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기타
김애양
출근길에 병아리 행렬과 마주쳤다. 한손을 들고 올림픽공원을 향해 길을 건너는 유치원생들은 햇병아리 떼처럼 사랑스러웠다. 새봄의 노란 햇살도 어린 생명에게 이끌리는 듯 가일층 눈부시게 쏟아 내렸다. 그중 한 아이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가는 꼬마였다. 아마도 소풍 중에 장기자랑에 나가려는 것 같았다. 녀석의 악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오래전 기억 속으로 봄나들이를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평소 “저요 저요”하고 나서기를 좋아했다. 교탁용 덮개를 만들어 오거나 커튼을 빨아올 사람을 찾으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집에 가면 화살받이가 되기 일쑤였다. 세 언니가 모두 나를 공격해왔다. 우리보다 잘살고 나보다 공부 잘하고 또 감투를 쓴 친구들이 많을 텐데 어째서 학급 일을 도맡아 오냐는 것이었다.
5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는 막내인 나까지 세세하게 돌봐 줄 여유가 없었다. 아마 어머니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나는 자꾸 일을 저질렀던 것 같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 번도 날 허풍선이로 만들지 않고 밤새워 테이블보에 멋진 수를 놓거나 빨래를 해주었다. 그런 어머니의 후원에 힘입어 나의 “저요 저요” 병은 깊어져만 갔다.
봄 소풍 때 장기자랑에 나갈 지원자를 찾았을 때 또 여지없이 손을 들었다.
집에는 기타가 하나 있었다. 대학생이던 둘째 언니 소유의 그 중고기타는 클래식연주용이라고 해서 쇠줄이 아닌 나일론 줄이 매어져 있었고 퍽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다. 클래식이란 단어에 매료된 나는 언니 몰래 기타를 가지고 놀았다. 피아노를 바이엘부터 시작하듯 기타교본이 따로 있었는데 거기에는 쉽고도 아름다운 곡들이 많았다.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지만 질리지 않을 만큼 그 소리가 참 좋았다. 혼자 듣기 아까워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다만 자신의 물건에 남의 손이 타는 걸 견디지 못하는 언니에게 들킨다면 봉변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소풍날 무사히 기타를 들고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 덕에 언니가 일찍 등교하는 운수 좋은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좋은 오전 운수가 오후까지 이어지는 일은 대체로 드물다.
동구릉의 너른 벌판에서 엉성하게 바하의 <미뉴에트>를 연주하자 아이들은 아무도 클래식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고 떠들어 댔다. 어쩌면 나뭇가지 위에서 듣던 새가 웃을 만큼 형편없는 솜씨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전교생 앞에서 우아하게 클래식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란 걸 뽐낸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기다리며 잠시 기타를 세워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기타는 얄팍한 헝겊 옷을 입고 있었기에 넘어지는 순간 목이 댕강 분질러져 버린 것이다. 교수형이나 단두대란 말이 섬뜩한 이유를 그때 잘 알게 되었다. 목이 잘린다는 게 얼마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지…… 부러진 기타 머리는 인형극의 무능한 주인공처럼 대롱대롱 줄에 매달려 간신히 본체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언니가 내게 퍼 부을 분노를 떠올려보면 나도 그 기타 신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순간접착제를 사다 발라보아도 장력이 500g에 달하는 기타 줄을 감당하기엔 어림없는 일이었다. 다급하게 옆집 목수 아저씨를 찾아가니 ㄷ자형 못으로 연결해주었다. 살그머니 제자리에 망가진 기타를 세워두었지만 일주일 후 발각되었을 때는 사실은폐 죄까지 특별 가중되어 몇 배나 곤혹을 치러야 했다. 당돌한 문제아로 부각되면서 언제나 내편이었던 아버지의 얼굴에조차 근심이 드리워졌던 뼈아픈 사건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어디서나 “저요 저요”하고 나서길 좋아한다. 그게 나의 허영심일까? 혹은 영웅심일까?
그 탓은 기질에게 두어야 할 것 같다. 우주의 원소를 공기, 물, 불, 흙으로 나눈 엠페이도클레스의 4원론에 따라 히포크라테스는 체액을 피(blood), 황담즙(choler), 흑담즙(melancholy), 가래(phlegm)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기질을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로 나누었다.
다혈질은 항상 즐겁고 생동감이 넘치지만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담즙질은 자신감이 많고 의지가 강하지만 이기적이고 오만하다. 또 우울질은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답답하고 침울한 단점이 있으며, 점액질은 유순하고 느긋한 성격인데 열정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도 기질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고 스땅달은 사랑을 기질에 따라 분류하기도 했는데 종교와 교육학에서도 정확한 기질을 파악하는 것이 인성계발에 필요하다고 한다.
남편의 한 동창생이 모임에서 여럿의 기질 테스트를 해주었다. 설문조사처럼 간단한 검사였다. 그 결과 나는 상당한 다혈질에다 담즙질의 성향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평소에 나약한 여자처럼 굴고 남편에게 “네 네” 순종하는 모습만 보아 온 사람들은 나를 대표적인 점액질이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결과라며 놀라워했다. 사실 나도 놀랐다.
그러니까 언제나 나서길 좋아하고 즉흥적이고 후회할 일이 많은 나는 지나치게 다혈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성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면 기타의 목이 분질러지는 에피소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 가지 기질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를 건강이라 부른다. 즉 치우치지 않고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삶이란 각 기질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크게 즐거울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는 것이 인생이란 걸 터득한다면 기질조차 쉬이 바꿀 수 있으리라. 사람이란 원하는 걸 다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걸 강조하는 남편은 나의 두드러진 다혈질 성향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데 오늘도 나는 아파트 반상회에서 반장을 선출한다기에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