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훈(武勳)의 칼날(9)-휴식기(休息期) 그리고 전운(戰雲)
글쓴이 기사수도회
51.
태무왕 16년. 서기 511년. 어느덧 신라와의 전쟁이 끝난지도 약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대륙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특히 신라는 전쟁이 끝난 직후 크나큰 진통(陣痛)을 겪었다. 그 중 첫번째 진통은 북부 군구에서 벌어지고 있던 주신과의 전쟁이었다. 가야와의 휴전 조약 후 신라는 전 병력을 북부 군구로 빼내서 주신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가까스로 신라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북부 군구의 절반을 주신에게 넘겨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진통은 김연이 신라의 왕에 즉위한 것이었다. 이 즉위는 주신과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0월 즈음에 실행되었다. 수개와 교구를 중심으로 하는 자칭 개혁파(改革派) 소속의 귀족들이 왕족의 후손(後孫)이기도 한 김연을 왕으로 옹립한 것이었다.
이에 강태사를 중심으로 하는 근왕파(近王派)의 대신들이 반발하여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빼내 김연의 개혁파 대신들과 전쟁을 벌인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가야와 주신과의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신라는 완전 가라 앉고 말았다.
서기 511년. 5월 3일. 가야 금관주 금관경.
가야의 수도인 금관경(金官京)의 1년 전에 비해 거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경제 발전의 물결은 금관경을 하나 둘씩 변모 시켰다.
흙을 대충 다져서 만든 길에는 돌을 이용해 만든 포장 도로가 생기기 시작했고 금관경 주위에 흐르는 강물을 끌어서 쓰는 수도(水道)가 최초로 개설되었다. 그리고 금관경 부근에 수도방위군단 병사들과 신무군 병사들을 동원해 만든 거대한 내호(內湖)에는 새로이 접안 시설이 만들어져 대륙 최초의 내항(內港)이 되었다.
"정말 경제 발전이 좋긴 좋구만."
위주가 덕진과 함께 금관경의 남문 일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시장(市場)을 지나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전쟁이 끝난 후 위주는 성산 주의 자사(刺史)가 되었다. 하지만 위주는 용맹히 싸우는 장수에는 적합했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하루종일 천장 높이까지 쌓이는 사무를 처리하는 행정(行政)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성산 주를 맡고 있는 것은 한 때 그곳의 왕이기도 했던 성언이었다.
"아까 좋은 술집 하나 발견했는데 어떤가? 그곳 술 맛하고 여자가 아주 죽인다네."
위주가 덕진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덕진이 힘들 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에 일이 많아서 그리고 자네도 내가 부인 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않나?"
덕진의 말에 위주가 말했다.
"아이구. 영웅은 여자를 좋아한다 했거늘 자네는 아니나 보네. 껄껄껄."
가야에 새로운 명장으로 떠오른 덕진은 사마유를 도와 행정부에서 치안청(治安廳)의 총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임나 주 경성.
신라와의 전쟁이후 새롭게 편입한 임나 주에는 악첨이 제1 육전 군과 함께 파견되어 다스리고 있었다. 임나 주는 한 때 가야의 인구 압 전략으로 인구가 100만 이하로 떨어졌으나 신라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신라 유민들이 임나 주로 들어오고 악첨의 유민(流民)흡수 정책으로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현재 제1 육전 군을 비롯해 제가 이끄는 제2 육전 군과 3개 군단 3개 속주 군이 새롭게 편성 됬습니다."
성강이 이제는 외롭게 하나밖에 남지 않는 팔로 서류를 악첨에게 주며 말했다. 성강은 상륙 전 때 팔을 잃으면서 까지 분전한 공(公)으로 새로이 창설된 제2 육전 군의 군장이 되었다. 악첨이 말했다.
"총 9만이라 전보다는 병력 수가 많이 떨어지는 군.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게?"
악첨의 말에 성강이 말했다.
"네. 각종 화포가 모두 합쳐 500문. 그리고 개인 화기 류는 모두 2000문이 넘으며 기병은 4천명입니다. 수군도 몽총 20척으로 운용 중입니다."
수군이라는 말에 악첨이 픽 웃으며 말했다.
"수군이라 이제는 별 것 가지고 수군이 배치되는 군. 일단 알았네. 가보게."
악첨의 말에 성강이 짧게 인사하고 총독(總督: 임나 주는 다른 주와는 달리 최고 담당관이 총독으로 불림)실을 나갔다.
