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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경새재를 넘었을꼬 (장회나루 - 문경새재 - 문경)
코스 거리(총 54k)
장회나루 - 수산 - 덕산 - 탄지삼거리 - 한수 - 닷돈재 야영장 - 지릅재 -
8k 6k 11k 4k 5k 4k 1k
국립공원관리사무소 - 마패봉 - 조령제3관문 - 조령제2관문 - 조령제1관문
2k 1k 3k 3k
- 문경
6k
11시 50분에 장회나루를 출발했다. 아침 8시 버스로 동서울을 출발하여 충주를 거쳐 장회나루에 도착해서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난 주에 복분자주를 산 휴게소 아줌마에게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솔잎차를 한잔 내주신다. 이 집에는 명물이 하나 있는데, 한 집에 사는 너구리와 강아지가 그것이다. 지난 주에는 너구리 밖에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강아지가 함께 살고 있다. 너구리가 놀자고 건드리지만, 강아지는 귀찮다는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개띠라서 그런지 강아지만 보면 반갑다. 우리 파피(우리집 깡패 말티즈 강아지)도 우리 부부와 한 침대에서 자는데, 안으면 마누라보다 더 따뜻하다. 우리 부부가 서로 붙어 있으면 그 사이로 기어들려고 안달을 한다. 질투가 심해서 우리가 사이좋게 안고 있는 꼴을 못본다.
파피는 자면서 사람이 하는 건 다한다. 코도 골고, 잠꼬대도 하고, 한숨도 쉬고, 방귀도 뀐다. 코 고는 소리가 작아서 정말 이쁘다. 그래서 우린 서로 착각을 한다. 나나 마누라나 자면서 상대가 코고는 것으로 서로 오해할 때가 많은데, 그건 파피가 코를 골기 때문이다. 방귀도 서로 뀌었다고 비난하는데, 알고 보면 파피가 범인인 때가 많다. 사람 방귀보다는 좀 약하지만 상당히 강한 독가스다.
그런 파피를 도보여행에 데리고 다니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다. 우선 강아지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고, 얘가 1시간 정도만 걸으면 그 다음부턴 걸을려고 하질 않고 안아달라고 조르기 때문이다. 내가 배낭만 챙기면 자기가 먼저 배낭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는 놈이 막상 나가서는 장거리를 걷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조금씩 걷는 연습을 시켜서 언젠가는 함께 데리고 다닐 것이다. 추운 겨울날 텐트 안에서 안고 자면 훌륭한 난로가 된다. 언젠가는 눈 내린 산에 등산할 때 데려갔다가 배 쪽에 눈이 뭉쳐 눈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큰 일 날 뻔한 적도 있다. 밖에 나가 놀기를 정말 좋아하는 녀석인데, 여기저기서 애완견 출입금지를 시행하는 바람에 걱정이다.
구름이 적당하게 끼어서 걷기에는 좋은 날씨다. 그러나 곧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쨍 내리쬐기 시작한다. 지난 주에 사진을 많이 찍어서인지 찍을 게 별로 많지 않다. 수산에서 덕산까지는 그냥 평범한 시골 정경이다. 오후 3시 반쯤 덕산에 있는 성암휴게소에 도착했다. 너무 목이 말라 수박이나 복숭아 등 과일을 찾았더니, 주인아저씨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복숭아를 하나 꺼내주신다. 다행히 즙이 많은 백도다. 순식간에 맛있게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포도 봉봉을 하나 사서 다 마셨더니 좀 살 것 같다.
