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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불교 교역자 광장에 올린 글입니다.
어렵고 어려운 시기에 봉불식 날짜를 받아놓고 걱정이 태산인데
걱정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서
한 자락씩 풀어가려고 이곳 쾰른의 소식을 올리다 보니
뭔가 어수선하게 논의되어지고 있는 문제가 있는듯 하여 보다가
결국 여자 교무의 외적인 이미지와 역할에 대해
아무리 바빠도 몇 가지 정리해 볼 필요를 느껴 생각을 펼쳐봅니다.
1. 유관순 누나
여자교무라면 대개 들어보았음직한 ‘유관순 누나!’.
물론 저도 정복을 입고 나서는 순간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같이 정복을 입고 나가도 유난히 저를 향해 외치는 소리에 때론 당황도 했구요.
그런데 어느 날 함께 가던 교무에게 누군가가 “춘향이 같다”더군요.
참 곱고 예뻤거든요. 그런데 몇 년 뒤에 환속을 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서울의 외곽으로 교화현장에 나서게 되었지요.
인근 학교에서 저를 보고 종교시간 강의를 맡아 해달라더군요.
저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접근할까 생각하다가
“원불교교무인 저를 처음 보고 생각나는 말은?” 하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유관순 누나”였지요.
그래서 저는 유관순의 역할과 이 시대 ‘유관순’의 역할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가 쉬웠지요.
국가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았던 유관순과,
물질문명 시대에 자신의 진정한 정신적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하도록 외치며
스스로 그 선두에서 노력하는 원불교 교무를 비롯한 모든 종교 성직자의 역할에 대해.
2. 대사회 활동을 하면서
어느 날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종교와 인생 프로에 종단별 성직자가 설교하는데 참여해 달라는~.
그로부터 8년간 방송국을 출입하면서 들었던 말은
“언제나 단아하고 좋은 모습이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는 일이 바쁘고 원고정리가 출발 직전에야 끝나니 편안한 모습은 아니었을텐데-
아마 한복의 이미지와 머리모양이 늘 정돈된 이미지로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유행의 최첨단이 공존하는, 또는 상상초월의 무대의상에 눈이 익어있을 방송국인데~.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7개 종단대표들과 활동을 하면서
첫 실무위원장을 맡아 환경지침서를 발간하고,
기념식을 진행하는 자리나,
환경의 날을 앞두고 환경부 장관을 대신해 종교단체에서 추진하는 환경사업에 대해
기자회견을 할 때도 저는 언제나 정복 차림이었습니다.
때로는 약간 개량된 제 복장에 대해
행사장에 참석한 선배님께서 꾸중을 하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원불교 교무의 복장을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한번은 국제환경연수차 환경부 지원으로 유럽을 방문했을 때
춥고 습한 유럽의 날씨가 힘들어 바지와 파커를 입다가 정복을 입으니
장관보좌관 曰, “이제 교무님답네요” 하더군요.
뜨끔한 생각이 들어 그 후론 정복을 더 고수합니다.
독일에서 살면서 뿐 아니라 해외 출장을 다닐 때도
원불교 여자교무의 한복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훨씬 많은 대우를 받고 환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경을 넘는 기차에서도 정복 복장을 보면 수도하는 사람인 줄 알고
좀 더 조심하고 배려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공항에서도 해외에 살던 교포들이 한복의 단아한 모습을 보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합니다.
처음 출가하여 정복을 입고 나섰던 때 인사를 받으면서
“지금은 옷이 인사를 받지만 장차 법력 내지 인격으로 인사를 받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혹시 아직도 옷으로 인사를 받고 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기도 할 겁니다.
지난 해 독일에서 30여년 넘게 살았다는 호남향우회 회장님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음식에 관한 행사는 했지만
복제에 대한 문화를 고민하는데 어떤 분이
“원불교와 손잡고 해보면 어쩌겠냐”고 조언을 하더랍니다.
한복의 단정한 모습은 물론 한복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이
원불교 교무님들의 모습 이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갈아타는 비행기에서는 스페인에 사시는 교민회장이
제 한복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원불교를 알고 싶어 하는데 아직 소식을 못 주었지만요.
3. 정화단의 점수로 볼때~
정화단의 점수 기준으로 볼 때
제 복장점수는 아마 높은 점수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출가식 이후 10년 이상 처음 맞춘 옷으로 입다보니 언젠가부터 들리는 말~
“원조교무 치마 길이가 너무 짧다”였습니다.
제 키가 자란 것은 아니겠지요. 이미 2센티 이상 줄었는데~ ^^*
여자교무의 치마길이가 점점 길어지면서 자주 해 입지 않으면 전체적인 흐름에서 볼 때
뭔가 달라 보이게 됐고, 그 흐름은 결국
매년 치마길이가 조금씩 길어졌다는 겁니다.
이제는 발목 근처까지 오게 됐지요.
그런데 30년 전 교당 근무를 할 때 부교무님의 치마길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길지를 않았습니다.
