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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삼신봉(三神峰 1,285m :경남하동)
*일 시 : 2005. 11. 6(일), 제52차(17명), 날씨(새벽 비, 오전 9시 이후 갬, 청명)
*코 스 : 원묵계마을-청운서당-오두막-묵계계곡-음양샘-외삼신봉-갓걸이재-원삼신봉
-내삼신봉-삼거리-조망대-청학동-주차장
*소 시 : 오전 11시 13분 ~ 오후 3시 43분 산행완료(총 10Km, 4시간 30분간 소요)
「智異山, 在南海上, 是爲白頭之大盡脉, 故一名頭流山, 世以金剛爲蓬萊, 以智異爲方丈,
以漢挐爲瀛洲, 所謂三神山也. 地誌, 山智異爲太乙所居, 羣仙所會.」
(지리산은 남해 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백두산의 맥이 크게 끝난 것이므로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세간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고 하며, 소위 삼신산이라고 한다. 地誌에 지리산엔 太乙仙人(하늘의 선인)이 사는 곳이며, 뭇 신선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중환의 <택리지> ‘총론 山水’편에 실린 기록이다.
풍수지리나 선도교의 입장에선 삼신산의 삼신봉은 지리산의 핵이다.
“지리산을 5회 다닌 사람을 지리산에 대해 설명을 잘 하지만,
50번 다녀온 사람은 지리산 설명을 잘 못한다.“
어머니의 품 지리산은 그 둘레가 물경 300리요, 총면적은 438.9Km2다.
평생을 두고 능선과 골짜기를 밟아도 그 속내를 못다 밟는다는 남명 曺植 선생께서 탄식이 설득력을 더한다.
‘頭流山十穿黃牛脇’
(지리산은 열 번을 훑고 들더라도 매양 황소 옆구리 갈빗대 같다)
삼신봉은 백두대간 지리산 주능선 상의 세석평전 바로 옆 영신봉에서 직각으로 분가한 낙남정간이 김해 낙동강 하구를 향해 뻗어 약 8km 지점 끝에 신령스럽게 솟구친 봉우리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와 내삼신봉, 중앙의, 원 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이등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며 깊숙하게 청학동을 품고 있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의 원삼신봉을 이른다.
삼신봉은 지리적으로 지리산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三神山 중의 하나로 불려왔다.
그 삼신산 중의 하나가 지리산 삼신봉이 다. 지리산에 신을 상징하는 "神" 자가 붙여진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내삼신봉-외삼신봉-세석고원 서쪽의 영신봉이다. 이들 세 개의 봉우리 주변을 중심으로 해 고래로부터 전해져오는 이상향, 즉 청학동의 유래를 간과하기 힘들다.
선교와 도교에선 제1성지를 지리산 삼신봉으로 잡는다.
우리 민속에선 삼신이란 세 신령이란 뜻이 아니라 산신-삼승할망-삼신할머니를 지칭하는데 아이의 태어나고 자라남을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삼신은 용왕-산신-칠성님을 지칭한다. 그중 용왕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을 말하는데 샘을 용왕신으로 숭배했다. 이는 고대 희랍철학의 비조(鼻祖)인 탈레스가 규정한 우주만물의 근본을 물로 규정한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 샘 중에서 음수와 양수가 가까이 있는 음양샘은 신비의 극치라고 한다. 그 유명한 음양수의 하나가 지리산 외삼신봉의 음양샘이다. 도선대사가 수도했다는 미륵암 터 뒤 큰 바위벽 밑에서 솟아나온다. 좌측의 숫샘(陽泉)은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우측 암샘(陰泉)은 큰 바위 아래 여자엉덩이 모양의 굴에서 흘러나와 고였다가 흘러나온다. 두 샘은 10m 아래에서 만나 청학동 물과 합쳐 하동군 청암면-황천면-적량면-고전면-하동읍 외곽을 흘러 섬진강 하류인 황천강에 잠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백일 명상 후 득도했으며, 100년 전 정겅뱅이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득도했다는 음양샘이다.
<청학동>
우리 선조들은 '청학동'을 꿈에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라 하여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 이상향으로 여겨왔었다. <동국설립>에 '천하에 3대 명산이 있으니 '기산-'곡부'(중국지명) 그리고 '청학동'이다.' 하였고, 동국삼동 중에 세상을 기다리는 보배가 청학동이라 했다. 또 옥룡자께서는 삼승지지에서 제일지가 청학동이고, 영평대신도본에 '동방의 제일지요 왕기의 제일지다' 라고 하였다.
이곳 청학동은 한때 사교(邪敎)의 원천지로 알려졌던 곳이다.
