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것은 배려와 친절
잔잔한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면 드라마는 이미 끝이 나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보는 것을 되풀이한다.
왜냐하면 드라마를 보면서 천국과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천국의 생활도 지금 사는 현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곳에서도
사랑, 질투, 시기, 행복, 슬픔, 고통 같은 전생의 업이 계속 반복된다.
그러면 과연 죽으면 가는 천국의 의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천국에서는 현생의 고통을 다 잊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찬 낙원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를 보면서 천국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천국 센터장의 말속에서 윤회의 바퀴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업장소멸을 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환생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윤회의 업보에 엮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부모, 자식, 남편, 형제, 친구,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그들을 나의 스승으로 삼고 문제를 포기하지 말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라는 이야기를 했다.
신은 더 큰 선물을 주기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포장해서
우리 삶 속으로 온다고 했다.
그래서 시련을 겪고 나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정신세계에 도달할 수 있고
웬만한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서로 주장하고 싸운다.
사람들의 오랜 세월 겪어온 자신만의 고정된 생각은 바꿀 수가 없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친절하면 서로가 다툴 일이 없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라는 김주환 교수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그 간단하고 기본적인 진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시각에서 모든 문제의 초점을 맞추니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가 서운하고 힘들다.
나이가 들어 모임에 참석하면 말을 줄이고 듣는 것에 집중하라고 한다.
자기주장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간단한 진리가 쉽지만은 않다.
30년 지기 모임에 참석하면 한 친구는 그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기 이야기로 모임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이야기하고 끝을 낸다.
친구들은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SNS에서 일방적으로 정치 문제나 개인 가정사로 험담을 하고
도배를 하면 선을 확실히 끊고 반응하지 않는다.
배려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정신세계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율이 가장 힘들다.
잘해 주면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무시한다.
친절도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해야 하는 세상인 것 같다.
그러면 그 누구도 감히 타인의 선을 함부로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천국 가는 티켓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하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해 온 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실타래처럼 얽혀 풀리지 않은 숙제들을 점검하고 그 문제들을
풀어가며 배려와 친절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