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가구는 처음부터 하남성 온현에 자리잡지 않았고 산서의 택주(지금의 보성)에 위치하였다. 진씨의 제1대 진복은 명 홍무 5년(1372) 하남의 온현 근처의 상양촌에 정착하였다. 지금도 이 근처에는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진씨의 제1대인 진복은 권술과 병기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것을 자신의 후손에게 전했던 기록이 현존한다. 진씨 태극권을 창시한 진왕정은 진씨의 제9대이며 만년에 권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권경총가》·《장단구》에는 《황정》한 권을 몸에 지니고 한가할 때에는 만들고, 때로는 농사를 짓고, 여유 있으면 후손에게 가르쳐 후손을 용맹하게 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쓰여 있으나 태극권의 권세가 척계광의 《기효신서》의 명칭과 깊은 연관이 있어 《황정경》과 《기효신서》등의 문헌을 참고하여 새로운 권술을 창시하고 있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진왕정은 문무를 겸비한 인재이며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권법에 다른 종류의 권법을 종합하고, 중국의학의 경락학설과 도인술, 토납술, 고대의 음양학설의 이론을 근거로 새로운 문파를 창편하였다. 도인과 토납술은 역사가 아주 오래된 중국의 양생술이다.
진왕정은 내공과 외공을 합일시키기 위하여 무술의 수, 안, 신, 보에 의식, 호흡, 동작의 세 가지를 밀접하게 결합시켜 내공권을 완성시켰고 한층 더 중국 의학의 경락이론과 실제를 권술 중에 융합시켜 운기의 기초를 완성시켰다.
경락은 인체 내부에 퍼져있는 기혈의 통로이며 각 장부에서 시작되어 지체에 이른다. 기혈의 유통에 이상이 생기면 신경과 근육에 반응이 나타나 질병이 발생한다. 기혈이 조화되면 신체가 강건해지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태극권 투로에 나선형운동과 전사가 포함된 것은 경락의 유통을 좋게 하여 호형, 원활연관, 강유상제, 기침단전의 무술적 필요성을 극대화 하였다. 진왕정의 무술은 매우 훌륭하였고 그의 후손들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 많은 명수를 배출하였다.
청나라의 도광년간, 진씨14대 진장흥(1771~1853)은 권기가 특출하여 태극권을 널리 알렸고 보표로도 산동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진장흥의 저서로는 《태극권십대요론》·《태극권전투편》·《태극권용무요언》이 있다. 태극권 투로를 간결화 하여 태극권1로, 2로(2로권, 포권, 포추)로 정리하였으며 태극권의 현대적인 체계를 갖추도록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