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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농구 게시판 북한 농구의 90년대 전성기를 이끈 두 거목 - 리명훈과 박천종
Doctor J 추천 3 조회 3,697 20.10.06 13:45 댓글 4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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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10.06 13:53

    첫댓글 행타임을 이용한 더블클러치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박천종. 좋은 중거리 점퍼를 가졌고 림어택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과감한 선수였죠. 기술적으로 세련미가 있는데다가 과감하기까지 해서 반공교육 받고 자랐음에도 박천종 정말 좋아했죠.

  • 작성자 20.10.06 13:55

    외곽슈팅 비거리가 조금만 더 길었어도 더 큰 명성을 떨쳤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입니다. 대신 왕성한 체력과 올라운더 능력으로 경기를 장악하던 선수죠. 90년대 북한에서 저런 세련된 농구를 하는 선수가 나왔다는 게 참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 20.10.06 13:56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면 농대시절 황금기를 보냈을 두 사람인데.....국농팬으로써 아깝네요 ㅎ

    박종천 vs 허재, 이명훈 vs 서장훈

  • 작성자 20.10.06 14:03

    리명훈, 박천종, 둘 다 70년생일 겁니다. 허재와 서장훈 딱 그 중간에 위치한 나이대... 정말 좋은 라이벌 관계가 구성됐을 거예요.

  • 20.10.06 23:39

    @Doctor J 리명훈과 박천종 모두 69년생입니다.

  • 작성자 20.10.07 23:35

    @르질라 브롱코스 찾아보니 리명훈은 1967년 9월생이더군요.

  • 20.10.06 13:58

    그 언제냐 99년이었던가요 98년이었던가요. 현대 주관 초청이었나 통일농구대회때 처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훗 잘해봐야 북한이 얼마나 잘하겠어 라며 깔봤는데 섬세한 테크닉 보면서 저렇게 잘하다니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단일팀 구성하면 국제무대에서 정말 해볼만 하겠다는 말 참 많이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 20.10.06 14:40

    저도 그때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 20.10.06 14:13

    박사님 혹시 저 시기 북한 여자농구에 대한 자료는 없으실까요? 리명화가 궁금해서 찾다가 도저히 안나와서...

  • 작성자 20.10.06 14:16

    북한 여자농구는 자료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나마 남자농구는 8~90년대 아시안 게임이나 아시아 선수권 경기 영상들이 필리핀에 조금 남아있는데, 여자 농구는 아예 없는 것 같아요.

  • 20.10.06 14:17

    @Doctor J 그렇군요ㅠ 북한은 혹시 가지고 있으려나...🤔🤔 답변 감사합니다.

  • 20.10.06 14:20

    박천종?????
    북한의 마이클조던은 이름이 [ 박종천 ] 아닌가요?

  • 작성자 20.10.06 14:21

    박종천은 연대 출신이고 현대에서 농구했던 194센티 센터죠. 80년대 선수.

  • 20.10.06 14:21

    @Doctor J 그분은 알고 있습니다... 전자랜드 감독하셨던.

  • 작성자 20.10.06 14:22

    @시골영감 https://sports.donga.com/sports/article/all/20150904/73439671/1

  • 20.10.06 14:25

    @Doctor J 그 기자가 틀린 거예요... 다시 검색해보세요.
    저는 그 분 현역시절 TV 중계로 본 기억에 의거한 것입니다.

  • 작성자 20.10.06 14:38

    @시골영감 그럼 이 기자들도 틀린 건가요?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347971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unikorea&logNo=221532599425&widgetTypeCall=true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2/2018050200283.html

  • 20.10.06 14:44

    @시골영감 어떻게 검색해도 박천종이 맞습니다. 기자가 아닌 직접 만난 허재감독입에서도 박천종이란 이름으로 나옵니다. https://follownews.wixsite.com/follow/post/%ED%86%B5%EC%9D%BC%EB%86%8D%EA%B5%AC-%ED%97%88%EC%9E%AC-%EA%B0%90%EB%8F%85%EC%9D%98-%EB%B0%A9%EB%B6%81%EA%B8%B8%EC%9D%B4-%EB%8D%94-%ED%8A%B9%EB%B3%84%ED%96%88%EB%8D%98-%EC%9D%B4%EC%9C%A0 피바 공식홈에서도 박천종으로 소개되고 있구요. http://www.fiba.basketball/federation/Korea-prk 리영호가 리호영이 아니라면요.

