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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트레킹>
산악인이라면 히말라야 등반은 꿈이요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자인언트급봉을 오르다가 만년설 속에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곤 한다.
칼라파트라는 지구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하여 이용되는 네팔 쿰부히말라야 지역이며 사카르타 여신의 발등이다.
할 수 있는 B/C로 어프로치 하는 길목 마지막 롯지 5,200m 고락셉에서 출발하여 5545m 봉우리를 말하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지구의 최고봉을 보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말이 트레킹이지 고산을 등반하려면 체력과 장비 식량등 준비물과 특히 고소 적응이 등반 성공여부를 결정적으로 가름하게 되므로 정확한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네팔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수도는 '카트만두'인데 '카트'는 네팔어로 나무를 말함이고 '만두'는 사원이라고 하는데 즉, '나무사원' 나무로 된 사원이란 뜻이며 면적은 147,000㎢이며, 위치는 서남아시아의 인도 및 중국(티베트)과 접경한 내륙국이며 종교는 힌두교(89.4%), 불교(9%), 회교(1.6%)인데 특이할만한 것은 네팔수도 카트만두가 해발 약 1400m 고지대이며 카트만두에서는 눈이 덮여 있는 산은 항상 바라보지만 눈이 내리는 것은 일년 어느 때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는 항시 하얀 만년설이 덮여있지만 시내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는 아열대 몬순기후이다.
네팔은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을 가진 영광의 나라이며 히말라야에는 해발 8,000m이상 14좌중 9개 봉우리가 네팔에 속해 있는 선택받은 나라이다.
카트만두 곳곳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연관된 불교문화가 속한 건축물이 많으며 작은나라답지 않게 문화유산이 즐비한 나라이다.
국민소득 1인당 약 $400이며 네팔산지에는 산골짜기가 희귀한 자태로 넓게 펼쳐져 있고 다민족 국가로써 2,50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산속 곳곳에 발달한 마을에 고루 흩어져 살고 있다.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카트만두 분지의 주민이 100만 명 정도이고 민족구성을 보면 다민족 국가로써 크게는 남부의 인도 아리안 계층과 북부의 티베트, 미얀마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카트만두 분지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네와리족 그 주변의 타민족, 에베레스트 산지의 저- 유명한 세르파족이 있는가 하면 그 동쪽으로는 몽고 계통의 부족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중서부에는 마가르족, 포카라 주변에 구룽족, 태라이 지방에 인도계 타루족 등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립보다는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히말라야 고봉을 등반을 하려면 셰르파족의 안내나 도움이 절대적이며 산악 가이드와 시내 가이드는 다르다.
카트만두를 근거지로 하던 부족이 주변 부족을 통일하여 오늘날 카트만두가 수도가 되고 가장 발전하였으며 사관과 중앙에서 떨어진 산지에 독립된 산악 민족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만 하며 앞으로 등반과정에 소개될 셰르파족에 관하여 주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 40넘은 할아버지가 두 번째 아내를 갖고 싶다네.
머리는 백발이 되고 이가 빠져 가는데 손자가 둘이나 있다는데
레이- 레이- ┚
이 노래는 히말라야 고산족 셰르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이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생활 능력만 있으면 언제나 새 장가를 갈 수 있는 일부다처의 결혼풍습을 나타낸 노래가 고산족의 생활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히말라야(Himalaya)의 개관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히마(Hima)는 눈(雪)을 뜻하고 알라야(Alaya)는 거처를 뜻한다.
즉 히말라야(Himalaya)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히마와 알라야의 합성어인 것이다.
영원한 만년설의 안식처인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 대륙 북쪽과 중앙아시아 고원 남쪽에서 동서쪽으로 거대한 호( )를 그리며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고원 남쪽 가장자리를 지나는 광대한 산맥은 서쪽의 낭가파르바트(Nangaparbat ; 8,126m)에서 동쪽 끝의 남차바르와(Namcha Barwa ; 7,756m)까지 무려 2,500km나 길게 뻗어 있다.
인도북부 카라코람 지역을 포함한 전 히말라야 산맥에는 7,000m 이상의 봉우리가 무려 250여개나 있으며, 8,000m를 넘는 산만도 14개나 된다.
이 거대한 산 덩어리는 광활한 지역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개개의 특성은 매우 다양한 것이다.
히말라야의 높이와 거대한 규모는 대륙권을 분명하게 반으로 가르면서 솟아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기후와 주위 환경뿐만 아니라 대기 순환의 전체적인 양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몬순이라는 계절풍은 여름에는 덮고 습한 바람으로 남서쪽으로부터 히말라야 쪽으로 불어와 엄청난 비를 내리는데 인도지방 사람들의 농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히말라야의 중부와 동부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4,000m이상의 고지대에서는 비대신 눈이 오고 폭풍이 불어 등반이 불가능하게 된다.
한편 겨울에는 한랭 건조한 북동풍이 유라시아 쪽에서 불어와 대부분의 지역이 맑고 건조한 날씨가 된다.
따라서 히말라야의 등반 기는 몬순을 중심으로 1년을 넷으로 나눈다.
즉 3월부터 5월까지는 프레몬순(Pre Monsoon), 6월부터 8월까지의 몬순기. 9월부터 11월까지의 포스트몬순(Post Monsoon), 12월부터 2월까지의 동기건조기가 그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크게 서부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동부 히말라야 셋으로 나눈다.
