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과 오모가리 탕
- 전주음식이야기(3)
행촌수필 ,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한정식은 전주가 자랑하는 팔미(八味) 식품들이 고루 배열된 열두 가지 기본반찬과 10여 가지 별도반찬이 더해진 토속음식의 종합예술과도 같은 성찬이다. 한정식은 전주의 전문요리 종합밥상이다. 민족고유의 음식문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풍의 유기반상기를 사용하니 품격이 높다. 지난날에는 요정음식으로 떡 벌어지게 한 상 그득 차려놓고 지체 높은 고급손님들을 상대로 한복차림의 예쁜 여인들이 옆에서 가야금을 뜯고, 한 편에서는 장구치고 소리를 하는 잔칫집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니 값도 비싼 별식이었다. 감히 서민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근래에는 한정식도 대중화되어 우리 같은 서민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만큼 문턱이 낮아졌다.
전주 팔미(八味)란 여덟 가지 맛있는 식품을 말한다. 파라시(八月柿: 안터골 팔월의 감, 구이의 열무, 교동의 샘물로 빚은 녹두묵, 상관의 서초, 송천동 애호박, 모자 매운탕, 남천 서천의 게, 삼례 황토벌의 무, 등을 전주의 팔미식품이라 자랑한다. 옛날에 성업을 이루던 요정은 거의 다 없어졌다. 요즈음 한정식 집으로는 백번집(다가동), 전라회관(삼천동), 무궁화회관(덕진동), 가족회관(중앙동) 등이 있는데 사전에 예약을 해야만 회식이 가능하다.
오모가리란 뚝배기를 뜻하는 전북지방의 사투리다.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민물매운탕이다. 전주팔경의 하나인 한벽당 아래 전주천변 평상에서 먹을 수 있는 매운탕이다. 물이 맑기로 유명한 교동(청수정), 전주천 상류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넣고 미나리, 쑥갓, 마늘, 상추 등과 당면을 넣어, 갖은 양념을 넣고 뚝배기에 담아 끓여냈다. 얼큰하고 담백한 국물과 양념 맛이 잘 스며든 민물고기의 보드라운 육질과 당면가닥들이 오모가리 탕의 묘미를 냈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끌었다, 민물고기로는 쏘가리, 피라미, 빠가사리, 잡어, 천어, 등을 넣고 뚝배기에 온갖 양념을 넣어 보글보글 끓는 오모가리 탕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1960년대~70년대까지 여름철에는 평상에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대기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정도로 오모가리 탕은 인기를 끌었다. 값이 싸기 때문에 서민들도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며 즐겨 찾는 음식이 오모가리 탕이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전주천의 물도 오염되었고, 한벽당 아래에서는 민물고기도 사라졌다. 한옥마을지구로 개발되면서 평상을 펴고 오모가리 탕을 먹는 풍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한옥마을에 외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한벽당 바로 아래 한벽집, 남양집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면서 민물매운탕 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가끔 형님을 모시고 가서 남천교의 청연루에서 피서를 하는데, 바라다 보이는 천변의 버드나무를 보면 지난날 평상에서 먹던 오모가리 탕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는 어쩌면 그렇게 오모가리 탕이 맛이 있었던지. 지금은 민물고기를 옥정호를 비롯한 청정지역에서 구입하여 매운탕을 큼직한 냄비로 끓여낸다. 하지만 70년대까지 즐겨 먹던 그 때의 그 오모가리 탕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17.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