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 조용히 한국 붐을 일으키는 한 명의 여자가 있다. 바로 ‘킴 코흐트’(Kim Kocht) 레스토랑의 김소희씨다.
19년 전 패션을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온 김씨는 패션계의 보수성에 질려 요식업으로 전환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식당영업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서 일식 요리사를 데려와 96년 처음 문을 연 ‘소희스시’는 지금의 레스토랑 ‘킴 코흐트’의 전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주인 따로 요리사 따로인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은데다 매일 스시를 만들기 위해 생선과 씨름해야하는 단조로움에 질려버린 김씨는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각지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다니며 홀로 자신만의 요리법을 연구하고 터득했다.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춘 한국식 퓨전이 바로 그녀가 창조해낸 요리다. 그리고 2001년 문을 연 레스토랑 ‘김 코흐트’는 현재 테이블 예약을 위해 3개월을 기다려야하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 되었다.
‘킴 코흐트’ 레스토랑을 열기 전에도 그녀는 오스트리아 요식업계에서 이미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레스토랑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 되었으며 그녀의 이름은 한국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그녀의 레스토랑은 크지 않다. 손님을 위한 테이블 8개로 시작한 레스토랑은 현재 10개의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녀의 요리공간인 좁다란 주방도 홀에 위치한다. 3코스 요리가 겨우 37유로, 한국 돈으로 약 5만원 정도의 가격이다. 식당만 쓱 하고 쳐다보면 별다른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킴 코흐트’를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김씨는 자신의 성공 비결이 “언제나 새로운 음식을 연구하고 도전하며 끊임없이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일식을 주요 메뉴로 내세우고 일본식 이름의 레스토랑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다른 레스토랑과는 달리 김씨는 자신의 성(姓)인 ‘김’(Kim)과 요리한다는 의미의 독일어 ‘Kocht'(cooks)를 조합해 ’김이 요리합니다‘라는 매우 직접적인 의미의 간판을 내걸었다.
이름 그대로 그녀의 레스토랑에는 요리사가 그녀 단 한 명뿐이다. 그녀를 돕는 어시스턴트, 설거지 담당, 그리고 웨이터, 이렇게 4명이 꾸려가는 레스토랑은 일주일에 3번, 즉 수·목·금요일 저녁 때만 문을 여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 'Kim Kocht' 레스토랑의 내부. 아주 작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제가 혼자 요리를 하기 때문에 매일 레스토랑의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일주일에 단 3번, 그것도 저녁 때만 문을 여는 레스토랑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냈고 한번쯤 와보고 싶은 사람들의 예약신청은 한 달, 두 달, 아니 세 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어떤 이들은 테이블 예약을 위해 뇌물(?)을 주려고도 하지만 그녀는 원칙대로 그들을 기다리게 한다.
지난 5월 5일에는 석 달간 예약이 근 하루만에 끝나버렸다. 레스토랑의 인기가 이 정도니 오스트리아의 하인즈 가서(Heinz Gasser) 재무부장관도 예약을 위해 상당기간을 기다려야 했고 김씨는 특별히 오스트리아 수상의 관저에까지 가서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다.
자만이 아닌 겸손이 미덕 한국을 알리는 홍보역할까지 수행
비록 그녀의 요리가 일명 ‘퓨전’이라고 불릴지라도 그녀가 요리하는 모든 음식은 한국의 음식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의 진맛을 전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쌀은 언제나 한국으로부터 수입해온다.
그녀는 한국의 토산품인 인삼으로 색다른 맛의 건강음식을 만들어내고 손님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레스토랑 옆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비빔밥 등의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는 김씨에게 기자는 ‘주로 무엇에 돈을 투자하는가’라고 물었다. 김씨는 “아이디어에 투자한다”고 대답했다.
“돈이 있다면 벤츠 자동차, 루이 뷔똥 가방 왜 못사겠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죽었을 때 무덤 속으로 가져갈 수 없는 허무한 것들입니다.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또한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다면 나 혼자 벤츠와 루이 뷔똥을 사서 기뻐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게 아닐까요?”
▲ 'Kim Kocht' 레스토랑의 홀 한켠에 마련된 주방.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오스트리아의 상류층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그녀가 갖고 있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자만’하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인 작고 가냘픈 한국 여성의 손끝에서 한국의 ‘맛’과 ‘멋’이 유럽대륙에 전해지고 있다.