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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目 = 일본 북알프스 大 종주(14박 15일) 훈련 트레킹
일 정 : 2013. 6. 10~2013. 6. 13(1무 2박 4일)
참여자 : 50(길중, 은경 =문경팀), 60(노짱과 갑오연화=일산팀) 부부팀.
경 로 : 1일차(운무. 비) 18.3km.
화엄사 반야교-국수등-집선대-무넹기-노고단 대피소-노고단 고개-돼지령-
임걸령샘터- 노루목-삼도봉-화개재-뱀사골 무인대피소-화개재-토끼봉-명선봉
-연하천 대피소(1박)
2일차(운무 비. 오후 늦게 개임) 13.3km.
연하천 대피소-형제봉-벽소령대피소-덕평봉-선비샘-영신봉-세석대피소-촞대봉-연하
봉-장터목 대피소(2박)
3일차(개임. 구름조금)15.4km.
장터목 대피소-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 대피소-새재 갈림길-유평리-대원사
-유평 탐방지원센타-버스정류소(원지 경유-서울 남부터미널 귀경)
*序文
자주 만나면 사고를 친다는 말이 있듯이 문경팀과 자주 만나다 보니 여러가지 좋은 궁리가 생긴다. 그 중 필자(노짱)가 오래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는 일본 북알프스 일시 대 종주에 함께하고 싶다는 문경팀의 제안에 정확한 시기는 뒤로한체 잠정 동행키로 한다.(두팀의 사업상 시간을 고려하여 추후 결정)
우선 일본 북알프스 대 종주 훈련의 일환으로 지리산 화대종주로 발을 맞춰보기로 하고, 계획을 세운다. 필자의 산행 스타일은 야영이 원칙이지만, 작금의 국립공원 관리공단 방침에 의하면, 어떠한 형태의 비박 및 야영은 물론 야간 산행을 금지한다는 분위기여서 산행방식을 제고하기로 한다.
일단 6월 연휴 이틀간의 대피소 예약이 불가할 것 같아 연휴를 피해 6월 11~13(2박3일)로 일정을 맞추고 대피소 예약을 하기로 한다.
대피소 숙박 15일전에 인터넷 예약을 한다고 하여, 5월 27일에 연하천 대피소(6/11)를 예약하고, 5월 28일에 장터목 대피소(6/12)를 예약 완료하고, 드디어 지리산 화대종주의 산행이 결정된다.
예약 당시 필자는 그동안 익숙지 않은 대피소 숙박 예약을 복잡하게 하려고 하니, 여간 신경에 거스렸으나, 어쪄랴 목마른 사람이 샘 파는 것임을...그러나 후일 지리산 대피소에서 공단 직원들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필자의 생각이 일단락 될 줄이야...
6월 10일 밤 열차로 지리산 화대종주의 장도에 오를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던 중, 갑자기 6월 8~9일 문경에서 작은 만남의 일정이 생겨 문경팀이 바쁘게 되었다.
일산팀이야 상관이 없지만, 문경팀은 10일 서울로 올라와 일산팀과 합류하여 지리산으로 내려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정이 다가 오자 필자의 집사람(갑오연화)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도 그럴것이 문경팀 부부야 트레킹은 물론 암.빙벽을 하는 산행 상급자이고, 자기는 하급자로 산행 도중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마음을 쓰고 있는것 같다.
집사람의 트레킹 싸이즈를 알고 있는 필자로서도 무엇하나 장담 할 수가 없다. 결과는 부딛혀 보아야 알것이기 때문이다.
인생길이든, 산행길이든 해 보지도 않고 포기 할 수는 없지 않는가.
1 무박일(6/10)
문경팀이 대중교통으로 영등포 역으로 오고있다. 우리도 늦지않게 버스편으로 영등포역으로 나간다. 영등포역 도착 10분전쯤 문경팀으로 부터 영등포역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여 그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거꾸로 되었다. 미안...
오랫만에 산행 밤 열차를 타기위에 영등포역에 도착을 하여 문경에서 올라 온, 5공팀 부부를 반갑게 만난다. 갑오연화를 제외한 세 사람은 오래전 암벽 등산학교 선후배 사이로 클럽(LB ALPIN)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길중이와 필자는 띠 동갑으로 2005년 필자가 홀로 백두대간을 할 당시 108km의 문경구간 들,날머리를 써포트 해 준 사이로 오랫동안 끈끈한 정으로 다져 온 사이지만, 이렇게 네 사람만의 오붓한 산행은 처음으로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다.
길중이는 별무상관이지만 여자들이 함께하는, 그것도 2박 3일동안 산상에서 전개될 고난의 산중생활이 작은 흥분으로 다가 오기도 한다. 특히 돌발변수로서 과연 갑오연화가 계획대로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번 산행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드디어 우리가 탑승한 열차는 영등포역을 출발하여 밤 하늘을 가르고 달려간다.
카페 열차로 자리를 옮겨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서로간에 최선을 다 하자는 무언의 다짐으로 건배를 한다. 시원하고 깔끔한 캔맥주 맛처럼 무사히 종주를 마치자고...
원래는 갑오연화가 집에서부터 얼려 온 캔맥주로 건배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 캔맥주가 카페열차에서 건배주로 간택되지 않고, 마지막 캔 하나가 결국 장터목 대피소까지 생명력을 연장하면서 필자의 어께를 짖누르는 무게의 고통에 일조를 하였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
<열차 카페에서 건배!>
처음으로 등장한 한 남자와 두 여자...
