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32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을 「내 마음 안의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원에 거주하면서 교회의 출석은 서울왕십리로 열심히 다녔다.
교회에 14년을 다니는 동안, 수년을 장년부와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 성경을 가르치면서, 이론적인 랍비가 되어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내 안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였지만,
나는 항상 주머니에 조그만 포켓용 성경을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성경을 보고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의 집 안에는 여기, 저기에 성경문구가 붙어있었으며, 쉴 만한 공간에는 성경책이 늘 준비되어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염원의 목마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한 번은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큰 사고(?)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화장실은 땅을 파서 변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재래식이었는데, 무척 더럽고 그 깊이가 깊었었다.
문제는 변을 다보고 일어서다가 그만, 성경책을 변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건지기엔 깊고 높았지만, 그 보다도 변위에 떨어져 있는 성경책을 어떻게 건질 수가 없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이 큰(?)사건을 당하고 마치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지은 자처럼, 지옥에 갈 것만 같아서 무척 두려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느 날, 역시 성경을 보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안이 투명하게 보이면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쪽다리는 잘 걷고 있는데, 다른 한쪽다리는 부러져서 질질 끌려가고 있지를 않겠는가?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니, 부러진 다리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지고 그 줄 끝에는 머리만한 시커먼 쇳덩어리가 달려서 그것을 끌고 가는 또 다른 내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자신은 아직까지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후 참으로 많은 시간을 주님 앞에서 이 저주의 법에서 벗어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이다.
결국 14년간 다니던 교회를 하루아침에 미련없이 떠나게 되었고, 그 후 이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면서 방황했던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마치,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떨어진 보리이삭을 하나하나 주었던 것처럼)
그 과정에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주님을 만난 거듭난 귀한 형제, 자매들도 많이 만나보았고, 특히 어느 목사님이 쓰신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책도 구입해서 수없이 읽어보았다.
이처럼 목말라서 찾고 구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충주 〔영죽 기도원〕에서의 첫 만남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말씀을 옮기면 이렇다.
〔지금 어느 한 사람이 급류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곧 물속에 수장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타자」에 의해서 물에서 건짐을 받고, 물하고 전혀 상관없는 땅으로 옮겨졌다면, 그 사람은 물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올 때 그때마다 숨을 쉬면서 아! 나는 살았구나. 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을 구원이라고 한다는 말인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지금 수많은 신앙인들이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더구나 물속에서 죽어가는 사실도 없었는데, 그 사망가운데서 건짐을 받았다고 하니, 그것이 참으로 가슴 아프면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당시 목사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으로, 아직도 내 귀에 살아서 생생히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서 내린 결론은, 「분명히 이곳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구나! 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교회가 바로 이 교회구나!」라고 결정하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1998년 3월 1일이었는데, 그 후 정확히 4개월 뒤, 1998년 7월 29일 충주 영죽기도원 집회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던 것이다.
당시 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셨던 분은, 부산에서 직접 올라오셔서 본 집회에 참석하셨던 「민 영석 목사님」이셨는데, 당시 연세가90세로 이미 오래전에 교단에서 은퇴하신 분이셨다.
내가 목사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은, 〔지금까지 십수 년을 교회에 다니면서 거듭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한쪽 부러진 다리에 그것도 모자라 족쇄를 채우고 저주의 쇳덩이를 달고 다녔습니다. 그 쇳덩이가 저주의 율법이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한, 저는 그 저주의 율법에서 참자유를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저주의 쇳덩어리를 내 몸에서 던져버리고자 이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목사님께서 묵묵히 나의 간증을 들으시고 하시는 말씀은, 「형제님! 그동안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성경 고후3장을 펴서 읽으라는 것이다.
〔고후3:12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
본문은 바울이 하신 말씀으로, 너희들이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수건을 얼굴에서 벗어던졌다고 하나,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면 얼굴에 수건을 쓰고 있으니, 어찌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출34:30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더니,,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본문은 당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내려와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하시므로 얼굴에 광채가 났었는데, 백성들이 이를 보고 무섭고, 두려워서 모세를 피하게 된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얼굴의 광채를 가리고자 수건을 쓰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서 말씀을 전했으며,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수건을 벗었던 것이다.
바울사도께서 당시 이 모세사건을 인용하신 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칭주님을 영접했다고 하지만, 다시 율법가운데로 돌아가려하자, 본문출애굽기 성경을 인용해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수건은 율법」을 가리키는데, 너희가 예수를 영접해서 수건을 벗고 율법에서 자유하다고 하지만,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서 그 율법의 수건을 다시 쓰고 있다면, 그것이 어찌 예수를 영접한 것이며, 구원받은 것이냐? 라는 말씀이다.
〔고후3:12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아직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나 역시 본문의 말씀처럼, 내가 지금까지 예수를 만나 거듭났으며, 율법에서 자유하다고 자칭, 구원받았다고 자부했었는데, 어느 날 나를 보니 내 다리가 부러졌으며, 그 부러진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서 그 저주의 율법의 쇳덩어리를 끌고 다니면서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것이다.
목사님께서 이처럼 내 속마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집어서 성경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시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질문을 드리기도 했었다.
〔갈3: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바울이 하는 말씀은, 믿음이 오기 전에 누구든지 반드시 「율법」의 법아래 붙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본문에 대해서 깨닫는 내용은, 요한복음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한 여인이 나온다.
