한데 / 江山日色舒
난봉들은 모두 대각에 모이었고 / 鸞凰集臺閣
참새들은 뜰가에서 지저귀누나 / 鳥雀噪庭除
홀로 앉아서 깊이 반성하게 된 건 / 獨坐發深省
남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로다 / 南陽諸葛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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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8권 / 시(詩) / 이색(李穡)
배 고파 우는 아이를 보고서 1수(一首)
어린애가 울며불며 먹을 것을 졸라대니 / 稚子啼呼索點心
할머니가 돌솥 걸고 불을 호호 불어 대네 / 老婆吹火石鐺深
장국이며 부침개를 먹음직스럽게 데워 오자 / 醬湯油餠烹來軟
울던 아이 평소처럼 귀엽게 재롱을 떠는구나 / □□尋常驕語音
도의 참맛 느낄 때를 스스로 징험해야 할 터 / 道味生時須自驗
천기가 발동하는 곳을 그 누가 찾아보았을까 / 天機動處有誰尋
노옹은 날마다 살아가며 진정 일이 없는지라 / 老翁日用眞無事
흥이 일면 유연히 시 한 수 읊조려 보노매라 / 遇興悠然試一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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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9권 / 시(詩) / 이색(李穡)
학교(學校) 3수(三首)
학교가 국가의 명맥이라면 / 學校邦家脈
군사는 천지의 마음이시라 / 君師天地心
생성하는 공이 절로 묘하거니 / 生成功自妙
교양하는 은택이 얼마나 깊나 / 敎養澤何深
날마다 대하나니 갱장의 모습이요 / 日對羹墻面
수시로 들리나니 금석의 소리로다 / 時聞金石音
가엾어라 이 몸은 병을 부여안고 / 自憐方抱病
궤안에 앉아 혼자서 침음만 하니 / 几坐獨沈吟
학교를 유신하신 금상의 명령 / 今代維新命
선왕이 못다 하신 그 마음이라 / 先王未了心
문풍이 바야흐로 떨쳐지려 하니 / 文風方欲振
성상의 은택이 또 깊다 하리로다 / 聖澤亦云深
밝은 태양이 사심 없이 비춰 주고 / 白日無私照
꾀꼬리가 명랑하게 노래하는 때 / 黃鸝送好音
나의 생도 아직은 강건하거니 / 吾生尙强健
함께 공부하며 송가를 불러야지 / 絃誦共謳吟
부끄러워라 재주도 학식도 없는 내가 / 愧我無才學
현릉의 은혜로 반궁에 몸을 담았는데 / 逢君叨泮宮
장차 무수의 공을 이루려고 하던 차에 / 功成將舞獸
홀연히 반룡을 당해 꿈이 끊어졌다오 / 夢斷忽攀龍
섬돌의 이끼는 비 내리니 더욱 푸르르고 / 階蘚工隨雨
뜨락의 솔도 바람을 만나니 마냥 기쁜 듯 / 庭松喜得風
흰머리 병든 몸도 어떻게든 참여해서 / 白頭扶病去
자갈 같은 자질이나마 다시 갈고 닦아야지 / 沙石更磨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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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0권 / 시(詩) / 이색(李穡)
유감(有感) 3수(三首)
유유한 천지 속에 잠깐 머물다 가는 이 몸 / 天地悠悠寄此身
전광석화라 표현해도 오히려 더디다 하리로다 / 電光石火亦逡巡
누가 알까 늙은 목옹 마음속의 괴로움을 / 誰知老牧心中苦
임금의 은혜 갚지 못한 채 백발만 새로 돋아나니 / 未報君恩白髮新
당일에 꽤나 어렵고 힘들게 글을 읽을 적에는 / 讀書當日頗艱辛
유풍을 떨치려 하며 소신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 欲振儒風耻素臣
늙어가며 혼자 슬퍼라 너무도 쇠한 것이 / 老去自悲衰也甚
불교에 의지해 임금님 은혜 갚으려 하니 / 却憑西敎報君親
서늘함 찾아 자하동 갔다가 들른 왕륜사 / 趁涼霞洞過王輪
뜰의 풀들 연무에 뒤섞여 사람 키도 넘을 듯 / 庭草和煙欲沒人
손가락 튕길 사이에 바뀌는 과거 현재 미래 / 過見來爲彈指頃