두 여자와 또 다른 한 남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두 여자의 인물이 평가절하 되어 찍사로서 죄송함을 금할 수 없음당>
모처럼 타 본 무궁화호 열차가 한때 누리로호로 교체, 폐차된다는 설이 있었으나, 내부가 새로 만들어진 차량으로 깔끔하다. 에어콘도 그렇고, 독서등도 그렇고 변하는 세상 오래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열차 내부 윗자리에 만만치 않은 배낭이 자리를 차지하고...>
2 산행 1일째(6/11)
10시 53분에 영등포역을 출발한 여수행 전라선 열차가 정시인 03시 03분에 구례구역에 여지없이 도착을 한다. 역사를 빠져 나오니 예나 다름없이 손님을 호객하는 택시 기사들의 모습에 짜증스럽다. 예전에 홀로 화대종주시 이 꼴이 보기싫어 구례구역에서 화엄사까지 걸어 갔던 쓰디쓴 기억이 다시 떠 올라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그런데 오늘도 역사 앞에서 인증샷을 자청한 호객 택시기사에게 찜을 당할 줄이야...
<어찌 되었던 이때는 인증 샷을...>
열차에서 내린 등산객들 대부분 버스편으로 구례읍 터미널로 가거나, 택시편으로 성삼재로 직행을 한 모양이나, 우리들은 역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화엄사 들머리까지 택시로 움직이기로 되어 있어, 역사 건너편 불 켜진 식당으로 들어가 재첩국으로 노고단 대피소까지 갈 수있는 체력을 보충한다. 토.일요일이 아닌 평일이라 등산객이 많지 않아 역 앞의 식당들은 한 집만 불을켜 손님을 맞고 있어 선택의 여지없다.
<재첩국 외에는 별로인 식단>
식사를 하고 나오니 역앞에서 인증샷 서비스를 해 주던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우리들의 배낭을 트렁크에 싣는다.
택시는 어둠을 가르고 구례읍을 지나 화엄사 반야교 앞에 차를 세운다. 은경씨가 택시비로 50,000원권 한장을 주니 거스름으로 10,000원만 돌려준다. 어찌 이런일이... 황당하여 왜? 택시비가 40,00 0원이냐고 물으니, 화엄사까지는 한 사람당 무조건 만원이라고 한다. 무슨 근거로 메타 요금도 아니고 임의로 한 사람당 10,000원씩 받느냐고 항의를 하니, 10,000원만 환불을 해 주고 가버린다. 결국 30,000원의 바가지 택시요금을 지불하는 꼴이 되였다. 대부분 타지에서 와 산행을 하는 등산객을 상대로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 택시가 있어서는 않된다.(필자가 6/14일 구례군청에 민원 전화를 하자 담당자 왈, 구례구역은 순천시 관할 어쩌구 저쩌구하여, 택시가 구례 개인택시라고 하자 그때서야 잘 못되었음을 인정하고, 택시 번호를 알려주면 조치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앞으로의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약속으로 대체하고, 택시 번호가 역전 인증샷 사진에 딱 걸렸으나 일단락하기로 함.)
굳게 닫힌 화엄사 정문앞 가로등 아래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화대종주의 들머리에 들어선다.
<반야 다원 앞 들머리>
<종주산행 성공을 바라는 무언의 의지를 담고 출발!...>
아직 날이 어두워 날씨는 가름할 수 없고 스산한 화엄사 담벽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일까 화엄사 스님들의 낭낭한 도량경 소리가 산사의 적막을 깨우지 않는다.
등로는 랜턴 불빛에 반들거리는 돌바닥 길로 시작되고, 신우대가 터널을 이루어 축하 아치를 형성하고 있다.
<신우대 터널과 잘 다듬어진 등로 초입>
많지 않은 산행 대열은 필자가 선두, 다음 갑오연화, 은경씨 그리고 마지막 후미엔 길중이가 받치고 가는, 누가 꼭 정하지도 않은 환상의 대열이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질 줄이야 누구도 예견치 못했다. 이런게 이심 전심이라고 하는 것인가...
<화엄사 1.0km를 지나고>
지도에 표시된 용소를 자세히 보지못하고 임도가 있는 연기암 갈림길을 지난다. 아직 평탄등로인지라 힘들지 않게 잘들 오르고 있다. 그러나 조금씩 가파르게 달라지는 등로가 땀샘을 자극한다. 지나 온 거리보다는 가야 할 거리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러나 눈은 게으르고 발은 부지런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보자.
<연기암 가는 갈림길>
화엄사 2.5km 지점인 참샘터를 물이 필요없어 그냥 지난다. 아직 한 시간을 못 걸었는데 꽤 많이 왔다. 그러나 아직은 낙관하기 이르다. 무넹기까지 오르는데는 결코 코재라는 명색이 무색치 않음을 보여 줄 것이다.
<참샘터를 지나며...>
참샘터를 지날 무렵부터 날이 밝아옴을 느낄수 있으나, 운무로 인하여 날씨 전반을 전망하기 어렵다. 부디 날씨가 잘 받쳐주기를 빌어 볼 수밖에...