풍수가들이 밝힌 3곳의 청학동은 묵계재 너머 시천면 반천안의 ‘고운이골’, 삼도봉 줄기의 끝자락 시루봉 아래 악양면 북쪽 마지막 ‘청학이골’, 내원재 너머 불일폭포의 ‘학연일대’를 가리킨다. 그 중 고운이골은 이인로의 <파한집>의 기록대로 나말 고운(孤雲) 최치원선생께서 은거한데서 그의 호를 따라 붙여진 이름이고, 청학이골은 <대동지지>의 기록대로 지금의 매계(梅溪)를, 학연일대는 김일손의 <續두류산행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학동이란 이름은 인간이 그리는 최선의 이상향이다.
제주도 어부들이 그리는 <이어도>요,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염원한 <율도국(硉島國)>과, 연암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그린 <무인공도(無人空島)>가 그것이며, 영국의 토머스모어의 <유토피어>가 바로 청학동이다. 율곡이 한때 즐겨 머물렀던 오대산 노인봉 아래 소금강 일대를 <청학동>이라 불렀다. 청학동은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닌 우리들이 가꿔 낼 이상향의 호칭으로 불리는 보통명사다.
이어도-율도국-무인공도-유토피어는 모두 현세엔 실재하지 않는 피안(彼岸)의 세계이지만, 우리의 이상향인 청학동은 현존하는 공간이라는데 그 차이점이 있다. 이곳 청학동 사람들의 바이블인 <청학비결>의 기록대로라면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 지형적 요소는 비슷하다.
‘後 龍有石負三峰 其下有廣石谷 水出南流 洞口下有石門 其內有石泉’
(용이 꿈틀거리며 내려서는 산줄기 뒤로 바위가 3개 봉우리를 업고 앉았고, 그 아래
광석골이 벌어지며 물이 남으로 흘러 동구 아래 석문이 있고 그 안으로 돌샘이 있다.)
‘可居可作沓千余石落 只地高霜晩 升種石出無限大地矣’
(사람이 살만하여 경작할 수 있는 밭이 1천여 마지기에 다만 땅이 높아 서리가 늦어
한 되를 심어 한 섬을 내는 무한대의 땅이다.)
이곳 청학동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3백여 년 전부터라 하고, 특히 일제에 반대한 선사들께서 피난해 모여 산 것이 110호 정도였다. 6.25 당시 지리산 공비소탕으로 일시에 그 마을이 없어졌다가, 1956년 전북 순창출신의 강대성이라는 사람이 개척자로 들어서면서 부터다. 그 뒤로 갱정유도(更正儒道)를 신봉하는 현 청학동 주민들 30호가 모여 옛 모습을 고수하면서 선현들의 얼과 전통을 계승하며 수도 정진하고 있다. 아울러 현세에 결핍된 윤리도덕, 인성, 예의범절 등을 서당을 통해 교육, 양성하고 있으니 청학동이란 이름이 걸맞다는 생각이다.
한밤인 2시.
밤비 소리에 놀라 잠을 깨다.
가을비치곤 억수로 퍼붓는다. 태연하려 했지만 좌불안석이다.
눈을 붙이려했으나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주초 일기예보가 ‘주말 비’를 예보한 탓인지 회원들의 반응이 제로선이다.
밤을 뒤척거리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산행일정에 대한 제2, 제3방안을 생각하는 긴 시간이다.
5시 25분과 55분에 최영복-이충식씨로부터 각각 전회를 받았다.
새벽 5시 35분.
다른 날보다 20분 앞서 집을 나서다.
주문해둔 00김밥집에 들러볼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밤새 사납게 몰아치던 가을비가 제법 소강상태다. 전망이 밝아졌다.
발산시장 앞에서 회원을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던 버스에서 경적을 울린다.
그러려니 했더니 지나가던 버스가 잠시 멈추더니 앞문을 열린다. 운전자의 얼굴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6643번 버스를 운행 중인 운전기사가 고함을 친다. 000산악회에서 알았던 40대 회원인 이성식씨다. 우연한 새벽의 조우(遭遇)에 몇 마디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그의 내적사정이야 알 리 없지만 정착해 보이는 그의 입장이 꽤나 안정되어 보였다.
새벽비가 멎은 상태다.
생기가 돌아왔다. 산우회 시작 이후 윤난희씨가 모처럼 참여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그네의 남편 친구인 박찬호씨는 서초구청 앞에서 합류했다.
2004년 사량도 산행이후 만 1년 6개원만의 해후다.
대진고속도로 함양을 지나면서 하늘은 파란색갈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중산행을 염려해 취소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최대의 불운이다.
10시 36분.