서부 히말라야는 다시 북부 캐시미르 히말라야는 주로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세계 제 2위봉인 K2(8,611m)봉과 가셔브룸(Gasherbrum ; 8,068m), 브로드 피크(Broad Peak ; 8,047m)등 수많은 고봉이 거대한 빙하계곡 사이에 솟아있다.
주로 인도 서북부지방 스리나갈을 중심으로 한 남부 캐시미르 히말라야는 낭가 파르바트와 눈(Nun ; 7,135m), 쿤(Kun ; 7,077m)등의 고봉들이 광범위한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펀잡히말라야는 인도 북부에 속해 있으며 주로 6,000m급의 봉우리가 산재해 있고, 네팔 국경까지의 쿠만 히말라야에는 난다데비(Nanda Devi ; 7,817m)와 같은 고봉들이 있다.
세계에서 8,000m이상되는 높이를 가진 14개의 봉우리 중 9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네팔 히말라야는 6,000m ~ 7,000m급의 수많은 봉우리와 함께 장장 800km나 펼쳐져 있다.
이 거대한 산맥은 네팔왕국과 중국의 티베트 지방 사이에 걸쳐 있으며 그레이트 히말라야(Great Himalayar)라 부른다.
네팔히말라야는 다시 7개의 산군과 10개의 산맥으로 세분된다.
그중 다울라기리히말(주봉 8,167m), 안나푸르나 히말(주봉 8,091m), 마나슬루산군(주봉 8,156m), 랑탕히말(주봉 고사인탄 8,013m), 쿰부히말(주봉 8,848m), 쿰바르카나 히말(주봉 마칼루 8,481m), 칸첸중가 히말(주봉 칸첸중가 8,593m)등은 독자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어 어느 한 지역을 전 지역의 표본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부 히말라야 산맥은 서쪽의 칸첸중가 히말과 접하고 있고 그것은 네팔과 시킴의 경계선을 따라서 위치하고 있다.
동부 히말라야는 다시 두 개의 작은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시킴 지방을 포함한 부탄 히말라야와 부탄의 동부지역부터 남체바자르와 봉에 이르는 아샘(Assam)히말라야가 그것이다.
히말라야의 장벽은 아시아의 문화와 인종들 간의 상호교류를 방해함은 물론, 특히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인도간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었다.
히말라야 남쪽의 원래 종족들이 이란고원과 그 밖의 지역으로 흘러 들어와 결국 인도대륙의 강 유역을 점거하였다.
이들 통로를 타고 세 번의 중요한 침입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아리아족의 초기 유목민의 침입이고, 두 번째는 기원전 327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침입이었으며, 세 번째는 이슬람 추종자들의 침입이었다. 그 결과 히말라야의 남부 지역은 인도 아리아족이 살게 되었고 서부 히말라야 지역은 대부분 터키 이란 족이 살게 되었다.
한편 히말라야는 고지를 올라갈수록 티베트語, 버마語를 말하는 산악부족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들의 종교는 라마교이다.
네팔 히말라야의 고지대인 남체(Namche ; 3,440)에는 세르파(Sherpa)라는 종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종교는 라마교이며 티베트인과 유사한 생활풍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고산에서 충실한 짐꾼 노릇을 해 주기 때문에 쿰부 빙하를 따라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도하던 초기의 외국원정대 때부터 고용되어 왔으며, 오늘날 네팔 히말라야의 등산 안내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비록 히말라야가 종족간의 문화교류에 장애가 되긴 했지만 그 자체가 지연적인 요새가 되어 그들 각각의 문화를 보존해 왔으며, 현대문명에 찌들린 도시인에게는 영원한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고소(고산병)
해발 2,000m이상에서부터 나타나는 고산병에는 여러 형태의 증세가 있으나 현재까지 정확하게 기준이 되는 것은 없다.
사람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급성 고산병, 폐수종, 뇌부종, 고산병의 예방과 치료법등은 히말라야에서 절대적인 상식이고 등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고산병에는 초기 고산병과 급성 고산병으로 나누고 고소를 느끼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이 두통이다.
다음은 식욕부진 체력저하 수면장애 머리가 아프고 음식이 먹기 싫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면서 게을러지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속이 메스꺼우면서 심하면 구토가 나오고 나아가서 토하게 되고 코피가 나고 시력이 침침해지기도 하는데 IQ120인 사람이 고산병에 걸리면 IQ60의 저능아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등산화 끈도 맬 수 없게 되고 카메라 같은 것을 떨어뜨리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수도 있고 밥을 계속 먹거나 계속 웃거나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고 잠을 계속 자기도 하고 옷의 앞 뒤구별도 못하고 신발 왼쪽 오른쪽을 바꿔 신기도 하고 양초를 켜 놓고 있다가 양초가 넘어져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은 해도 손이 가지 않고 보기만 하는 등 전신을 감싸는 피로감, 권태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이다.
어떤 산악인은 정상에 섰을 때 주위가 어두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동료의 산소를 얻어 마신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고 하며, 어떤 분은 갑자기 느닷없이 카메라 뒤 뚜껑을 열어젖히는 등 평소에 없던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증세가 있으면 고산병이 찾아온 것인데 문제는 이 고산병이 심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산과 잔류를 결정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완전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또 회복이 매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고소증세를 심하게 느끼고 있는데도 하산을 하지 않고 강행하다가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 어렵게 결심을 하여 상당한 경비를 소비해가면서 찾은 히말라야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서기는 등반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용기와 결심이 있어야 하므로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큰 낭패를 당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므로 냉정해야 하고 준비에 철저해야 한다.