동해가 홀연히 티끌을 날리는 줄을 믿겠도다 / 不疑東海超飛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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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0권 / 시(詩) / 이색(李穡)
쌀 찧는 노래
부잣집은 노적이 마치도 높은 언덕 / 富家積如京
야외에서 뜨락 안까지 이어지는데 / 野外連園中
가난한 집은 등에 짊어지고 와서는 / 貧家負以來
손으로 절구질하느라고 땀이 뒤범벅 / 手舂汗交融
아침밥은 먹어도 저녁을 기약 못하니 / 救朝不謀夕
붉게 썩어 가는 쌀을 알기나 하겠는가 / 那知相因紅
부잣집이야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서 / 富家得上田
하인들도 많아 노동력도 풍부하니 / 力作多僕僮
찧고 까부는 건 쉽고도 또 쉬운 일 / 舂簸易又易
쭉정이와 겨들이 바람 따라 흩날리네 / 粃糠散以風
서쪽 방아는 서쪽에서 쿵더쿵 / 西碓鳴于西
동쪽 방아는 동쪽에서 쿵더쿵 / 東碓鳴于東
알알이 모두가 백옥처럼 깨끗해서 / 粒粒皆玉潔
맑은 하늘에 광채가 환히 비치누나 / 光華燭晴空
위로는 나랏님께 상납을 하고 / 上以供官家
가운데로는 신하들을 기르게 하고 / 中以養臣工
아래로는 묵은 쌀들을 가져다가 / 下以取其陳
해마다 우리 농민을 먹여 살린다오 / 歲歲食吾農
썩은 선비 나도 입에 풀칠하면서 / 腐儒亦糊口
그동안 아무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 而無尺寸功
이제는 너무나도 늙고 말았으니 / 甚矣今老矣
국록만 축내는 것이 제공에 부끄러워 / 素飡愧諸公
제공은 따뜻함과 배부름을 함께하며 / 諸公共溫飽
바야흐로 건건 비궁 행하고들 있잖은가 / 蹇蹇方匪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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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1권 / 시(詩) / 이색(李穡)
새벽에 읊다. 3수(三首)
맏손자는 뭔가 웅얼거리며 누워 있고 / 孟孫語且臥
둘째 손자는 한창 곤히 잠들어 쿨쿨 / 仲孫方爛眠
늙은 할아비 억지로 일찍 일어나니 / 老翁強起早
해가 불쑥 동남쪽 하늘에서 떠오르네 / 日上東南天
마읍에는 봄풀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 馬邑春草生
여강에는 구름 낀 나무들 이어졌으리 / 驪江雲樹連
언젠가는 내 마땅히 동관의 손을 잡고 / 終當携童冠
돌아가서 남은 생애 즐겨야 하리로다 / 歸去樂餘年
봄바람이 나의 숲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林
나의 가지에선 꽃봉오리 터지고 / 蓓蕾生我枝
봄바람이 나의 못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池
나의 물가엔 잔물결이 넘실대고 / 淪漪盈我湄
봄바람이 내 머리에 불어오면 / 春風吹我鬢
날마다 불어나는 하얀 머리카락 / 日日添素絲
흰 머리칼 누가 다시 검어졌으리 / 素絲誰復緇
후손 위할 계책이나 생각해야지 / 祗念孫謀貽
후손을 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貽謀將如何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 源潔流斯淸
나무가 곧은데 굽은 그림자 있으며 / 直木無曲影
정대한 음악에 음탕한 소리 있던가 / 正樂無淫聲
나의 몸에 선을 쌓아 놓지 못했는데 / 我躬不積善
무엇을 가지고 후생에게 보여 줄까 / 何以示後生
아득히 넓고 먼 하늘과 땅 사이에서 / 茫茫天地內
나의 마음 알아줄 이 누가 있을거나 / 誰與吾同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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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2권 / 시(詩) / 이색(李穡)
맏손자 맹유(孟㽥)가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짓다.