단성IC를 나오자마자 T자 도로에서 우측램프로 올랐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왕복 4차선도로다. 지리산방향 이정표를 따라 20번 도로에 올라선 버스는 쾌도난마(快刀亂麻)다. 시원한 도로를 가르는 오전이 생겹다. 도로변 가로수의 단풍색깔에 매료된 일행들의 눈빛은 어느새 붉게 젖어있다. 탐스럽게 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감나무 열매가 풍요한 이곳의 민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산리로 향하는 도로는 어느새 왕복2차선으로 변했다. 리드미컬한 도로의 곡선을 따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늦은 오전이다. 20번 국도를 완곡하게 달리던 버스는 지리산(중산리) 전방 4km지점갈림길에서 좌회전, 내대리 방향으로 꺾었다.
길이 약 100m 가량의 00터널을 통과한 버스는 내대리 판거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이다.
이어 곡선을 그리던 도로는 해발 700m 가까운 삼신봉터널을 향했다. 터널 길이 2100m인 왕복 2차선 터널은 청학동을 향한 거리를 무려 4~50분 단축시켜주었다.
늦은 오전 11시 13분.
삼신봉 터널을 막 빠져나오면 만나는 원묵계마을을 우측 아래편에 두고 노변에 정차했다.
1997년 6월 7~8일(주말무박산행), 방문한 이래 9년만의 재회에 감회가 깊다.
백무동(04;00)-한신계곡-세석산장-원삼신봉-내삼신봉-송정굴-쇠통바위-내원치-청학동(14;00)으로 내렸던 10시간에 걸친 당일은 종일토록 비가 내린 우투(雨鬪)산행이었다. 폭우와의 싸움은 산행에서 오는 에너지의 소진과 비교하면 오히려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그 엄청난 강우량을 감당한 당시의 열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외경감(畏敬感)이 든다.
삼신봉을 오르는 일반적 등산로는 청학동 도인촌 마을 오름길목의 청학교 매표소에서 시작함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삼신봉 터널이 개통된 이후 터널의 남쪽 끝 지점 바로 옆의 원묵계 마을에서 계곡을 타고 외삼신봉~원삼신봉~내삼신봉 능선을 거치는 산행객들이 많아졌다는 山誌의 보도다. 둔덕을 이룬 도로에서 소담한 원묵계 마을로 내려갔다. 가로수처럼 늘어선 무성한 시눗대와 왕대밭을 가르며 들어서는 평화스런 마을은 분명 이국적이다. 행여 이방인의 방문이 누가 되지 않을까 마음부터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청운서당' 팻말이 붙은 마을 중앙통로다. 하늘은 문자 그대로 언제 그랬냐듯이 벽공(碧空)이다.
<묵계사 → >
산촌이지만 옛 양반골다운 가옥들로 들어찬 마을이다. 제당이나 서당, 일반가옥들 모두가 단아한 한옥 기외지붕 일색이다. 얼른 내려섰지만 제대로 들어선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당이 열린 집 앞에 문의차 들어섰다. 마침 시제(時祭)를 올리는지 문중사람들이 모여 가옥 중앙 마루 가운데 위패를 모시고 한창 제수차림 중이다. 개념도를 보여주며 지리를 물었다.
“아주 험한 길인데 혼자선 힘들 건겁니더”
50대 남자의 사투리에 섞인 염려가 정겹다.
일행이 많다는 대답과 인사를 치르고 곧장 계곡을 향해 완만한 마을 중앙로를 따라 올라갔다. 기산도원(祺山桃園)을 우측에, 옥류가 흐르는 계류를 좌측에 끼고 고운 단풍에 시선을 뺏긴 화사한 오전에 봄바람같이 따사한 추풍(秋風)이 휘감아든다. 중부지방의 싸리울타리처럼 이곳가옥은 대부분 왕대로 울타리를 둘렀다.
11시 24분.
마을이 끝나가는 지점에 포장된 임도다.
좌측으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비포장 임도를 따라 100m쯤 걸어가자 방향은 우측으로 휘어지며 외딴 시멘트기와를 올린 너른 마당을 가진 울타리 없는 일자형 가옥을 만난다. 마당 앞 개끈에 목이 매어있는 흰 잡견(雜犬)두 마리가 이방인을 향해 적당한 경계심을 갖고 짖어댄다. 고마운 인사다.
1시 방향 낙남정맥 능선마루를 쳐다보던 왕영주씨의 감탄이다.
“산이 층층이 단풍 옷을 입었어요!“
단란(團欒)한 소로의 시작이다.
정겹고 아름답우며 좋은 길이라고 연신 감탄하는 박찬호씨다.
돌배와 이깔나무 낙엽이 깔린 완만한 오르막마다 뜨거운 땀을 흘러내렸다. 생각 이상으로 높은 기온이다. 비온 후를 감안해 두터운 상의를 준비했던 회원들마다 구슬땀 범벅이다. 오늘을 놓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날씨다. 호젓한 산죽 오솔길은 지리산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11시 45분.
