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박한 농구환경에서 배출된 천재 슈터, 신동파 옹입니다.

1944년생으로 휘문 중고교 시절, 체육관이 없어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구를 했던 신동파. 여담이지만, 그래서 드리블이나 잔 기술보다는 점프슛이 많이 개발되었다고도 하죠.
맨발 190센티의 신장이었으나, 주로 2, 3번 역할을 하던 전문 슈터였습니다. 고 3 때 이미 국가대표에 선발이 되어 활약을 했고요.

몸은 말근육에 팔다리가 길쭉해서 농구하기에 너무나 좋았죠. 순발력도 최상급, 모든 슈팅은 높은 타점에서 이뤄졌습니다.
제 기억에, 80년대 초반에 나온 스포츠잡지의 한 농구관련 칼럼에, 한국 농구 사상 허리가 고무 타이어처럼 강하고 유연한 선수가 둘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임정명과 신동파다... 라고 써있었습니다.

포스트업 플레이에도 능했고, 속공 피니쉬도 훌륭했습니다.
1967년 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에 은퇴할 때까지 750여 게임만에 3만점을 득점한 신화였습니다.

큰 신장(아마도 요즘으로 치면 197~198 정도?)을 이용한 리바운드가 좋았고, 전문 슈터였으나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선 평균득점 32.6점으로 득점왕.
1969년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선 당시 아시아 최강이었던 홈팀 필리핀을 상대로 50득점을 하며 우승. 그는 현재까지도 필리핀 농구인들의 우상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에겐 지금도 "동파"가 '좋다', '훌륭하다'란 뜻으로 통용이 됩니다.

자유투 하나도 허투루 던지는 법이 없었던 선수죠. 자유투 하나 실수하면 너무 너무 속상해 했다고 합니다.

3점과 팀 파울이 없었던 시절에 평균 40점을 기록한 전무후무한 전설.
축구에 차범근이 있었다면, 농구엔 신동파가 있었습니다.
축구에 손흥민이 나타났다면, 농구엔 누가 나타나 그의 뒤를 이어줄까요?
첫댓글 대한민국 농구 역대 최고의 3번!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저 당시 탄력좋은 190cm의 슈터라니
와 키가 190이신줄은 몰랐네요
패스를 받자마자 솟구쳐 올라 공중에서 밸런스를 잡고 높은 타점에서 슛을 던지는 게 대단하네요. 저런 슛이 들어가면 수비하기가 정말 어렵죠. 동양인 선수 같지가 않네요.
세계선수권에서도 유럽과 남미의 장신선수들이 수비하는데 그 위로 야투 다 성공시키셨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심판으로부터 공 건네받고 두 번 바운스 후 기계처럼 움직이는 자유투... 하지만, 집중력과 신중함이 대단했던 자유투 모션의 소유자셨죠.
맨발 190cm 에 점프력이 좋은 슈터라서 당시(1960년대 70년대 초)에는 국제 대회에서도 거의 블락이 가능한 선수가 없었다고 하죠. 특히 아시아에서는 반칙 말고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대단한 거죠. 당시엔 팀파울이 없었던 시절이라 상대팀 선수들이 돌아가며 계속 파울을 해댔는데도 저 득점을 했으니 말이죠.
평득 40... 와아...
협회 재직중일 때 가끔씩 농구계 원로 분들이랑 식사하러 오셨는데 어지간한 은퇴선수들보다도 몸이 좋으시더라구요ㅋ
허리가 유연해서 수비 앞에서도 슛 공간을 잘 만드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