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의 특별 옥중서신(23.1.28)]
사랑하는 애국국민들께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흐지부지 시킬 일이 아닙니다. 제가 작성한 아래의 <편지초안>을 요로와 전국에 알려주십시오. 5.18 연구의 마침표 [5.18 작전을 북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의 책을 동봉하여 각계 요로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좌관도 읽을 수 있게 2권정도 보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매가 급하신 분들께서는 02-595-2563 창구로 직접 연락주시면 됩니다. 대통령께 보내는 모든 것들은 무조건 권익위로 보내지기 때문에 보내야 소용이 없습니다. 관저는 아마 통과될 것 같습니다. 진실화해위, 민보상위, 외문사위는 과거에 간첩들이 장악해 간첩들을 민주화인사로 둔갑시켰던 곳입니다. 그중 진실화해위원장 김광동은 우익입니다. 경사노위원장 김문수, 청와대 수석들, 국방장관,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언론인 그리고 국힘당의 희망있는 의원들에게 보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한곳에 중복해서 보내시면 물량효과가 날 것입니다.
모든분들이 똑 같은 <편지초안>을 그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편지초안>은 널리 확산되어야 할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강산에 널리 퍼지도록 힘써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편지초안>입니다.
2023.01.28. 지만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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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초안>
존경하는 ㅇㅇㅇ님께
주사파 판사들이 5.18 갈릴레이 투옥시켜
대통령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천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자유가 침해당하는 사각지대가 많이 있습니다. 83세의 애국 노학자 지만원 박사가 황당한 주사파식 판결로 전격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금쪽 같은 노년기를 5.18 연구에 바쳤습니다. “5.18은 북괴가 600명의 특수군과 로얄 패밀리 8명을 포함, 민간인 1,000명 정도를 광주에 보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었다는 경천동지할 사실을 밝히고 이를 증명하는 42개 증거를 단행본 [5.18 작전 북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연구내용은 주사파에는 독약이고 국가에는 보약 같은 존재입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주사파들이 우리법연구회 후신들인 노정희, 김예영 등 국제인권법 연구회 법관들을 동원해 궤변적 판결문으로 지만원 박사를 긴급 투옥시켰습니다.
북특수군 600명과 북 민간인 1,000명의 활동, 거울처럼 드러나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2년, 지박사가 ‘5.18은 북한 작품’이라는 발표를 했을 때, 이를 믿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마치 서기 1,600년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발표했을 때 세상 사람들이 황당한 소리라고 치부했던 것과 같은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마도 60%의 국민이 지박사의 학설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군 상황일지, 검찰자료, 안기부자료, 광주시민들의 증언집, 북한문언, 1980년에 제작한 북한의 기록영화, 2015년에 폭발적으로 노출된 수백장의 광주현장사진이 5.18연구의 핵심 자료들입니다.
특히 수백장에 이르는 다각도의 고화질 현상 사진들에는 마치 CCTV를 보는 것처럼 전투행위, 모략행위들이 자세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고 5.18이 북괴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이 지구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북민간인 1,000명 중에는 로얄 패밀리 8명 있어
연구결과에 의하면 북한은 광주에 특수군 600명 이외에 로얄 패밀리 8명을 조합해 사회 각 분야 엘리트, 단체장, 노인, 어린이 등 광주시민인 것처럼 구색을 맞춘 민간 그룹이 통제에 따라 모략용 세트사진에 동원되었습니다. 게릴라전에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은 필수 편제의 대상입니다. 10.26 직후 김일성은 10~20명 단위로 특수군을 해저와 산맥을 통해 광주로 보내 거점을 확보케 했습니다.
국민들은 이 사실도 믿기 어려워합니다. 하물며 로얄패밀리와 사회엘리트, 어린 아이들을 1,000여명 규모로 보냈다 하면 지동설보다 더 믿기 어려워할 것입니다. 혹시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에 소개된 10대 불가사의를 기억하시는지요? 6.25 직전의 군을 간첩이 지휘했다는 사실에 관한 10대 의혹입니다. 6.25 발발 1~2주 전에 부대를 모두 이동 배치하고 50%의 장병을 휴가 보내고 하루 전에는 중령급 이상 장교들에게 술파티를 열어주고…
6.25 직전 이런 명령을 내린 사람은 일본제국 관사 출신 장경근 국방차관이었던 것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5.18 직전 전남해안에 배치됐던 해안경비부대 전부를 전북 연반산도 이북으로 이동 배치하여 전남 해안을 무인지경으로 비워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합참의장 유병현입니다. 로열패밀리까지 보내려면 안심하고 보냈을 것이며 대형 여객선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왔을 것입니다. 5.18은 김일성의 소풍 파티였습니다. 이해가 안 가시면 꼭 책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교도소 5회 야간 공격하다 특수군 475명 사살당해
특수군 600명은 전남지역에 위장돼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0여 정의 총기를 탈취했습니다. 이를 광주시민에 나누어 주자 광주시민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예상이 빗나가자 김일성은 다급하게 광주 교도소를 공격하라 명하였습니다. 간첩수 170명을 포함한 2,700명의 수용자를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삼으라 했습니다. 당시 광주교도소는 민병대 수준인 광주향토사단 31사단이었습니다. 사단장 장정웅은 김대중의 심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계엄당국이 불과 2시간 안에 3공수여단을 긴급하게 교도소에 배치했습니다. 특수군 600명중 475명이 5회의 야간공격 과정에서 집단사살 되었습니다. 475구중 430구가 청주 유골이었습니다. 판단 착오로 인해 졸지에 아까운 특수군을 잃은 김일성은 5월 24일 정오경 모두를 긴급 퇴각시켰습니다. 북괴가 비운 도청에 5월 25일부터 들어갔던 피라미들이 1급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연구내용은 한편의 영화이고 드라마입니다.