玉水가 흐르는 계곡에서 한 차례 스탠딩 휴식을 가졌다. 걸쳐 입었던 겉 방수바지를 벗었다. 숙녀 앞에서 바지를 벗는다며 윤난희씨의 장난끼어린 힐책(? 詰責)이다. 일행들의 얼굴마다 진한 땀을 흘린다. 여름의 시작인가? 계속 산죽이 늘어선 오르막이다. 작고 오붓한 낭만이 임리하는 아름다운 코스다.
빽빽하게 자라 컴컴한 그늘을 드리운 대숲이다.
이깔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교목 아래 산죽이 가로화를 이룬 전형적인 산길에서 적당한 터를 잡아 하룻밤 비박(Biwak, 獨)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다.
12시 09분.
묵계계곡.
건계(乾溪)를 건넜다. 들머리부터 보였던 희고 검은 고로쇠호스 여러 가닥과 함께 오르는 오름이다. 상설된 채로 그대로 방치된 이 호스를 통해 명년 3월이면 재가동될 것이란 사실에 일행들은 놀란다.
“고로쇠가 아니라 <골로쇠>로군요.”
윤난희의 푸념이다. 현장에서 직접 받아 마셔야 직성이 풀리고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은 우리국민들이 등한시하고 있는 음식물에 대한 불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별도로 사서 마셔본 경험이 없는 고로쇠 수액을 볼 때마다 마치 울안에 꼼짝 못하게 가두고 곰쓸개를 강채(强採)하는 행위와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격한 호흡과 진한 땀이 떨어지는 된비알이다.
허기를 참을 수 없다는 김병찬씨다.
80Kg 거구를 움직이고 구성진 노동요를 하려면 뱃구레가 적당히 채워져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작은 공터에 멎었다. 각기 준비한 행동식을 꺼내거나 말라버린 목젖을 축이는 시간이다. 그제 직장 0선생님께서 직접 재배한 밭에서 생산한 물고구마 한 상자 중 일부를 삶으라고 큰 딸 녀석에게 일렀더니 비닐 주머니에 담아 식탁위에 놓였던 것을 배낭에 넣었었다. 묵직한 그 놈을 꺼냈더니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달고 맛있다는 일행들의 味評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리 생각이 들지 않았다.
12시 35분.
안부 삼거리다.
우측 200m 지점의 암벽 아래가 음양샘터다.
음양샘을 드리자는 제안에 시큰뚱하다. 곧바로 외삼신봉을 향하자는 묵시적 표현이다.
아늑한 평지와 우거진 잡초, 바위 벼랑 아래에 작은 제단도 마련된 이곳은 여러 수행자들의 수도처이며 과거 미륵암이라는 토굴도 섰던 자리라고 한다.
신비의 천하 명수 묵계 음양샘
신라 도선국사가 바로 이곳 음양샘에서 샘물을 마시며 백일명상 후 득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하지만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이 단속을 모질게 반복하는 바람에 요즈음은 아무도 이 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만다고 성씨는 안타까워한다. 삼성궁을 일으킨 한풀선사도 또한 이곳에서 석 달간 머물며 이 음양수를 마셨다는데, 그 신비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 미륵암터에서 솟는 두 개의 샘을 세석고원의 음양샘과 구분하여 묵계 음양샘이라 부른다. 제단 우측 바로 옆 5m 위의 바위틈에서 나오는 것이 양샘, 그 남쪽 10m 옆의 골짜기 위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음샘으로, 두 샘물을 합하면 신비한 기운의 음양수가 된다. 음-양샘 모두 물맛이 맑고 담백하기가 비길 데 없어, 천하의 명수 맛이지만 오늘은 그냥 접은 상태에서 옆구리를 통과하고 말았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었다.
허리께를 차고 오르는 산죽이 무성한 수평능선이다.
우측 산록 아래 들머리였던 원묵계 마을이 낙남정맥을 병풍삼아 조요히 누워있다.
이어 외삼신봉을 오르는 깔딱능선이 일행을 마중하고 있다. 항상 그렇듯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봉우리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 처녀의 마음처럼 자신을 얼른 열지 않는다. 이런 점이 산의 매력이다. 그 매력 때문에 마약중독자처럼 산을 헤집고 다닌다고 함은 패러독스(臆說)일까? 길게 가로누워 있는 낙남정맥 주능선이 선경이다.
12시 50분.
낙남정맥 삼거리 안부에서 우측 10여 m 지점에 이웃한 외삼신봉에 올랐다.
<외삼신봉 1288.4m ; 1992, 6. 13>
바위봉우리 꼭대기에는 표지석이 서있고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아주 좋다.