열네 살에 처음으로 십운과에 합격한 뒤 / 十四初登十韻科
지금은 흰머리로 한림원을 맡은 이 몸 / 白頭今日領鑾坡
우리 손자의 출발도 나와 정말 흡사한데 / 孟孫發軔眞相似
말년에 벼슬을 그만둘 땐 과연 어떨는지 / 末路休官定若何
대궐에서 합격 통지 정식으로 받고 나서 / 放牓傳臚出丹鳳
물렀거라 소리치며 청노새 타고 돌아오리 / 還家喝道耀靑騧
부엌에선 부산 피우며 새로 밥을 짓는다나 / 旋炊熱飯廚人走
말방울 소리 울리면서 하객이 몰려올 테니까 / 賀客如雲簇玉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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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2권 / 시(詩) / 이색(李穡)
짚신 3수(三首)
짚신은 산중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 / 山屨山中物
살이 닿는 곳마다 매끄럽고 향기로워 / 肌膚滑且香
새로 짚신 닦는 곳을 알고 싶으신가 / 欲知新拭處
시냇가 여인 아침 화장 끝내는 그곳 / 溪女罷朝粧
생각나네 그 옛날 소년 시절에 / 憶昔少年日
산속 절간에서 글을 읽을 적에 / 讀書山寺中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을 벗고 / 褰衣仍赤足
솔바람 밟고서 뛰어다닌 일이 / 馳走踏松風
조정의 구두 벗어 버린 지 오래 / 我脫朝靴久
산 다락 산보하니 발걸음 가뿐 / 山亭野步輕
홍진이 묻을래야 묻을 수 있나 / 紅塵汚不得
삶을 지켜 주는 네가 고맙도다 / 謝汝爲吾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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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2권 / 시(詩) / 이색(李穡)
짚신 3수(三首)
짚신은 산중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 / 山屨山中物
살이 닿는 곳마다 매끄럽고 향기로워 / 肌膚滑且香
새로 짚신 닦는 곳을 알고 싶으신가 / 欲知新拭處
시냇가 여인 아침 화장 끝내는 그곳 / 溪女罷朝粧
생각나네 그 옛날 소년 시절에 / 憶昔少年日
산속 절간에서 글을 읽을 적에 / 讀書山寺中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을 벗고 / 褰衣仍赤足
솔바람 밟고서 뛰어다닌 일이 / 馳走踏松風
조정의 구두 벗어 버린 지 오래 / 我脫朝靴久
산 다락 산보하니 발걸음 가뿐 / 山亭野步輕
홍진이 묻을래야 묻을 수 있나 / 紅塵汚不得
삶을 지켜 주는 네가 고맙도다 / 謝汝爲吾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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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5권 / 함창음(咸昌吟) / 이색(李穡)
매미 소리를 듣고 2수(二首)
해마다 여름과 가을이 교대할 즈음에는 / 年年夏秋交
지독한 무더위 끝에 조금씩 서늘서늘 / 暑極生微涼
이런 때에 건강법을 챙기지 못한 나머지 / 頤養未得法
비위가 상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도다 / 遂致脾胃傷
기운이 평온할 때에도 짜증나는 법인데 / 氣平尙鄭仲
더구나 몸이 노곤해서 쓰러지려 함이리오 / 況乃困欲僵
연일 배탈 설사에 심하게 시달리다 보니 / 連朝泄痢甚
무너진 담장처럼 일어나지도 못하겠네 / 已覺如頹墻
그런데 홀연히 매미 소리 내 마음 위로하니 / 蟬聲忽適意
더 이상 저 하늘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도다 / 不復呼彼蒼
가을을 슬퍼하는 것은 본디 남아의 일 / 悲秋男兒事
어느새 속절없이 늙은이로 변한 이 몸 / 倏忽成老翁
그런데 천공께선 또 무슨 생각 있어 / 天公復何意
매미 소리 한가운데 나를 앉게 했노 / 坐我蟬聲中
대궐 위로 올라가서 호소할 길도 없으니 / 君門天無階
무슨 수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타 볼거나 / 何由駕飛鴻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 掩耳欲不聽
쇠한 몸 기롱당하는 것을 더욱 느끼기만 / 更覺欺衰躬