주사파 법관들의 황당한 판결
판사들의 판결은 아래와 같습니다.
“5.18은 이미 사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그 평가가 종결되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절대로 광주에 오지 않았다. 피고인은 오로지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이런 판결이 논리의 범위에 속하는 판결인지 대통령님과 국민들께 여쭙고자 합니다.
일사부재리 원칙도 무시
주사파 법관들은 일사부재리 원칙도 위반했습니다. 재심사유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박사는 2008년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는 결론을 낸 4부작 저서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냈습니다. 이에 광주가 고소를 했지만 안양지원-서울고법-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내렸습니다.
4권의 책은 ‘학설’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12년 12.27 대법원 판결을 2023.1.12 대법원이 뒤집은 것입니다. 11년 전의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해 지금의 대법원이 다시 재판하여 뒤집은 것이 일사부재리 원칙을 위반한 것이 아닌지요?
2020.10.30 남부지검도 학설로 인정
2019년 2월 8일, 국회에서 5.18 진실에 대한 국민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지박사는 4시간여에 걸쳐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설훈 등 의원들이 지박사를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남부지검은 발표내용은 ‘학설’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고소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노정희 대법관은 주심을 맡아 이런 검찰의 결정도 뒤집었습니다.
5.18 진실조사 위원회 업무영역 월권침해
2019년 국회가 ‘5.18 진상규명법’을 제정했습니다.
그 3조 9항에는 [북한군 개입여부]를 조사하라는 조문이 있습니다. 수백명의 매머드급 위원회가 2020.5.24에 발족되었습니다. [북한군 개입여부]를 별도로 조사하기 위해 제3과가 3년째 조사 중에 있습니다.
법관에는 조사기능이 없습니다. 그런 법관이 ‘5.18 진실 조사위’의 조사업무 영역을 침범하여 “북한군 개입은 절대 없었다”는 판결을 미리 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군 개입’ 여부를 현재도 조사 하고 있는 위원회의 제 3과는 즉시 해체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논리도 근거도 없이 내리는 법관의 이 판결은 주사파의 전형적인 횡포요,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박사의 연구역량
지만원 박사는 장삼이사가 아닙니다. 그는 1966년 육사를 졸업하고 베트남에 가서 소위로부터 대위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 게릴라와 전투를 하였습니다. 무공훈장을 수여받고 고엽제 관련 상이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게릴라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그는 당국의 자료만을 보고도 북괴의 광주 출현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직감을 사실로 증명하기 위해 21년 동안 실로 방대한 자료와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42개의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 책에 정리하였습니다.
귀국 3년만인 대위 시절 미해군 대학원에 유학하여 경영학 석사와 운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논문에는 수학공식 2개와 수학정리 6개가 발명돼 있습니다. 미 해군대학원 70년사에 그는 수학천재요, 수학영웅으로 전설이 되어 있습니다. 졸업 후 중앙정보부와 국방연구원에 7년 동안 봉직하고 대령으로 예편한 후 미해군 대학원 교수로 3년 동안 봉직 하였습니다. 이후 귀국하여 군사평론과 시스템이론 전도사로 프리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후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감지한 후 반공활동에 전념해 왔습니다. 5.18 연구는 이 반공활동의 핵인 것입니다.
국가가 키웠기에 평생 애국
미 해군대학원의 학비는 하버드나 스탠포드 학비의 2.5배였습니다. 국비인 육사로부터 시작해 국가로부터 과분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지박사는 군대 내에서나 밖에서나 국가에 충성해 왔습니다. 5.18에 대한 그의 연구는 충성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화가 위인가, 국가가 위인가
막강한 정보기구들을 거느렸던 전두환 대통령도 5.18을 북괴가 주도한 게릴라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것은 아마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적과 유사한 것으로 사람들의 상상 밖에 있었습니다.
활용하기에 따라 국가에 엄청난 기여가 될 수 있는 이 애국 행위가 주사파 판사들이 섬기는 민주화 성역을 허물었다는 이유로 투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이 나라 모든 국민께 여쭙고자 합니다. 이는 비단 자유를 침해 당한 경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침해당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시고 이것이 시정의 대상이라고 판단되면 나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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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