5월 4일. 가기도.
가기도에는 새롭게 가야 해군 시설들이 하나 둘씩 설치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5개의 군항에 5개의 조선소 등등 가야 최고의 군사 기술진들이 모여 조그마한 섬 가기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사실 주수나 진무는 해군 기지를 옛 신라 해군의 기지인 거류도에 배치 하려고 했다. 그 이유는 옛날 신라 해군이 썼으므로 많은 장비가 있고 비용도 절감된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란은 가야,신라,백제 그리고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있는 왜(倭)에 걸쳐 있는 거대한 남해(南海) 전체를 봤을 때는 거류도 보다는 가기도가 기지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 해군 기지 배치는 총 7일에 걸쳐 의논 되었다. 그리고 결국 본 기지는 가기도에 가야 해군 신라 방면 함대의 기지는 거류도에 배치하기로 했다.
"젠장 허리가 이렇게 아파서.."
누란이 허리를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누란은 요즘에 요통(腰痛: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진무가 말했다.
"조심하십쇼. 제가 폐하께 알려서 내의원이라도 불러들일까요?"
진무의 말에 누란이 말했다.
"됐어. 됐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누란이 괜찮다고 말해도 진무는 그래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란의 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5월 4일. 금관경.
"행정부와 삼군부 그리고 새롭게 외무부(外務部), 재무부(財務部)의 기능을 대폭 개선했습니다. 행정,군사,외교,경제의 기능을 분담시켰습니다."
사마유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음~이렇게 해서 대충 정리가 끝난 것인가?"
태무왕의 말에 사마유가 말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마유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그렇군. 일단 내가 말했던 교육 분야나 사회 분야에도 많이 신경 쓰시오. 신라가 망한 이유에는 빈익빈 부익부가 너무 심했던 탓도 있으니."
태무왕의 말에 사마유가 말했다.
"걱정마시옵소서. 경웅 공과 악청 공과 함께 진행 중이니 곧 해결될 것이옵니다. 일단 가야 전국에 일괄적으로 총 50개의 경당(扃堂)을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 금관경에는 국학(國學)과 태학(太學)을 세워 나라의 기반을 다질 것이고 유능한 군사적 인재를 기르기 위해 사관청(士官廳)을 세우고 곧 사관학교(士官學校)도 세울 예정입니다."
사마유의 말에 태무왕은 흡족해하며 말했다.
"흠~ 이제 정말 가야에 빛이 들긴 드나 보구만."
봄볕이 따스하게 금관경의 궁궐을 비추고 있었다. 그 해 따라 봄볕이 따스했었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52.
태무왕 16년. 511년. 6월 12일. 가야 금관경.
삼군부(三軍部)의 원수(元首)이자 신라 원정 전쟁 때 가장 큰 공훈(公勳)을 세운 을무는 요즘 할 일이 부쩍 늘었다. 신라의 자객들이 입힌 상처가 아직도 쑤시기 했지만 그래도 미룰 수는 없었다.
"흠~ 저번 신라 원정 전쟁으로 기존의 신무군과 무강군, 상비군이 거의 해체되어 버렸군."
을무가 사마유가 준 군대 개편안에 대한 서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사마유가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저번에 임시적으로 편성한 제1 혼성군 등의 부대를 사단(師團)제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사마유의 말에 을무가 서류를 원탁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을무의 말에 사마유가 답했다.
"사실 전쟁 말기에 부대들은 혼성 군을 제외하면 단독 작전 능력이 떨어졌지만 이번에 새롭게 만들 사단은 작전 능력을 강화시켰습니다."
사마유의 말에 을무가 말했다.
"그렇다면 포병대와 보병,기병,궁병,공성 부대 등을 통합한 대부대가 되겠구만."
을무의 말에 사마유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강안 장군 지휘 하에 화포 300문, 기병 3천기, 보병 3만 명, 궁병 4천, 총통 병 4천명이 제1 사단으로 편성되어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사마유의 말에 을무가 말했다.
"그런 것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리고 작전 사령부 건은 어떻게 되었나?"
을무의 물음에 사마유가 지도 한 장을 꺼내더니 말했다.
"네. 금관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근왕산(近王山)에 설치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상시 때 뿐입니다. 기본적인 작전 사령부는 삼군부 건물에 위치합니다."
사마유의 말에 을무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만 있었다.
