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피로 꽃피운 배티성지..진천
안성의
명찰 석남사를 둘러보고 고개를 넘어 청룡사를 찾아가는데...우연히
배티성지를 발견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주님은 우연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거든요...지난 달 문경새재와 연풍성지 그리고
진안성지를 우연히 이끄셨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발자취를
느끼게 하시더니...이번에도 역시 최양업신부님의 땀의 흔적을 보게
하십니다.
그 감동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나누겠습니다
.
배티가
무슨 뜻일까요? 저는 처음에 외국 선교사 이름인줄 알았어요. 실은
이 동네에 돌배가 많아 '배나무 고개'라는 이름이 불렸다고 합니다.
사진의 고개길이 배티가 되겠지요. 한자로 표시하면 '梨峙'(이치)라고
하고. 그걸 우리말로 풀어헤치면...'배티'라는 예쁜 이름이 나옵니다.
배티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목천, 공주, 전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진천,
괴산, 문경새재를 넘어 경상도로 이어지겠지요. 서쪽으로는 안성, 용인,
서울까지 다다릅니다.
최양업신부님이
전국 어디나 제 마당 드나들듯 한 이유가 이런 교통의 요지에
거점을 삼았기 때문이지요. 깊은 산골에 자리하고 있어 여차하면 산줄기를
탈 수 있는 길을 확보했습니다.. 요새도 차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한적합니다.
이곳은
최양업신부님의 첫 본당이 있었고, 30인의 신교자를 낸 신앙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한 군데 이렇게 많은 치명자의 묘소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것은 드물다고 합니다.
성지에서
가장 먼저 순례자를 맞이하는 것이 '현양탑'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그
분들의 피의 희생이 있기에 우린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하러 다녔던 길입니다. 길게
이어진 소나무 길이 어찌나 아름답고 고요한지.....그러나 그 속엔
주님이 죽음을 향해 걸었던 14처가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맷돌마다 주님의 사랑이 아로새겨져 있네요. 어떠한 무거움과 짓이김도
굳굳히 이겨낸 선조들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성지를 다닐 때마다 의심이 든답니다.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고
관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살아나서 다시 전교를 하면 낫지 않을까요?"
이런 한심한 생각을 가집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을 내밷은
사람이 어찌 복음을 전파할수 있겠습니까?
두 시간
가량
산자락을 타고 가면 6인묘가 나온다고 합니다. 거기까지 가 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제 신앙은 멀었나봅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아주 큰 성모님이 서 계십니다. 악을 짓누르고 선을
바라본 보습이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이 바위돌이
제단입니다. 바위처럼 단단한 믿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나무
밑둥마다 신자들이 앉아 미사를 드리겠지요.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이곳에서
행하셨을 겁니다.
저 바위돌이
미사때 신부님이 앉을 자리랍니다. 나무의자는 복사들이 앉을 자리겠지요.
이곳에서
우연히 조규명 마리아 수녀님을 뵙습니다. 이 인연도 주님의 뜻이겠지요.
전국의 성지를 찾아 다니면서 기도하시는 분이지요.
최양업신부님의
삶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완공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양업 영성의집'으로 안내해 주십니다.
내가
본 성당중에서 가장 작고 가장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뻥뚫린 통유리엔
육중한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저 앉아서 바라만
봐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이곳에서 꼭 피정을
하고 싶네요.
수녀님은
감실에 대한 애뜻한 사연을 말씀주십니다.
'석마리아'란
신심이 두터운 교우가 있었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님을 모신 감실이
철재로 만들어져 답답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나무로 만든 멋진 감실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수십년이
지나서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진작가인 석마리아는 우연히 인조대왕이
앉았다는 나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거액을 들여서 그 나무를
사서 유명한 조각가에게 그 나무를 맡겼습니다..
6개월동안
꼬박 기도하고 생각하고 그리고..기계하나 대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파서 만든 것이 위에 보이는 감실이랍니다. 주님을 향한 애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요. 그런데 손으로 만들었기에 감실을 여는 문이
이음새가 맞지 않아 틈이 벌어졌답니다. 어쩔 수 없는 잘못이었는데...