지도를 펴놓고 주인아저씨와 한참이나 실갱이를 벌였다. 이번 여정에 등산코스를 하나 넣고 싶은 나는 월악산 횡단코스를 고집했다. 아저씨는 이 시간에는 무리라고 하면서 한수로 돌아가라고 한다. 지금부터 걸으면 한수까지는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악산은 지금은 넘을 수가 없고, 산 아래에 있는 신륵사 부근까지 가서 내일 아침에 넘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더 늦게 문경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오후 4시에 36번 도로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휴게소에서 200-300미터를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복숭아와 사과를 분류하는 큰 창고가 있다. 복숭아를 사려고 들어갔다. 2-3개만 팔라고 하자 아줌마가 그냥 가져가라면서 3개를 주신다. 횡재를 했다. 하나는 가면서 먹고, 하나는 어떤 동네에서 꼬마에게 주었고, 하나는 미안하지만 길가에 있는 토사 방어벽 위에 올려 놓았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라도 먹으라고. 비가 내려서 카메리를 배낭 안에 넣는 바람에 짐을 줄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월악에서 나처럼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하는 한 아가씨를 만났다. 그 아가씨는 해남에서 통일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오늘이 14일째라고 한다. 그렇다면 상당히 빠른 걸음이다. 어디서 구했는니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걷는 모양새가 보통이 아닌 거 같다. 서로 건강하게 도보여행을 잘 마치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가씨는 홍대에 다니는 박혜림씨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 코스로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마친 한비야씨도 홍대 출신인데. 훌륭한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은 것인가?
오후 6시쯤 월악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방이 다 나가고 없단다. 길 건너편에 있는 새로 지은 민박집에 들렀다. 5만원에 카드는 안된단다. 5만원 이하의 민박집은 몰라도 그 이상은 카드 좀 받았으면 좋겠다. 영세한 숙식업소에서 수수료 부담 때문에 카드를 꺼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방 값에 식사에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에는 만만치 않은 돈이 드는데, 그걸 다 현금으로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저녁식사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와 민박을 같이 하는 다른 집으로 갔다. 안에 불은 켜져 있는데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지나가는 총각한테 물었더니, 좀 기다려보란다. 곧 돌아올거라고. 평상에 앉아 옥수수를 먹으면서 20분쯤 기다렸지만 주인은 돌아올 생각을 안한다. 식당에 적혀 있는 집 전화와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했지만 통화가 안된다. 하릴 없이 다른 민박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섰다. 거기는 송계계곡 입구라서 숙박업소가 그 세군데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녁 7시 밖에 안되었는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라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괜히 여기서 한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바로 한수로 갔으면 벌써 도착했을텐데. 탄지삼거리에 ‘한수 3.5킬로’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40-50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날이 어두워지자 마음이 조급해진다. 빗줄기가 장대비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송계2교를 지나자 주위가 아주 캄캄해져서 앞에서 달려오는 차가 헤드라이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체가 보이지 않으면 걷는 사람에겐 정말 위험하다. 차폭이나 차의 크기를 알 수 없어 어떻게 피해야 할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갓길이 없는 도로를 걸을 때는 항상 차를 정면으로 보고 걸어야 위험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야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야간 도보는 절대 피해야 하는데도 또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드디어 먼 어둠속에서 불빛이 보인다. 이리저리 따질 것도 없이 맨 먼저 보이는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나오셔서 아무 방이나 하나 쓰라고 하신다. 2만원에 허술한 민박집인데 싼 맛에 그런대로 괜찮다.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식사가 되느냐고 묻자, 씻고 들어와서 식사를 하란다. 자기 아들이 오늘 온다고 해서 밥을 많이 했는데, 못와서 밥이 많이 남았단다. 저녁 늦은 시간에 밥까지 얻어먹어서 만원을 더 드렸다. 내일 아침까지 얻어먹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드려야 할 거 같다.
박씨 할머니는 자식 농사를 잘 지으신 거 같다. 큰 딸은 강남에서 40억대 재산가이고, 큰 아들은 강남에서 신한은행지점장을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공무원이란다. 이런 시골에서 그 정도면 교육을 잘 시킨 것이다. 그런데 큰 딸에게 불만이 많았다. 딸이 부자이면서도 너무 쌀쌀하고 냉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태크를 잘한 며느리를 칭찬하신다. IMF때 강남에 37평 아파트를 무리해서 샀는데, 그게 나중에 많이 올라다는 것이다. 지금도 쌀이나 고추 등 여러 가지 농사를 지으면 자식대로 따로 따로 다 보내준다고 한다. 전형적인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한수부터 지릅재까지는 월악산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이번 여정에서 지름길인 59번 도로를 타고 문경으로 빠지지 않고, 이 길로 멀리 돌아온 것도 이 송계계곡을 보기 위해서다. 계곡의 스케일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좋게 아기자기한 계곡물이 10킬로 가량 이어진다. 동서울에서 수안보를 경유하는 버스까지 다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바로 닿을 수 있다. 민박과 펜션시설도 잘 되어 있다.