  • 작성자 20.10.06 14:31

    저 경기는 필리핀 중계본인데, 저기서도 중계진이 '박천종'으로 발음합니다.

  • 20.10.06 14:38

    @Doctor J 직접 현장서 경기보고 기록지까지 받아봤는데 '박천종'이 맞습니다. 저도 '박종천'이란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쓰다가 고쳤던 기억이 나네요.

  • 20.10.06 14:41

    @Doctor J 제 기억이 잘못되었군요.
    20여 년 동안 잘못 알고 있었네요. ㅜㅜ

    북한선수 중에선 군계일학이었습니다.

  • 작성자 20.10.06 14:40

    @시골영감 그러신 것 같아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089346

  • 20.10.06 21:00

    @Air-Dae-Boom ㄷㄷ 손대범님 등장👍

  • 20.10.06 14:30

    예전 남북단일팀 구성한다면 주전 로스터 다섯명중 두 자리는 두 선수 몫이될거라는 얘기를 접한적이 있습니다. 박천종은 슬래셔 타입인가요? 허재처럼 1,2번 두루 다 볼 수 있다면 허재(강동희)-박천종-문경은-서장훈(현주엽)-이명훈 라인업도 가능했겠네요. 전성기 하승진 보다 이명훈이 좀 더 높은 클래스의 선수로 보면 될까요?

  • 작성자 20.10.06 14:34

    박천종은 전형적인 2번 슬래셔였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처럼 수준이 높고 슬래셔에 대한 수비력이 좋은 팀을 만나면 고전하기도 했습니다. 수비력과 에너지, 패기가 좋아서 식스맨으로 기용했으면 아주 잘했을 겁니다. 다만, 3점 능력은 없었어요.

    전성기로만 따지면, 리명훈이 하승진보다 우위였다고 봅니다.

  • 20.10.06 14:43

    nba에 조던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허재가 있다!!고 문득 생각이 드는게, 허재는 정말 농구 잘 했던 것 같아요..

  • 작성자 20.10.06 14:45

    군계일학!

  • 20.10.06 15:28

    리명훈 선수는 nba 리브콜이 없었나요?
    신체조건만 보면, 제의는 받았을것 같아서요

  • 작성자 20.10.06 18:37

    NBA 러브콜은 있었으나, 당시 미국의 대북 제재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죠.

  • 20.10.07 16:02

    NBA 팀 입단 제의도 받았고 캐나다에 건너와 몇 팀과 훈련도 같이 했습니다. 당시 미국 몇 팀, 그리고 아마도 캐나다 팀이 리명훈의 입단을 정부에 문의했는데 대북제재 때문에 월급을 줄 수 없어 결국 실패했습니다. NBA 팬이었던 김정일이 리명훈을 NBA 에 진출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했지만 아쉽게 되었죠. 그때 미국 방송에서 인터뷰도 하고 했기 때문에 기억이 납니다. 리명훈이 NBA 에서 뛰기 위해 예명을 '마이클 리'라고 지었다고 했죠, 마이클 조던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방송에서 했었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0.10.06 18:38

    김성욱은 저 자리에 안 어울리고, 이민현이나 오세웅이 들어갔다면 밸런스가 잘 맞았을 겁니다.

  • 작성자 20.10.06 22:19

    @사와키타 에이지 김성욱은 힘좋은 단신 블루칼라워커형 센터였을 뿐이니까요. 오세웅과 이민현은 신장이나 기동력도 좋은 공격형 스윙맨이었고요. 개인능력으로 보면 두 선수 모두 김성욱보다 한참 위였죠.

  • 작성자 20.10.06 22:15

    @사와키타 에이지 https://m.cafe.daum.net/ilovenba/5EHk/14587

  • 작성자 20.10.06 22:18

    오세웅은 휘문고, 연대를 거쳐 삼성에서 뛰며 88년 올림픽 팀 일원이었고요. 힘과 탄력, 중장거리슛이 뛰어났던 3번입니다.