또한 유난히도 땀이 많아 여름이면 모시적삼으로도 감당이 잘 안되는 저는
쉽게 빨아서 훌훌 털어 말려 입을 수 있고
풀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옷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언론기관에서 10여년을 살면서 카메라를 메고 다닐때는 더 그랬구요.
하루 종일 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하얀 정복에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다니면서
취재를 할 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때 용기를 내어 누군가가 입고 있는 것처럼
저도 개량 한복을 하나 사 입어봤습니다.
아무래도 구김이나 땀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갑상선 저하증이 있어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추위를 크게 해결하지 못하는 두루마기보다, 비싸긴 하지만
오버코트가 따뜻하긴 한데 적절한 오버코트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또 외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안내를 받게 되어
10만원을 주고 검정원피스로 된 치마와 저고리를 사서 입으니
가격도 저렴하고, 기존의 한복 모양새보다는 못하지만
아주 편안하고 어떤 작업을 해도,
운전을 오래해도 불편하질 않았습니다.
치마 주름이 약간 적어서 오버코트를 입어도 물론 둔하지 않았구요.
그러다 보니 제 원피스형 치마를 견본으로 가져다가 만들어서 보급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국적 없는 옷을 입고 다닌다”고 찍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런 치마와 개량된 저고리를 만들어주던 제복사팀은 해체가 되었지요.
물론 현재 다시 오셔서 수고하고 계시지만~.
저 또한 10여년이 지났어도
그 옷이 편하다보니 아직도 그 옷을 애용합니다.
그러니 정통성을 세우고자 하는 선배님들의 눈에 좀 서툰 모습으로 보이겠지요.
4. 만일 옷이 전부 바뀐다면?
총단장님이 들으시면 어쩌실지 모르지만, 솔직히
정화단 총회를 할 때 제일 따분한 것은 옷의 모양을 규제하고 구두 색깔이 어떻고~
이런 내용으로 여중시절 두발검사를 할 때 수준으로 외적인 규제를 다루는 일입니다.
이제 종교지도자로서 어지간한 것은 정리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때이니
때론 반듯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각자 인격과 습관과 상황에 맡겨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흰 구두를 신으면 성불을 못하고 검정구두를 신으면 성불을 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오래됐지만,
생활복마저 몇 가지를 정해놓고 입도록 시행해보려고 모델을 만들던 때
“그럼 그 옷값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누가 사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론 눈이 부시도록 깨끗한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 다른 교무를 볼 때
“아 나도 하나쯤 흰 저고리를 하긴 해야 겠구나~” 하면서 살고 있는데다,
한번 맞춘 옷은 최소한 10년 이상 입고,
출가식 때 입었던 옷조차 버리지 못한 채 어딘가 활용해야지 하는 입장이라
만일 정복이 전부 바뀐다면
교단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인 무게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
결코 1~2만원 하는 옷은 아닐텐데 개개인이 옷을 사 입을 수 없을 경우
바뀐 정복은 누가 사주어야 하나~ 하는 우려와 함께
그리고
전부 입지 않기로 결정하여 폐기처분해야 하는 그 동안의 옷들은?
교단을 키워오신 역사가 담긴 선진님들의 옷이 쓰레기통에?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환경부에서 일을 했고, 독일에서 살다보니
환경운동이 생활화되지 않으면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할 걸 생각해서
그런 걱정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5. 오늘의 교단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오늘의 교단은 원불교 여성 교역자들에 의해 많은 부분을 이뤘다고 봅니다.
어느 종단보다 앞서서 남녀 동등한 성직자로서 교화현장에 설 수 있었고,
개화기 한국사회에서
남보다 앞선 이미지로 왕성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 사회에는
정복을 단아하게 차려입고 머리가 단정한
원불교 여자교역자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고 봅니다.
그 현장에서 교단을 발전시켜온 선진님들이 수도원에서
항상 교단발전을 위해 기원하며 후진들을 후원해주고 계십니다.
또한 건강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을 연세가 되어도
교단행사와 예회에 반드시 정복을 차려입고 법복까지 입고 오시는 선진님들을
우리는 항상 당연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복이 바뀌어
어느때부턴가 현장에 있는 사람과 수도원의 선진님들의 외적인 모습이 달라진다면?
그 괴리감은 무엇으로 처리될 수 있는 것인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6. 변화는 필요합니다.
물론 변화는 되어야지요.
그리고 변화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치마길이가 길어지기도 하고,
저고리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거나 하면서-.
그리고 선배님들께서 주의를 주시더라도 현장에서 필요하면
약간 개량된 한복을 입고 다니니, 이 또한 변화입니다.
변화될 부분은 한복의 계절별 색깔과 활동성을 살린 디자인입니다.
크게 눈에 띄지 않고도 손질하기 쉽고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갑자기 다 바꿔입지 않고
하나씩 기회가 생기는대로 교체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현재 정복 치마 앞여밈 부분을 지퍼로 고쳐서 편안하게 입습니다.