미륵리에서 자두를 하나 얻어 먹었다. 고개를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 과수원에서 청년 하나가 책을 읽으면서 복숭아, 사과, 자두를 팔고 있다. 복숭아를 하나만 사고 싶다고 했더니, 그냥 먹으라고 자두를 하나 집어준다. 여기에서 출하되는 과일은 모두 늦게 수확을 하기 때문에 맛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자두가 별로 시지 않고 달착지근하다. 이 지역은 해발 700미터가 넘는 산중인데도 과수원이 많다. 아직도 수확하지 않은 복숭아와 자두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많다.
조령으로 넘어가는 길을 단축하기 위해 마패봉(마역봉: 해발 920미터)을 넘기로 했다. 수안보로 돌아가려면 15킬로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4시간 거리다. 마패봉을 넘는 등산길은 거리가 3킬로 쯤으로 2시간 거리다. 사문리 탐방센터 뒷길을 출발해서 조령제3관문으로 내려 오는데, 1시간 40분쯤 걸렸다. 거리가 짧은 대신에 오르막 내리막 코스가 아주 경사가 심해서 애를 먹었다. 등산에 익숙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다.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수안보로 돌아가기 바란다.
지도에는 지릅재와 제3관문을 연결하는 등산로가 분명히 나와 있는데, 탐방센터 직원은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뭘 안내하는지 모르겠다. 국립공원경계선 안에 있는 탐방로만 안내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모든 등산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월악산국립공원 탐방로에서 바로 연결되는 등산로를 모르다니 좀 어이가 없다. 이런 걸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고 한다. 마패봉에서 조령제3관문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는 군립공원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알바 아니라는 식이다. 월악산국립공원 탐방안내도에도 두 지점 사이의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내가 가진 지도에 나와 있는 빨간색 등산로를 믿고, 그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마패봉 정상에 이르자 ‘조령제3관문 0.8킬로’라는 이정표가 서쪽을 가리키며 딱 서있다. 이런 경우가 등산객들이 미지의 길을 걸을 때 맛볼 수 있는 쾌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제3관문에서 인물을 하나 만났다. 요기를 하려고 간이음식점에 들러 자리를 잡는데, 옆 자리에 않아서 술을 마시고 있던 아저씨가 혼자냐고 물으면서 합석하라고 한다. 목이 마르던 차에 막걸리 두 잔을 연거푸 받아 마셨다. 무슨 동동주인지 달착지근하고 시원하다. 아저씨는 친구와 함께 놀러왔다고 한다. 얘기를 나눠보니 독서량이 보통이 아님을 알겠다. 통성명을 했다. 정성화. 친구는 한상운. 음성에서 왔단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정선생이 자기 집에 가잔다. 오늘 거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여기에 다시 데려다주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자기 집을 보여주고 꼭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난처한 입장이다. 일단 일정이 반나절만큼 지연 되게 되니까. 저렇게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매정하게 딱 거절하기도 좀 그렇다.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정선생의 집은 깔끔하고 단정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 아들까지 4대째 내려오는 집인데, 자기가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했단다. 아버지가 면장이었을 당시 일어난 6.25때는 인민군 지역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마당에는 잔디가 잘 자라고 있었다. 잡풀이 거의 없이 잘 가꾼 잔디다. 부인이 가꾸는 정원에는 금송이며, 토종 모과나무, 석류나무, 감나무 등 여러 가지 과일나무와 꽃들이 잘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다. 돌확에는 막 피어나려는 수련과 개구리 한 마리가 놀고 있다. 내 아내가 원하는 딱 그런 집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잔디와 과실수가 있는, 정원이 이쁜 단독주택.