동쪽으로는 낙남정맥이 고만고만한 높이로 삼봉터널을 덮고 길마재-790봉-주산 방향으로 흘러내리고, 동북쪽으로는 거림과 대내리 마을과 그 너머로 중산리 일대를 북쪽방향에서 감싸 안은 지리산 주맥인 영신봉-촛대봉-연하봉-제석봉-천왕봉-써리봉과 황금능선의 들쭉날쭉한 연봉들에 운무가 살짝 내려앉은 자태로 울타리를 이룬다. 신령스럽고 장엄한 장관(壯觀)이다.
북동쪽으로 가야산(1430m)과, 그 오른편으로는 황매산(1108m)이 잡혀든다.
서쪽 산록에 청학동은 어느새 운무에 묻혀 버린다. 원삼신봉-내삼신봉과 서남 방향으로 흘린내원치-시루봉-화암재를 잇는 능선도 용틀임하는 운무들이 덮여 가히 천상의 세계로 변했다. 갑자기 뭉쳐있던 구름이 잠깐 사이에 흩어지는 과정이 슬로우비디오처럼 그대로 보이는 장면에 환호하는 일행들이다.
‘人生一片浮雲起 人生一片浮雲滅 ’(인생일편부운기 인생일편부운멸)
어느 시인이 읊은 싯구가 불현듯 기억났다.
‘인생은 한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고, 한편의 뜬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어느새 잠시 구름이 걷힌 남서쪽으로는 삼신봉에서 뻗어나간 지리산 남부능선이 가깝게 건너보이고 그 뒤로 호남정맥의 맹주인 백운산(1217.8m)이 우뚝 솟아 있다.
발밑에 깔린 청학동에 위치한 삼성궁의 청학루와 건국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남쪽 멀리 고려반점 색깔의 ‘묵계제’와 ‘하동호’가 산록아래 빈틈을 차지하고 있다.
후미 일행이 당도했다.
이충식씨에 이어 정감사님이 빵빠레(?) 속에 올라섰다. 최근 김자연씨의 행보가 두드러지게 어렵게 보인다. 속이 좋지 않아 구토했다는 전언이다. 최근 제 컨디션이 아닌 박관례씨와 청학동 사거리 안부에서 청학매표소 방향으로 하산할 것을 권유했다.
오후 1시 05분
다시 능선으로 내렸다.
원삼신봉을 향한 서릉방향이다. 여전한 산죽 길은 지리산 특유의 능선통로다.
이제부턴 고만고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는 환상의 코스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1시 24분.
청학동에서 직접 올라오는 계곡길과 만나는 갓걸이재 삼거리(=사거리)다.
<청학동 2.0km, 세석대피소 8.0km>
예서 좌측인 거림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통로 아님’이란 패찰과 함께 통행을 금하는 밧줄이 가로로 걸쳐있다. 따라서 삼거리가 아닌 사거리 갈림길이 정확하다.
1시 35분.
원삼신봉 삼거리 공터다. 일련의 등산객들이 중식을 치르고 있다.
우측에 솟은 암벽이 원삼신봉이다.
원삼신봉의 풍광을 한데 묶어 내삼신봉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심산(心算)이다.
<삼신봉 三神峰 1,284.5m>
<세석평전, 쌍계사 10Km, 청학동 3Km>
원삼신봉에는 후면에 고깔형 돌탑을 두고 1m 높이의 오석에 새긴 정상석은 1990년에 세워졌다는 글자기 패어있는데 그 앞엔 석제단이 마련되어있다.
木이정표가 있고, 주위는 암부라서 사방을 조망은 외삼신봉과 별 차이가 없다.
정상석이 세워진 돌탑 뒤,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져 보이는 곳에는 지리산경관해설 안내판 이 서있다. 전망판 앞에 서니 저 멀리 세석으로 가닿은 7km 길이의 기나긴 남부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이 남부능선 종주는 지리산 주능선과 직각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색다른 맛이 있다.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기막히게 좋다. 그러나 조망은 외삼신봉에서 본 경관과 대동소이하다. 특히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전망대로서는 이곳 내, 외, 원삼신봉 어디라도 훌륭하다.
삼신봉 정상 암봉 서쪽 밑으로 돌아내려가 보면 저 위 정상 바로 아래로 높이 6m의 역삼각형 석축이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음양샘에서 수도 후 득도했다는 비렁뱅이 행색으로 돌아다닌 '정걸뱅이'가 쌓았다고 하여 정걸뱅이담이라고 부르는 석축이다.
삼거리 공터에서 일별하는 세석평전과 영신봉 능선이 구렁이 꼬리처럼 뻗어 있다. 도상거리 약 3시간 30분간이다. 선두에서 전체적 산행시간조절을 위해 스치듯 지나쳤다.
강풍이 전신의 땀을 녹인다.