이와 같은 고산병은 체력하고는 관계가 없다.
8,000m급 이상 고봉을 등정하기 위하여 지옥 훈련 과정을 모두 소화 시켜낸 전문 산악인도 고소를 이기지 못하고 하산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 고산병은 우선 산소 부족으로 생기는 현상이므로 산 아래 낮은 곳으로 후퇴를 하면 금방 증상이 없어진다.
(위험 선을 넘지 않았을 때) 그러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우선 해발 2,500m부터는 매우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데까지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물이 산소역할을 해 준다.
체온상승을 억제해 주고 뇌에 산소공급을 원활히 해 주는 역할을 물이 해 준다.
다음은 고소를 느끼고 고통이 심하면 낮은 곳으로 후퇴하여 적응한 다음 다시 시도해야 한다.
2,000m급에서도 고소증세는 온다하지만 2,000 - 3,000m급에서 오는 고소증세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또는 하루쯤 한 지역에서 고소적응을 하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치명적인 고산병은 4,000m급에서부터 온다.
4,000m급에서부터는 해발 100m가 극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4,000m급에서 무사히 적응을 하고 나면 5,000m급에 까지는 그런대로 적응할 수가 있다.
해발 5,000m부터는 생물이 성장하지 못하고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지대가 시작된다.
다음은 6,000m급에서는 또 다른 고산병이 기다린다.
해발 7,000m부터는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곳이다.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곳에서 얼마만큼 머물 수 있느냐가 등정의 가늠이 될 수도 있다.
바로 7,000m부터 이곳이 죽음의 지대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지대를 뚫고 8,000m급을 다녀온 그 분들 산악인은 제 3의 인류라 할 수 있다.
해발 7,000m급 이상의 그 곳은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다.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지옥 같은 훈련을 낙오 없이 소화하여 통과한 극소수의 인류이다.
그것을 어찌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있겠는가.
77년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대에서도 산소 결핍으로 일어난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음식물을 먹지 않고 물만 먹으면 고산병을 훨씬 적게 겪는 경우도 있으나 고산 등반이라는 혹독한 체력 소모에 어찌 음식물을 먹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등반
2500여 년 전 부처님이 설산을 향해 걷던 고행의 길. 지구의 지붕. 지구의 끝.
제 3세계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 그곳 에베레스트를 보러 그곳을 보고 싶어 그 길을 찾아 부산발 상해행 대한항공에 탑승하여 네팔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곳은 밤 10시경.
입국수속을 끝내고 출국장에 나오니 제일 먼저 우리를 기다리는 현지 가이드에 당황하였다.
(우리의 가이드는 한국말을 하는 현지 가이드가 나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가이드가 나왔음)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로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네팔에서 제일간다는 하이얏트 호텔에 투숙 다음날 6시에 기상하여 공항으로 가서 국내용 경비행기로 루크라로 향하는데 조정석이 개방되어 있어서 공중으로 날고 소리가 크다는 것 뿐 꼭 자동차와 같은 구조이다.
그나마 기상이 나쁘면 운행할 수 없으며 장난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산악지대 산과 산 사이를 날아 해발 2,800m 루크라까지 비행시간은 불과 45-50분. 옛날에 경비행기가 날지 않았을 때는 카트만두에서 루크라까지 20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비행기로 단번에 해발 2,800m까지 도착하고 보니 지금부터는 고소적응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루크라 공항에 내려 주변 산들을 바라보며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는데 점점 안타까움과 불길한 징조가 스믈스믈 다가오는 것 같다.
히말라야 해발 2,800m 산속에 경사가 심한 산비탈 제법 큰 산간 도시 같은 마을에 비행장이 있다.
활주로가 경사가 심한 비탈이고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관제탑 같은 것은 아예 없다.
하기야 비행기라는 게 시계에 의해 비행되는 쌍발기다.
난생처음 대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그곳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하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트레커들이 북적되고 있다.
그런 트레커들을 수송하기 위하여 비행기가 날고 비행장이 만들어지고 그들을 겨냥하고 생업을 해결 해 가는 전문 산악 셰르파와 가이드와 포터들이 있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세계의 지붕 지구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모여들고 있다.
몇 분 간격으로 쉼 없이 경비행기는 계속 들어오고 나가고 하며 트레커(등반 여행자)들이 들락날락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국가차원의 사업이다.
군인들이 투입되고 정부에서 직접 챙기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트레커들은 자신들의 셀파나 가이드를 따라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초조하게 누군가 와서 데려가도록 기다리고 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얼마 후에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난처하였다.
불안속에 안내자를 따라 안내된 곳은 그곳 비행장에서 트레커들에게 가이드와 포터들을 배정시켜 캐러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셀파 총 책임자 집이었다.
얼마 후에 우리 앞에 나타난 산악가이드 역시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셀르파족 출신 가이드였다.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한정된 일정속에 등반은 해야 하므로 루크라 공항 쌍발기의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을 뒤로 하고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가이드를 따라 첫 번째 막영지를 향하여 캐러밴이 시작된다.
해발 2,800m의 고산지대에서 고소적응을 위하여 최대한 천천히 그러니까 놀면서 간다.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서 생활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 두려움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변 산록과 까마득하게 다가오는 박진감 넘치는 산군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처님이 설산을 향해 걷던 고행과 구도의 그길 깨달음을 얻으려 걷던 그 길을 셀파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간다.