<화엄사 2.9km 지점>
해가 뜰 시간이 되어 사위가 밝아 랜턴을 철수하고 오름짓을 계속한다. 보행 방법은 배낭의 무게가 무거운 필자는 자기 패이스대로 앞서 걷다가, 간격이 멀어지면 일행을 기다리면서 어깨쉼을 하면서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다. 필자가 쉬면서 올라오고 있는 일행에 포커스를 맞추어 본다. 등로 우측을 따라 오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써늘하게 느껴질 만큼 운무가 끼어있어 날씨는 그다지 무덥지 않아 다행이다.
<어둠이 걷히자 신록의 싱그러움이...>
국수등이라는 어원이 무엇인지 몰라 한참 새겨 보았으나 의미를 모르겠다. 옛 사람들이 지어 논 지명에는 필시 연유가 있을터인데 말이다.
처음으로 팀별 인증샷을 하는 여유를 부려보는 휴식시간이다. 그런데 50팀과 60팀의 세월의 흔적이 심한 차별을...(플렛쉬의 장난인가?ㅋㅋㅋ)
<노짱과 갑오연화(닠네임) 60팀>
<길중이와 은경씨의 50팀>
역시 어원을 잘 모르는 집선대다. 그 동안의 잘 다듬어진 등로를 지나, 이제 발 디딤에 신경을 써야하는 자연등로가 나오고 된비알 너덜길이 시작된다. 이 때쯤 온 몸의 땀샘이 열려 땀을 배출하여 체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생체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노고단 고개 2.5km 전방 집선대를 지나며...>
<집선대에서 다리쉼을 하고있는 두 여인>
군데 군데 걸려있는 곰 출현 주의 현수막의 곰 모습이 너무 과장되게 무섭게 그려져 있는 것 같다.환웅과 웅녀의 전설에서 보더라도 곰과 인간은 천적 사이가 아니지 않는가.
<무시무시한 곰 출현 주의 현수막>
흐르던 물도 땅속으로 스며들어 마른 계곡을 가로질러 본격적인 너덜길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이제 코재를 목전에 두고 이름에 걸맞는 진면목을 맛보게 될것이다.
<너덜길 된비알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갑오연화와 은경씨>
역시 힘들게 올랐던 코재의 막바지인 눈썹바위에 도착하여 기념촬영으로 한 컷하고 마지막 스펏트를 한다.
<힘들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눈썹 바위에서 화-ㄹ짝...>
오늘의 난적인 무넹기가 바로 코 앞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에 코를 박고 오르다 보니 무넹기에 올라섰다. 화엄사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3시간 15분만에 올라섰다. 시간상 괜찮은 성적으로 화대종주 첫날 첫 고비를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구비구비 섬진강과 구례 토지면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선다.
<무넹기 전망대에서 길중 부부>
<노짱과 갑오연화>
무넹기에 올라서 전망대쪽 종석대 밑에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것을 보니 문득 5~6년전 아들과의 지리산 종주가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이 화엄사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힘든 코재를 올라와서 보니,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대로로 등산객도 아닌 관광객이 구두를 신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였던 아들의 얼굴이 새삼 미안하게 떠 오른다.
묵묵한 길중이를 제외한 여자분들이 배 고픔을 호소하며 간식을 먹기를 원했지만, 예정대로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기념 촬영을 마치고 대로를 따라 노고단 대피소로 향한다.
평탄 대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 숲속 지름길 오르막을 올라간다. 배 고프다며 무넹기 전망대 쪽에서 간식을 먹자고 하였던 두 여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또 오름짓을 한다고 생각하니, 웬지 뒷통수에 눈총이 따겁게 느껴지는것 같다.
어찌 되었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듯이 운무에 쌓인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을 한다. 취사장에 들어가니 서너사람이 식사중이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기로 한다.
아침 메뉴는 은경씨가 문경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깻잎 쌈밥이다. 모두들 맛있게 먹는것을 보니 배가 많이 고팠을것이라 생각하니 산행의 리더로서 일행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 본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에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식사후 대피소 1층 전시실에서 따끈한 자판 커피로 속을 데우고, 지리산 주능선 구간의 깃점인 노고단 고개를 향한다.
<노고단 대피소 전경>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은 짧은 돌계단길과 송신소를 애두르는 전망이 좋은 길이 있으나, 우리의 진행은 운무로 인하여 조망이 난망하다는 핑게로 짧은 돌계단길로 올라간다.
역시 노고단 고개에 올라서니 사위가 10m이상 조망이 어려울 정도로 짖은 운무에 쌓여있다.
마고 할미의 전설이 살아있는 노고단 정상은 오늘도 탐방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연 식생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십여년 이상 비지정 등산로로 지정하여 사람의 출입을 금하다가, 지금은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탐방객의 예약을 받아 일부 개방을 하고 있으며, 성수기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유롭게 개방을 하고 있으나, 이 조차 시간상 문제로 탐방을 하지못하고 일반 등로를 따라 주능선 종주길로 걸어가야 한다. 만약 출입이 가능하였드라도 다녀올 사람은 두 남자뿐이였을까나? 덕분에 노고단 정상까지의 왕복 1.4km 거리를 생략한다.