6월 12일. 외무부 건물.
가야의 외경(外卿)인 공손지를 수장으로 하는 외무부는 대륙의 모든 국가와의 외교 등을 담당한다. 물론 이 임무에는 첩보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외무부 건물은 금관경에서도 삼군부 건물 다음으로 크고 마치 성채처럼 생겼다.
"고구려에서 방금 고구려 왕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사망 원인은 심장 발작으로 보이며 아직 고구려 당국에서는 그 사실을 아직 발표 안 했습니다."
외무부 소속 고구려 지역 담당관인 진구명이 공손지에게 말한 다음 보고 서류를 공손지에게 주었다. 받은 보고 서류를 천천히 읽던 공손지가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그 지역 상관들에게 보안을 요하도록 하게 이럴 때 고구려의 공안 국(公安國) 녀석들에게 걸리면 끝장이니까."
공손지의 말에 진구명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이것은 일반적인 외무부식의 인사였다. 뭐~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공손지가 말했다.
"고구려 왕의 장자(長子)인 효문 태자(孝文 太子)의 대한 보고가 없군?"
공손지의 말에 진구명이 말했다.
"요즘에 효문 태자에 대한 공안 국에 경계가 삼엄합니다. 심지어는 효문 태자의 부인마저 공안 국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진구명의 말에 공손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구명이 조금 긴장했다. 가야의 삼대 기둥 즉 행정의 사마유, 군사의 을무, 외교의 공손지라고 불릴 정도로 외교의 대가인 공손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무언가 불길하다는 의미였다. 공손지가 말했다.
"일단 고구려에 풀었던 우리측 첩보대를 빼내게 최대한 빨리!"
공손지의 말에 진구명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6월 12일. 재무부 건물.
전쟁이 끝난 후 새롭게 신설된 재무부는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여러 일들 때문에 밤샘 근무가 많아지고 있었다. 한 때 상인이기도 했던 소진이 담당하는 재무부는 전쟁이후 팍 줄어든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현재 새롭게 정비된 금관내항(金官內港)과 새로이 만들어진 영도 항이 백제나 왜, 신라에서 오는 여러 상선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곧 수용 능력이 한계가 올 것 같습니다."
재무부 한 관리의 말을 들은 소진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항구가 터지기 직전이라니 통영 항은 어때?"
소진의 말에 그 관리가 말했다.
"통영항의 개항(開港)은 한달 정도 뒤랍니다. 아직 수로(水路) 공사의 큰 혼전이 빚어져 늦어지고 있답니다."
관리의 말에 소진은 답답한 듯 옆에 있던 담배를 연신 빨아대기 시작했다. 담배는 지난 달부터 왜국에서 들어오기 시작한 신상품으로 출시 한 달 만에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소진이 담배 연기를 뿜어 내며 말했다.
"일단 해군에게 도움을 청해서 진주(晉州)의 항구를 빌려달라고 해 만약에 안 된다면 폐하께 도움을 청해보든지!"
소진의 말에 관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6월 12일. 금관경 시장 통.
"거기 서라! 거기서!"
몇 명의 치안 청 소속 치안 원(治安員) 3명이 도망가는 도둑을 쫓고 있었다. 요즘 가야의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그와 비례해서 절도를 비롯한 각종 범죄도 심심치 않게 늘고 있었다.
"헤헤! 잡아보라고! 윽!"
뒤에서 쫓아오는 치안 원들을 보고 놀려대던 도둑이 갑자기 앞에 있던 무언가에 부딪혔는지 머리를 만져대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한 도둑이 칼을 뽑아 말했다.
"넌 뭐야! 이 자식.."
그 도둑은 갑자기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딪힌 것은 지금쯤 성산 주에 있어야 할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위주는 시장 통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범죄자 천적(天敵)이었다.
"젠장 오늘 운 드럽게 없네.."
쓰러져 있던 도둑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금관경 외곽에 마련된 정신 수련원(精神 修鍊院)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감옥으로 가버렸다.
12월 5일. 고구려의 평경(平京).
고구려의 평경은 대륙에서 신라의 금경 못 지 않게 거대한 고구려의 수도이다. 고구려의 장왕(莊王)이 도읍을 정한 후 총 200년간 고구려의 중심이었던 평경은 최초의 계획 도시이다.