만물에도 좋은 때가 각자 있지 않겠는가 / 萬物各得時
나는 우선 열심히 술이나 마시며 취하련다 / 我且勤醉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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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꿈을 기록하다 북관에 있을 때 〔記夢 在北關時〕
가을바람은 장백산을 흔들고 / 秋風撼長白
쇠한 귀밑머리 쑥대처럼 날리네 / 衰鬢颯如蓬
고향 생각 할수록 근심스러우나 / 思鄕轉悄悄
구름바다가 만 겹으로 막혔네 / 雲海隔萬重
해가 다가도록 이룬 도가 없으니 / 歲晏道無成
한밤중에 눈물만 흥건하여라 / 中夜涕橫縱
홀연 꿈에 퇴계 선생을 뵈오니 / 忽夢陶山子
선생께서 조용히 맞아주셨네 / 函丈接從容
은미한 말씀 알아듣지 못했지만 / 微言雖未了
그 모습에 마음이 환하게 풀리네 / 光景挹昭融
이윽고 꿈에서 놀라 깨니 / 俄然夢蘧蘧
몸은 푸른 바다 동쪽에 있구나 / 身在碧海東
이 이치 누가 다시 이해하랴 / 此理誰復解
마음속에서 감탄이 우러나네 / 感歎正由中
천재일우 마음이 꼭 맞는 분이라 / 千載會心人
아침저녁 사이에 만날 수 있어라 / 朝暮得相逢
돌아가 선생이 남긴 글공부하려니 / 歸歟理遺篇
모기와 등애가 천 종을 보는 듯 / 蚊蝱視千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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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영시가〔靈蓍歌〕
천지의 변화로 시초가 이에 생겨나고 / 天地變化蓍乃生
성인이 태어나시자 시초가 영험해졌네 / 聖人旣作蓍卽靈
시초와 거북은 나이가 몇이던가 / 寶根藏六問幾齡
옥엽 위를 덮은 상서로운 구름 푸르네 / 玉葉上覆祥雲靑
복희 문왕이 역을 짓고 주공이 마음에 새겨 / 羲文作易朝繫銘
손으로 뽑아 손가락에 걸고 길흉을 살폈네 / 採擷掛扐觀虧盈
공자가 만년에 성인이 크게 이룬 것을 모았으니 / 宣尼晩節集大成
지극한 도는 사성이 번갈아 나길 기다렸네 / 至道應須四聖更
십익(十翼)의 전을 짓자 해와 별처럼 빛나니 / 翼以十傳燦日星
분분하던 구사들은 드디어 자취 감추었네 / 紛紛九師遂晦冥
제비와 박쥐처럼 밤낮으로 논쟁을 하다가 / 明暗都輸燕蝠爭
천년이 지난 뒤에 고정이 태어났네 / 千載歸來得考亭
이 이치 기준을 세워 사람을 일깨웠고 / 指南斯理喚人醒
선친께서 《주역》 읽기를 좋아했지 / 先公好讀洗心經
바다 건너 신경에 가서 도를 묻다가 / 航海問道趨神京
노나라 선생과 처음 만나 이야기했네 / 魯國先生蓋初傾
희고 긴 시초를 또한 전형으로 숭상하니 / 白而長也尙典刑
대연수의 오십 가지를 주었다네 / 贈以大衍五十莖
돌아올 때 하인 불러 정성스레 타이르며 / 東還呼走勑丁寧
이 물건은 공자 집안에서 나왔다 했네 / 此物乃出夫子庭
재배하고 상자 속에 넣자 쟁그랑 소리 나니 / 再拜藏襲鏗有聲
태워 삼키지 않아도 정결하여 신명과 통하네 / 不待呑畫契潔精
박사의 말은 이익과 명예가 섞여 있어서 / 博士家言雜利名
주자 본의(本義)는 내버리고 정전만 외우네 / 閣束朱傳但誦程
과거에 오를 문호가 닫혀 있지 않거늘 / 次第門戶本不扃
다만 빈산을 향하니 돌들에게 들려주네 / 獨向空山亂石聽
어찌하여 너는 신명과 통하는 물건 되었는가 / 如何爾之爲物通神明
어여쁘게도 만 리에 바람을 따라왔구나 / 可憐萬里隨飄零
아득히 삼년을 푸른 파도 곁에 있다가 / 悠悠三載傍滄溟
한가로이 밝은 창가에 앉으니 상자 향기롭네 / 燕坐明窓巾篋馨
시초야 시초야 너는 둥글고 괘는 모나니 / 蓍乎蓍乎爾卽圓兮卦則方
나는 너와 더불어 출처를 함께하리라 / 木齋與爾同行藏
우리나라에는 시초(蓍草)가 없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우복(愚伏) 선생은 설시(揲蓍)할 때 모두 쑥대〔蒿〕를 사용하거나, 혹은 대나무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숭정(崇禎) 임신년(1632, 인조10)에 선친께서 봉사(奉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 연성공(衍聖公) 공윤식(孔胤植)이 시초 51줄기를 증정하고, 공자가 사당 앞에 손수 심은 회나무 그림과 팔분 서체〔隷書〕의 비문을 함께 주었다. 선친께서 그것을 매우 보배롭게 여겨 종가(宗家)에 대대로 잘 지키게 하였다. 