이와같은 서늘한 꿀맛은 겪어보지 않으면 정녕 모른다.
노각나무 나목이 선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었다.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짧게 오르고 암릉 등을 우회하기 위해 왼쪽 사면을 서너 차례 오르내렸다. 石門사이 오르막을 통과하면 암봉인 내삼신봉(1354.8m) 정상이다.
2시 00분.
내삼신봉 표지석과 삼각점이다.
<三神山頂(삼신산정) 1354.7m>
<2등 운봉 27 1991 복구>
내삼신봉은 해발 1,354.7m로, 3개 삼신봉 중 가장 높은 거대한 암봉으로 신선대라고 불린다. 마치 금강산 한 부분을 옮겨 놓은 듯한 풍광이다.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전망이 아주 시원스럽다. 북쪽 성삼재와 천왕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이 하늘아래 둘도 없는 만리장성이다. 부처께서 고행했다는 히말리아의 설산(雪山)이 저러하리라 생각해봤다. 마지막 행동식을 풀어 저마다 나누는 시간이다.
2시 10분.
다른 산꾼들이 들어 닥치는 바람에 협소한 정상에서 더 버틸 여유를 양보해야 했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생각 같아선 송정굴-쇠통바위-독바위-내원치를 거쳐 주차장으로 가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귀경시간이 밤 1시 전후가 되리란 판단이다. 그렇다고 예정에 없는 코스를 줄이기에도 난감한 일이다.
쌍계사로 내려간다는 00산악회 멤버들의 잽싼 걸음을 위해 비켜섰다.
오후 2시 35분.
삼거리갈림길이다. 우측은 선명하고, 좌측은 최근 산죽을 베어내어 만든 길이다.
앞서 쌍계사로 간다던 산꾼들이 좌측으로 꺾어든다. 잠시 방향설정을 위해 멎었다. 이정표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산세와 나침반으로 결정할 일이다. 우리가 향할 남향이 좌측이라며 먼저 나침반을 꺼내든 000씨의 확신이다. 앞서가든 사람들을 생각해 판단을 정지하고 좌측으로 꺾었다. 약 150m 내려선 지점에서 내원치 방향이 아닌 청학동 방향임을 확인했다. 일반지도에 표시가 없는 새 길이다. 9년만의 삼신봉은 사람을 이렇게 당혹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 일행들이야 무관했지만 쌍계사 방향 00산악회원들은 낭패스런 입장이다. 그들에게 잘못 길을 들어선 것을 알렸더니 이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곤 되돌아선다. 우리 입장에선 불행 중 다행이다. 먼저 약 1시간가량 시간절약을 해서 좋고, 또 일부 지친 일행들을 위해선 결과적으로 다행스런 일이 되어버렸다.
“국가정책도 곧 대로 하면 탈이 생기지요. 가끔 융통성있게 트는 것도 요령이지요.”
애써 합리화하는 조낙연씨의 변명은 수준급이다. 그도 은근히 코스를 줄이는 것을 바라던 눈치였었다. 어떻든 그의 합리화는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이에 못할 것이라며 쓴 웃음이었지만, 전체를 리드하는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정감사님과 박관례씨가 무척 반기는 눈치다. 작은 실수가 가끔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나 보다.
그러나 마이너스적 요소 뒤엔 플러스적 요소도 숨어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길이 20여m, 폭 10여m, 높이 1.5∼2m의 다소 널찍한 관 통굴로 임진왜란 때 송정 하수일 선생이 이곳에서 피난을 했다고 하여 명명한 '송정굴'과, 동서로 관통되어 있는 바위굴과 삼신봉 능선 최고의 명소라 할 ‘쇠통바위’를 생략했으니 다소 섭섭한 마음이다.
쇠통바위.
길쭉한 역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다는 바위에 자물쇠가 얹혀 있는 모습을 한 거대한 쇠통바위는 청학동 사람들에겐 큰 의미를 가진 바위다. 청학동 사람들은 학동마을에 있는 열쇠처럼 생긴 바위로 이 쇠통바위를 열어야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천국이 열린다고 확신하고 있다.
저 아래 묵계계곡 용소 옆에 열쇠를 닮은 열쇠바위가 있는데, 누군가 큰 덕을 닦은 이가 그것을 들고 올라와(혹은 그것을 만지고 올라와) 이 쇠통바위를 열면 세상을 구할 비기(秘記)가 드러난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자물쇠를 여는 열쇠 구멍은 쇠통바위를 동서로 통한 큰 굴이 아니라 그 위에 얹혀 있는 바윗덩이에 뚫린 구멍을 이르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오후 2시 50분.
한 그루 소나무가 직각 암봉 모서리에 박힌 전망대다.
청학동 아래를 굽어보며 삼성궁과 청학동 일대를 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심각하게 경사도가 급한 내리막이다.