현재 인구는 장왕이 정한 <평경 인구 정착 법>에 의거하여 약 70만 정확하게는 71만 4732명이다. 고구려 장왕은 세세하게 평경에 대한 여러 법을 만들고 당시최고의 건축가들에게 평경을 짓게 했다.
그래서 평경에는 대륙 최초로 모든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원(公園)이 10군데 넘게 있었고 화재에 대비한 시설도 철저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홍수에 대비한 둑 시설도 철저하게 갖추어져 있어 과연 최고의 도시라 불릴 만 했다.
그리고 이 최고의 도시 구석 정확하게는 궁성(宮城)옆에 위치한 공안 국(公安 國) 건물에서는 효문 태자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가야가 급속히 커진다는 소문은 듣고 있소. 아바마마께서 괜히 가야를 지원한 듯 싶소."
효문 태자의 말에 공안 국의 국장(國將)인 효량(曉梁)이 말했다. 효량은 20년 동안 공안 국에서 일한 첩보나 보안 관련 분야에서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워낙 엄한 탓에 두억 시니 (야차)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제 생각도 태자 마마와 같습니다. 현재 가야는 새롭게 군대를 재편해서 사단이라는 제도 하에 현역 사단만 총 10개 정도 됩니다. 사단 병력만 합쳐도 30만이나 됩니다."
효량의 말에 공안 국 가야 방면 첩보 과 담당이 말했다.
"현재 가야는 지방 방어군인 군단이 하나 둘씩 해체되고 있습니다. 가야의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인력을 풀어야 되기 때문에 해체되고 있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으나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체된 군단병일부가 속주 사단으로 흡수 되었다고 합니다."
첩보 과 담당의 말을 들은 고구려 최강의 군대인 천무영의 장관(長官)인 고승휴(高勝休)가 말했다. 고승휴는 효문 태자의 숙부이기도 했다.
"태자 마마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충성스런 천무영의 군대는 언제든지 가야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고승휴의 말에 효량이 말했다.
"그렇게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일단 백제나 주신 등과 연계해야 합니다. 특히 백제와 많은 교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제는 가야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효량의 말에 효문태자와 고승휴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 견제를 위한 고구려의 계략이 시작되고 있었다.
12월 5일. 가야 금관경.
휴식기라고 알려진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금관경 곳곳에서는 건물 신축 공사가 한 창이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건축 바람은 금관경에도 불고 있었다. 금관경 곳곳에서는 새롭게 상관이나 관공서가 들어서고 있었다.
"폐하. 뭐 하시옵니까?"
조용히 금관경의 정경을 보고 있던 태무왕 옆으로 부인이자 왕후인 태정 왕후(太正 王后)가 다가와 말했다. 태무왕이 말했다.
"금관경의 모습을 보고 있소이다. 참 오랜만에 보는금관경의 정경이오."
태무왕의 말에 태정 왕후가 말했다.
"보십쇼. 폐하. 참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다 폐하의 은덕(恩德) 때문이옵니다."
태정 왕후의 말에 태무왕이 부끄러운 듯 말했다.
"내가 한 것이 뭐 있다고. 그보다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시오?"
태무왕의 말에 태정 왕후가 말했다.
"그저 평소답게 지내고 있습니다."
태정 왕후의 말에 태무왕이 조용히 왕후의 손을 잡았다. 태정 왕후는 고구려 신왕의 딸로 효문 태자의 동생이었다. 태무왕에게 시집온 후 조용히 잘 지냈다. 이제 7살난 태자와 8살난 공주를 키우며 말이다. 물론 태무왕은 왕후를 제외하곤 후궁조차 들이지 않아 좋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가정사에는 업무에 밀려 관심을 쏟지 않아 50점 자리 남편이었다. 태무왕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 후원에서 태자와 공주와 함께 오붓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명색이 아버지인데 자식들을 신경도 안 쓰니 걱정이 되어서 말이오."
태무왕의 말에 태정 왕후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53.
태무왕 18년. 513년. 2월 3일. 소주(小州) 통영.
통영은 옛날 소가야의 수도이자 현재는 소주의 주도(州都)이기도 한다. 그리고 통영은 가야에서 제1의 항구이자 가장 큰 항구이다.
가야의 기술자들이 총 2년 여에 걸친 대대적인 공사를 해 만들어진 통영 항은 대륙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크고 잘 정돈 되어 있는 항구이다.