언어의 장벽쯤은 등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소 불편할 뿐이다.
수십 대의 장난감 같은 쌍발기를 통해 끝없이 이어지는 트레킹을 나서는 서양인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산 꽤나 다닌다는 세계의 트레커들과 마주한다.
스키스톡을 양손에 짚고 고걸(눈 속에서 사용하는 안경)을 끼고 걷노라면 세계의 트레커들과 함께 하는구나 하는데 돌담 벽으로 만든 현지 주택들 고산에 살고 있는 야크(소처럼 생겼는데 다리가 짧고 힘이 좋아 보임)떼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 사람들과 섞여 오르내리고 있다.
길가 중간 중간에 있는 집이나 가게 앞을 지나가면 지저분하지만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어린 아이들이 "나마스테(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나도 "나마스테"하고 답례를 한다.
어떤 때는 서양 트레커들과 지나칠 때는 "굿모닝"하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국경이 다르고 종족은 달라도 산을 찾는 산사람들이란 동질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1950년 최초로 8,000m급 등정후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이 이루어지면서 이곳 히말라야에도 태고의 마지막 신비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들에게 정상의 길을 열어주면서 서서히 무너지면서 신비속에 묻혀있는 설산을 찾아드는 트레커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쌍발기의 부서진 동체와 고산지역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야생화와 함께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고국에서 보던 코스모스와 다를 게 없다.
묘한 기분이 든다.
벌써부터 극과 극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이곳 루크라 공항에 쌍발기가 나타나면 사이렌을 울리고 군인들이 나와 짐승들을 쫓아내고 비행기가 착륙했다고 한다.
루크라를 뒤로 하고 케러벤을 하다보면 만년설이나 빙하가 녹아 소용돌이치는 두드코시(계곡)강물 옆을 따라 걷는다.
이국땅 긴장과 설레임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롯지(산장 역할을 하는 여행자 숙소로 이용되는 여관)에 도착하면 그저 아무렇게나 풀썩 주저앉는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긴 막대기 끝에 사방으로 달아놓은 가지각색 깃발이 옛적 티베트 땅에서 이주한 설움 받은 이민족의 종교적인 역사를 비치는 듯 하다.
얼마를 갔을까 언덕 같은 곳에 올라서면 집채만 한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걸음을 멈추게 한다.
불경이 새겨진 마니석이라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 앞에는 나무로 만든 대형 마니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 마니경을 돌리면서 "옴마니바벳홈"하며 무사등정을 마음속으로 빈다.
이와 같은 마니경은 중간 중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고 어떤곳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물을 이용하여 365일 밤낮 돌아가게 한다.
마니경 한번 돌리면 3천번의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약 3시간 30분쯤 캐러밴을 하고 나니 만년설이 녹아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는 줄다리를 건너니 롯지가 나왔다.
이곳이 해발 2,600m 첫 막영지 팍팅이다.
정원까지 갖춘 비교적 깨끗한 롯지다.
판자로 칸을 막은 방은 겨우 혼자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나무침대가 2-3인용으로 여행자의 하룻밤을 책임진다.
또 난감한 일이 생긴다.
음식이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다.
현지식 음식은 주식인 쌀은 옛날 50년대에 무상원조를 받아 먹어본 알랑미쌀이다.
첫날 저녁은 국수로써 저녁을 해결하고 보니 벌써부터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을 수 있는건 계란 후라이등 불과 몇 가지뿐이다.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다.
우유나 커피 정도가 그래도 덜 부담스럽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난밤에 비가 왔는데 롯지 앞 뒤 산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산을 덮고 있고 구름이 산봉우리를 들락거리고 있다.
해발 3,500m이상은 될 것 같다.
롯지도 있고 가게도 있다.
여행자들의 불편을 최대한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하나 한 가지도 만족한 게 없다.
산군을 제외하고는 아침 8시경에 출발하여 11시경에 해발 2,806m 조르살레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입산신고를 한다.
계속 쉬면서 쉴 때마다 준비해 간 간식을 하고 물을 마시고 그런데 물 값이 보통이 아니다.
가파른 오솔길을 숨이 턱에 닿을 듯 힘겹게 올라서니 까마득한 절벽과 절벽을 잇는 줄사다리가 나타났다. 그 위로 등에 짐을 잔뜩 실은 포터와 야크 그리고 트레커족들이 섞여 건너간다.
수십길 아래는 에베레스트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흘러 내려오는 물길이 사납게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다.
둘째 날은 고도차 640m의 약 6시간 30분 소요 후에 해발 3,400m쯤에 올라서니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해발 6,000m이상의 솔루쿰부산군과 3,440m의 상당히 큰 도시 같은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이 저- 유명한 고산족 셀파의 본고장 남체이다.
산악안내자로써 히말라야를 등반하는데 절대적인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셀파족이다.
숙소를 정하여 여장을 풀어놓고 시장과 가계등 곳곳에 구경을 나섰다.
여러 가지 공예품과 고산등반에 필요한 장비는 총막라하여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가격이 저렴하다.
국내의 ¼정도이다.
특히 양털 카펫트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저렴하다.
먹는 음식은 그렇다하고 또 잠자리도 그렇다하고 막상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천근만근 짓눌려오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밖에 나오니 만년설 속에서 불어오는 밤공기는 기분 나쁘게 차가웠다.