시초는 상자 속에 넣어 두었는데,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내가 이때부터 출입할 때 가지고 다녔다. 예전에 고산(高山)에 갈 때 가져갔고, 지금은 또 경성(鏡城)에도 가져 왔으니 감탄하면서 시를 지었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 주자의 ‘본의(本義)’를 완전히 폐한 것을 한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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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천군 8수 기해년(1659, 현종1) 〔天君 八首 己亥〕
만리 밖을 밝게 보니 / 明見萬里外
천군은 곧 성신일세 / 天君乃聖神
장수는 의리를 속이지 않고 / 都將不欺義
심신을 다해 충신이 되네 / 盡瘁作忠臣
신첩이 서로 연마하지 않으면 / 臣妾不相治
무엇으로 천군을 섬기겠는가 / 何以事天君
예를 다함은 오직 경에 있으니 / 盡禮唯在敬
사특함을 막아 공을 세우련다 / 閑邪要策勳
왕도는 신독을 하는 데 있으니 / 王道在愼獨
보고 듣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하네 / 戒懼不覩聞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를 잡으니 / 中和天地位
그런 뒤에 임금다운 임금이 될 수 있다네 / 然後得君君
원년 원일에 본성을 받아 태어나니 / 降衷元年正
영대는 위엄스런 자줏빛 대궐일세 / 靈臺儼紫宸
천하가 인을 따름은 하루로 징험되니 / 歸仁一朝驗
넉넉히 사해의 봄을 소유하리라 / 富有四海春
임금은 요순의 자질이 있으니 / 君有堯舜質
천명을 받아 화덕으로 왕이 되었네 / 受命火德王
치지는 어진 이의 도움에 힘입고 / 致知資賢輔
징분에는 뛰어난 장군을 보낸다네 / 懲忿遣良將
극기는 곧 일신을 위함이 아니요 / 克己卽匪躬
성찰해야 할 것은 간쟁의 말일세 / 省察是諫諍
만약 힘써 공부하길 논하려면 / 若論帶礪功
첫째는 오직 경 공부라 하리라 / 第一曰唯敬
인심이 매양 천명을 듣고 따라 / 人心每聽命
덕을 행하면 위에서 편하리라 / 作德逸於上
공손하면 이미 할 것이 없으리니 / 恭已定無爲
태평시절 도리어 상상할 수 있겠네 / 太平還有象
천군은 참으로 넉넉하고 귀하니 / 天君眞富貴
지키고 채워서 시종 삼가야 하네 / 持盈愼終始
자주 밖으로 사냥가게 하지 말고 / 莫敎頻出狩
명당 안에 단정히 앉아 있게 해야지 / 端坐明堂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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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계장을 만들다〔造桂漿〕
새벽에 두 말의 샘물 길어 와서 / 曉汲山泉二斗水
풍로에 달여 열 되를 만들었네 / 風爐煎取十升來
계피향 가루 만들어 솔솔 뿌리고 / 桂香屑作霏微落
꿀 섞어 넣고 휘휘 저어 끓이네 / 崖蜜添經滾盪回
좋은 액은 삼복 더위를 덜어 주니 / 瓊液頓除三伏熱
종이로 봉해 칠 일을 기다렸다 개봉하리 / 紙封須待七重開
금경이 상여의 소갈증을 풀어 주었으니 / 金莖正解相如渴
이제부터 탁주 잔에 따르지 말게나 / 從此休斟濁酒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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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저녁 연기〔暮煙〕
처마에 햇살은 희미하게 저물고 / 簷日微微下
마을의 연기는 가늘게 피어나네 / 村煙細細橫
허공에 뜬 푸른 눈이 내려앉듯 / 浮空翠雪落
땅에서부터 흰 물결이 생겨나네 / 漫地素波生
자려는 새는 돌아갈 나무 못찾고 / 宿鳥渾迷樹
은거한 사람은 홀로 빗장 문 닫네 / 幽人獨掩扃
어느덧 바람이 연기 다 걷어가니 / 居然風捲盡
예전처럼 여러 산봉우리 푸르네 / 依舊衆峯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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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김종수(金鍾秀)
매화〔梅花〕
매화를 따뜻한 지합에 넣어 두었는데 / 藏梅紙閤暖
창밖에는 눈이 펄펄 내리네 / 窓外雪方深