  • 작성자 20.10.07 08:27

    @사와키타 에이지 선수시절에 189로 표기됐었고, 실제로 봐도 그 정도로 보였습니다.

  • 20.10.07 14:54

    그 때 우리나라 플레이는 볼을 계속 돌리다가 외곽찬스를 보는 패턴인데, 슛거리가 짧고 파워와 투지로 승부했던 단신 빅맨 김성욱이 자기보다 크고 길고 빠른 국제대회 선수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건 거의 없을 거 같아요.

  • 20.10.06 16:41

    인민 조던 박천종.. 북한 선수가 얼마나 잘하겠어? 하고 보는데 농구 모르는 사람이 봐도 딱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잘하던..

  • 20.10.07 00:53

    99년에 남북통일농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열렸는데 북한과 경기를 할 우리나라 농구팀으론 대북사업을 하고 있던 현대그룹 산하의 대전 현대와 부산 기아(모기업이었던 기아자동차가 IMF로 부도가 나면서 현대자동차가 막 인수했던 시절이죠.)소속 선수들이 현대팀이라는 팀명으로 경기를 하게 됩니다.(정확하게는 이상민,조성원,추승균등 대전 현대 선수들이 주축이고 거기에 부산 기아의 강동희,김영만등이 합류했죠. 다만 당시 대전 현대의 조니 맥도웰같은 외국인 선수들은 빠졌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1차전에선 기대를 모았던 리명훈과 박천종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선 이 2명이 북한팀에 포함이 되어 있었고 경기에도 출전을 했습니다. 당시 현대+기아팀의 약점은 골밑을 지켜줄 마땅한 빅맨이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북한의 이명훈은 현대+기아팀의 주전 센터로 나선 205cm의 정훈종(중앙대 출신이고 여농 레전드인 정선민의 동생이기도 합니다.)을 상대로 28득점,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장악했고 박천종은 국내에선 수비가 좋기로 유명한 이상민, 추승균이 번갈아 막았지만 31득점,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날라다녔고 경기는 북한의 승리로 끝납니다.당시 리명훈과 박천종은

  • 20.10.06 23:49

    69년생으로 만30세로 전성기의 끝자락에 있던 선수들로 둘다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를 했는데 다만 아쉬운 점은 리명훈이 상대한 현대+기아팀의 골밑이 너무 약했다는 점(정훈종으론 리명훈를 상대하는 건 어렵죠.)과 기아 소속의 강동희, 김영만은 거의 경기를 뛰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박천종이 이상민이나 추승균과 주로 매치업이었는데 이 둘도 수비를 잘하는 선수들이었지만 만약 박천종이 당시 우리나라 넘버원 퍼리미터 디펜더였던 김영만과 매치업이 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점에서 좀 아쉬웠죠.하여간 이들은 3년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때 북한대표팀 멤버로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방문하는데 당시 북한은 세대교체중이라 30대 중반(당시 만33세)에 접어든 리명훈, 박천종을 제외하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다만 당시 북한의 10대 선수들 외모가 너무 노안이라 나이를 의심받기도 했습니다.프로필에서는 17세라고 나오는데 얼굴을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던...) 하여간 당시 북한은 필리핀과의 예선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게 완패를 당하는 등 전력적으로 불균형했는데 결국 8강 리그에서 우리나라와 만나게 됩니다. 리명훈의 매치업 상대는 당연히 서장훈

