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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스크랩 태백산 1
만야 추천 0 조회 115 06.12.12 10:3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크게 밝은 산 태백(太白)(1)
글/이남희(르포작가)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단종비각. 당대 최고의 학승이었던 탄허스님이 지었는데, 비문 내용 속에는 우리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예언적 문구가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무속인들에게 최고의 성산으로 알려진 태백산. 이곳에 오면 그 동안 시달렸던 심신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태백산의 천제단. 돌로 쌓은 계단에 오르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뭇 산봉우리들이 태백산에게 일제히 조복하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백두산에서 발한 산맥은 태백산맥에 와서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옛 사람들은 두 산맥이 갈라지는 이 산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산신 중 가장 높은 산신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 산꼭대기에 오르면 뭇 산봉우리들이 태백산에게 일제히 조복하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6.25동란,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월남전쟁에서의 미국패배 등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련연방의 해체, 남북 무혈 평화통일을 예언했던 고승이 있었다.
탄허-. 입적한 지 십 몇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관심 있는 세인의 가슴속에 그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들이 아직도 분분하게 회자되고 있다.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단종비각의 비문을 역학과 도학 천문지리의 대가이자 당대 최고의 학승이었던 바로 그 탄허 스님이 지었는데, 비문 내용 속에는 우리 나라의 앞날에 대한 예언적 문구가 들어있어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제의 그 비문내용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단종에 관한 역사의 사실은 국가의 역사기록과 전기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는 바 매우 많기에 오늘날 굳이 여기에 나열할 필요성이 없다. 그러나 여기저기 기록을 남긴 세인의 말과 평소 단편적으로 들어왔던 이야기에 의하면 단종께서 승하하신 후 태백산 산신령으로 화신 하였다고 한다. 만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바로 인연일 것이다.
아마 널리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신 바 마치 황하의 모래알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이냐 하면 그것은 동쪽으로 금강산, 서쪽으로 구월산, 남쪽으로는 지리산, 북쪽으로는 묘향산이 이미 안으로 사대 명산이 되었고, 태백산이 그 한가운데에 있는, 즉 이는 마치 북극성이제자리에 있어도 뭇 별들이 북극성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태백산은국내의 도신산이라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해와 달과 별이 밝아 백세의 일들이 앞에 나타나고 오통력이 자유자재하여 만리의 머나먼 길이 지척이니 이것이 바로 산신왕의 위력이라 하겠다.
아마 머지 않은 장래에 동쪽으로는 몇 천리의 땅을 병탄하고 북쪽으로는 수만리의 지역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또한 태백산 산신의 힘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비명을 청하기에 내 예전에 들은 몇몇 가지의 이야기를 여기에 수록하여 그 전말을 서술하는 바이다. 명은 다음과 같다.

무(無) 가운데 곧 유(有)가 있고
유가 곧 무라네.
오가심이 쓸쓸하니 헤아릴 길 없소.
작고 크고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신령의 위력이라오.
동녘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드넓혀질
우리의 땅이여.
아침나절이 아니면 곧 저녁녘엔
<단기 4298년 을사년 4월 15일 (서기 1965년 4월 15일)>
오대산인 탄허 김택성 삼가 지음