말로만 듣던 고산병이 드디어 시작되는 구나... 이것이 고소 증세구나... 하는 생각과 행동하나 하나가 엄청나게 느려진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숨이 콱 막힌다.
질식할 것 같다.
그러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니 한결 좋아진다.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곳 남체에서 무조건 하루를 쉬면서 고소적응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다시 또 길을 나선다.
행동 하나하나 몸놀림이 어제보다 더 느려진다.
약 1시간쯤 지나고 산비탈을 돌아가니 저 멀리 정말 숨이 막힐 듯한 설산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살인봉이라 불리는 6,800m급의 아마다불룸과 더 멀리 7,800m급의 눕체 와 세계4위봉 로체8501m그 뒤에 보일락 말락 하는 초모룽마(8848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그리고 6,000m급 광데, 탐세르크, 캉태가(6,187-6685-6080)등이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언덕위에 큰 건물이 보인다.
그런데 앞으로 5시간은 족히 걸린다 한다.
목적지가 그곳 탕보체 해발 3,860m이다.
상당히 큰 사원도 있고 유일하게 전화가 시설되어 있는 곳이라 한다.
비교적 비슷한 고도를 2시간 계속된다.
고도의 차가 없어도 무조건 천천히 걷는다.
탕보체 도착하기 전에 계곡까지 뚝 떨어진다.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충분히 휴식을 하고 출발을 한다.
시간은 충분하다.
목적지 탕보체까지는 약 1km인데 계속하여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다.
약 1km를 표고차 600이상 되는 것 같다.
점심 먹는 곳이 해발 3,250m에서 탕보체까지 약 1km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도무지 걸을 수가 없다.
탕보체 도착하니 사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계곡 건너편 6,800m급 탐세르구봉의 위용을 자랑하며 아마다불룸 눕체 로체 에베레스트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고 경이롭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햐- 지구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풍요로운 물질문명 따위는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 사람들 그래서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구나.
필자는 캬라벤을 하면서 현지 여인(어린애, 처녀, 어른)들을 보고 와 - 정말 아름답다 하고 수없이 말을 하였다.
그럴때마다 일행은 나를 주먹으로 쥐어박고 발로 차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 여인들이나 남자나 어린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지저분하고 까맣게 그을려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산을 오르내리는 생활 속에 키는 크지 못하고 보기에 너무나 안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계속 하였으니 필자를 고산병에 걸린 줄 생각할 만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필자가 아름답다고 한 말은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고 때 묻지 않은 인간 본성을 저와 같은 경이로운 자연 속에 묻혀 살아가는 맑디맑은 본성 유난히 초롱초롱하고 반짝이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솟아질 것 같은 느낌 촉촉이 젖은 두 눈에서 만년설 눈송이처럼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솟아질 것 같은 맑고 티 없는 우수에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저 사람들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오.
속이고 속고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물질적 풍요로움에 물들지 않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칠라면 수줍어하며 고개를 돌려 버리는 순수함 그래서 무지한 필자의 눈에 더없이 아름답게 비치고 무아지경 속에 예쁘다 아름답다 하는 말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몸이 너무 무겁다.
천근만근 같다.
해발 3,867m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답답하다.
두통도 온다.
마치 중환자실 병자 같다.
누울 때도 천천히 밥 숟가락질도 천천히 모든 동작이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딱딱한 나무침대 위에 침낭과 소지품을 정리하여 놓고 나니 휴게실에는 트레커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워보니 잠이 오지 않는다.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아 밖을 나오니 필자의 눈앞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건너편 탐세르구봉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필자의 넋을 빼가는 것 같다.
탐세르구봉 8부쯤에 구름이 머물고 만년설의 봉우리가 달빛에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아마다불룸을 누가 살인봉이라 했던가.
저토록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아름다운 것 아름답게 깨끗한 것 깨끗하게 두지 않고 인간들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했을 뿐일 것이다.
히말라야의 밤은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밤이 가고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은 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 놓은 것 같아 몸도 더욱 무거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쓰러질 것 같다.
숨을 힘껏 들이마셔도 시원하지 않다.
고소적응을 위하여 탕보체에서 하루 쉬기로 하였다.
그토록 답답하고 천근만근 같은 몸이 오후가 되니 조금씩 고소에 적응이 되어 가는지 한결 편해진다.
오후부터는 사원을 중심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 곳곳을 돌아보기도 하고 사원에 참배도 하고 고소적응을 위하여 해발 4,100m까지 같다오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고소적응을 해 나간다.
캐러밴을 시작한지 4일째 고소적응을 하루하고 5일째 다시 캐러밴이 시작된다.
몸도 호흡도 한결 가볍고 편하다.
해발 4,280m 페리체 표고차이 420m를 약 5시간 동안 이동이 시작된다.
다행이 경사는 심하지 않으며 무난한 이동구간이지만 사람에게 치명적인 고산병이 찾아오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최고점이 가까워오니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이곳 페리체 해발 4,280m 이곳 이후로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살 수 없는 죽음의 지대로 진입하게 된다.
그래도 페리체까지는 땅에 완전히 붙어있지만 나무도 풀도 있다.
그리고 야크가 한가롭게 먹이를 뜯어먹고 있다.
산새도 간간이 날아다닌다.
롯지로 이루어진 마을 앞으로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이 강을 만들고 있다.