집 옆에는 정선생이 기르는 소와 순록, 흑염소가 있고, 희귀동물인 흰사슴 3마리와 산양 1마리도 있다. 흰사슴 새끼가 정말 이쁘다. 흰사슴이 태어나면 경사라던데. 축사 맞은 편에는 복숭아 과수원도 가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축사와 과수원 사이를 흐르는 개울물이 맑다. 개울물을 자세히 보니 송사리들이 놀고 있다. 이렇게 맑은 개울물을 보니, 이제 우리 농부들도 어느 정도 친환경농법에 대해 관심도 갖고 실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저녁을 먹으러 읍내에 나가서 정선생 부인을 만났다. 말이 많은 정선생에 비해 부인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기가 넘치는 정선생을 잘 다독이며 살아가는 내조자의 모습이다. 집에 들어와서 정원에 앉아 셋이서 밤 늦게 까지 얘기를 나눴다. 정선생은 농협조합장에 출마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려면 술을 줄여야한다고 부인이 충고한다. 본인 입으로 자신이 “걸레”라고 하는 걸 보면, 옛날엔 술 마시면 주사가 꽤나 심했나 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더니, 정선생이 벌써 복숭아 과수원에서 농약을 치고 있다. 내가 소 우리 옆을 지나가자 소들이 밥달라고 난리다. 난 소들이 저렇게 의사표시를 하는 걸 처음 보았다. 소는 항상 유순하고 순종만 하는 동물인줄 알았는데. 난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소들의 소리를 듣고 쟤들이 지금 무얼 원하는지 안다. “빨리 밥줘, 배고파죽겠어.” 강아지도 주인 온다고 반기는 소리, 배고프다고 밥 달라는 소리, 오줌 마렵다고 침대에서 내려달라는 소리, 침대에 올려달라는 소리, 밖에 데리고 나가면 기분 좋아서 내는 소리, 목 마렵다고 물 달라는 소리,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소리, 나도 삼겹살 좀 달라는 소리, 지금 졸려서 귀찮으니까 건들지 마라는 소리 등 모두 그 억양과 음색이 다 다르다.
아침을 얻어 먹고, 정선생이 어제 만난 그 자리까지 태워다 주었다. 어제 밤에 마신 약초술 때문인지 머리가 띵하고, 몸 컨디션도 영 아니다. 보통은 전날 아무리 많이 걸어도 밤새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장거리 도보여행에서 몸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조령제3관문에서 제1관문까지는 약 6-7킬로쯤 되는데, 전형적인 관광지다. 날씨가 무더운데도 불구하고 제2관문을 지나자 많은 행락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제1관문 부근은 정말 사람들이 더 많다. 문경시는 여러 가지 관광자원을 이쪽 새재 부근에 집중 배치해서 관광객 유인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었다. 문경새재박물관, 자연생태공원, KBS드라마 촬영장 등이 이 부근에 몰려 있다. 역시 경북이 도세가 센 곳임을 알겠다. 다른 도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인다.
내려오면서 이상한 커플을 하나 보았다. 어떤 할머니와 40대 남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나는 처음엔 모자지간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치면서 얼핏 들으니까, 할머니가 남자에게 존대말을 쓴다. 갑자기 머리가 햇갈린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존대말을 쓸리는 없고. 둘이 무슨 관계일까? 혹시 연인사이? 할머니가 외모가 깨끗하고 단정한 것으로 보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려가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문경오미자전시관에 들렀다. 나는 오미자를 유난히 좋아해서 새재박물관 앞에서도 오미자쥬스를 3천원에 사먹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천원이다. 2-3백미터 밖에 안떨어졌는데, 이럴수가. 관광지이니까 그렇겠지. 여기서도 실수를 했다. 오미자 엑기스 두 병을 집으로 택배로 부쳐 달라고 주문을 했는데, 나중에 핸드폰으로 전송된 청구액을 보니까 두 병짜리 두 박스를 보낸 것이다.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은 나의 실수다. 이 뙤약볕에 다시 돌아가서 취소할 수도 없고. 아이고, 마누라한테 또 혼나겠네. 맨 날 쓸데없는 것만 사온다고.