특히 갑오연화의 이번 화대종주의 바로미터가 될것이라 생각하였던 문제의 난 코스인 화엄사에서 노고단 고개까지의 7km 구간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위안이고, 50.60.부부팀의 화대종주에 서광을 보여주는 소득이다.
<노고단 정상 입구 초소를 배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함은 이정표에 표시된 노고단 고개에서 천왕봉 까지의 25.5km 구간을 말한다. 자칭 내노라 하는 산꾼들은 이 구간을 무박,왕복종주를 감행하기도 한다. 필자도 작년 7월경 마산에서 살고있는 14년 터울의 큰 처남과 처남친구 셋이서 성삼제에서 중산리까지 당일 종주를 한적이 있었으나, 경험상 부질없는 짓으로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주능선을 알리는 노고단 고개의 이정표>
노고단 고개에서 임걸령 샘터까지는 오르내림이 크지 않은 사면 허리길로, 화엄사 코재를 힘들게 오름에 대한 보답의 뽀너스 코스이다. 별로 힘들지 않게 노고단 고개 2km 지점을 지난다. 이제부터는 걷는 만큼 천왕봉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묵묵히 걸어야 한다.
보통 산을 오른다는 것은 누구나 힘은 들지만 어렵지는 않다. 한발 한발 걷다보면 정상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히려 어려운것은 하산길이다. 그래서 인생이나 등산은 정상으로 올라갈때 보다는 내려 갈때 조심을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돼지령을 향하여...>
돼지령이다. 옛날 이 부근에서 산돼지들이 원추리뿌리를 파먹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돼지령이라 이름 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돼지령의 령자가 재嶺자를 썻으나, 재라고 느끼기에는...>
거대한 구상나무가 태풍에 못견디고 뿌리채 넘어져 있어, 뿌리 터가 얼마나 큰지 길중이가 들어가 본다. 이후 이런 광경을 수없이 목도하게 된다. 모든 사물이 뿌리가 튼튼해야 몸체를 지탱을 할 수 있는 법,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날세" 라는 말이 생각난다.
<구상나무 그루터기 밑에서 인증샷, 길중>
두군데의 피아골 갈림길을 지나 임걸령 샘터에 10시5분에 도착을 한다. 배낭을 내려 놓고 15분 동안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등로 한켠에 있어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사시사철 귀중한 물을 제공하는 샘터를 답사하고, 손이 시리도록 차가운 샘물로 목을 축이고 약간의 간식을 섭취한다.
필자가 임걸령 지명의 유래에 대한 고사로, 옛날 林傑年이라는 산적이 반야봉에 본거지를 두고 지리산 북쪽 심원마을에서 반대편 피아골로 넘어가는 샘터가 있는 이 고개에 산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은경씨 왈, 이 산중에 무슨 사람이 다닌다고 산적이 살았겠느냐고 반문을 한다.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교통수단이 없는 옛날에 지리산 남북간에 교류를하기 위하여 오고가려면 며칠씩 걸리는 먼 평지길로 돌아가는것보다 짧은 거리의 고개를 넘는 방법이 상책이 아닐수 없었다.
앞으로 지나갈 주능선 곳곳에 지리산 남북간의 물물 교류장터인 화개재, 벽소령재, 장터목이 바로 그 같음을 알수있는 현장이다.
15분을 쉬기로 하였으나 10분만에 다들 궁둥이를 털고 일어난다. 컨디션들이 괜찮다는 징조이다.
이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루목으로의 오름길을 오른다. 연하천에서 아침에 출발한 사람들과 심심치 않게 교행을 하며 오르는데, 갑자기 우루루 한무리의 남.여학생들이 맨 몸차림으로 뛰어내려오지 않는가. 혹시 산악 마라톤을 하지 않는가 하였드니 모 회사의 육상 선수들로 훈련중이라고 한다. 역시 젊음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선두인 필자가 노루가 자주 다닌다는 길목인 노루목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55분으로 임걸령 샘터에서 40분 걸렸다. 보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첫날이어서 인지 아직 주력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천왕봉이 21km 남았다. 누구 말마따나 껌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리 내색을 할 수는 없다.
<노루목 삼거리에 잠시 주차중인 필자의 배낭 약 25kg>
필자가 홀로 백두대간, 일본 북알프스, 남알프스, 후지산 원정을 하면서 사용하였던 오래된 운행장구인 머리띠를 은경씨가 착용해 본다. 몇년전 네팔 트레킹을 다녀 온 은경씨는 머리띠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팔의 포터들은 무거운 짐(150kg 정도)을 어깨의 힘으로 매고 가는것이 아니라 머리띠를 이용하여 목 뼈에 무게를 싣고, 고도 3,000m 이상의 고지를 올라 다닌다.
필자도 오늘 화엄사 코재를 오르면서 머리띠를 이용하여 배낭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안배 할 수있었다.
<머리띠를 시착해보는 은경씨>
<사진이 잘 나와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만면에 미소가 애교 만땅 >
반야봉은 지리산의 3 대 봉(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으로의 의미가 큰 봉이지만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대부분 지나칠수 밖에 없는 껄끄러운 위치에 있다. 노루목에서 고작 1km의 거리지만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필자 역시 종주시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고, 반야봉을 목적지로 삼고 무박으로 내려와 성삼재에서 반야봉을 찍고, 삼도봉. 화개재를 경유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을 한 적이 있을 뿐이였다. 이 코스가 반야봉을 오르기는 제일 무난하지만 12km에 달하는 뱀사골 계곡 내림길이 만만치 않다. 길중이와 갑오연화는 반야봉에 대하여 무반응이지만, 은경씨는 산 욕심도 있을뿐만 아니라 산행 싸이즈도 있어 반야봉에 대한 미련이 있는것 같지만 패스하기로 한다.