가지가 늙었는데도 살려는 의지가 있어 / 槎老猶生意
꽃이 피는 것은 곧 그의 본디 마음이라 / 花開卽素心
맑은 향기 말세의 시속을 일깨우고 / 淸芬醒末俗
외로운 줄기가 중음을 깨뜨리네 / 孤植破重陰
너에게 의지하여 한적한 고독을 즐기고 / 賴爾娛幽獨
어느새 세모의 시를 지었구나 / 飜成歲暮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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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김종수(金鍾秀)
술회〔述懷〕
내가 태어날 때에 봉황 꿈을 꾸시고 / 我生之初夢鳳凰
조부께서는 몹시 사랑하셨네 / 皇祖愛之殊凡常
무릎에 앉혀 어를 때부터 글자를 가르치셨고 / 自從置膝便敎字
사물이 있으면 비슷한 것들을 들어 부지런히 깨우쳐 주셨네 / 緣物引類勤曉譬
약관에 진사시의 양장에 합격하자 / 弱冠進士中兩塲
두 손으로 내 머리 어루만지며 만면에 기쁨이 가득하셨네 / 雙手撫頂顔色喜
선인께서는 일생 동안 고상한 절개를 지켰는데 / 先人一生守高蹈
자신이 그 복록을 받지 않으셨으니 하늘이 응당 보응을 내리리라 / 於躬不食天應報
계유년에 부친상을 당하고서 / 作噩何歲泣孤喘
벼슬에 뜻이 없어 문필을 멀리했는데 / 進取無心倦筆硯
모친께서 연로하시니 감히 고생을 꺼리겠는가 / 慈母年高敢憚勞
잠시 관복을 입고 조정에 출입하고 지방관으로도 나갔었지 / 乍曳袍笏趨郡縣
초야에서 거친 음식으로나마 모친을 봉양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 田廬菽水願無違
한번 나갔다가 우연히 과거에 급제했다네 / 一出偶被龍頭選
하늘이 나를 곤궁하게 늙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 皇天倘不窮老我
어찌 나의 조부와 부친으로 하여금 보시게 하지 않았는가 / 何不令吾祖父見
내가 어머니와 마주 앉아 서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으니 / 我對母氏相掩泣
기쁨을 만나기에 앞서 슬픔이 모여들게 하였네 / 遇喜先敎悲思集
응당 집안의 명성 실추하지 않도록 노력해서 / 只應家聲勉勿墜
사람들이 그 조부에 그 손자라고 일컫게 해야 하리라 / 人稱祖父之孫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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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김종수(金鍾秀)
생일날 아침〔生朝〕
섬에 들어온 지 삼백 일이 되었는데 / 入島三百日
어느 날인들 어머니 그립지 않으리 / 何日不戀母
생일날 아침에는 그리움이 생겨나는 법이라 / 生朝戀所生
하루 동안에 애간장이 다 녹아 버렸네 / 一日腸盡朽
생각건대 내가 태어났을 때에 / 想像我生時
어머니의 마음 기쁘기 짝이 없었으리라 / 母心喜無比
정수리에 오색의 비단을 묶고 / 束頂五色錦
황금수로 목욕을 시키셨지 / 浴膚黃金水
밤낮으로 품에 안고서 / 晝夜置懷中
내가 효도하고 영화롭기를 축원하셨는데 / 祝我孝且榮
큰 죄에 빠져서 / 那知陷大僇
어머니 노년에 근심을 끼칠 줄을 어찌 알았으리 / 貽憂在暮齡
자식을 낳아 만약 나와 같다면 / 生子苟如我
자식을 낳지 않느니만 못하리라 / 不如不生子
생각건대 사람이 운명을 부여받는 것은 / 飜思人稟命
모두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네 / 皆自墮地始
길흉화복이 모두 원래 정해져 있거늘 / 休咎摠素定
부러워하고 싫어하며 부질없이 스스로 번뇌하네 / 羨厭空自惱
내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 我願告母氏
자식 생각 버리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고 하고 싶네 / 棄置寬懷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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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모음(제10부) 끝.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가 되십시오.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