길을 내려오다 보니 왼쪽으로 성조각전시관이 있다. 입장료가 2천원이다. 안내원 말이 어떤 스님이 조각을 했다는 말에 좀 놀랐다. “스님이 이걸로 득도하시려나 봐요.” 안내원 아줌마에게 내가 농을 건냈다. 그 아줌마가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자 다른 안내원이 해설을 해준다. 2층으로 된 전시관에는 남녀 성기와 성행위 체위를 묘사하는 수많은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성기의 형상을 지닌 기묘한 나무와 돌도 많이 있다. 중국과 일본, 조선에서 옛날에 유행했던 춘화도 전시되어 있다. 섹스 기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상영되고 있다. 유화로 그린 현대 춘화도 있다. 관광상품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좋은 의도로 보이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서 좀 그렇다.
문경읍까지 걸어오는 4킬로 내내 좌우로 온통 사과밭이다. ‘문경사과’ 문경사과‘ 하더니 정말 빈 말이 아닌 거 같다. 길에서 손으로 사과를 딸 수 있을 정도로 사과나무가 흔하다. 갓길이 잘 닦여 있어서 걷기에 좋았다. 문경 읍내에 들어서자마자 어제 정선생이 꼭 가보라고 일러준 박정희대통령 거주지를 가보았다.
문경초등학교 옆에 있는 청운각으로 박대통령이 이 학교 교사로 부임해서 2년 반인가 거주했던 집이라고 한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정부에서 지원관리하는 시설이 아니고, 제자들이 경비를 모아서 운영하는 집이었다. 나는 박대통령의 공과나 개인적 애증을 떠나 역사유물로서 관광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집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초가집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아들 아내와 함께 온 어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박대통령 내외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라고 시킨다. 이미 고인이 된 한 사람을 놓고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호오가 분명히 다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경 읍내에는 온천이 2개 있다. 하나는 종합온천, 다른 하나는 문경온천. 나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종합온천에 갔다. 나는 온천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으나, 서울행버스가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아 샤워만 하고 나왔다. 아쉬웠다. 속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쉰내가 나서 포기했다. 어제 입고 나서 빨아서 잘 때 방에 널어놓았어야 하는데, 그걸 까먹고 그냥 배낭에 쳐박아 놓아서 그렇다.
점심시간을 놓쳐서 배는 고픈데, 무얼 먹을 수가 없다. 뭔가 먹으면 지난 주에 그랬던 것처럼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또 탈이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칠성사이다 한 캔과 영양갱 하나를 사서 대강 점심으로 떼웠다. 경부선에 주말이라 역시 차가 많이 막힌다. 3시50분 차인데, 동서울에 6시에 도착했다. 서울은 훨씬 더 후덥지근하다. (2009년 8월 7일 - 9일)
교통
서울에서 장회나루에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다. 충주로 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문경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는 하루 14회 운행되며,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막차는 19:40.
숙박
장회나루에서 문경 구간은 유명 관광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민박이나 모텔, 팬션, 유스호스텔 등 다양한 숙박업소가 많이 산재해 있다. 특히 송계계곡과 문경새재, 수안보 부근에 많이 있다.
식당
장회나루에서 문경 구간은 관광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다양한 숙박업소와 함께 식당도 많이 산재해 있다. 특히 송계계곡과 문경새재, 수안보 부근에 많이 있다. 문경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약돌돼지이다. 약돌돼지는 문경에서만 나는 약돌을 가루로 만들어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고기로 누린내가 나지 않고 부드러운 육질이 특징이다. 깊은산속화로구이(054-571-7978), 문경약돌돼지(054-571-2020), 새재할머니집(054-571- 5600) 등이 약돌돼지구이로 유명하다. 목련가든(054-572-1940)은 순두부가 먹을 만하다.
주변 관광지
충주호 유람선을 즐길 수 있는 장회나루, 여름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송계계곡, 월악산, 수안보 온천, 문경새재, 문경새재박물관, 문경온천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