전망이 좋은 삼도봉에 당도하였으나 시계는 영 제로다. 남쪽으로 길게 뻗은 왕시리봉 능선은 물론 불무장등 능선도 보이지 않는다. 기념샷 몇 컷을 하고 화개재로 내려간다.
<시가집과 친정집 방향을 붙잡고...>
<문경의 산사나이 삼도봉 이정표를 배경으로... 천왕봉 20km전방>
<삼도봉 표시 동판>
가자~ 화개재 510계단 내림길로... 계단의 숫자가 가지각색이다. 별것 아니지만 지리산 주능선 상징물인 만큼 공단에서 정확한 계단수의 표시목이라도 세워두면 좋으련만...
<짠~다 내려왔당!!!)
화개재 도착시간이 12시 정각이다. 오늘의 목적지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앞으로 2시간 남짓 걸으면 될것 같은데 점심을 이찌 할까 고민이다. 시간상으로 여기서 가벼운 점심을 해결하면 무난할 것 같으나,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고 안개비에 옷이 젖어 배고픔에 추위까지 겹쳐 비상식으로 해결하기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가기로 한다.
<화개재에서 갈등을 하며...>
그런데 이런 실수를... 가파른 200m의 통나무 계단 내리막을 어렵사리 내려가니 대피소가 아닌 비상 상황 발생시 사용하는 무인 대피소로 변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뱀사골 대피소를 이용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엎친데 겹친다고 안개비가 비로 변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하는수 없이 우선 대피소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다행히 근처 샘터를 발견하여 물을 받아 라면을 끓여 굶주린 배와 추위를 해결한다.
마침 반선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지리산을 초행으로 올라 온 젊은이 두사람도 우리들을 따라 비를 피해 대피소 안으로 들어와 식수를 구하고,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넘어진김에 쉬어 간다고, 따끈한 라면에 소주 한잔으로 속을 덮히며 식사를 마치고, 대피소에서 우중산행 모드로 채비를 하고 내려왔던 화개재로 다시 힘들게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세어보니 통나무 계단이 400이 넘는다. 화개재를 올라 주능선으로 복귀하여 토끼봉을 올라친다. 화개재 안부에서 토끼봉. 명선봉 오르는 길이 오늘의 클라이 막스다.
토끼봉이란 지명은 토끼가 많이 있어, 아니면 토끼같이 생겨서가 아니라, 지리산 주봉중에 하나인 반야봉에서 12지 방향중 묘방(토끼 묘= 卯) 방향에 있는 봉이라는 뜻이란다.
토끼봉을 오르는 일행들이 많이 힘든 모양이다. 필자와 간격이 많이 멀어져 보이지를 않는다. 토끼봉 정상에서 기다렸다가 연하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격려하고 또 다시 명선봉을 향한다. 갑오연화의 지친 모습이 역역하다. 그런데 여유있게 우산까지 받쳐들고 등산하는 여인은 왜? 그런겨?
<명선봉을 힘들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인가? 카메라를 피하는 두 사람>
안개 빗사이를 뚫고 열심히 오르고 있는 일행들에게 연하천에 다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앞서 가보지만, 필자 역시 착오에 의한 오보를 전하다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산길을 가다보면 힘이 들수록 눈은 게으름을 피워 자꾸 거리를 아전인수 당겨치기를 한다.
가보면 아니고 가보면 아니고 반복을 하다보면 정신적,육체적 피곤이 겹치게 된다. 이럴때 일수록 멀리보지 말고, 발을 믿고 묵묵히 걷는게 상지 상책이다.
<명선봉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
드디어 연하천 대피소 400m 전방이다. 이제는 다왔다고 확신을 하고 뒤 따르던 일행에게 낭보를 보낸다. 이제 능선을 타고가다 내라막을 내려가면 오늘의 숙박지 연하천 대피소이다.
<연하천 대피소 400m 전방임을 알리는 이정표>
오후 3시 57분 운무에 쌓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 취사장으로 직행하여 자리를 확보한다. 산행중 등산객이 별로였는데 대피소에는 생각외로 사람이 많다.
<연하천 대피소 전경>
곧 이어 도착한 나의 대원 3인, 힘들게 왔지만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서 일까. 표정이 밝다. 이쯤에서 갑오연화라는 집사람의 닠은 필자가 모 암벽 등산학교 동기 모임에 데리고 나가면서 작명한 네임이다. 대개가 오묘한 법명으로 알고 있지만 법명이 아니고, 甲連이라는 본명에 생년이 甲午生이라 "甲午", 연꽃이라는 뜻의 "蓮花" 를 믹싱하여 만든 이름이다.
<연하천 대피소 도착 인증샷. 좌로부터 길중,은경,갑오연화>
오후 6시가 대피소 입실시간이다. 취사장에 미리 잡아 논 자리를 차지하고, 저녁 식사를 뒤로하고 일단 주연을 시작한다. 안주는 역시 준비의 달인 은경씨가 준비 해 온 양념 돼지고기 볶음으로 쏘맥을 건배주로 시주(始酒)한다. 산상에서의 먹는 음식은 민생고를 해결하는 목적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이 우선이다.
