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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동양사 백년을 기다린 끝의 복수
배달의 민족 추천 1 조회 291 25.02.26 16:10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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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2.26 17:49

    첫댓글 재밌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고려인들이 살아온 길을 생각하니 울컥하게 되는군요.

  • 작성자 25.02.27 11:01

    뭐 고려도 거란과 협상해서 여진인들 땅을 빼앗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강동 6주.....) 여진 입장에서는 나쁜애들이었을 겁니다 ^^;;

  • 25.02.26 17:57

    곽원의 저 공격은...
    요동성에서 대연림의 흥료국 발해부흥운동 때인거죠?
    여-요 모두 상태가 안좋았을텐데도 걍 졌다 가 떠버렸을 정도라면, 보주성 방어력이 어느 정도였길래...ㄷㄷㄷ

  • 25.02.27 09:40

    보주성 방어체계를 설명한 글을 봤는데 후방 압록강 중간에 수군기지를 두고 바로 대륙 측 압록강변에도 방어기지를 구축해서 수군이 없으면 공략이 거의 불가능한 다중방어체계더군요 그분이 보주성 방어체계를 설명하면서 중국 양양성의 번성과 한수를 이용한 방어체계나 영화 반지의제왕의 곤도르왕국이 구축한 수도권방어선을 예로 드시며 설명하셨는데 이해가 되더라고요

  • 25.02.27 09:48

    @환상 아아...양양-번성 말씀하시니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당시 방어책임자도 현지인들 동원에 유리한 발해인이었던것 같고, 정말 공략이 힘들었겠군요.

  • 25.02.27 10:57

    @무장간첩 결정적으로 당시 고려는 육군에 몰빵하고 수군은 거의 없다시피해서......당시 압록강에 배치된 요나라 수군을 상대할 전력이 없는 이상 그냥 무력으로는 못 먹는다고 봐야 합니다.

  • 작성자 25.02.27 11:00

    @환상 환상님께서 잘 설명해주셨는데 첨언하자면 거란은 압록강 하구인 보주성에 140척의 선박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북방민족 왕조인 주제에 말이죠. 괜히 고려가 송과 국교재개하면서 남쪽으로 돌아간게 아닙니다.(압록강 하구와 산동이 무슨 관계냐고 하실수도 있는데 그 발해가 무왕시절 압록강 하구에서 배 띄워서 등주 쳤습니다.)

  • 25.02.27 11:07

    @배달의 민족 네, 더더욱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딱 한명 기억하는 그 방어책임자가 하씨였나? 고구려&발해계로 추측된다고 본 것 같은데, 그게 맞다면 방어상의 특징 때문이라도 그래야만 했겠네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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