총 10개의 항만(港灣)에 비상시를 대비해 5개의 조선소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고 항만 주변에는 총 8개의 등대(燈臺)가 밤에도 항상 빛나게 통영으로 들어오는 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이것이 몇 년 전의 통영이라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전혀 믿어 지지가 않네."
태무왕이 항만에 정박 중인 수많은 배들을 보며 말했다. 거의 백제 소속으로 되어 있는 무역 선들은 그 육중한 몸을 자랑하고 있었다. 태무왕의 말에 소주의 담당관인 소진이 말했다.
"예. 폐하.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입니다. 이곳 통영 항에는 총 200척 이상의 배가 입출항하고 있습니다."
소진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그렇구만 운하 공사는 어떻게 됬나?"
태무왕의 물음에 소진이 말했다.
"운하 공사는 아직 끝내진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날 것입니다. 통영에 흐르는 남강(南江)과 금관경에 흐르는 낙강(樂江)을 잇는 운하는 아마 내달 중에 끝날 것입니다. 이것이 연결되면 금관 주와 소 주를 잇는 유통로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버려진 황무지들을 모두 옥토로 변할 것입니다."
소진의 자신있는 말에 태무왕이 웃었다. 소진은 통영을 대규모로 개발하는데 그리고 낙강과 남강을 잇는 낙남 운하(樂南 運河)를 건설하는데 자신의 사비(私費)를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강안이 잠시 해를 보더니 태무왕에게 다가와 말했다.
"폐하. 이제 행궁으로 가실 시간이십니다."
강안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그럼 어서 가세."
태무왕의 말에 강안이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폐하가 가신다!"
그러자 100기의 호위 기마대를 선두로 총 1천명의 병사들이 오밀 조밀하게 배치되어 태무왕을 굳게 지키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2월 4일. 금관경. 외무부 청사(廳舍).
『효문 태자가 왕위를 받았음.』
고구려에 사는 모든 가야 인들의 담당하는 주 고구려 주재 대사(大使)가 외무부에 긴급히 보낸 이 단 한마디의 말로 긴급하게 외무부 청사에서 비상 국무 회의가 열렸다.
"2년 동안 왕위를 주려 했지만 신경도 안 쓰더니 갑자기 왕위를 받다. 수상스럽기 그지 없군요."
외무부 고구려 지역부에서 보낸 보고서를 읽던 경웅이 말했다. 그러자 고구려 지역 담당관인 진구명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현재 효문 태자는 내주(來週:다음주) 중에 곧 즉위식을 치를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평경에는 천무영을 비롯한 천용영(天龍英) 소속으로 추정되는 병력 5만 명이 평경으로 이동 중입니다."
진구명의 말에 을무가 말했다.
"병력이 이동중이라. 반란이라도 일으켰나 보군."
을무의 말에 진구명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렇게 의심이 가고 있습니다. 효문 태자는 왕위를 받는다고 말하기 7일 전부터 비밀리에 수많은 신하들을 숙청했습니다. 그 중에는 효문 태자의 측근이기도 한 주공(周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구명의 말에 악청이 말했다.
"주공이라면 고구려 내에서도 친 가야 파라고도 알려진 인물. 그렇다면 효문 태자는 우리를 가상 적국으로 삼겠다는 말인가?"
악청의 말에 외무부의 수장(首將)인 공손지가 말했다.
"악청 공의 말이 맞습니다. 효문 태자는 우리를 가상적국으로 삼은 것이 분명합니다. 일단 성산 주와 대 주에 배치된 5개 사단에 비상 경계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 순행 중인 폐하께서 돌아오셔야 합니다."
공손지의 말에 을무가 말했다.
"그렇다면 신무군(神武軍) 을 풀어서라도 최대한 빨리 폐하를 모셔와야 겠군. 그리고 치안청의 담당관 덕진에게 이들을 지휘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군."
을무의 말에 공손지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1시간 뒤 덕진이 신무군 소속 병사 5천을 이끌고 소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2월 7일. 고구려 평경.
평경에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천무영과 천용영 소속의 병사들이 평경의 각 문을 지키며 강도 높은 수색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경 내에서도 천무영 소속의 병사들이 돌아다니며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색의 첫번째는 각국 대사관을 비롯한 상관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활기찬 평경의 거리는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일이 아주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군요. 일단 천무영과 천용영이 아주 잘 하고 있어요."