때론 미끄러지며 조심스레 디디는 발끝이 여리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내려선 끝에 제법 경사가 고른 내리막에 들었다. 좌우에 익은 고운 단풍도 끝물이라는 생각이다. 자연의 순환은 언제 봐도 정형적이고 정직하다. 그래서 자연에 묻히며 살고자함이 모두의 바람이다. 자연색 단풍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느낀다. 색채 심리 전문가이며 ‘컬러는 닥터’의 저자 스에나가 타미오 박사(‘색채 학교’ 대표)가 밝힌 단풍 색깔별 심리분석의 비밀이 흥미롭다.
-빨간색단풍(단풍나무, 모과나무, 꽃사과나무, 옻나무)
생리학적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혈액순환에 좋을 뿐 아니라 감각기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드레날린의 방출을 자극해 일반적으로 우울증, 자살예방의 색으로도 좋은 효과를 보인다. 단, 혈압이 높고, 심리적으로 흥분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란색단풍(은행나무, 능수버들, 느티나무, 목련, 벚나무, 감나무, 오동나무 )
가장 밝고 빛나는 색으로 가볍고 명랑한 느낌을 주며, 낙천적인 기분을 만들어준다.
특히 위와 장 등을 자극하여 소화작용을 돕는다. 심리적으로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갖게 하여 무기력증, 우울증에도 효과적. 좌뇌를 자극하여 일과 공부와 같은 정신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단, 많이 불안하고 긴장감에 시달리는 등 예민한 상태에서는 역시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주황색단풍(소사나무, 살구, 은단풍, 노각나무 )
빨강과 노랑의 중간색. 이유 없이 처지고 의욕이 없을 때, 업무에 치여서 여유가 필요할 때 활력을 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축제 분위기, 사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따뜻한 마음, 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자세를 자극한다.
불안할 땐 은행나무 보지 말라는 제의다.
단풍을 바라보는 것도 이젠 취사선택의 문제가 됐다.
굳이 따지는 게 아니라 알고 넘어가자는 의도다.
3시 5분.
등산로 끝 포장도로에 내렸다.
<민족훈제단건립기념비>
그 옆에 민족제단이 마련된 제단을 일별(一瞥)했다.
배낭을 추스르며 후미기 닿기를 기다렸다. 5분 후 일행 모두가 합류했다.
3시 12분.
삼성궁이다.
약 5m 내외의 높이로 정교하게 쌓은 몽골족 주택인 겔 모양의 원뿔형 累石塔이 부지기수다. 1984년 한풀선사가 이룩했다는 이 성소엔 삼성(환인-환웅-단군)과 여러 건국시조들, 각 성씨의 시조, 현인 ,무사들을 봉안하여 이곳에서 수사들이 5덕(忠孝信勇仁)과 6예(독서-활쏘기-말달리기-예절-가악-격투기)를 연마하는데 일명 도인촌이라 부른다.
<莫大於大祭堂>이란 이름의 大 집회소를 멀찍이서 바라봤다. 청학교 다리 옆 높이 3m 가량의 장승 2기는 기괴한 관을 씌웠는데, 근엄한 표정이 자못 흥미롭다.
청학동 삼성궁 개천대제 10월 22~23일에 열린다고 한다.
지리산 청학동 배달성전 삼성궁은 배달성전 삼성궁 개천대제를 개최한다.
열린 하늘 큰 굿은 학술토론회에 이어 2일간에 걸친 대제는 온 누리의 빛과 정안수를 삼신께 올리는 의식, 이어 사물놀이 공연, 삼성궁수자의 선무, 선도무예, 오방신장 춤 등 고구려 악기체험, 고대역사체험, 전통문화공연관람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는 소개다.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해발 850m에 자리한 삼성궁은 단전호흡을 하는 움집, 태극문양을 본뜬 연못, 맷돌, 절구통,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의 전경이 펼쳐져 있으며 이와 어우러진 단풍은 절경이다.
예서 5분 정도 더 내려가면 삼성궁주차장에 이르고,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거리에 청학동주차장이 보인다. 비자나무, 때죽나무 열매, 달맞이 꽃, 배초향, 코스모스가 보이는 따사한 청학동이다.
3시 43분.
청학동 주차장에 내린 시각이다.
청학동주차장은 해발 700m이고 청학동매표소(등산로 입구)의 위치가 이미 해발 790m다.
원묵계 마을을 출발, 청운서당-오두막-00계곡-음양샘-외삼신봉-갓걸이재-원삼신봉-내삼신봉-송정굴-쇠통바위-조망처-내원치-삼성궁을 거쳐 청학동 주차장까지 약 10km 거리를 4시간 30분간에 마쳤다.
4시 40분.