그 여인이 범죄하자 누구에게 붙들렸는가? 바로 율법의 상징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아래 매인 바 되고」의 상태인 것이다.
누구든지 믿음이 오기 전에 먼저, 율법 아래 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간음한 여인처럼, 예수 앞에 끌려와서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8:11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 있는데, 그 산이 율법인 〔세례요한의 산〕이다.
〔마11: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눅16: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세례요한은, 「율법」의 상징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6개월 먼저 와서 예수께서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인간들의 거치고 황무한 심령의 땅을, 율법의 쟁기를 들고 와서 갈아엎었던 것이다.
〔눅3: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것이 인류에게 던지는 세례요한의 사망선포였으며, 율법의 무서운 저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지나간 이후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그 황무한 땅에 어느 농부가 투자를 해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겠는가?
그래서 먼저 세례요한이 쟁기를 들고 와서 엉겅퀴가 가득한 마음의 밭을 기경을 한 후, 기름진 옥답을 만들어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면서 그 옥답에 천국의 씨앗을 파종한다는 것이 성경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바로 예수를 통과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세례요한을 만나서 그를 통과해야지만 예수 앞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오래된 아파트에 대충 기둥을 세우고 「리모델링」해서 재사용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리모델링」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성경은, 무너져가는 그 곳에 다시 새 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너뜨려서 갈아엎어서 다시 세운다는 것이다.
〔렘1:10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민 목사님」께서 내게 질문하시는 것은, 〔형제님! 율법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까? 아니면, 이방인에게 주셨습니까?〕라며, 엉뚱한 질문 같지만, 저에게 물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 안에서 대답은, 맞아!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지,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율법은 이방인인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겠구나! 라며, 내 심령 안에서 동시에 아멘!!으로 화답이 되었다.
물론 「율법」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임에 틀림이 없지만, 당시 내게는 그렇게 믿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자 곧 저쪽 복도에서 누군가가 내게로 걸어오는 큰 발자국소리가 쿵쿵하면서 들리지 않겠는가? 누가 무엇 때문에 나에게로 온다는 말인가? 물론 내 마음 안에서 들리는 나만의 소리이며, 문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심장소리도 같이 그 발자국소리에 맞추어서 쿵! 쿵! 하면서 힘차게 함께 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복중에서 아이가 뛰었던 것처럼 말이다.
민 목사님께서 계속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같이 신비한 사건 속에서 온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좌측면에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도착하자 나는 내 심령 안에서 그 주인공을 향해서 질문을 한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왜, 나에게 오셨습니까?〕
물론 그 주인공은 아무 형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입에서 하시는 말씀은, 〔네가 찾는 예수가 바로 나다! 너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바로 「니고데모」앞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처럼, 지금 내 앞에 그 예수께서 나타나셨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벅차고 참으로 엄청난 충격과 떨림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예수님! 어떻게 이 더러운 죄인에게 오셨습니까? 저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그러자 예수께서 즉시 내 낭심쪽에서부터 가슴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내 안에 들어오시는 주님을 굳이 표현한다면, 마치 한증막의 문을 열 때, 후끈! 하고 뜨거운 열기가 나오듯이 바로 그렇게 내 안에 들어오셨던 것이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자 제일먼저 해결된 것은, 한쪽다리에 굳게 매달렸던 족쇄가 그대로 떨어져나갔으며, 내 얼굴을 굳게 가려웠던 율법의 수건이 십자가로 넘겨지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보았다.
〔고후3: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네 죄를 십자가에서 내가 짊어지고 〔다, 이루었다!!〕라는 주님의 분명한 음성이 그것이다.
〔요19:30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물론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은 이론적으로 성경을 보고 알고 있었지만, 지금 내 안에 오셔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너무도 확실하게 주님의 십자가의 그 깊은 뜻이 내게 실제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었던 율법의 모든 행위와 저주를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나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를 100%완벽하게 이루어놓으셨던 것이다.
〔히10: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다! 이루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지금까지 나의 육신을 얽어매었던 족쇄가 떨어져나가고, 나의 두 눈을 가렸던 율법의 수건이 벗겨졌을 때, 진정 내 죄와 허물이 주님의 십자가로 넘어가는 것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죄와 율법의 정죄에서 완전하게 벗어났으며, 마치 새장을 벗어난 비둘기가 창공을 힘차게 날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이후 나는 약3개월을 땅을 밟지 않은 자처럼, 마치 구름 위를 걸어가듯이 그렇게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기쁨도 은혜가운데서 누릴 수가 있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는 체험적인 신앙이다. 따라서 천국은 이론과 지식으로 가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을 한 것은, 그 목적지가 홍해이며, 또한 광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출애굽을 허락하신 것은, 천국의 상징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 최종목적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출애굽은 했지만, 그 목적지는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누구든지 출애굽을 했다면, 분명한 광야가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의 거듭난 생명이라면, 광야의 40년은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광야는 아담의 겉사람을 깨뜨리고 주님의 새사람을 입는 교육의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먼-훗날! 주님의 보혈로 거듭난 우리 귀한 형제, 자매님들이 다시 천국에서 만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귀한 날을 고대하면서 저의 간증을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