이 비문 가운데 주목할 것은
'아마 머지 않은 장래에 동쪽으로 몇 천리의 땅을 병탄하고 북쪽으로는 수만리의 지역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대목이다.
서울과 부산의 경부고속도로가 428㎞ 그 거리가 약 일천리 정도이지만 동쪽으로 수천리의 땅이 우리의 국토가 된다면 어느 정도이겠는가.
우리의 동쪽은 일본이다. 그 일본을 병탄해서 우리의 속국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기에다 북쪽으로는 우리의 옛터전인 고구려 땅을 수만리나 되찾게될 것이라니 그런 경천동지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가 뒷날 부언해 두었다.
그 모든 것에 도의를 숭상하면서 얻어맞고만 산 조상의 음덕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일본은 남의 나라를 숱하게 침략해서 인명을 살상하고 약탈했으며 정신대까지 모집하는 등으로 악연이 많아 우리 나라와는 극히 대조적인 현상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즉, 해일·지진과 북빙하가 녹아내리는 바닷물로 일본영토의 3분의 2가량이 바닷물에 잠기고 마는 천지개벽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엄청난 예언을 왜 하필이면 태백산 꼭대기에다 기록해 놓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태백산이 갖는 신령스러움과 중요성 때문이지 않았을까.
단종비각을 보고. 천제단을 오른 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보살은 다음과 같은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나이에 왕에 오른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절해고도의 영월 청령포에서 귀양살이 하다가17세의 어린 나이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6대조 왕이었다.
그 뒤 구천을 떠돌던 혼령이 이곳태백산 산신령으로 모셔지게 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무속인들로부터 산신으로 추앙 받게 된다.
여러 뜻 있는 사람들이 태백산 꼭대기에 단종비각을 세워 그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작업을 추진하던 매가 30년 전이었다.
단종대왕비와 비각을 건립키 위해 석재 등을 멀리 인천 등지에서 싣고 올 때의 일인데, 석재를 가득 실은 트럭이 서울·제천을 거쳐 영월의 소나기재를 넘어오는데 멀쩡하던 차가 길 한복판에서 그만 엔진이 꺼지고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운전사가 아무리 작동을 하려해도 시동이 다시 걸리지 않고 여의치 않자 잠깐 쉴 요량으로 운전석에서 내려와 담배를 한 대 피우는데 옆에 있던 인부 왈 '이 재 이름이 소나기재인데 단종대왕이 유배지인 청령포를 가면서 이 재를 넘을 때 하늘도 서러워하며 많은 소낙비를 내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는 걸 들은 운전사가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재 앞 200m 아래엔 단종릉인 장릉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한 운전사는 그 순간 무릎을 치면서 일어섰다.
세조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기고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을 세우기 위해 가면서 단종릉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불경스럽고 무례한 일이라고 판단한 운전사는 영월읍으로 달려가 간단한 제수를 사온 뒤 단종릉을 향해 정성껏 약식 제사를 지냈다.
그런 뒤, 시동을 걸었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쉽게 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태백산에서 만난 보살은 믿기지 않는 얘기를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그 보살은 이어 그렇게 무거운 석재들을 1,500m가 넘는 태백산 정상까지 무사히 올린 것도 단종대왕 혼령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두산에서 발한 산맥은 태백산맥에 와서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한 갈래는 남쪽으로 뻗어 통고산, 일월산, 주왕산, 영취산을 이어 부산의 금정산에 이른다. 이것이 낙동정맥이고 다른 한 갈래는 백두대간의 주맥으로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옛 사람들은 두 산맥이 갈라지는 이 산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산신 중 가장 높은 산신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환웅 천왕과 단군왕검을 모신 천왕단이 있다.
돌로 쌓은 한배검 제단에 오르면 일망무재, 거칠 것 없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뭇 산봉우리들이 태백산에게 일제히 조복하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사통팔달, 사방 몇 백리에 걸쳐 솟아오른 산들이 한군데 막힘 없이 내려다보이는 장관을 그 어느 산에서 볼 수 있으랴.
태백산은 백두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영산이다.
고 신라 때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숭앙의 대상이었고 해마다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최근 들어 옛 조상들의 토속신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천여년 전에 쓰여졌다는 예언서 삼한산림비기에는 태백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태백산은 일만 보살이 속세에 머물러 그 아래인 병화와 수재와 기근이 침범하지 못하니, 첫째가는 낙원으로 일컫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태백산은 흙이 많아 살이 두툼하고 펑퍼짐한 여인의 곡선미를 연상시키는 토산이다.
산봉우리들의 모양새도 소박하고 후덕한 아낙네처럼 두리뭉실하기 그지없다.
넉넉하고 온화한 느낌, 이것이 이산이 갖는 첫 느낌이다.
설악산엔 기암괴석과 계류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비해 태백산엔 볼거리들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화려 만발한 채색미가 있는 서양 도자기와 단아하고 정적이며 끝 모를 깊이를 느끼게 하는 백자의 담백미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태백산은 우리네 민초들의 심성같이 소탈하고 펑퍼짐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뭇 생명들을 살려주는 생의 기운이 은은하게 함축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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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12.12 10:42

    첫댓글 태백에가신다하여 태백산이야기 올려봅니다

  • 06.12.13 17:46

    전라남도 순천의 한 상가에 문상 다녀오느라 귀한 글을 늦게 접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열차가 자주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어서 통화상태도 불량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였아오니 해량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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