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대하여 작금 좌우를 막론하고 그 여진(餘震)이 만만찮은 듯한데...결과적으로 볼 때 위의 대조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이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회학 강의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말 가운데, '상류층은 과거에 살고, 하류층은 오늘을 살고, 중류층은 미래에 산다'라는 게 있다는데... 굳이 풀이하자면, 상류층은 자기 가문에 속한 과거 조상들의 업적을 내세우며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가 무슨 벼슬을 하셨고' 어쩌구 하면서 거들먹거리는데 반해, 하류층은 오늘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서 과거나 미래 따윈 생각할 엄두조차 못 내지만, 중산층은 미래를 위해 자식들에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해서리 중산층은 끊임없는 자기갱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의 성장은 물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투자하고 각종 자본을 늘리고, 그것을 차세대로 대물림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특히나 각종 자본 가운데 오늘날에 와서 중산층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의 대물림에 대하여 부르디외(P. Bourdieu)를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그 실상을 드러내고자 애써 왔다.
각종 자본 가운데 경제자본(economical capital)이 사회계층을 구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데에 대해선 별 의의가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경제자본의 획득 여부는 한 가문의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중요성은 문화자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보는데, 즉 재산의 다과(多寡)가 가문의 전통을 내세우는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뭐 이러한 견해의 연원을 굳이 역사적으로 따져 보자면 청빈(淸貧)을 자랑으로 여겨온 유가사상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속성이 재산을 만드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사실에 더하여 재산 형성이 우연적 요인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에도 한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여 중산층은 사회계층의 중추이자 여론의 선도자의 위치에 있기에 가족의 미래를 위하여 문화자본의 재생산(reproduction)을 통한 권력의 대물림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이는 특히 자녀들의 교육현장에서 교묘하고도 은밀한 수법으로 전수(傳授)되고 있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번 윤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서 보여준 장면들 곳곳에서 중산층이 꾀해 온 이러한 문화 재생산을 통한 권력의 대물림 현상을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대통령의 부모를 보면 양쪽 모두 대학교수 출신의 엘리트들이었고, 대통령 자신도 초등학교부터 미션스쿨인 사립학교를 다닌 데다 최고 수준의 대학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주변의 교우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대단한 집안의 자재들이었음은 불문가지였으리라. 하여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영역과 상당한 수준에서의 문화자본의 체화가 가능했을 뿐 아니라, 이는 이번 방미에서 극히 자연스럽게도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능숙하게 구사한 영어실력은 전임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못한 장면이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핵심부 주변을 맴돌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게 우리네 역대 대통령들의 외국 방문 모습이었음은 위의 두 번째 사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우리를 놀라게 한 건 그의 음악적 소양이었는데, 나의 경우 나훈아, 조용필의 노래 아니면 기껏해야 미국민요 '스와니강'이나 불렀을까, 아님 미리 열심히나 연습해서 돈 맥클린(Don Mclean)의 'Starry starry night~'로 시작되는「Vincent」정도나 몇 소절 옹알이했을까...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즐겨 열창했던 것으로 보이는「American Pie」를 불렀는데, 비교적 빠른 탬포에 강한 비트로 연주되는 데다 의미 또한 다층적이라는 이 노래를 그리 쉽게 불러내다니...
아무려면 국가원수로 외국 가서 몇 끼나 혼자 밥고, 의장석이 텅 빈 데다 청중석에 청중이 없는 유엔총회장에서 홀로 연설하고, 국가원수들 연회장에서 혼자 외톨이로 장시간 우두커니 서있고, 국가원수 기념촬영에 이유 없이 빠진 사람은 분명 중산층 출신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은만큼 대통령도 윤석열맹키로 건전한 중산층 가정 출신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우리네가 중산층을 보는 잣대가 학력과 경제력이 최우선 고려 대상인데 반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운위하는 공통적인 중산층의 기준에서 상위 순위는 악기 하나 쯤 다룰 줄 알고 자신만이 잘 하는 요리 레서피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랫 동안 내게 잔잔한 충격으로 남은 바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하류층에서 성장한 자는 한 맺힌 보복심리가 가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고,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성장하지 못한 자는 사랑이 뭔지 예의가 뭔지 모르니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성격이 두루 원만하지 못하고 사회현상을 늘 비판적으로 보는 나를 두고 주인은 입버릇처럼 내가 중학교라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비뚤어진 성격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는데, 중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거친 나를 주인이 그렇게 본다면야 맞는 말이겠지 뭐,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