같은 롯지에 미국인 트레커들 11명이 함께 묵는다.
휴게실에서 오락회를 열면서 즐기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등정이 힘들 것 같다.
생각 끝에 셀파와 의논을 하여 일정을 조정하려 하니 루크라 공항에 예약한 날짜까지는 하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일정이 여유가 없는데도 다시 페리체에서 하루를 더 고소적응을 위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하루 등반하고 하루 쉬고 한다면 매우 이상적이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9시쯤 고소적응을 위하여 롯지 앞쪽 봉우리를 향한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다시 실수를 저지른다.
고소적응을 위하여 해발 5,000m까지 오르면서 무리를 하게 된다.
머리나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고 바람에 많이 노출시키고 갔다 온다.
이곳 페리체부터는 극과 극이 공존한다.
낮과 밤의 기온차이와 그늘과 햇볕아래가 극명하다.
그날 저녁에 두통이 심하고 진통제를 먹어도 두통이 잘 가라앉질 않는다.
잠도 안 온다.
속도 편하지 않다.
모든 것이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온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현상이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증상들이다.
등반을 포기할까하는 생각뿐이다.
7일째 아침에 일행에게 등반을 포기하자고 하였다.
일행은 고소는 심하지 않으나 루크라부터 벌써 7일 동안 음식을 거의 먹지를 못하고 있다.
물만 먹고 지낼 정도다.
때문에 체력이 완전히 바닥이 났다.
그로기 상태이다.
그런 상태는 자칫하면 목숨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단호하다.
등반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다시 해발 4,980m 로부체로 향한다.
만년설에 덮인 산속의 히말라야 자락에서 밤하늘에 수놓은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의 긴군무따라 지새우며 바라본 밤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이었다.
산소 부족에서 오는 호흡장애로 긴 숨을 몰아쉬며 침낭 속에서 잠을 청해도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오만가지 생각들만 머릿속을 휘젓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 페리체까지는 낭만이 함께한다.
그러나 지금 향하고 있는 로부체는 고소에서 오는 자연쇠퇴의 영향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체중이 줄면서 체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곳 히말라야를 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을 스키트 트레이닝 또는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하여 왔던가.
그런데 이곳 4,000m급에서 고소에 이렇게 시달릴 줄이야…….
하기사 고소는 체력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호흡 조절법 훈련도 통하지 않는구나 싶다.
하기야 함께 등반하던 분 중에는 히말라야를 4번이나 등반을 하고 등반대장으로 7,000m급에다 대원들을 올려 세운 경력의 소유자이며 쿰부 히말라야에서 3개월간이나 생활을 한 분도 그날 페리체에서 패수종이라는 고소를 피하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하였으니!...
페리체까지는 히말라야의 밤이 황홀하고 낭만적이었다.
화단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들로 아름답게 가꾸어 놓고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지극히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있다.
밤에 밖에 나와 보면 휘영청 밝은 달빛, 소나기처럼 솟아질 듯한 별빛, 달빛과 별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드러내는 만년설의 산봉우리들 모두가 넋을 놓을 것 같은 황홀함에 좋아만 하려하니 두통과 속이 기분 나쁠 정도로 메스껍고 그렇다고 고통스러워만 하려하니 히말라야의 밤이 너무나 아름다고 그러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것이다.
황홀한 히말라야의 산록의 밤내음을 폐속 깊숙이 받아들이며 모든 생각들을 접으면서 침낭 속에서 뒤척거리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고 파하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만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힌다.
지금까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 중 카레라이스, 스파게티, 계란후라이 정도에서 그 중 카레라이스인데 그것도 한국의 맛과는 나무도 먼 곳의 맛이다.
그래도 가장 부담 없는 것은 감자였다.
감자와 우유(그것도 한국 우유와는 다르다) 정도가 무난하였다.
아직도 며칠을 더 지나야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목욕을 하나 하고생각하니 입맛이 다셔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자연생물이 성장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내일부터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구경할 수 없는 죽음의 지대 만년설과 빙하의 퇴적물의 삭막한 모래인 지대를 들어서야 한다.
페리체를 출발하여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고 다시 계곡을 건너고 1시간쯤 후에 언덕에 올라서면 수많은 비석의 돌무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주변경관이 예사롭지 않다.
배낭을 벗어놓고 휴식겸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쿰부 히말라야 등반에서 숨진 산악인과 셀파들의 영혼들을 모셔놓은 곳이다.
대부분 육신들은 만년설에 묻혀 잠들고 있지만 그들의 넋은 히말라야 안개 속을 떠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현기증이 일어난다.
산행을 하다 잠들고 싶어 하고 만년설 속에 묻히는 것도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가 아닌가.
어찌하여 그들은 왜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여기까지 와서 불귀의 몸이 되었느냐고 물어볼 곳도 없다.
물어본 들 안개 바람만 무심히 스쳐지나 간다.
이곳부터는 생명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년설이 흘러내린 빙하의 얼음덩어리와 돌과 흙으로 뒤엉켜 있을 뿐이다.
고도 730m를 약 7시간 동안 고소적응을 하며 로부체에 도착하니 이곳 로부체의 롯지는 더욱 열악한 시설이다.
지금까지의 롯지에는 칸막이가 되어 있었지만 로부체는 칸막이는 없고 널찍한 홀에 판자 청마루가 2층으로 되어 있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만년설이 흘러 얼어붙은 빙하와 흙과돌 뿐이다.