  • 20.10.06 23:58

    @르질라 브롱코스 이었는데 3년전에 비해 리명훈은 노쇠한 모습이 역력하여 서장훈에 의해 골밑에서 밀려나기 일수였고 결국 11득점, 8리바운드로 상당히 부진했습니다.반면 서장훈은 리명훈을 공수에서 압도하면서 22득점,14리바운드로 골밑을 장악합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박천종을 막지 못해서 2쿼터까지는 상당히 고전을 했습니다. 사실 박천종도 2002년 당시엔 이미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간 상태로 운동능력이나 체력이 상당히 떨어져있었지만 슛팅력은 오히려 항샹되었는지 내외곽을 오가면서 점퍼와 3점을 꽂아댔고 이상민, 추승균, 문경은등이 번갈아 막았지만 전혀 막아내지 못하면서 2쿼터까지 20여점을 허용합니다. 다만 3쿼터부터 체력이 떨어졌는지 박천종의 슛이 잘 들어가지 않기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문경은의 3점과 속공으로 점수차를 순식간에 벌리면서 101:85로 16점차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승리의 1등공신은 골밑을 장악한 서장훈과 신들린 3점을 선보인 문경은(대략 3점 6개정도 넣으면서 28점정도 넣었죠.)이었고 북한은 박천종이 30점가량을 넣으면서 분전했지만 리명훈이 서장훈과의 골밑 싸움에서 완패했고 북한의 나머지 어린(?) 선수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에 불과했는지라 상대가 되지 못

  • 20.10.07 00:32

    @르질라 브롱코스 했습니다. 그외에 리명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한창 리명훈이 20대 전성기였던 96년쯤에 NBA 진출을 시도했었습니다. 만약 성공했다면 중국의 걸어다니는 만리장성(왕즈즈, 멩크 베티어, 야오밍)들보다 5~6년 앞서서 동양인이 NBA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정치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그와는 별개로 NBA에 진출해서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였는지는 좀 의문이었습니다.99년에 만30세 나이로 서울에 와서 현대+기아팀의 센터 정훈종을 탈탈 털었던 것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정훈종이 그렇게 뛰어난 빅맨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상의 고평가는 무리이고 만33세였던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서장훈에게 탈탈 털린 것은 이미 리명훈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지만 리명훈은 정훈종, 서장훈외에도 우리나라 빅맨을 상대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바로 서장훈 이전에 국내 최고 빅맨이었던 김유택과의 2차례 매치업이었는데 첫 매치업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으로 이때 한창 전성기였던 김유택이 아직 기량이 미숙했던 리명훈을 압도했었고 6년 후 96년 대만 존스컵 대회에서 한창 전성기였던 리명훈과

  • 20.10.07 00:38

    @르질라 브롱코스 이미 전성기를 지나 노쇠한 모습이 역력했던 김유택이 다시 만나게 됩니다.참고로 김유택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는데 96년 대만 존스컵에는 당시 농구협회에서 국가대표팀이 아닌 실업선발팀을 출전시키면서 김유택도 합류하게 되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하여간 대만 존스컵에서 우리나라 실업선발과 북한 국가대표팀이 붙게 된 것이었는데 경기 양상이 어땠는지는 중계가 되지 않아서 알 수가 없지만 당시 언론 기사에 의하면 노쇠한 김유택이 전성기 리명훈을 상대로 노련미를 발휘하며 골밑을 지켜냈고 경기도 실업선발이 북한 국대를 이겼습니다.김유택이 승리의 1등공신이라는 기사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김유택이 아무리 뛰어난 빅맨이라고 해도 96년 당시 분명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와서 노쇠한 시점이었는데 그런 김유택을 상대로 전성기의 리명훈이 골밑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리명훈의 NBA성공여부에 많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 작성자 20.10.07 07:47

    @르질라 브롱코스 👍👍

  • 20.10.07 16:09

    @르질라 브롱코스 정말 자세하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제가 96년에 미국에 살았었는데 위에도 썼지만, 리명훈이 캐나다에 와서 훈련을 받으며 NBA 팀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때 미국서도 꽤 화제가 되어 리명훈이 방송에 여러 번 나왔기 때문에 상황을 기억합니다. 일단 건강테스트에서 의사들이 리명훈은 의학적인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였답니다. NBA 에도 리명훈 정도의 키에 완벽한 균형의 신체와 건강한 심장(이게 거인들에게 중요하죠)그리고 호르몬 수치를 가진 선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높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으로 돈이 송금되면 불법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캐나다 팀에서 뛰는 방법, 북한으로 송금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는 방법 (김정일이 승인했다고 하죠)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결국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리명훈은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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