1차 주연이 끝나고 식사를 곁들여 2차 주연을 하기로 하고, 은경씨가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대비하여 공동장비로 Gift한 압력 밥솥으로 밥을 짓는다.
<오늘의 압권 압력 밥솥>
<다양한 먹거리>
산상 대피소에서 상추에 밥과 고기를 싸서 술과 함께 먹는 즐거움이란 진정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더 더욱 같이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로해서 무엇 하리오.
<먹음직 스런 양념 돼지고기 볶음>
3 산행 2일째(6/12)
이별 아닌 이별의 밤을 보내고 산행 2일째를 맞는다.
어제 오후 6시에 남.여 각실에 입실하여 날씨 관계로 별 이벤트 없이 아쉽게 지리산 주능선 대피소에서 첫밤을 지세운다. 생전 처음으로 대피소에서 밤을 보내는 갑오연화가 적응을 잘 할것인지궁금하기도 하다.
어제밤 9시 35분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 대피소 문을 열어보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부어, 내일 아침까지 비가 개이지 않는다면 과연 산행을 어떻게 할것인지 걱정이되어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새벽녘 비가 그쳤다는 사람들의 소리에 안심을 하고 7시 출발을 하기로 하고 잠자리를 정리한다.
취사장으로 내려와 어제 저녁 남은 밥과 누룽지를 섞어 끓여 대충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한다.
비는 그쳤지만 운무는 심하게 끼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출발에 앞서 인증 샷>
고저 없는 평탄 등로를 음정 삼거리까지 걷는다. 2005년 홀로 태극종주를 하면서 야간에 이 구간을 지나다 연하천으로 가는 넓은 길을 버리고 불가사의하게 음정으로 가는 오솔길을 택하여 알바를 했던 기억이 다시 생각난다.
고도 1,462m 삼각고지를 지나고 형제봉으로 가는길에 바위 사잇길을 통과한다.
<포토 포인트 바위 사잇길>
물에 젖은 바위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오르 내림을 한다. 누구도 방심해서는 않된다. 종주를 마칠때까지는 각자의 일심일체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자일 설치 구간이 가끔 나타나 안전 또 안전을 강조하며 나아간다.
주능선상 최고의 포토 포인트 형제봉이다. 기암과 소나무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물이다. 바위가 젖어있지 않았으면 올라가 좋은 사진을 한컷씩 선사 할수 있으련만, 만사불여튼튼이라고 곁눈질로 만족을 하고 패스한다.
<최고의 포토 포인트 형제봉>
형제봉을 지나 너덜 내림길과 바위 사면길을 교차하며 걸어, 벽소령대피소에 도착을 하여 취사장으로 내려가 간단한 간식을 하고, 평탄대로를 따라 덕평봉 들머리까지 힘들지 않고 간다. 이 길도 종주상 뽀너스에 속한 길이다. 덕평봉 들머리 넓은 공터에서 음정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으나, 지금은 통행을 제안하고 있다.
<덕평봉 들머리 공터>
벽소령에서 덕평봉 들머리까지는 힘들지 않게 왔지만 고도 1,500여m의 덕평봉을 오르자면 인내를 갖고 지긋하게 올라야 한다. 벽소령으로부터 1.7km 지점의 쉼터다. 잠시 배낭을 기대고 허리쉼을 한다. 오늘도 진행 방식은 필자가 빠르게 진행을 하다가 기다리는 방식이다.
<점심을 먹어야 할 세석 대피소가 4.6km 전방에 있다>
덕평봉 된비알을 올라 정상 못미쳐 바이패스하여 선비샘으로 내려가는 구간이다. 선비샘에 도착을 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목을 축이며 물통에 물을 보충하고 내리막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내리막을 찍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들과 종주때 비박을 하였던 망바위에 올라선다.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정비를 잘 해 놓았다.
<아들과의 종주시 비박장소에서 인증샷>
지리산 종주 구간중 이구간이 바윗 오르내림이 제일 많은 곳으로 참으로 성가신 곳이다.
인내와 끈기로 걷는것도 산행의 묘미가 아닌가.
<또 다른 모습으로>
망바위를 지나 바위 너덜길을 힘들게 올라 칠선봉에 도착을 한다.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 위에 자리잡고 아름다운 선경을 이루니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형상 같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을 구름이 스쳐 지나갈때는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7선녀는 아니지만, 2 선녀와 나뭇꾼!!!ㅋㅋㅋ>
칠선봉을 통과하고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다가 인내력 테스트를 요구하듯 1,556봉을 올라쳐야 한다. 한 무리의 단체 등산객을 추월하고 100계단이 넘는 나무테크 계단을 필자도 혀가 쏙 빠지게 힘들게 올라와, 대원들 걱정에 잠시 기다렸드니 이내 단체 등산객을 추월하여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랄 노자로고...이후 이어지는 영신봉은 허망하게 올라오고 만다. 영신봉은 지리산에서 신을 맞이하는 영험한 산으로 그 줄기가 청학동 삼신봉으로 이어지며, 또한 영신봉은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이고, 지리산 남부능선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드 넓은 세석평전을 운무때문에 조망치 못하고 영신봉 정상을 다녀온다는 두 여인을 뒤로하고 길중이와 필자는 세석대피소로 향한다.
