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궁금한 이야기 Y>, '발달장애 청년‘이야기
1. 4.14(금)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발달장애 청년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청년은 손에 카드만 주어지면 어디로든 이동하려 한다. 그런 청년의 옆에는 때론 엄마가, 때론 교사가 동행한다. ‘발달장애’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행동에 대한 집착적인 반복’이다. 그것이 그에게 안정과 만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 하지만 청년의 미래는 지극히 불투명해졌다. 그를 오랫동안 돌보던 엄마가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청년 가족의 사연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청년의 누나 또한 휘귀병에 걸려 치료시설에 있으며, 아버지는 두 남매를 돌보던 중에 몇 년 전 갑자기 사망했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 보루인 어머니도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후, 청년을 돌볼 누군가를 위하여 청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준비인지 모른다.
3. ‘발달장애아’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성인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 오로지 가족들의 돌봄에 의지하는 것이다. 치매나 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다양한 정책이 제기되고 있지만, ‘발달장애’ 가족들은 자신들의 폐쇄된 공간 속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간혹 사회에 적응할 수 있어 소소한 일을 할 수 있는 다행스러운(?)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발달장애아들은 가족들의 고통 속에서 은폐되어 살아간다. 언론에 등장하는 ‘가족살인’ 중에는 발달장애아 돌봄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는 이렇게 철저하게 사회적 시선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4. 방송에서는 지방의회위원이 등장하여 ‘발달장애아’들이 생활하면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정책적으로 추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어떤 진정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지극히 형식적이며 관행적인 발언에 불과하다. 왜 ‘발달장애아’를 위한 시설이 제대로 설립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없이 그저 앵무새처럼 노력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은 더 크다. 정치적 세력으로 볼 때, 소수의 ‘발달장애’ 가족에 대한 정책은 그다지 표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5.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바다여행을 떠난다.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보다는 자녀들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청년은 어떻게 살아갈까? 살아갈 방법이 있기나 할까? 아버지에 이어 연속되는 어머니의 부재는 남아있는 두 장애 남매의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명치를 때린다. ‘발달장애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가족의 삶은 전적으로 거기에 맞춰지고 모든 스케줄이 집중된다. 청소년까지는 학교나 시설을 통해 돌봄을 보조받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사라진다. 나의 조카도 그러했다. 조카를 위하여 형은 조금 일찍 퇴직했고 돌봄을 준비했지만 조카와 하이킹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 조카는 청년과는 달리 집에만 있으려 한다. 어떤 형태든 고통은 매한가지이다. 방송에서도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나마 이런 사연을 보도함으로써 ‘발달장애아’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모른다.
7. 국가는 은폐되어 살아가는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표가 되는 집단만이 정책의 대상이다. 특히나 이번 정부는 그런 편협적인 시각이 극대화되고 있다. 그들에게 ‘개인’은 없다. ‘자유’는 힘없는 사람들이 각자 살아가라는 방치의 선언이고, ‘정의’는 소수의 검사집단에게 특화된 법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며, ‘국익’이라는 발언 속에서 개별적 인간은 소멸된다. ‘발달장애아’의 문제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징용자들의 권리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에서 희생된 개인들과 더불어, ‘국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인권과 존엄에 대한 기본적인 중요성을 알려준다. 국가는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렇기에 파괴된 개인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줘는 실천을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보다 앞서야 할 국가의 존재이유다.
첫댓글 * * * * * 끝없이 반복되는 이야기. 국가 공동체의 의무!!! 책임을 회피하는 대통령, 국무총리, 복지부장관, 시장, 도지사... 고발하며 투쟁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저항하지 않으면 눈물 속 감내만 할 뿐. 비폭력 저항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