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신문에 입시관한 기사를 읽다가 문득 주제의 문구가 생각이나
몇자 적어 본다.
1968년 중학교 시험을 치르기전 인줄 안다.
갑자기 우리 어무이께서 "동동"자 "머리 나쁜놈이라 공부 하모 머할끼고 옆집 팔용이 갸
맨쿠로 일찍 감치 00시장에서 장사나 하모 되지러" 하는 말씀이 나의 어린 마음을
더욱더 의기 소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내 보다 14세 많은 혜숙이 누나는 달랐다.
"어무이 뭐라 캄니거 내가 볼기네 그렇게 썩 좋은 경북중학,사대부중은 못들어가도
대구시내 중간쯤하는 중학교에는 들어갈껌니다".
그때 누나가 어무이 한테 하는 이야기가 나의 어린 마음에 시험이란 자신감을 들게 하였다.
그리고 누나는 옛날 대구신암초등학교 은사이고 그 당시동촌초등학교 선생님인 그분에게
중학교 시험을 몇달 앞두고 과외를 보낸 것이다.
매일 학교를 마치고칠성동에서 삼덕동까지 걸어서 과외를 다녔다.
가방에는 누른 문제집,동아전과,책등을 넣고 말이다.
그렇게 공부 했지만 나는옥산초등학교 6학년 성적은 중간치라 늘 누나는 걱정하였다.
그래도 누나는 자주 나 공부를 도와 주었다.
"나는 니가 이래 산수 문제를 몬 풀 줄 정말 몰랐다.오학년 문제도 제대로 몬 풀면서
우째 중학교에 들어갈라 카노?"
이렇게 누나는 나를 가르치다 자주 짜증을 내었으나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았다.
사실 그때 나는 건성으로 학교를 다닌데다 장래에 학업의 중요성도 몰랐는것 같다.
그러나 가로 늦게 초등학교 6학년 산수,국어,사회 문제를 동아전과,과외 선생님께
열심히 들고,쓰고 하여 그나마 대구시내 중간쯤 되는 중학교 시험에 합격 한 것었다.
아~~~
그렇게 시작한 나의 전문교육 입문과정을 나이가 60세가 다된 지금 그때 더욱더 열심히
잘 해서면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어무이 말씀도 지금 이해가 간다.
나를 중학교에 꼭 보내고자 하신 충격적인 말씀도.......
초가을 선선한 날씨에 96세신 돌아가신 어무이생각에 자구만>>> 그리고 보고싶어진다...
둘째 아들 동동이 입니다 - 당신께서 그런소리 안하셨다면 지금 나는 더 어려운 삶이 되지 않아 설까요 어무이에~~~
고맙심더~~~~~~~~~~~~~~~~
- 비오는 날 아침 창가에서 동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