효문 태자가 멀리 거리를 가득 메운 천무영과 천용영 소속의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공안국의 국장인 효량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폐하의 명령 하에 총 10만의 병사들이 이동 중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신라에 있을 것입니다."
효량의 말에 국상(國相)인 명림 성(明臨 聖)이 말했다.
"하지만 신라로 보낸 10만 군사는 어짜피 가야를 견제만 하는 군대입니다. 지금 가야의 외무부와 삼군부도 촉각을 세우고 우리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테니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가야의 눈과 귀는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벌써 공안 국 요원(要員)들 10명 이상이 비밀리에 피살 되었습니다."
명림 성의 말에 효문 태자가 말했다.
"벌써부터 전쟁인가?"
효문 태자의 말에 효량이 말했다.
"벌써가 아닙니다. 이미 전쟁은 시작 되었습니다.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2월 8일. 금관경 국무전(國武殿).
국무전은 태무왕이 비상시에 국무 위원인 악청과 을무, 공손지, 경웅, 사마유, 정공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으로 궁성(宮城)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국무전 바깥에는 강안이 지휘하는 북군(北軍:일종의 호위군)소속의 병사 3천명이 만약을 대비해 철통 같은 방어로 국무전을 수비하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됬군요. 신라에 10만 군사 파견이라 일단 우리를 떠보려는 것이군."
태무왕이 공손지의 보고를 듣고 말했다. 그러자 사마유가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고구려가 평화 유지군이라는 명목아래 보낸 10만 명은 우리를 떠보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
사마유의 말에 을무가 말했다.
"그래서 임나주의 악청 장군에게 비상 대기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군이 우리를 치지는 못할것입니다. 여러 군사상의 문제도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단서가 없으니까요."
을무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단서도 주면 안 됩니다. 외경! 현재 고구려 주재 가야 국민들에 대해 본국 송환의 명목아래 모두 불러 들이게. 최대한 빨리 남군(南軍:특수 부대 정도?) 병력을 총동원해도 좋네."
태무왕의 말에 공손지가 말했다.
"걱정마십쇼."
회의실에는 긴장감이 서서히 감돌고 있었다. 고구려와의 전쟁 위기가 감도는 상황이었다. 태무왕이 말했다.
"지금 당장 성산주와 대주에 배치된 5개 사단에 비상 경계 명령을 하달하고 가기도의 누란에게도 비상 경계 명령을 내리시오! 공손지는 최대한 효문 태자와의 접촉을 시도하시오. 사마유는 본국 치안을 평소에 배로 올리시오. 특히 밀입국 자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하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외무부,삼군부,재무부,행정부에서 나가는 문서는 최대 특1급,2급 문서로 분류하세요."
태무왕의 분부에 국무 위원들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54.
태무왕 18년. 513년. 2월 10일. 고구려 평경.
평경에서 가장 큰 건물이자 고구려 장왕(莊王) 이후 200여년간 고구려 왕들의 집이었던 천궁(天宮)에는 대대적인 즉위식이 열렸다.
바로 약 2년 만에 고구려 신왕(新王)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군주(君主)의 자리에 오르는 효문 태자였다.
천궁에는 공식 초청된 이만 5만 명 비공식으로 된 이만 20만 명 가량이 이 즉위식을 보기 위해 고구려 전국에서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몰려 왔다. 그만큼 효문 태자의 즉위식은 다른 나라의 큰 관심을 일으키고있었다.
"저 황색 옷을 입은 자가 효문 태자인가?"
국왕 전권을 받고 고구려로 파견된 고구려 지역 담당관인 진구명이 멀리서 황색의 옷을 입은 효문 태자를 보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구려에 파견된 첩자가 말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접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천무영 소속의 병사들 300명이 효문 태자의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고 천궁 바깥에는 약 5천기의 기마병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대기 중입니다."
첩자의 말에 진구명이 말했다.
"참 대단하구만 무슨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군."
그리고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신수(神獸)인 봉황(封凰)과 고구려 동명성공(東明成公)을 시조로 하는 수많은 고구려의 왕들에 대한 제사를 마치고 고구려 왕가(王家)의 최고 어른인 문공(文公) 에게 동명성공 이후 고구려 왕가에 전해지는 신궁(神弓)을 받고 효문 태자는 진정한 기마의 제국 고구려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효문 태자는 후세 고구려 강왕(康王)이라고 불리게 된다.
태무왕 20년. 서기 515년. 4월 1일. 금관경.
