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농아 수용소
교통사고 희생자를 위한 첫 번째 구호 조처나 글라이더 조립에서처럼 하교는 사람들에게 언어 훈련을 끝도 없이 반복하지만 피교육자는 점점 벙어리가 된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 발표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잡은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은 모두 평균적인 것을 대변하는 데 적합한 것으로서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눌 능력은 점점 질식당한다. 그런 능력은 다른 삶과 함께 나눌 가치가 있는 경험, 표현의 자유, 독립성과 연결 끈을 전제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체계에서 대화는 입을 열지 않는 복화술(腹話術)이 된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찰리 매카시38)이다. 매카시의 인기는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단어들은 예전에 만나고 작별하는 인사에나 주어졌던 문구들과 비슷해진다. 최신의 육아 지침서에 따라 성공적으로 교육을 받은 소녀는 ‘상황’에 적합한 말을 정확하게 하는데 그녀에게는 효능이 입증된 지침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순응 훈련을 통해 만들어가는 그런 식의 언어 결정주의는 그러나 언어의 종말이다. 사물과 표현 사이의 관계는 잘려 나가며, 실증주의자들에게 개념이란 계산기에 불과하듯, 실증주의적 인간성은 글자 그대로 동전이 되어버렸다. 그런 것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도 일어나는데 이것은, 양심의 울림이 모든 말에 살아 있다는 심리학적 통찰에 따르면 양심의 소리가 그런 것을 겪고 있다는 뜻도 된다.
목소리는 아주 미묘한 음색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준비된 메커니즘에 의해 대체된다. 그런 메커니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즉 불문법과 같은 관례에 의해 준비되지 않은 휴지부가 갑자기 나타날 때 공황 상태가 빚어진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가 양심에 주는 부담에서 편제되기 위해 복잡한 게임이나 다른 여가 활동에 빠진다. 그러나 불안의 그림자가 그래도 남아 있는 말 위에 불길하게 덮여 있다. 정치에서 오래전부터 명령이 토론을 밀어내듯,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조차 편견 없이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사물을 언급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말하기는 일종의 불길한 제스처가 되고 이 제스처는 스포츠화한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점수를 따려한다. 경쟁의 요소가 독약처럼 모든 대화 속에 스며든다. 인간적인 품위가 있는 대화에서는 토론 내용과 관계되어 나올 수 있는 흥분이 이제는, 내 뱉은 말이 적절한가와 무관하게 무조건 자기가 옳다는 고집에 따라온다. 순수한 권력 수단으로서 탈마법화한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마술적인 힘을 획득한다. 항상 목격할 수 있는 사태는 일단 한번 내 뱉은 말은 아무리 부조리하고 유연하고 부당할지라도 내뱉었다는 이유로 그 말을 한 사람을 마치 소유물인 양 폭군처럼 지배해 다시 철회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일단 한번 품어서 내 뱉은 말이나 계산, 약속 등은 독자적인 생명을 얻게 되어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다. 그런 것들은 편집적인 전염 지대를 형성하여 그 주문(呪文)을 깨기 위해서는 온갖 이성이 요구된다. 거창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정치적 슬로건이 갖는 마법이 사적 영역, 겉보기에는 중립적인 대상에서까지 복사된다. 죽음과 같은 사회의 경직성이 그러한 경직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기는 가정 같은 ‘친밀성의 세포’에 까지 확장된다. 인류에게 해(害)는 외부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침묵하기는 객관적 정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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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미국의 복화술사 버겐(Edgar Bergen, 1903~1978)이 만든 복화술 코미디의 인형 이름. 194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누렸다.
첫댓글 역시 지은씨가 필사한 것을 제가 대신 게시합니다.
지금은 포루투갈입니다. 이 또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먼 곳...즐겁고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