물론 기존의 옷을 그대로 살린 것이지만,
옷핀으로 여몄을 경우처럼 벌어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더운 여름
가슴이 답답해 숨이 터질 것 같은 시달림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치마허리 길이를 약간 내리면 좀 길어진 저고리에 맞춰 입을 수 있습니다.
물론 활동하기에도 불편하지 않구요.
너무 극단적인 흰색과 검정색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얼굴 피부색에 따라 검정도 각각 맞는 검정이 있고,
흰색도 다른 느낌을 줍니다.
선진님들께서 미색 저고리를 입으시는 경우는 아마 이러한 점을
고려하신 면이겠지요.
실토하건데,
제복사에 갔다가 남자교무님들의 여름 바지천이라는데 시원해보이길래
그 천으로 개량적삼을 맞춰 입었습니다.
교단 어른님들께는 “영~ 아닌” 옷이지만,
사회활동을 하거나 해외 출장을 다닐 때 입어도
흰저고리처럼 후지레해지지 않고 ‘보기 좋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최근 개량한복이 보급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다보니
개량한복에 대해 선진님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국적 없는 옷으로 거명되겠지요.
하지만 처음 기존의 한복을 개량하여 입은 원불교여성들이
시대에 앞선 모습으로 보여졌듯이
이 시대, 활동하는 활불시대에 맞게
조금 다양한 색깔과 활동성을 살린 옷으로 개량하여 입게 된다면
우리 여성교역자의 복장이 결코 시대에 맞지 않는 한복으로 전락하진 않을 것입니다.
7. 남성교역자의 한복정복은?
만일 개량 한복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원불교 남성 교역자의 한복 정복 모델은 정통 한복이 아닌 개량한복임을
우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남성의 한복은 개량이 가능하고
여성의 한복 개량은 불가하다? 면 정말 불평등이 되겠지요.
8, 국가별로 정복을 달리~
현재 교단적으로 너무도 엄청난 과제를 간신히 풀어온 시점에서,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현장에서는 너무 바쁜 이 시기에
이토록 여성복제가 논의된 까닭은
미국이라는 특정상황성 때문인 것으로 정리해도 될른지요?
그러나 이미 일본에서도 조총련의 문제로
한국에서처럼 정복을 입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고,
공항에서는 가능한한 정복착용을 주장하는 제 입장에서도
중국 상해 봉불을 위해 출발할 때는
동행하는 모든 교무님들과 평상복을 입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봉불식을 마치자 마자
현장의 교무님들이 머리를 풀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행사장을 나오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또 미국에 발령받은 교무님 한 분이 공항에서
여자교무 머릿속의 핀 때문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검색대에서
머리를 전부 풀을 때 가졌던 그 수치심에 대해 공감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자신의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
교화에 전력해야 할 교역자로서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론 지역별 특성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전통과 역사가 함께한 현 제도를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될 전체의 문제로
거론한다면 이 또한 편벽된 생각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상황에서 평상심으로 지혜를 모아
국가별 특성을 살린 복장과 머리스타일을 정한다든지
색깔로 구분한다든지 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는 지난 여름 6월~ 7월에도 날씨가 추우면 겨울 동복을 입고 거리에 나가곤 했습니다.
4계절이 공존해서 봄, 여름, 겨울 옷을 철따라 입기엔 날씨가 결코 허락하지 않으니
당연히 기후에 맞는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이지요.
상황이란 다양합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교화에 지장을 준다면
현재 복장에서 최대한 실용성을 보강하여 미국의 정복으로 정하고
중국에선 그 현장성을 고려하여 일관된 복장으로 보이지 않되 정화단에서 허용한 것으로,
일본은 일본대로 여성교역자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면서 정복을 정한다면
세계화를 지향하는 원불교에 맞게 변화와 발전이 함께 이루어지겠지요.
9.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30년 이상 교당에 몸담고 오는 동안의 경험에 바탕해볼 때
이번과 같이 개혁을 주장하는 부류와 고수를 주장하는 부류가 서로 상반되는듯한 상태로는
결코 변화는 어려웠다고 봅니다.
이미 복제에 대한 논의는 수 차례 다루어졌고,
잠시 양극으로 나뉘어져 분분하다가 이내 다른 현실문제에 묻히곤 하면서
오히려 더 보수적인 분위기로 오지는 않았는지~
그것을 젊은 세대에서는 답답해 하고
나이가 좀 들면 또 다른 면으로 답답해 한다면
답답해진 가슴과 머리에서 무슨 해결점이 나오겠습니까.
우주의 변화도 소천소지로 이루어지는데
갑자기 우리 교단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느니,
교화가 이래서 안된다느니 하면서
울분을 표하기 보다는 실현 가능한 점부터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지 싶습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보다
함께 서로의 뜻을 존중하면서 약간씩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면
작은 변화가 크게 문제가 없는데 무조건 거부 할 만큼
교단의 선진님들이 막혀있는 분들도 아니고
교법은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열린 교단은 우리 각자의 생각이 열려갈 때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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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교무님 ! 좋은 의견, 열린 마음으로 쓰신 글 잘 읽었어요. 동감입니다. 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