주차장 둔덕에 자리잡은 청매향식당(055-884-2869,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에서 식사를 치르고 귀로에 올랐다. 귀로의 정체구간은 천안부근과 평택부근 상습적인 정체구간이다. 밤이 깊어 갈수록 전용차선은 유명무실하다. 온 국민이 ‘법 안지키기대회’라도 하듯 말이다. 허기야 최고 통수권자부터 지키지 않는 법이지 말해 무삼하랴.
라오쯔 도덕경 제9장 持而盈之章의 경구다.
‘功成名遂身退 天之道也’
(공을 이루고 이름이 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에 맞는 처신이다)
뇌까리는 귀로의 밤 차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지금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밤 10시 42분에 귀가했다.
‘기생충 알 김치’ 때문에 올해는 집집마다 김장 비상이다. 김장은 시기가 중요하다. 김장 적기는 평균 기온이 4도일 때. 기상청은 해마다 ‘김장 적기’를 발표한다. 예로부터 김장은 입동(11월 7일) 무렵에 해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는 평년 기온보다 높아 김장을 늦게 하는 게 좋다. 올해 서울의 김장 적기는 11월 27일경이라고.
몇 일전 동아일보 ‘오늘의 날씨’에 실린 컬럼이다.
*교통 :
-승용차 ; 대전-통영간고속국도 단성IC(3시간40분소요)-20번 국도로 지리산(중산리) 전방 4km 지점 갈림길-왼쪽의 내대리 방향-삼신봉터널-원묵계-학동교에서 우회전- 청학동주차장(40분소요)
-대중교통 ;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하동행 직행버스(4시간30분소요, 요금 21,000 원) 09:10, 10:50, 13:30, 15:10, 16:30, 18:30.
하동버스터미널~서울행 직행버스 08:00, 09:30, 11:00, 13:00, 15:00, 17:00.
하동버스터미널(055-883-2663)~청학동행 버스 08:30, 11:00, 13:00, 15:20, 19:00.
*숙식 :
-청학동지역 청학동의 주차장 부근과 매표소로 올라가는 도로 주변
식당 및 민박집(민박 1실 기본요금 30,000원). 고산식당(055-882-7210),
지리산식당(-882-1893),동원산장(-883-7816),고향식당(-882-7202),
명월산장 (884-1127),옛날산장(882-7178), 자연산장(882-4137), 동아주막(882-7069), 불지산장(882-7071), 계곡산장(882-7395), 청학산장(884-0006, 882-7474).
청매향식당(055-884-2869,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쌍계사지역 쌍계사의 매표소 부근식당 및 민박집(민박 1실 기본요금 30,000원).
청운산장(055-883-1666), 용운식당(민박 883-4375), 옥천식당(883-2514),
좋은세상(민박, 식당 883-3363), 서미거리민박(883-1728), 팔모정식당(883-9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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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교원평가 자청한 한강중학교 교사들(동아 05.11.01)
교원평가제 도입을 둘러싼 극한 대결 속에서 서울 한강중학교의 자발적인 교원평가가 신선한 감동을 낳고 있다. 공립인 이 학교의 교사모임 ‘까치소리’는 수업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 보기로 했다. 전체 교사 32명 가운데 21명이 기꺼이 평가 받기를 자청했다. 9월 한 달 동안 실제 평가가 이뤄진 후 교실의 변화는 놀랍고 고무적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15개의 평가항목을 제시했다. 쉽게 가르치는가, 학생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는가, 발표 기회는 골고루 주는가, 요점 정리는 잘해 주는가 등을 물었다. 철저히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작성된 설문이다.
평가를 받아 보니 많은 것이 새롭게 파악됐다고 교사들은 말했다. 그 내용은 바로 수업에 반영됐다. 교사들이 몸을 낮추고 제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자 학생들도 달라졌다. 수업에 훨씬 열의를 보였으며 ‘수업이 쉬워져 학원 강의보다 낫다’는 반응도 나왔다. 학생과 교사 모두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보여 학교교육의 질이 높아졌다.
선생이 제자의 평가를 자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공교육 붕괴를 개탄하는 한편에서 양질의 수업을 위해, 그리고 교사로서의 자기발전을 위해 이처럼 권위의식을 버리고 나서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희망이다.
국민의 80%가 교원평가제에 찬성하는 것은 이런 긍정적 효과를 유도해 공교육의 ‘무사안일 체질’이 바뀌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육부의 교원평가제 방안은 본격적인 평가라고 할 수도 없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참고자료로 교사들에게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두고 전교조가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교원에게 전가하려는 음모’라며 거부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한강중의 ‘윈윈’ 사례는 어떤 말보다도 설득력 있게 교원평가제의 필요성을 입증한다.
첫댓글 산행후기 잘 봤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지리산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