효문 태자가 왕으로 즉위한지도 벌써 2년 여가 흘렀다. 효문 태자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선대왕인 고구려 신왕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귀족(貴族)이나 백성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외교적으로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갔다. 특히 가야에 대한 외교적 공격은 강력했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공개적으로 합동훈련을 가야 국경에서 펼쳤다.
"제길. 이 고구려 녀석이 우리를 굉장히 압박하고 있습니다. 벌써 신라를 동맹에 끌어들이고 오늘로써 5번째 합동 훈련을 펼쳤습니다."
공손지가 진구명이 급히 작성한 보고서를 국무 위원들과 태무왕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보고서를 읽던 태무왕이 말했다.
"나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을 가해 오고 있군."
태무왕의 말에 사마유가 말했다.
"현재 우리의 대책은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벌써 2년 여간 고구려 왕(효문 태자를 이렇게 부르겠습니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놓았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써는 할 수 없습니다."
사마유의 말에 정공이 말했다.
"그건 태경의 말이 맞습니다. 폐하. 일단 성산 주와 대 주, 임나 주에 배치된 총 8개 사단들에게 비상 경계령만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철천지 원수인 발해와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합니다."
정공의 말에 태무왕이 말했다.
"그건 정공 자네의 말이 맞네. 발해는 고구려에게도 거북스러운 존재이니까. 등을 노리고 있는 비수(匕首)와 같으니까."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고구려 강왕의 치밀함에 조금씩은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도발적으로 나서는 데도 아직까지 가야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6월 7일. 백제의 한경(韓京).
가야와 비공식 동맹을 오랫동안 맺고 있던 백제는 그 동안 백제를 강국(强國)으로 겨우 이끈 인왕(仁王)이 암살되고 인왕의 아들인 명왕(明王)이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명왕은 허수아비일 뿐 실제적인 권력(權力)은 인왕의 동생인 대공(代公)이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대공의 거대한 저택 일명 외궁(外宮)은 실질적인 백제의 정부가 되고 말았다.
"고구려가 가야를 도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의 왕이라는 자 참 대담하게 나가고 있군. 하지만 그는 계속 실수하고 있어."
대공이 고구려에 보낸 첩자들의 보고서를 읽으며 말했다. 그러자 대공의 제일 심복(心腹)이라 불리는 송강(宋講)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일단 가야를 압박 하려면 우리 백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일단 압박이라는 것은 가야를 완전히 구석으로 몰아 넣은 다음 행하는 것입니다."
송강의 말에 한회(韓會)가 말했다. 한회는 전형적인 추남(醜男)이지만 그 두 눈은 세상을 읽어내고 그 시커먼 머리 속에는 온갖 계략이 가득 차 있는 사내로 가야의 사마유의 필적하는 사나이였다.
"하지만 가야는 우리와 발해와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긴 가야의 대책이 그것 밖에 없겠지만요. 태무왕의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패자(覇者)가 되는 것이니까요."
한회의 말에 대공이 말했다.
"패자라 참 오랜만에 듣는 소리군. 전에 백제의 소왕(昭王) 께서는 대륙 최초로 패왕(覇王)이 되셨다고 들었는데..."
대공의 말에 송강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 패왕은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은 누가 누구를 잡아먹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누가 더 오래 지속하는 것이 특히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송강의 말에 대공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암군(暗君)과 암신(暗臣)이었다.
7월 18일. 신라 포주 항.
가야와의 전쟁으로 거의 쑥밭이 되어버린 포주 항은 새로이 신라 해군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신라 정부가 워낙 궁핍해 포주 항은 아직 전쟁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진짜 할 일 없군. 하긴 이 나라에 바쁜 사람들이라면 정치하는 작자들이겠지."
신라 해군 소속 제1 함대에 근무하는 주(住)라는 이름의 소교가 말했다. 주 소교는 이번에 새로 해군에 들어온 신참 장교였다. 하지만 그가 장교가 된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군대에서는 밥은 굶지는 않았다.
신라의 모습은 대체로 이러했다. 대규모의 가뭄이 일어난 뒤 신라인들의 삶은 더욱 궁핍했다. 곳곳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났고 군대의 기강은 풀어졌다.
그리고 금경이 함락된 것에 큰 충격을 입은 사람들도간혹 보였다. 신라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무훈의 칼날 합본 시리즈 그 9번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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