<영신봉>
세석대피소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취사준비를 한다. 길중이는 음수터에 물길러 가고 필자는 장비를 챙긴다.
영신봉에 기 받으러 갔던 두 여인이 도착하여 밥을 짓고 돼지고기 김치찌게를 끓여, 2박지인 장터목 대피소가 2시간 남짓거리였기에 여유를 부리며 소주반주를 곁드려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필자의 산행사에 최고의 산상 디너였다.
넉넉한 커피타임을 끝으로 장터목으로
출발을 한다. 오늘따라 촟대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식사를 하고 난 직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2일째 산행의 종점인 장터목 대피소가 눈앞에 있어, 화대종주의 성공이 절반을 넘었다는 안도감에 다소 긴장이 풀린 탓인것 같기도 하다.촟대봉을 힘들게 올라 다시 고사목 포토 포인트가 있는 안부에 내려섰다가 삼신봉으로 가볍게 오른다.
<나무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고있는 은경씨>
이제 오늘의 마지막 스펏트 구간이다. 내친김에 삼신봉과 연하봉을 냅다 질러 장터목으로 쾌속 질주를 한다.
연하봉 언저리에서 타임체크를 한다. 손목시계는 3시 45분을 가르키고 있다. 4시까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기로...
필자는 3시 56분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을 한다.
<장터목 대피소 전경>
야외 테이블을 확보하고, 오늘의 결승선으로 마중을 간다.
<장터목 입구 결승선>
결승선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4시 01분이다. 무탈히 잘 걸어온 대원들에게 마음속으로 축하를 보낸다.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결승선에 당당히 선 대원들>
<장터목 대피소를 배경으로>
장터목에 도착을 하자 말자 우리를 축하라도 하듯이 운무가 걷히고, 군데군데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젓은 옷가지들을 난간에 말려놓고, 아직 酒時가 이르다는 중론으로 망중한을 즐기기로 한다.
5시를 넘기고 오리 훈제구이를 구워 간단한 주연을 베푼다. 축하!! 추카!! 추카!! 우리 다같이 추카!!
<문경팀 부부의 건배>
<일산팀 부부의 건배>
<오리 훈제 구이>
<장터목 대피소 옆 마당 주연장 식탁>
사람들이 갑자기 와~ 하고 함성을 지른다. 소리 난곳을 쳐다보니 하늘이 걷히고 운해가 펼쳐져 필자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가 카메라 앵글을 맞춘다. 그동안 산행을 하던 이틀 동안 운무에 시야가 막혀, 몇미터 조망도 어려웠는데 천왕봉 아래 장터목 대피소에 와서야 비로서 멋진 운해를 보여주고 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풍경 #1>
<풍경 # 2>
<풍경 # 3>
<풍경 # 4 >
<풍경 # 5>
<풍경 # 6>
<풍경 # 7>
<풍경 # 8>
< 푸르름과 운해 그리고 갑오연화>
<문경 사나이 이길중>
<장터목 스타 두 여걸>
< 또 다른 방향의 풍경 # 1>
<풍경 # 2>
<풍경 # 3>
<석양>
4 산행 3일째(6/13)
국립공원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고는 지리산에 머물 수가 없을것 같다.
지리산 들머리 곳곳마다 입산시간이 정해져 있어 야간산행도 할 수없다. 말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시행을 하고있다. 어제 오후 내내 안내방송으로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하산을 하라고 방송을 하면서, 대피소 방이 비어 있어도 비 예약자는 입실을 시키지 않을뿐 아니라, 밤 12시가 되어도 직원들을 대동하여 하산을 시키겠단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그렇게 하는것을 직접 보았으니 이제는 지리산에서의 야간산행 및 비박을 접어야 할것 같다.
어젯밤도 남자는 제석방, 여자는 천왕봉방으로...
남자들은 02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하기로 하고, 여자들은 03시에 취사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지리산 주능선에서의 이틀째 밤을 보냈다.
약속대로 일어나 취사장으로 내려와 누룽지를 끓이고 화대종주 마지막날을 준비한다. 오늘의 일출시간이 05시 10분경으로 넉넉잡고 03시 30분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천주 일출을 보고 못보고는 하늘의 뜻일터, 그러나 시간에 맞춰 올라가긴 가야한다.
간단식사를 마치고 출정준비를 마친 시간이 03시 18분이다. 계획보다는 일르지만 올라가기로 한다. 이미 제석봉을 오르는 랜턴 불빛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를 하여 쉬엄쉬엄 올라간다. 통천문 직전에서는 에베레스트의 힐러리 스텝을 방불케 하듯 이유 모를 정체가 심하다. 이런 정체라면 지금쯤 제석봉을 오르고 있는 저 불빛은 일출 시간에 맞추지 못할수도...
04시 40분 천왕봉 정상에 도착을 하니 언제들 올라왔는지 사람들이 제법 많다.
멀리 동이트고 있는 하늘을 보니 조짐이 좋다. 운해와 하늘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금이 일출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일출을 기다리며 주위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일출직전의 하늘 모습이다.
카메라의 이상 작동에 작품을....
앗뿔사~ 이 사진도...