그것을 모래인지대라고 한다.
히말라야 칼라파트라에서 에베레스트를 밟아보러 찾아온 그 많은 세계의 트레커들속에 섞여 죽음의 지대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그곳에서의 밤은 서서히 찾아온다.
내일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4시 30분부터 캐러밴이 시작된다.
넘어가지 않는 현지식 음식물을 한 숟가락 입안에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면서 억지로 배를 채운다.
한국에서 가져간 인삼차, 초콜릿, 육포 등으로 보충을 한다.
목표대로 등반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에 일어나서 필요한 소지품만 간단하게 휴대하고 나머지는 포터에게 맡기고 싸늘하고 깜깜한 히말라야 빙하 위를 모래인 지대를 걸어간다.
차가운 밤공기가 바람으로 스쳐지나간다.
만년설이 흘러내려 빙하가 되고 그 위에 모래와 돌 얼음으로 뒤섞인 모래인 지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볼 수 없는 죽음의 지대 이곳에 지금 걸어가고 있다.
2시간쯤 걸었을까…….
한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걸어온 것 같은 5,000m급 새벽 캐러밴은 고통뿐이었다.
먼동이 터 오면서 조금씩 기분도 좋아진다.
황량한 모래인지대 자연의 생장한계점을 넘는 이곳은 말 그대로 너무나 삭막하기만 하다.
약 3시간 30분쯤 지났을까 저 앞쪽으로 마지막 롯지 고락셉(해발 5,200m)이 보인다.
그 뒤로 목표지점인 칼라파트라(해발 5,545m)가 보이고 그 뒤에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솟아있는 푸모리(해발 7,165m)봉이 내려다보고 있다.
고락셉에서 아침을 먹는데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다.
정말 안 넘어간다.
물과 함께 넘기려 해도 안 넘어간다.
계란 후라이와 차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가장 부담 없는 음식은 계란후라이와 감자였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계란도 감자도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어떤 전문 산악인은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공격까지 보통 일주일 소요되는데 계속 물만 먹고 정상공격을 치러낸다고 한다.
페리체(4,200m)에서 보았던 들국화처럼 생긴 야생화가 삭막한 모래인지대를 스치면서 지나는 바람에 바르르 떨고 있던 모습이 자꾸만 애처롭게 다가온다.
자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왜 그곳 그때 그 순간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산악인들에게 경의의 대상이고 신비의 지역인 지구의 끝 최고 높은 곳이 있는 곳이다.
죽음도 마다 않고 찾아오지만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냉혹할 정도로 버림받은 땅이다.
빙하의 퇴적지대에 한국 에베레스트 첫 등반대가 4,200m 페리체에서 7송이 야생화를 이곳 B/C지대 옮겨 심어놓고 정성을 다하며 가꾸어 보았으나 사흘을 못 넘기고 시들어 죽었다고 한다.
고락셉에서부터 칼라파트라까지는 계속 급경사다.
우측 앞으로는 정상 공격 시발점이 되는 베이스캠프(5,400m)로 가는 길이 보인다.
B/C까지는 약 2시간정도 무난한 빙하의 모래인지역을 통과하면 B/C가 나온다.
급경사의 칼라파트라 까지는 약 1.5km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거리를 3시간 이상 걸린다.
빤히 쳐다보이는 칼라파트라 정상 국내산 같으면 아니 해발 2,000m이하의 산 같으면 30분정도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3시간이 걸려서도 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
아니 그 극한 순간에 가족 생각이 나고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인연들이 섬광같이 떠오른다.
애들 생각이 난다.
가까운 혈육들이 생각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또 무엇을 무엇부터 해야 하나…….
도대체 그 순간 그 극한 순간에 어찌해서 어째 자꾸 그러한 생각들이 섬광처럼 머릿속에 왔다가는 걸까.
그래서 사람은 죽음 앞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을 비우고 삶의 의미를 깨 닿는다고 하던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순간들이었다.
숨을 쉬어도 가슴이 시원하기는커녕 답답하기 만한 호흡곤란 속에 끝없이 반복되는 오름 짓의 몸놀림 1분에 5-6걸음 밖에 걷지 못하는 그 순간에 느낌은 일상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드디어 쿰부 히말라야의 지역 칼라파트라(5,545m)정상 세계의 지붕 지구의 끝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초모룽마(에베레스트 8,848m)가 구름한 점 없는 하늘과 함께 그 수려하고 장엄한 모습이 만년설과 빙하를 두르고 햇살아래 펼쳐 보이면서 트레커들에게 알현을 허락한다.
사카르타 여신의 따뜻한 미소가 내린다.
7,000m급은 장군으로 6,000m급은 병졸로 호위를 받고 있다.
5,200m 고락셉에서 칼라파트라로 오르는 그 길에는 거리관념이 혼동되는 그 순간들, 금방 도착할 것 같던 정상이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이 가까워지지 않는 시간과 거리 관념이 혼동으로 이어지던 그 순간하고는 또 다른 지금 에베레스트 뒤쪽으로 영의정쯤되는 로체(8,501m)가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그 앞에는 사캬르타 여신을 호위하는 전위대장과 같은 눕체(7,879m)가 당당히 버티고 있고 6-7천 미터급 산군들이 사열하듯 에베레스트를 에워싸고 있다.
아 - 저기가 지구의 끝이요, 하늘이던가.