이곳의
신부님은 이 틈을 보고 분개하였답니다. 혼이 난 석마리아님은 낙담하여
냉담까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석마리아님 꿈에 주님이 나타났답니다.
"감실이
틈이 나 있어 내가 숨쉬기가 어찌나 편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티로 돌아옵니다.
저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순교자들의 끈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실을 조심히 어루만져 봅니다. 주님의 숨구멍도 보고...틈새는 창에 찔린 주님의 옆구리가
아닐까요?
산자락에
아스라이 앉아있는 성당에 들어갑니다. 따뜻한 햇볕이 주님의 사랑을
가득 느끼게 합니다.
정말
힘겹게 주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고 계십니다. 이땅의 신앙인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겠습니까? 그져 주님을 믿는 하나만으로
목숨이 좌우되니...그리고 그들은 그 신앙을 지켜냅니다. 이런 고통의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
성당안의
파카 글라스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컴컴한 성당이지만 주님의
온기가 창가에 가득합니다.
안성쪽으로
500여미터를 가면 최양업신부님이 머물었었던 곳이 나온답니다.
입구에
103위 성인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계단은 기차길에 깔렸던 침목으로
만들어져 있네요. 103명의 성인들을 밟고 올라 갈려니 그져 죄송스럽습니다.
위에 올라가면 성당터가 있습니다. 철재로 만든 14처가 가슴을 숙연하게
합니다.
이 집은
한국 최초의 신앙인이요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님의 성당겸 사제관입니다.
비록 방 두칸짜리 초가집이지만 , 이곳은 복음의 거점지랍니다. 이곳을
통해 전국을 내집처럼 다녔답니다 오죽했으면 한달동안 나흘밖에 자지
못하고 목자없는 양들을 찾아 다녔겠습니까?
그러나
6월 중순부터 8월초순까지는 장마 때라서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신부님은 쉬지 않고 교리를 연구하고, 한국 교회사에 길이
남을 '천주가사'를 만들었습니다. 민초들도 쉽게 주님을 접할 수 있게
한글로 그리고 가사체로 만들었지요.
박해때
순교한 치명자들을 조사하여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번역하여 다블뤼주교에게
제공하였답니다. 오늘날 103위 순교자가 성인품에 오른 것은 바로 최양업신부님의 숨은
노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최신부님을 '땀의 순교자'라고 하지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경상도,
강원도를 순회하면 목자없는 양처럼 지친 신자들을 찾아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과로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피의 순교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인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참 아쉬운 대목이지요.
아마
수녀님께서 이곳에 수선화를 심었겠지요. 파릇한 수선화보다 예쁘게
꽂아 놓은 푯말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어느날
'김우방 그레고리안'이라는 신자가 이 숲속에서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는데...최양업 신부님의 음성이 귀에 들렸답니다.
"내가
위장병에 고생했는데..이 곳의 물을 먹고 병이 나았단다."
김 그레고리안은
신부님이 가르쳐준 곳을 팠더니..과연 샘이 솟았다고 합니다.
바로 기적수랍니다..아멘
조마리아
수녀님이 이 우물을 가르쳐 주면서 꼭 기도하고 마시라고 일러 주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말라고 했는데...이 기쁨을 혼자서
알기엔 너무 벅차답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곳에
올렸습니다
졸졸..물이
나옵니다. 이걸 '생명수'라고 부르겠지요.
제 딸
정수가 순교자의 삶이 가득 녹아 있는 생명수 한잔 드리겠다고 합니다...아멘
*
배티성지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진천 IC에서 빠져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10KM를 가다보면
313번 지방 국도가 나옵니다. 그 길을 타고 7KM를
가면 좌측에 배티 성지가 나옵니다.
|
모놀과
정수 (누르세요)
|
첫댓글 안성쪽으로 갈때 가끔씩 이용하는 길목에 있는 "베티성지"를 무심코 지나치곤 했는데...대장의 자세한 설명을 보니 인제는 휭하니 못본척 지나갈수 있으려나...? 모놀대장께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