실루엣
일출의 시간이 임박하자 주변이 붉게 물이 들고...
영롱한 하늘빛에 할 말을 잊고...
지리산 남녘 산하
반대편 하늘에 무지개가 서리고...
우리들 만남의 모태인 엘비알파인 클럽 깃발을...
실루엣 모드로 문경팀...
지리산 북녘 중봉, 하봉 아래 함양쪽을 배경으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드디어 그님이 얼굴을...
오늘과 같은 지리 팔경 중, 그 으뜸인 천주 일출의 장관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
특히 일출 직전 붉은 용암이 쿰틀거리는 듯한 모습의 장관에는 그저 할 말을 잊을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몽롱한 꿈속을 헤메듯 잃었던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남은 종주길을 간다. 천왕봉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리막 길을 걸어 안부에 내려서서 중봉으로 올라간다.
<중봉>
<중봉의 고사목>
태극 종주시 걸었던 중봉에서 하봉으로 갈리는 갈림길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써리봉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써리봉 경유 치밭목 대피소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작은 오르내림이 많은 편이다.어찌 보면 아기자기 하면서도 피곤한 길이다.
<써리봉으로 가다가 전망바위에서...>
오늘도 대원들의 컨디션은 좋은편으로 잘 따라 걷는다.
<치밭목 대피소 1km 전방>
07시 40분 치밭목 대피소에 당도한다. 우리도 빨리 내려 온 편인대,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서너팀이 식사를하고 있다.
<치밭목 대피소 날머리>
화대종주 계획상 마지막 취사 지점이다. 주부식을 모두 꺼내어 밥을 짓고 참치김치찌게를 끓여 시간상으로 배가 곺을 시간으로 다들 맛있게 먹는다.
이제 남은 구간인 유평리까지가 문제다. 화대종주 구간중 다들 이 구간을 제일 싫어한다. 보이는 전망도 없이 고약한 너덜길을 재미없이 오르락 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쪄랴. 이 구간을 통과하지 않고는 화대종주를 끝낼 수 없으니...
<치밭목 대피소 전경>
끄덕 끄덕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1km를 내려 왔으나, 대원사가 6km 이상 남았다. 이구간은 이정표를 의식하지 말고 그냥 멍청하게 걷는 것이 좋을법 하다.
모든 사람들이 종주 3일째라 체력 소모가 많아 육신이 피곤하고 심리적 무장이 풀리는 시기이기에 때문이다.
<치밭목 1km 지점>
새재 삼거리다. 여기서 일부 새재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유평리로 가는 것보다 1,4km 가 가깝기 때문이지만, 새재에서 유평리까지 포장도로의 거리가 3.7km이니,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유평리로 가는것보다 거리상 먼 거리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유평리로 방향을 잡는다.
<새재 갈림길>
계곡물을 만나 머리를 씻어보고, 두 여인은 발을 씻어보기도 한다. 오르락 내리락 나무테크 계단길이 설치되어 있어, 걷기가 옛날보다 훨 쉬워졌다.
어느덧 너덜길을 벗어나 육산으로 접어 들면서 유평마을로 내려가는 능선이 보인다.
산죽 허리길을 한참 헤치고 가니 유평으로 내려가는 작은 고개마루 쉼터에 도착한다. 이제 그다지 힘든 코스는 없어 뒤 따라오는 일행들을 안심시킨다.
<고개마루 쉼터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고개마루 쉼터에서 급 사면 계단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면 유평마을까지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 계곡 옆 평이한 내림길을 한참을 내려간다.
드디어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흔적들이 보이면서 우측 샛길로 접어들어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만세다!!! 화대종주의 대 장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화대종주 산악길 날머리>
날머리 이정표에서 인증샷을 날린다.
콜택시의 간판이 종주꾼들의 지친 몸을 유혹하고 있다. 사실 이 지점이 화대종주의 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고집스럽게도 유평 탐방지원센타 즉,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로 한다. 길중이는 흔쾌히 동의를 하였으나, 갑오연화와 은경씨는 약간 아쉬움이 있는 듯하여 미안한 마음이다.
<문경팀 인증샷>
<일산팀 인증샷
<포장도로를 걸어오다 곡사경에 비친 우리들>
유평탐방 지원센타, 아니 지금은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 삼장분소라고 부르는 정통 화대종주의 종점에 도착하여 대 장정을 마친다. 하이파이브로 종주를 자축하며, 서로에게 그동안의 고마운 정을 표한다.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정통 화대종주 성공 인증 샷>
갑오연화, 이길중, 김은경 대원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생 많았습니다. 끝으로 환상의 팀이였음을 자부합니다. -끝-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25kg의 배낭을 메고 화대종주를 하시다니...
매년 지리산 종주를 하였는데 작년과 금년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변한것이 있다는 것을 노짱님의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우리는 광주,서울 친구들이 함께 종주를 하다 보면 대피소 예약을 몇사람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항상 걱정 없이 무조건 산행을 하였는데 이제 예약을 못하면 대피소에서 잘수가 없겠군요.좋은 정보 였습니다. 부디 계획하신 북알프스 종주 완주 하시기를 기원 하겠습니다. 갑오연화 사모님도 건강히 산행을 잘 하시니 부럽습니다.
다시 보니 그사이에 치밭목 산장에도 태양열 시설을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