갑자기 어디선가 천둥소리 같은 게 들려온다.
호위대장 눕체가 눈사태로 호령을 한다.
만년설이 무너져 내려가는 소리다.
아 - 저것이 눈사태이다.
눕체를 돌아가는 빙하가 보인다.
그 옆이 사캬르타 여신의 발등이라 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5,400m) 에베레스트 정상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만년설이 한쪽 방향으로 연기처럼 가늘게 뿜어내고 있다.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가 없다.
그 장엄하고 황홀함을 마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언제 어떤 고산병의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초조함이 하산을 재촉한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 겨우 30여분 그 순간을 위하여 이 먼 곳을 왔다.
고락셉을 거쳐 로부체에서 장비를 챙겨 페리체까지 하산을 하는데 무려 13시간 동안의 가장 힘든 하루였다.
워낙 높은 산이라 하산 길에도 조금만 높은 곳은 호흡곤란을 겪는다.
다음날은 탕보체와 남체 중간 지점 조금은 한적한 롯지에서 밤을 보내고 남체에서 장비 쇼핑을 하고 픽팅까지 하산 그 다음날 루크라에 도착하여 그 긴 상, 하 캐러밴을 마감하였다.
상행 캐러밴 중에는 여러 가지 징크스가 있다.
머리를 감는다던가, 목욕을 한다던가 하면 고소중세가 빨리오고 고소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면도는 더욱 심하다고 한다.
일단 캐러밴이 시작되면 목욕은 할 수 없다.
시설이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
수건을 물에 적셔 닦아내는 정도이고 머리도 영 못 견딜 정도이면 아주 약식으로 물을 찍어 바르는 정도이고 수염은 아예 깍지 않는다.
다음날 루크라에서 카트만두로 오는 쌍발기 안에서 약 45분간 히말라야 설원이 전부 바라보인다.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호텔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것이 목욕이다.
그 다음은 정통 한국 음식을 좀 먹게 해 달라고 시내 가이드에게 부탁하였다.
그동안 먹지 못한 게 너무나 서러웠다.
안내된 곳은 한국인 이석우씨가 경영하는 "비원"이다.
깨끗한 한옥 비슷한 집인데 현관으로 들어서니 한국음악이 조용히 흐른다.
네팔 현지인 종업원들인데 한국말을 잘 한다.
하얀 쌀밥과 김치, 불고기, 된장찌개 음식 맛은 깔끔하다.
한국에서도 꽤 고급스러운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추가시키고 먹고 또 먹었다.
아무리 먹으려 해도 사람의 욕심은 제한이 없으나 양은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음은 네팔 구왕궁과 고궁 사원등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차례다.
저녁때쯤이 다가올 때 쯤 배탈이 났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 거렸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체력유지를 위하여 아무거나 억지로 먹었을 때도 배탈한번 나지 않았는데 이게 뭐야…….
그렇게도 그러던 한국 음식을 먹고 나니 배탈이라니……. 그동안에 내 위장이 네팔 형으로 바뀐 것은 아닐 텐데 너무 많이 먹었나봐…….
2일간 네팔 문화유산을 둘러보니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경제는 매우 낙후되었는데 옛것은 잘 보존하고 있다.
마치 몇 세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한국을 출발한지 15일간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자락에서 기웃거린 것에 불과 하였지만 언제나 동경해오던 그곳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히말라야 오지를 탐사하는 트레킹에는 몇가지 꼭 필요한 장비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고걸이다.
간단하게 햇볕을 거리는 것이 안닌 적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전문 산악용 고걸을 준비해야 한다.
두 번째 스기스톡은 반드시 2개가 필요하다.하나만 사용한다면 오히려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다음이 우모복과 우모 침낭이다. 우모침낭은 현지에서 대여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 개인장비가 좋다.
최소한 1.4KG 정도면 무난하다.
의류는 동계용과 춘추용을 다 준비해야 한다.
취사가 가능하므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 외에도 의약품, 간식, 신발 종류 국내에서 산행 때 필요로 하는 장비들이 모두다 사용된다.
무엇보다 준비에 철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도 안되며 만용이나 자만은 절대 금물이다.
모든 것을 철저히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
최고봉 초등 5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 5월 어느날 하루에 109명이 정상 등정을 하고 70세 최 고령 등정 기록등이 솓아지고 또 상업등반이 성행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곳은 제3세계요 제 3극점 에베레스트다.
정상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니다.
히말라야 오지 여러곳을 트레킹을 준비하는 동호인은 차분히 하나하나 시간을 갖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모처럼 계획한 오지탐사에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중에 가장 어렵다는 마칼루내원 트레킹은 히말라야를 몇 번 경험이 있는 사람만 가능할 정도로 난소가 높은 지역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6,000m급의 고개를 두 번이나 넘어야 하고 5,000m급도 몇 번을 경험해야 하며 6,400m 메라피크와 6,000m 아일랜드피크도 노려 볼만하다.
최근에는 7일정도로 부담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도 여럿있다.
히말라야 오지 탐사에는 차분히 빈틈없이 준비를 하면 누구나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용과 자만이 앞선다면 실패하고 돌아서야 하는 곳이 그곳이다.
6,000m급을 하나씩 선택하여 도전 해볼만은 하다.
그럴려면 스키트 트레이닝으로 체력단련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보고서는 오지 탐사를 계획하고 있는 동호인들에게 도움말을 남기기 위하여 보고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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